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곡하고 싶은 역사 (V) - 룻의 백지수표
(마1:5~6a, 룻2:1~13)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비스마르크가 독일에서 재상을 지내던 시절에 독일의 황제가 자기의 신하들을 모아 놓고 자기 자신의 몸값에 대해서 한 번 의견들을 발표해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여 있는 대신들이 경쟁적으로 앞을 다투어서 황제의 몸값을 가능한 한 고액으로 책정하여 말을 하고 있는 중에 비스마르크는 고개도 들지 아니하고 땅을 쳐다보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다른 대신들의 말을 다 듣고 난 뒤에 비스마르크에게 묻습니다.
“왜 재상 당신은 아무 말도 없소? 내 몸값이 얼마나 되는 것 같소?” 하고 물어보자, 비스마르크가 고개를 들고 이야기합니다.
“죄송하지만 황제의 몸값은 아무리 많아도 29전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도 그렇고 황제도 그렇고 깜짝 놀랐지요. “내 몸값이 그 거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유가 무엇이요?” 재상이 말합니다. “예수께서 30전에 팔리셨기 때문에 30전과 똑같을 수는 없겠기에 29전이 황제 몸값의 최대한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해요.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가 예수님의 몸값을 단편적으로만 생각을 했어요.
30전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받아야 될 정당한 몸값의 표현이 아니고 대 제사장들과 예수를 팔려고 했던 가룟 유다의 거래의 결과입니다.
예수를 헌종이 조각처럼이나 생각해서 쓰레기통에 버리듯이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정한 몸값이지, 그 분이 마지막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태어나는 그 아기까지의 모든 죄를 다 속하신 속죄양이신데 한 사람이 일 년에 한 마리씩 양을 들여 속죄했다 쳐도 일평생 70마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온 인류의 죄를 다 속하신 것이 양 값으로만 쳐도 얼마치겠습니까? 잘못 책정이 되었어요.
가끔 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하게 되면 연예인들의 출연료나, 스포츠 스타들의 연봉이나 계약금을 갖고 매니저와 상대방이 거래를 하는 것들이 보고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 보면 백지수표를 내어 놓았다는 얘기가 있어요.
절대적으로 가치를 인정한다는 뜻일 겁니다.
얼마를 적어도 좋다는 뜻이겠지요. 대단한 스타들이지요.
저는 그 백지수표 내어놓는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져요.
진짜 뭐 동그라미를 끝없이 쳐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백지수표를 함부로 내어놓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이쪽에도 양심이 있으니까 적당한 선에서 그저 매길 거라 생각하고 내어놓는 것이겠지요.
여러분 몸값은 얼마입니까?
몸값이라는 게 적용이 됩니까? 아예?
신앙은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내 몸값과 내 인생의 값어치, 인생의 순간순간을 진행할 때에 그 진행되는 한 순간순간의 값에 대해서 좀 방향이 이상합니다마는 하나님 앞에 백지수표를 내어 놓는 것이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순간순간에 대해 값을 매겨 가십니다.
얼마짜리다. 얼마짜리다. 얼마짜리다.
오늘 우리가 길게 읽은 룻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룻의 인생을 값을 매겨 가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보고입니다.
룻이 한 일이라고는 너무나도 평범한 에피소드예요.
그 당시 빈민이 누구나 하고 있었던 것이 추수 때가 되면 추수 밭에 가서 추수를 거두고 남은 이삭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 다가 끼니를 연명하는 것이 율법에 정한 법이었고 풍습이었습니다.
그래 모압 땅에서 이민생활을 하다가 이민생활 실패 끝에 본국으로 돌아온 이 나오미와 며느리 룻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바닥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다가 끼니를 연명해야 되는 처지였기에 이제 보리 추수 때에 보리밭에 가서 이삭을 줍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삭을 주우러 처음 간 그 날 보아스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느 남자와 어느 여자가 보리밭에서 추수 때에 이삭을 줍다가 만났다는 그런 이야기를 단순히 보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 당시 사람 누구나가 다 했던 일인데, 누구나가 다 했던 이 평범한 일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나가 줍던 이삭 줍는 여인 누구나와는 다르게 유독 룻 속에서 룻의 인생에 대하여 값어치를 매기는 숫자를 기록하고 있었던 활동상황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룻의 인생을 어떻게 값어치를 매겼느냐?
