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오기 전에 집수리를 끝내야 한다는 아내의 당부로 6월 중에 공사를 마치기로 건축업자와 계약을 했다. 장마철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7월 말이면 출산하는 딸아이의 산후조리를 위해 서둘러 집을 고쳐놓고 첫 손녀를 맞이하려는 외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일 것이다. 집을 깨끗하게 단장하고서 가족이 모두 한마음으로 태어날 아기를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우리는 30년 가까이 지금 사는 집에서 살고 있다. 단독주택은 전기나 수도시설이 고장 나거나 수리할 곳이 생기면 수시로 손을 봐가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10년 주기로 집 안팎을 대수선한다. 이번에도 거실과 방 5칸을 도배하고 장판을 교체하며, 외부 도색까지 모두 끝내려니 2주일 이상이나 걸린단다. 그래서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아보질 않았기에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이나 장점을 잘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집을 고칠 때마다 어머니와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이제는 내가 퇴직하고 집에 있으니까 든든하기만 하단다. 우리는 일꾼들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살림살이를 모두 밖으로 내어놓았다가 공사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를 찾아 정돈해야 했다. 생각보다 이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집을 고치는 것이 이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들 말한다. 우리 집에는 책이 많으니 다른 집보다도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책 때문에 이사를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머리가 없는 나에게는 이것도 집을 바꾸지 않고 오랫동안 눌러앉아서 살 수 있는 핑곗거리가 되었다.
어머니와 아내랑 셋이서 이불장의 이불이며, 장롱 속에서 옷을 꺼내놓고 커다란 이불보에 싸기 시작했다. 식구는 넷인데 이불과 베개가 많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봄·가을에 덮는 얇은 이불과 겨울철 솜이불, 여름 홑이불에 담요까지 게다가 베개는 열 개씩이나 되었다. 그리고 방석과 돗자리와 카펫은 부피도 크고 무겁기도 해서 옮기기가 힘들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니 이것도 내 옷인가 싶은 것도 있었고, 기억을 더듬어도 처음 보는듯한 옷가지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입지 않는 것은 버리자고 이야기해도 아내는 다 필요한 것이라고 그냥 두어야 한단다.
서재로 건너가서 책상 서랍을 여니 연필과 볼펜, 명함, 서류, CD, 편지, 사진이 곳곳에서 나왔다. 이불과 옷을 버리지 못한다고 아내를 탓하던 내가 그만 머쓱해졌다. 서가에 있는 책들을 묶어서 한쪽으로 옮기고, 액자와 시계를 떼어서 밖으로 내놓았다. 아들 녀석이 오래된 책은 버리자고 한다. 나는 “이 녀석아, 피 같은 돈을 주고 산 것들이다. 모두 버려도 책은 안 된다.”라고 소리 질렀다. 책을 묶어 내놓기가 무섭게 서둘러 이 층으로 올라가 딸아이의 방을 살펴보았다. 딸이 시집을 가면 친정집 기둥뿌리도 뽑아간다는데 우리 아이는 남겨둔 것도 많았다.
살림을 들어내니, 평소에는 좁고 답답했던 방과 거실이 꽤 넓었다. 음식을 많이 먹고 활동량이 적은 사람들이 비만이 되고 동맥경화에 걸린다고 한다. 40평이 넘는 우리 집도 구석구석에 쌓아둔 살림살이가 많아서 답답하기만 했다. 그동안 필요한 물건을 찾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포기하기도 했고, 없는 줄 알고 다시 사들인 것들도 한둘이 아니다. 짐을 정리하면서 찾지 못해 애태우던 것들이 깊숙한 곳에서 하나둘 튀어나오기도 했고, 소중한 것도 아닌데 깊이 간직해 두었던 낡은 서류뭉치와 생활용품도 정리할 수 있었다.
방마다 놓여있는 가구는 그대로 두고 짐만 밖으로 끌어내어 마당에 쌓아두었는데 마당에 커다란 동산이 들어섰다. 적은 월급으로 우리 식구들이 먹고살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하나둘 사 모은 것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우리 집도 부자라는 생각이 들어 “야, 우리 정말 부자다.”하고 소리를 지르자 모두 한바탕 웃었다.
내부 수리가 끝났다. 집을 넓고 여유 있게 쓰는 데 필요한 것들만 골라서 들여놓자고 아내에게 이야기했기에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새로 단장한 방과 거실에 꼭 있어야 할 물건들을 골라서 정리하고 나니 마치 신혼집 같았다. 방문을 여는 대로 살림살이가 단정하고 깔끔해서 마음까지도 가벼웠다. 고생한 아내의 밝은 미소를 바라보니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나 자신도 비울 것은 비우고 정리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아직도 내 맘 구석구석에는 필요 없는 욕심과 버려야 할 고루한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가끔 아이들이나 아내와 언쟁을 벌일 때가 있다.
첫댓글 대공사를 하셨군요~*^^*
전 현관문 하나 꼭 잠그고 들어가면 도둑 들 염려가 없는 아파트를 좋아하지만, 뜰이 있는 단독주택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기적으로 손보느라 돈 열심히 모아두면 집 공사하느라 다 들어간대서 엄두는 나지 않지만요^^; 화기애애한 가족분들과의 모습이 읽을 때마다 마음 포근합니다.
고맙습니다. 아파트의 장점도 많겠지만 살아보질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단독주택의 장점은 여러 사람이 어울려도 이웃에 큰 불편을 주지 않는 것이지요. 문 열고 바깥 풍광을 구경하면서 떠드는 재미도 좋아요. 그렇지만 수리할 때는 좀 힘들지요.
신혼집처럼 ㅎㅎㅎ 이 말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묵은 살림을 좀 들어내면 다이어트에 성공한 듯 단정해질 터인데 엄두가 안 나네요;;
깨끗하게 손질된 집이 신혼집처럼 느껴졌어요. 집을 고치느라 힘들게 고생했던 일을 생각하면서 서러 위하다보면 가족들간의 정이 더 깊어지지요. 묵은 살림 걷어내는 것도 재미있구요. 고맙습니다.
비움의 미학을 몸소 실천하셨군요. 저 또한 선생님처럼 1년에 한차례씩 비움니다. 사용했던 물건들을 버릴 때는 마음도 비워야 할 각오가 있어야 했습니다. 버리고 나면 홀가분한 것 같지만 필요할 때 없으면 후회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없으면 누군가 빌려주거나 대체물이 꼭 생기더라고요. 시원 섭섭하시겠습니다.
비우고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끼고 보관한 것이 나중에는 무용지물이 될 것을 알지 못한 채 보관하기도 하지요. 열심히 비우도록 하겠스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