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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능성구씨종회(NGU) 원문보기 글쓴이: 구본욱
구분 |
두문동 72현 |
두문동외 제현 | ||||
실 |
표절실 |
순절실 |
항절실 |
정절실 | ||
반 |
표절반 |
항절반 |
정절반 |
순절반 |
항절반 |
정절반 |
봉안위 수 |
17 |
31 |
7 |
11 |
33 |
20 |
소계 |
55 |
64 | ||||
총계 |
119 위(位) |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두문동 서원에는 두문동 72현으로 55위를 봉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72현의 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두문동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나 고려 말에 함께 순절 내지는 절의를 지킨 고려의 두문동외 제현으로 64위, 총 119위(位)를 봉안하고 있다.
(72현의 72의 숫자는 원칙적으로 사람의 수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표 아래에 첨부한 구본욱의 위 논문 중에서 발췌한 부분을 참고 바람)
두문동 서원에 봉안된 제현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1) 두문동 72현(合 55賢)
(1) 표절실 순절반(17현)
성 명 |
호 |
본관 |
관 직 |
시호 |
비 고 |
박문수 (朴門壽) |
송암 (松菴) |
죽산 (竹山) |
찬성사(贊成事) |
충현 (忠顯) |
초명(初名)은 문주(門柱) |
임선미 (林先味) |
휴암 (休菴) |
순창 (淳昌) |
태학생(太學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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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생 (曺義生) |
원촌 (遠村) |
창녕 (昌寧) |
태학생(太學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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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성 (孟好性) |
용호 (龍湖) |
신창 (新昌) |
태학생(太學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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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재 (成思齋) |
두문자 (杜門子) |
창녕 (昌寧) |
보문각 직제학(寶文閣 直提學) |
정절 (貞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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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운 (曺大運) |
산광 (山狂) |
창녕 (昌寧) |
문하시중 (門下侍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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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지 (申翼之) |
퇴우당 (退憂堂) |
평산 (平山) |
이부상서 (吏部尙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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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이 (申 彛) |
신귀재 (愼歸齋) |
평산 (平山) |
판도판서 (版圖判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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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우 (申 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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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平山) |
판문하성사 (判門下省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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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유 (鞠 襦) |
복애 (伏崖) |
담양 (潭陽) |
호부상서 (戶部尙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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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상 (高天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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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開城) |
밀직사(密直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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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부 (沈元符) |
악은 (岳隱) |
청송 (靑松) |
전리판서 (典理判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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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 (李 瓊) |
이우당 (二憂堂) |
하빈 (河濱) |
목사(牧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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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보 (徐仲輔) |
적암 (積巖) |
장성 (長城) |
봉정대부 (奉正大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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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순 (申 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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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平山) |
직랑(直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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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 (申 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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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平山) |
온수 감무 (溫水 監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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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생 (玄繼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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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 (義昌) |
태학생(太學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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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표절실 항절반(31현)
성 명 |
호 |
본관 |
관 직 |
시호 |
비 고 | |
김충한 (金冲漢) |
수은 (樹隱) |
경주 (慶州) |
예의판서 (禮儀判書) |
문민 (文敏) |
| |
민안부 (閔安富) |
농은 (農隱) |
여흥 (驪興) |
예의판서 (禮儀判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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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치 (李 致) |
어은 (漁隱) |
합천 (陜川) |
