|
보살영락경 제9권
28. 무단품(無斷品)
[다섯 가지 법을 닦음]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等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고 보살의 마음을 발하였다면, 다섯 가지 법을 닦아 행하면서 겁약(怯弱)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 법인가?
첫째는 앞 사람을 권하여 나아가게 하고 도의 마음을 버리지 않도록 하고,
둘째는 법계를 분별하여 법의 성품을 헐지 않고,
셋째는 한뜻[一意]으로 청정하여 그 밖의 다른 상념이 없고,
넷째는 권도방편[權方便]을 행하여 제도(濟度) 못한 이를 제도하고,
다섯째는 서른두 가지 업을 얻어서 정의(定意)가 어지럽지 않는 것이니라.
이것을 소위 등행보살마하살아,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지키면서 이 다섯 가지 법을 닦아 도의 뜻을 버리지 않은 것이라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하면,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3세를 분별하여 공무(空無)를 여의지 않고,
둘째는 자기의 국토를 깨끗이 하여 중생을 기르고,
셋째는 안식(眼識)을 분별하여 밖에서 들어옴[外入]을 받지 않고,
넷째는 신족신통(神足神通)으로 염(念)하면 곧 앞에 있고,
다섯째는 현재의 뭇 지혜로 스스로 영락하는 것이니라.
이것을 소위 등행보살마하살아,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이 다섯 가지 법을 닦아서 성취하게 되어 의심이 없고, 앞으로 나아가 부처를 이루는 데 겁내거나 약한 마음을 품지 않는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은 보살의 마음을 발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법을 행하여 스스로 영락하여야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여기에서 족성자여, 만일 보살이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하여 평등한 정의(定意)에 들어가면 능히 시방 천하로 하여금 다 7보(寶)가 되도록 해야 하고,
둘째는 자기 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을 끊게 하고,
셋째는 성불하고 난 때에는 세 가지 공혜(空慧)를 닦아야 하고,
넷째는 일상(一相)을 장엄하여 지혜의 뿌리[慧根]를 여의지 말고,
다섯째는 6신통을 행하되 스스로 칭찬하거나 기억하지 말아야 하나니라.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도를 행하고, 이 다섯 가지 법을 행해서 스스로 영락한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도를 행하는데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나니,
어떤 것이 다섯이 되는가?
첫째는 여래의 형상 없는 법[無形相法]을 사유하고,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요긴한 맹서가 본래 성품에 어긋나지 않고,
셋째는 스스로 본명(本命)을 인식해서 근본을 알고,
넷째는 나와 남과 수명[我人壽命]을 헤아리지 않아서 다섯 가지 고난을 여의고,
다섯째는 법은 본래 스스로 그러해서 일어나고 멸함을 보지 않는 것이니라.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다섯 가지 법을 닦아서 스스로 영락한다고 이르느니라.”
[다섯 가지 법의 불가사의를 행함]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도를 행하는데 마땅히 다섯 가지 법의 불가사의[五法不可思議]를 행해야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여러 부처님의 신덕(神德)의 불가사의요,
둘째는 여러 부처님의 협장(篋藏)의 불가사의요,
셋째는 행하는 업(業)과 받는 과보의 불가사의요,
넷째는 여러 부처님 찰토의 불가사의요,
다섯째는 도의 가르침을 펼치는 불가사의니라.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하면서부터 이 다섯 가지 행의 불가사의를 닦고, 나아가 부처를 이루어서 스스로 영락한다고 이르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대중 가운데 계시면서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부사의(不思議)하시니
펼치고 창당하는 도 역시 그러하네.
중생의 근본을 사유하시면서
본말을 보지 않으시네.
4성제(聖諦)의 횃불 잡아
저 무명의 뿌리를 비추고
항상 항상함이 없음을 생각하매
번뇌[結縛]의 병을 없앨 걸 염(念)하네.
겁의 수(數)는 다함이 없으니
다함이 없음은 다함 있음이 아니라네.
다만 중생의 미혹함 때문에
본래 없는 마음을 알고자 하네.
배움이 먼저 있고자 하여
깊고 그윽한 법을 듣고서 받음은
또한 2승의 행으로
능히 헤아릴 바가 아니네.
부처님은 5도(道)의 심연을
본래 스스로 없애려고 헤아려 맹서하니
행이 다함은 평등한 마음을 말미암기에
이 때문에 인중존(人中尊)이라 호칭하네.
부처님 지혜는 끝 간 데가 없고
신령한 지혜도 한량이 없으며
몸의 괴로움을 근본으로 하지 않아서
3세의 어려움을 영원히 없애네.