여러분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이렇게 나오잖아요? ‘살몬이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았다.’
라합은 누구인지 아시죠?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찌를 때에 살려둔 기생 아닙니까? 창녀예요.
그 창녀가 유대민족의 살몬이라는 족장과 결혼을 해서 보아스라는 그 아들을 낳았는데 그 보아스가 바로 오늘 모압 여자 이 이방여자 룻하고 결혼하게 될 텐데 결혼하게 되기 위하여 첫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기록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보아스가 누구입니까?
룻하고 보아스하고 결혼해서 오벳을 낳아요. 오벳이 결혼을 해서 이새를 낳고 이새가 다윗을 낳습니다. 다윗 왕을, 그러면 문제 내겠습니다.
룻은 다윗의 누구일까요? 룻은 누구일까요?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거지요.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거예요.
이삭 주우러 나갔다가 이 이방여자가 하나님이 값을 매기는 그 값에 따라서 우리나라로 말하면 이조의 세종대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신라의 김춘추 같은 그런 왕가에 증조할머니가 되는 인생의 값어치를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의 믿음은 얘기합니다. 무엇입니까? 룻을 통해 보여 줄여는 믿음의 모양?
하나님께 백지수표를 내어놓는 믿음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값어치를 매기신다. 우리 인생의 값어치가 지금 얼마입니까, 여러분?
여기 70이 넘으신 우리 장로님들께 묻습니다. 내 인생의 값어치가 얼마입니까?
집사님들 얼마입니까? 권사님들? 구겨지고 주름 잡힌 인생, 생각대로 된 거보다 안 된 게 더 많은 이 인생, 펼쳐서 하나님 앞에 백지수표로 내어놓습니다.
주름 잡히고 찢어지고 구겨진 내 인생의 백지수표 위에 하나님께서 가격을 매기십니다. 그러면 구겨졌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백만 원짜리 수표를 구겼습니다. 폈습니다. 얼마짜리 됐습니까? 구겼으니까 오십만 원짜리 됐습니까?
아니지요. 이제까지 살아온 여러분의 인생이 구겨졌거나, 주름이 잡혔거나, 찢어졌거나, 하나님께 내가 값을 매기지 아니하고 백지수표로 밀어내면 하나님께서 그 값을 매겨주시는데 이방여자 룻이 다윗왕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위해 매겨주신 값은 얼마인지 모르는 것이고 그 값을 매기시는 행동이 일상적이고 너무나 하찮은 일과를 수행하는 중에 똑 같이 그 행동을 했지만 룻은 값이 다윗왕의 증조할머니의 값이 매겨지고 다른 모든 여인들은 그냥 여인이 이삭 주워 다가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지요.
자! 백지수표를 하나님께 내미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룻은 이방여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몰랐지요.
누구에게 전도를 받습니까?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전도를 받습니다.
이 나오미가 하나님을 바싹 붙잡았을 때, 전도라는 건 원래 신앙이 좀 살아 있을 때 전도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 신앙이 바짝 살아 있을 만큼 하나님을 꼭 붙잡았을 그 때가 어떤 때였느냐?
남편이 죽고 이방 땅에서 마치 쉽게 우리 짐작할 수 있죠?
밴쿠버 땅에 이주했는데 남편이 죽었어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매여서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데 아들이 죽었어요.
첫째 아들이 그리고 마지막 아들까지 죽었어요.
이 땅에서 결혼시킨 며느리들만 둘이 남았는데 한 며느리는 자기 살길 가겠다고 갔어요.
이 상태에서 나오미가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뭐라고 얘기하느냐?