보문각 직제학 (寶文閣 直提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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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初名)은 감(敢) | |
전귀생 (田貴生) |
뇌은 (耒隱) |
담양 (潭陽) |
보문각 대제학 (寶文閣 大提學) |
문혜 (文惠) |
| |
이 유 (李 裕) |
해은 (海隱) |
옹진 (瓮津) |
전객서령 (典客署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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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初名)은 덕유(德裕) | |
구 홍 (具 鴻) |
송은 (松隱) |
능성 (綾城) |
문하시중 (門下侍中) |
문절 (文節) |
초명(初名)은 성두(成斗) | |
곽 추 (郭 樞) |
앙천재 (仰天齋) |
청주 (淸州) |
예문관 제학 (藝文館 提學) |
문량 (文良) |
| |
송 인 (宋 寅) |
송촌 (松村) |
남양 (南陽) |
문하시중 (門下侍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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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천우 (高天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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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開城) |
도총제 (都摠制) |
|
고천상(高天祥)의 제(弟) | |
정오륜 (全五倫) |
채미헌 (採薇軒) |
정선 (旌善) |
전법판서 (典法判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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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귀하 (蔡貴河) |
다의당 (多義堂) |
인천 (仁川) |
호조전서 (戶曹典書) |
정의 (貞義) |
| |
박 침 (朴 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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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密陽) |
호조전서 (戶曹典書) |
|
| |
이맹운 (李孟芸) |
천은 (川隱) |
옹진 (瓮津) |
호조전서 (戶曹典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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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李裕)의 자(子) | |
변 숙 (邊 肅) |
모려당 (慕麗堂) |
원주 (原州) |
호조전서 (戶曹典書) |
문절 (文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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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경 (趙安卿) |
고죽재 (孤竹齋) |
함안 (咸安) |
호조전서 (戶曹典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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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보 (徐 輔) |
신답 (新畓) |
이천 (利川) |
공조전서 (工曹典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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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심 (朴 諶) |
해은 (海隱) |
면천 (沔川) |
공조전서 (工曹典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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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初名)은 용길(用吉) | |
박 녕 (朴 寧) |
법촌 (法村) |
문의 (文義) |
공조전서 (工曹典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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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세동 (范世東) |
복애 (伏崖) |
낭야 (瑯揶) |
덕녕부윤 (德寧府尹) |
문중 (文忠) |
| |
신 안 (申 晏) |
황의옹 (黃衣翁) |
평산 (平山) |
종부사령 (宗簿寺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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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선 (元 宣) |
양촌 (陽村) |
원주 (原州) |
판삼사좌윤 (判三司左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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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숙 (趙承肅) |
덕곡 (德谷) |
함안 (咸安) |
저작랑 (著作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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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감 (申 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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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平山) |
집현전랑 (集賢殿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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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申晏)의 자(子) | |
성 부 (成 溥) |
미산 (眉山) |
창녕 (昌寧) |
형부총랑 (刑部摠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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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약시 (金若時) |
음촌 (陰村) |
광산 (光山) |
진현관 직제학 (進賢館 直提學) |
충정 (忠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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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도 (曺由道) |
창녕 (昌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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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각 직제학 (寶文閣 直提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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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운(曺大運)의 자(子) | |
도동명 (陶東明) |
쌍회당 (雙檜堂) |
순천 (順天) |
남대장령 (南臺掌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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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탁 (林 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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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羅州) |
해남감무 (海南監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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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성 (李明誠) |
송은 (松隱) |
공주 (公州) |
감찰어사 (監察御使) |
문서 (文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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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 (李 午) |