여러 부처님의 영락법은
스스로 깨치어 스승에게 받지 않고
마음의 정(定)은 허공과 같지만
늘 상념으로 상념의 반연을 즐기네.
나는 무수한 겁으로부터
정(定)에 들어가 공을 여의지 않고
한뜻[一意]으로 하나의 도를 이루니
그 까닭에 인중존이라 호칭하네.
다시 무수한 겁에
여러 부처님 받들어 섬기고
생을 다하도록 집착 없음에 미쳐서
스스로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었네.
여러 부처님 세상에서 교화하는데
바른 법으로 도의 즐거움 닦고
능히 온갖 부처님 나라를 깨끗이 하여
3유(有)의 즐거움에는 물들지 않네.
그때에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설하시고 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섯 가지 부사의하고 깊고 그윽한 법을 받들어 지니면서 닦아 익히면, 시방의 여러 부처님이 모두 와서 옹호해 주시어, 뭇 마군도 능히 틈을 얻지 못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행하는데 마땅히 다섯 가지 법의 불가사의를 행하여야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자기의 정의(定意)로 중생에게 두루 베풀되 모두 부처님 처소에 있으면서 불퇴전(不退轉)하는 것이요,
둘째는 세 가지 도(道)에도 의지하지 않고 과증(果證)을 받음이요,
셋째는 한량없는 법의 바다가 모두 나타나 앞에 있음이요,
넷째는 뭇 상(相)의 법문에서 지혜의 변재를 갖춤이요,
다섯째는 몸을 나누어 교화하여 6바라밀의 지혜를 얻음이니라.
이것을 소위 족성자여,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행하는데, 이 다섯 가지 법의 불가사의를 행해서 문득 여래의 뭇 행을 능히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
[다섯 가지 괴로운 법의 근본을 분별홤]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다섯 가지 괴로운 법의 근본[五苦法本]을 사유하고 분별하려 한다면,
어떤 것이 다섯이 되는가?
첫째는 색(色)의 근원을 분별하여 식의 집착[識著]을 내지 않음이요,
둘째는 백여덟 가지 받아들임[痛:受]에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지 않음을 생각함이요, 셋째는 뭇 상념을 영원히 끊어서 어지러운 뜻을 일으키지 않음이요,
넷째는 12인연(因緣)에 본래 이 행(行)이 없음을 이해함이요,
다섯째는 식신(識神)은 형상이 없어서 궁구해 다할 수 없음이니라.
이것을 소위 등행보살아,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섯 가지 괴로운 법의 근본을 분별하고 사유한다면, 부처님 곳간[佛藏]을 가까이해서 성현의 온갖 도의 근원을 여의지 말아야 한다고 이르느니라.”
[다섯 가지 법의 다할 수 없음]
부처님께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다시 다섯 가지 법의 다할[窮盡] 수 없음이 있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무수한 공훈은 다할 수 없고,
둘째는 여든네 가지 지혜는 다할 수 없고,
셋째는 여래의 법의 지혜는 다할 수 없고,
넷째는 온갖 법의 요긴한 정[要定]은 다할 수 없고,
다섯째는 여덟 가지 음향은 다할 수 없느니라.
[6바라밀의 불가사의 법을 닦음]
이것을 소위 등행보살아,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이 다섯 가지 법의 다할 수 없음을 닦으면 문득 여래의 법을 능히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6바라밀의 불가사의 법을 닦아 행하여야 하나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여기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은 채 앞서 찾는 바에 따라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서 그 가운데서 보시바라밀을 갖추며,
비록 보시바라밀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계를 지닌 사람을 거두어서 계의 성품을 헐지 말아야 하며, 폭역(暴逆)한 이를 보면 인욕(忍辱)하도록 권해야 하며,
만일 사람이 게으르다면 정진(精進)하도록 권해야 하며,
혹은 어떤 중생이 예순두 가지 소견[六十二見]에 집착해서 심의(心意)가 어지러워서 텅 빈 열반의 큰 도를 알지 못한다면, 저 중생을 거두어서 한뜻[一意]의 선정(禪定)으로 어지러운 상념을 없애서 두 가지 소견을 내지 못하게 하며,
혹 어떤 중생이 영원히 어둠 속에 있으면서 어리석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권도의 방편으로 저 중생을 거두어 지혜의 밝음[慧明]을 보게 하여야 하느니라.