“내 남편을 데려간 것도 하나님이시고, 아들을 데려간 것도 하나님이시고, 갖고 갔던 재산이 이주 올 때 밴쿠버 땅으로 이주 올 때 돈 많이 갖고 왔었는데 그 재산 다 탕진하게 만든 것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면서 자기 며느리 앞에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풍족한 가운데 나갔더니 나를 빈털터리로 만드셨다”고 21절에 얘기하고 있어요.
남편죽여, 첫째 아들 죽여, 둘째 아들 죽여, 재산 없애게 한 분이 하나님이요, 빈털터리라고 하는 그 순간에 며느리에게 하나님을 전도합니다.
며느리 룻이 소개받은 하나님, 전도 받은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이 아니에요.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에요.
시어머니를 가만히 볼 때에, 시어머니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은 남편 데려가고 아들 데려가신 하나님이고, 자기 입장에서 볼 때에는 남편 데려간 하나님이에요.
재산 탕진해 없애버리신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소개 받고 전도 받았어요.
그리고 이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왜 하나님을 붙들었을까요, 여러분?
뭘 하나님께 얻자고 하나님을 붙들었을까요?
여기에 이상한 역설이 있어요.
여러분 제가 어렸을 때 이해가 안 가는 것 중에 하나는 저희 할머니의 식성입니다.
이북 분이신데요. 치아가 건강하셔서 연세가 많이 드셨을 때도 거의가 다 당신 본래의 치아를 몇 개 이렇게 금이빨을 한 게 있습니다마는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실 때 보면 너무너무 맛있게 드세요.
뭘 맛있게 드시느냐? 김치를. 오독오독 씹으시면서…
여러분 그 라면 선전 중에 그 옛날에 이 홍렬 씨가 나와서 라면 선전하는 거 봤어요.
그 사람 라면 선전 하는 걸 보면 막 먹고 싶어져, 그냥 저절로, 아~ 하고 그냥 땀을 닦고 이러는데 저희 할머니가 딱 그렇게 김치를 잡수세요.
아무 반찬이 없어도 김치만 놓으면 잡수시는데 저는 마른 생선 조각 하나라도 없으면 꼭 불평을 하고 살던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게 눈에 들어오는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할머니가 보여요. 꽤 몇 년이 지나고 컸습니다.
어느 날 너무너무 배가 고파서 헐떡거리면 엄마한테 밥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졸랐어요.
엄마가 급한 나머지 반찬을 한꺼번에 내오지를 못하시고 밥을 갖고 오고, 김치 항상 있는 거니까 김치를 내어 왔습니다. 젓가락을 두들기면서 “밥 내놔, 밥 내놔” 이러다가 너무 배가 고파가지고 김치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이야! 김치가 그렇게 맛있는 건 줄 나 몰랐어요. 진짜. 밥을 절반을 김치하고만 먹는데 김치에 붙은 그 무 조각 있죠? 이렇게 갈아가지고 같이 집어넣는 거, 그것까지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김치하고만 맨 밥에 먹는데 아무 반찬 없이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야 어머니가 찌개를 갖고 오고 다른… 그 때 갖고 온 거 기억해요. 소시지를 설탕에 넣어서 간장하고 볶아서 주신 거예요. 그걸 갖고 온 거예요. 소시지 입에 넣고 김치 먹자마자 김치 맛이 그 김치 맛이 아니에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그 생각을 여기다 한 번 생각을 붙여봅니다.
남편 있을 때 남편이 얼마나 인생을 맛있고 즐겁게 해 줍니까?
아들 있을 때 얼마나 맛을 돋구어줍니까? 어려움도 주지만 아들 때문에 느끼는 느낌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에요?
다 없어졌어요. 다 없어지고 인생의 밥상에 김치하나 덩그렇게 남은 것이에요.
하나님 하나 딱 남았어요.
먹을 라야 먹을 게 없어, 인생에 보람과 기쁨을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나오미가 하나님을 먹습니다.