모은 (茅隱) |
재령 (載寧) |
진사(進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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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생 (李遂生) |
존암 (尊庵) |
수안 (遂安) |
생원(生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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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표절실 정절반(7현)
성 명 |
호 |
본관 |
관 직 |
시호 |
비 고 |
배상지 (裵尙志) |
백죽당 (柏竹堂) |
흥해 (興海) |
판사복사사 (判司僕寺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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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빈 (卞 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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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 (草溪) |
문하평리 (門下評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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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인 (李惟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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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安城) |
밀직부사 (密直副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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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왕택 (蔡王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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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平康) |
영호군 (領護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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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한 (崔文漢) |
충재 (忠齋) |
강능 (江陵) |
판군기사사 (判軍器寺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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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탕휴 (李湯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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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寧川) |
한림학사 (翰林學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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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징 (許 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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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陽川) |
용진 현령 (龍津 縣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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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문동(杜門洞) 외(外) 제현(諸賢)(合 64賢)
(1) 순절실 순절반(11현)
성 명 |
호 |
본관 |
관 직 |
시 호 |
비 고 |
정몽주 (鄭夢周) |
포은 (圃隱) |
연일 (延日) |
문하시중 (門下侍中) |
문충 (文忠) |
문묘(文廟)에 배향(配享) |
이숭인 (李崇仁) |
도은 (陶隱) |
성주 (星州) |
예문관 제학 (藝文館 提學) |
문충 (文忠) |
|
이종학 (李種學) |
인재 (麟齋) |
한산 (韓山) |
추밀학사 (樞密學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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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李穡)의 자(子) |
신득청 (申得淸) |
이유헌 (理猷軒) |
평산 (平山) |
이부상서 (吏部尙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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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金震陽) |
초옥자 (草屋子) |
경주 (慶州) |
좌상시 (左常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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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수 (金自粹) |
상촌 (桑村) |
경주 (慶州) |
도관찰사 (都觀察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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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등 (孫 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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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密陽) |
부사(府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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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경 (河 檠) |
|
진주 (晋州) |
헌납(獻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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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로 (洪 魯) |
경재 (敬齋) |
부계 (缶溪) |
한림학사 (翰林學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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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 (李 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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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旌善) |
중랑장 (中郞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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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부 (車原頫) |
운암 (雲巖) |
연안 (延安) |
간의(諫議) |
문절 (文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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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항절실 항절반(33현)
성 명 |
호 |
본관 |
관 직 |
시호 |
비 고 |
이 색 (李 穡) |
목은 (牧隱) |
한산 (韓山) |
대사성 (大司成) |
문정 (文靖) |
|
최윤덕 (崔允德) |
손암 (遜菴) |
탐진 (耽津) |
영도첨의 (領都僉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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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로 (崔添老) |
석계 (石溪) |
경주 (慶州) |