[하나의 바라밀 속에 6바라밀을 능히 갖추는 것]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하나의 바라밀 속에 문득 6바라밀을 갖추어야 하나니,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의 바라밀 속에 문득 6바라밀을 능히 갖추는 것인가?
혹은 어떤 중생이 한마음으로 계를 지녀서 계의 성품을 헐지 않고,
계를 지니는 가운데 보시(布施)를 갖추며,
상대의 받음을 꾸짖지 않으면서 늘 인욕을 행하며,
어떤 중생이 헐고 욕하는 이가 있더라도 어지러운 상념을 일으키지 않고 화내고 성내는 마음이 없으며,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여서 게으른 마음이 없어야 하며,
비록 금계(禁戒)를 갖더라도 정의(定意)는 어지럽지 않으며,
계의 성품 가운데서 선(禪)을 헐지 말며, 지혜(智慧)를 펼쳐서 어리석고 우매한 마음을 없애야 하느니라.
이것을 소위 보살이 지계(持戒)바라밀에 있으면서 문득 6바라밀을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에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인욕(忍辱)바라밀을 얻어서 심의(心意)를 조복시켜 잘난 체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인욕바라밀에서 다시 6바라밀의 법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인욕의 마음을 버리지 말고 보시(布施)를 행할지니,
비록 보시한 바가 있더라도 상념의 집착을 일으키지 말 것이며,
그 가운데서 계의 성품의 법을 갖추어야 하고,
어떤 사람이 치고 때리더라도 어지러운 상념을 일으키지 말고 스스로 심의(心意)를 거두어서 인욕바라밀을 닦아 익힘을 갖추어야 하고,
정의(定意)를 갖추어서 선법(禪法)을 헐지 말 것이며,
인욕바라밀 속에서 선행(禪行)을 갖추어야 하며,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이미 인욕바라밀을 얻고서도 5음(陰)의 성패(成敗)의 일어나는 바를 분별해야 하며,
3독(毒)을 사유하여 어리석음과 애착으로부터 생겨남을 알아서 도의 지혜[道慧]로 영원히 나는 바가 없음을 관찰하여야 할 것이니,
이것을 소위 선남자나 선여인이 인욕바라밀 속에서 6바라밀을 갖춘 것이라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선정(禪定) 속에서 다시 6바라밀을 갖추어서 중생을 거두어 어지러운 상념을 없애야 하나니,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선정 속에서 여섯 가지 도를 갖추는 것인가?
여기에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空)한 몸의 모습[身相]을 관해서 일어나고 멸함을 보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어지럽게 하지 않아서 보시를 행하면서도 중생 및 재물과 보배를 보지 않고, 또한
‘지금 내가 보시한 뒤에 큰 과보를 얻어서 부처님 국토의 본무청정(本無淸淨)을 장엄한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문득 능히 지혜바라밀을 갖추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보살의 마음을 닦는데, 지혜바라밀에서 6바라밀을 갖추어야 하나니,
어떻게 하면 선남자나 선여인이 지혜바라밀에서 6바라밀을 갖출 것인가?
여기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지혜바라밀을 능히 닦아 익혔다면,
상념 없음을 분별하여 그 밖의 다른 행이 없고,
낱낱이 명신(名身)과 구신(句身)을 분별하고,
뜻을 거두어 계를 지녀서 계의 성품을 헐지 않고,
만일 사람이 헐고 욕하더라도 걱정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을 소위 지혜에서 계의 성품을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지혜바라밀에서 인욕을 닦아 행해서 마음이 허공과 같아 더러움과 악함을 받지 않았다면,
이것을 소위 지혜바라밀에서 인욕의 마음을 얻었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지혜바라밀을 얻고, 뜻을 거두어 정진(精進)해서 게으른 마음을 버리고, 눈 경계[眼界]의 불가사의를 분별해서 게으른 이를 보면 정진하도록 권한다면,
이것을 소위 지혜바라밀에서 정진을 갖추었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등행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지혜바라밀을 얻어서 선정(禪定)을 분별하여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한뜻[一意]과 일념(一念)으로 백천 겁을 지나도록 뜻을 거두어 스스로 조복해서 36바라밀을 모두 다 분별하나니,
등행보살마하살아, 이것을 소위 뭇 행의 근원이라고 이르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등행보살과 함께 이 법을 설하실 때에, 본래 마음을 발하여 연각에 나아갔던 한량없는 중생들이 이에 모두 뜻을 돌려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발하였다. 그리고 다시 무수한 온갖 하늘과 세간 사람이 모두 믿음을 다한 행을 얻어서 대승(大乘)을 여의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