보람을 느낄만한 것이 없으니까, 하나님 밖에 안 남았으니까, 내 남편 데려가, 아들 데려가, 재산 털린 그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 밖에 없으니까, 그 하나님 먹기 시작하는데 룻이 가만히 보니까, 새카맣게 간암이라도 걸려서 죽어야 될 시어머니가 남편 잃고, 아들 둘 잃고, 재산 잃고 나서 살아 나가는 것을 봅니다.
무슨 힘으로 살아 가냐?
김치 하나 먹는 힘으로, 하나님 한 분 먹는 힘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하루하루, 룻이 그 하나님을 받아들입니다.
1장 16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찌라.”
룻은 복 주시는 하나님,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전도 받은 게 아니 예요.
남편 데려가, 아들 둘 데려가, 재산 다 박탈해 가시는 잔인할 정도로 무서운 하나님을 전도 받았습니다.
인생의 가장 강한 절벽에 부딪쳐서 그 절벽을 내세운 분이 하나님인 것을 알고 그 하나님을 붙잡은 거예요. 룻이 처음부터 느낀 맛은 처음부터 김치 맛이었어요.
하나님으로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에요.
그리고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을 행하신 그 하나님 앞에 따뜻한 사랑, 부드러운 사랑, 자애로움, 감히 구하지도 못한 채, 하나님 한 분으로 맛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하나님을 아십니까? 잘 하셨습니다.
마귀도 하나님을 압니다. 마귀도 하나님이 누군 줄 알고, 예수가 누군 줄 압니다.
그러나 절대로 마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좋아하십니까? 무엇보다 좋아하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맛을 느끼며 즐기십니까?
하나님 한 분 계신 것 때문에 인생이 맛있음을 느끼며 살아갑니까?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무엇으로 즐기며 살아가세요?
이제 이렇게 하나님을 소개 받은 룻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철저하게 자기 시어머니가 경험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살아가요. 어떻게 살아가요?
보세요. 남편과 두 아들을 죽이고 재산을 박탈해 가신 하나님, 죽인 것은 남편이요, 두 아들입니다마는 나오미도 같이 죽인 것이에요.
나오미의 뭘 죽였을까요? 여러분? 나오미의 삶을 죽여 버렸어요.
남편이 없는 여자들, 일이 절반은 줄지 않습니까?
밴쿠버에 와서 오래 살고 계신 분들이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남편이 가끔 와서 한 한 달쯤 계시다 보면 너무 힘들거든, 남편 세끼 밥해주고, 나가면 나간다고 뭐라 그러고, 같이 있으면 같이 있다고 뭐라 그래요.
보통 힘든 게 아니죠?
나오미가 남편이 없어졌어요.
아들 보고 살다가 아들이 둘 다 없어졌어요.
재산 믿고 살다가 재산이 없어졌어요. 나오미가 이제 뭘 하면서 삽니까?
여러분 같으면 뭘 하면서 세상을 살겠어요? 예?
재산 없지, 아들 없지, 남편 없으면 뭘 하면서 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삶을 죽이신 거예요, 나오미의 삶을.
삶이 죽은 채로 목숨이 살아 있는 상태가 나오미입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의 삶이 이렇게 죽을 때 우리는 이 죽은 상태를 뭐라 그럽니까?
두 글자로 절망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삶이 죽어버린 상태에서 하나님 한 분을 붙잡게 될 그 때, 우리는 뭐라 그럽니까? 두 글자로?
안식이라고 얘기합니다.
안식이 뭡니까? 평강이에요. 안식은 쉬는 겁니다. 안식은 샬롬입니다.
그런데 안식이 뭡니까? 삶에서 죽는 것이에요.
하나님 한 분에 대해서만 사는 것입니다. 이게 안식이에요.
안식에 대한 규정을 제가 한 번 읽어 드릴께 잘 들어 보세요.
‘엿새 동안 힘써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딸이나,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심지어는 소나, 나귀나,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거하는 손님들일지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 같이 일을 멈추고 쉬게 할 찌니라.’