내시령 (內侍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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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응 (都 膺) |
청송당 (靑松堂) |
성주 (星州) |
찬성사 (贊成事) |
|
초명(初名)은 유(兪) |
공 은 (孔 㒚) |
고산 (孤山) |
곡부 (曲阜) |
문하시랑 (門下侍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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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인 (李中仁) |
|
용인 (龍仁) |
문하시중 (門下侍中) |
|
|
이 옹 (李 邕) |
조은 (釣隱) |
아산 (牙山) |
문하시중 (門下侍中) |
|
|
남을진 (南乙珍) |
병재 (丙齋) |
의령 (宜寧) |
문하부사 (門下府事) |
문안 (文安) |
|
장안세 (張安世) |
송은 (松隱) |
인동 (仁同) |
덕영부윤 (德寧府尹) |
충정 (忠貞) |
|
맹희도 (孟希道) |
동포 (東浦) |
신창 (新昌) |
한림어사 (翰林御使) |
|
이유(孟裕)의 자(子) |
최 양 (崔 瀁) |
만육 (晩六) |
전주 (全州) |
보문각 대제학 (寶文閣 大提學) |
충익 (忠翼) |
|
조 호 (趙 瑚) |
회곡 (檜谷) |
평양 (平壤) |
보문각 대제학 (寶文閣 大提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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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강 (崔有江) |
촌노 (村老) |
경주 (慶州) |
전법판서 (典法判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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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공 (朴德公) |
|
죽산 (竹山) |
도총제 (都摠制) |
|
박문수(朴門壽)의 재종질(再從姪) |
조 열 (趙 悅) |
금은 (琴隱) |
함안 (咸安) |
공조전서 (工曹典書) |
|
|
문익점 (文益漸) |
삼우당 (三憂堂) |
남평 (南平) |
대사성 (大司成) |
충의 (忠宣) |
|
김사렴 (金士廉) |
오은 (梧隱) |
안동 (安東) |
안렴사 (按廉使) |
|
|
신 우 (申 祐) |
퇴재 (退齋) |
아주 (鵝州) |
안렴사 (按廉使) |
|
|
손효정 (孫孝貞) |
|
밀양 (密陽) |
좌윤 (左尹) |
|
|
이 옥 (李 沃) |
|
양성 (陽城) |
강릉절제사 (江陵節制使) |
정절 (靖節) |
|
이 린 (李 璘) |
동강 (東岡) |
원주 (原州) |
종부시령 (宗簿寺令) |
|
|
박 익 (朴 翊) |
송은 (松隱) |
밀양 (密陽) |
예부시랑 (禮部侍郞) |
충숙 (忠肅) |
초명(初名)은 천익(天翊), 구홍(具鴻)의 생질(甥姪) |
최 이 (崔 邇) |
퇴옹 (遯翁) |
경주 (慶州) |
온수 감무 (溫水 監務) |
|
|
조 유 (趙 瑜) |
건곡 (虔谷) |
옥천 (玉川) |
전농시부정 (典農寺副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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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온 (玉斯溫) |
정은 (正隱) |
의춘 (宜春) |
진현관 제학 (進賢舘 提學) |
|
|
허 기 (許 麒) |
호은 (湖隱) |
김해 (金海) |
중랑장 (中朗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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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량 (鄭熙良) |
묵은 (黙隱) |
하동 (河東) |
진현관 직제학 (進賢舘 直提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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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견 (徐 甄) |
죽송오 (竹松塢) |
이천 (利川) |
장령 (掌令) |
|
|
윤충보 (尹忠輔) |
여강 (麗江) |
무송 (茂松) |
안성군사 (安城郡事) |
|
|
최 원 (崔 原) |
보승 (保勝) |
수원 (水原) |
종부시사 (宗簿寺事) |
|
|
신포시 (申包翅) |
호촌 (壺村) |
고령 (高靈) |
진사 (進士) |
|
신덕린(申德隣)의 자(子), 김충한(金忠漢)의 서(婿) |
원천석 (元天錫) |
운곡 (耘谷) |
원주 (原州) |
진사 (進士) |
|
|
이양소 (李陽昭) |
금은 (琴隱) |
순천 (順天) |
진사 (進士) |
문열 (文烈) |
|
(3) 정절실 정절반(20현)
성 명 |
호 |
본관 |
관 직 |
시호 |
비 고 |
김 주 (金 澍) |
농암 (籠巖) |
선산 (善山) |
예의판서 (禮儀判書) |
충정 (忠貞) |
|
나천서 (羅天瑞) |
|
안정 (安定) |
|
|
|
민 유 (閔 愉) |
사암 (思菴) |
여흥 (驪興) |
찬성사 (贊成事) |
|
초명(初名)은 사평(思平) |
전조생 (田祖生) |
경은 (耕隱) |
담양 (潭陽) |
찬성사 (贊成事) |
문원 (文元) |
|
김 전 (金 鈿) |
자포옹 (自浦翁) |
안동 (安東) |
찬성사 (贊成事) |
|
|
조 공 (趙 珙) |
|
백천 (白川) |
영삼사사 (領三司事) |
|
|
전자수 (田子壽) |
회정 (晦亭) |
담양 (潭陽) |
첨의평리 (僉議評理) |
|
전조생(田祖生)의 손(孫) |
노 신 (魯 愼) |
악은 (岳隱) |
함풍 (咸豊) |
상호군 (上護軍) |
무열 (武烈) |
초명(初名)은 철(哲) |
신 아 (申 雅) |
한천자 (漢川子) |
평산 (平山) |
밀직사사 (密直司使) |
|
신익지(申翼之)의 자(子) |
홍 재 (洪 載) |
만은 (晩隱) |
풍산 (豐山) |
판도판서 (版圖判書) |
문정 (文貞) |
|
신덕린 (申德隣) |
순은 (醇隱) |
고령 (高靈) |
예의판서 (禮儀判書) |
|
|
맹 유 (孟 裕) |
|
신창 (新昌) |
상서 (尙書) |
|
구홍(具鴻)의 재종고숙(再從姑叔) |
李春啓 |
|
합천 (陜川) |
호조상서 (戶曹尙書) |
|
|
양 우 梁 祐) |
묵재 (黙齋) |
남원 (南原) |
판도판서 (版圖判書) |
|
|
송 교 (宋 皎) |
수운당 (睡雲堂) |
여산 (礪山) |
전의령 (典醫令) |
|
|
김 약 (金 瀹) |
불강 (弗降) |
광산 (光山) |
군기상서 (軍器尙書) |
|
|
선윤지 (宣允祉) |
퇴휴당 (退休堂) |
보성 (寶城) |
안렴사 (按廉使) |
|
|
민유의 (閔由誼) |
어일 (漁逸) |
여흥 (麗興) |
한림학사 (翰林學士) |
|
|
이 수 (李 蓨) |
|
경주 (慶州) |
문하사인 (門下舍人) |
|
|
민보문 (閔普文) |
|
여흥 (驪興) |
군사 (郡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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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구본욱의 위 논문 중 2장에서 발췌>
2. 두문동 72현이란 무엇인가?
‘두문동 72현’이란 고려가 망할 때 이성계를 비롯한 조선의 개국 혁명세력에 대하여 반대한 고려의 遺臣으로서 두문동에 들어가 節義를 지킨 忠臣烈士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杜門洞의 ‘杜門’이란 말은 ‘문을 닫다’ 또는 ‘문을 막다’는 의미로 두문동이란 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하고 외부와 단절하며 사는 洞里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을 개국한 혁명세력과 단절함으로써 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키고자 하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두문동이란 명칭은 기존 존재하였던 지명이 아니라 고려의 節臣이 은거한 이후에 붙여진 명칭이다.
두문동 72인의 72인은 공자의 제자를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史記』「孔子世家」에“공자의 제자는 3000명이나 되었는데 몸소 6藝에 통달한 제자는72인이었다.”라고하였다.그리고 同書「仲尼弟子列傳」에서는 77인이라 하고 77인의 명단을 수록하고 있다. 또 『孔子家語』에서는 “72인이라”하고「七十二弟子解」에서는 76인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체로 『사기』와 『공자가어』의 공통의 수인 72를 공자의 升堂弟子의 수로 간주한다. 또 大體의 수, 즉 큰 수를 칭하여 70제자[子]라는 말로도 쓰인다. 실제로 두문동 72현을 72子 또는 70子, 70子徒로 칭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수에 있어서 공자의 高弟子인 승당제자를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 72라는 숫자는 구체적인 사람의 수를 지칭하기보다는 ‘다수의 賢人’을 지칭하는 말로 쓰여지게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두문동 72현’이란 말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 高弟子를 지칭하던 수와 관련을 지어 우리나라에서 형성된 독특한 용어로서 고려 말에 성리학의 수용과 더불어 유교적인 不事二君 또는 守節不貳의 절의정신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