삶에 대해서 죽어버리는 것이 안식입니다.
완전히 삶의 현장을 떠나버리는 것이에요.
죽은 사람인 것처럼 이 세상에 살아있으면서 하나님 한 분만 기억하는 것이 안식이라는 것이에요.
이 안식을 왜 명하셨을까요? 여러분?
기가 막힌 겁니다. 이게, 이게 기가 막힌 거라고요.
이 안식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미칠 지경이 돼버리는 거예요, 미칠 지경이.
기쁨과, 환희와, 평강 때문에 완전히 죽은 사람이 돼버리는 순간들이 규칙적으로 삶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거꾸로 이 세상의 무게에 눌려서 미쳐버립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뭐라고 얘기하는지 아십니까?
피스텐 마커와 자이 베르트라고 하는 목사와 저술가 두 사람이 공저를 한 책이 있어요.
정확하게 그 원제를 직역을 하면 ‘삶을 단순화하라’ 하는 그런 책이에요.
그 책의 부제가 뭐냐? 우리의 인생을 더 쉽고, 더 행복하게 하는 방법, 이것이 부제입니다.
쉽고 행복하게 하는 방법, 그 방법을 제안을 하는데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열네 번째가 뭔 줄 아십니까?
‘가끔 잠적하라’는 것이에요. 아내한테도, 자식한테도, 남편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남편한테는 얘기해야 될 거 같다, 우리 가정의 풍습상, 하여간 잠적하라는 거예요.
두 시간이던, 세 시간이던, 네 시간이던 잠적하라는 겁니다.
소식을 완전히 끊으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뭐냐?
그렇게 끊는 시간을 통해서 창조적 활력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될 거라는 겁니다.
완전히 세상일로부터 끊어버리고 신경을 완전히 차단 시켜버릴 때, 여러분 이런 일 해 보셨어요?
왜 잠을 잡니까? 잠을 못자는 이유가 뭐예요?
밤에까지 생각하던 것이 풀리지 않아서 그거 신경 쓰느라고 계속 잠을 못자다가 새벽에 일어납니다.
머리가 띵하지요? 불행하지요? 우울해지지요?
잠을 잔다는 것은 끊어버리고 일로부터 죽어버리는 것이지요. 죽어버리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얘기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쉬게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으로부터 남편 빼앗아 가고, 두 아들 빼앗아 가고, 재산에 대한 관심 다 빼앗아 가버리고 완전히 마음을 발가 벗겨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마음이 붙잡고 있는 것들로부터 완전히 빨게 벗기고 알몸으로 만들어서 떼어 내버리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쉽니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소원이 없다는 것이에요.
의욕이 없다는 것입니다. 걱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염려가 없는 게 죽는 거예요.
이 안식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 백지수표로 들이밀어 집니다.
내 바램과, 내 의욕과, 내 계획이 다 죽은 상태에서 하나님 한 분만 붙잡고 있는 이 안식의 상태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내 인생의 삶에 가장 평범한 일 속에서 내 인생의 값을 매겨 가기 시작하십니다.
매겨가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오늘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갔는데 뭐라고 표현하느냐 하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갔더라.’ 룻이 보아스의 밭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 밭의 주인인 보아스는 여기 사는 게 아니라 베들레헴 먼데서 삽니다.
성경은 또 말합니다. ‘때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왔느니라.’
그래서 보아스와 룻이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들어오셔서 백지를 내민 백지수표를 내민 우리들의 믿음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느냐?
우연히, 마침, 내 계획과 내 소원과 상관없이 우연히 내 삶이 그저 평범하게 이끌리어 갔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자리였더라는 얘기예요.
우연히, 때마침 맞춰 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값을 매겨 가시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에 대해서 나는 죽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고민하지 않습니다. 붙잡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이 모든 것 대신에 하나님 한 분 밥상위에 올려 진 하나 반찬 김치를 가지고 맛을 즐깁니다.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이 내 삶에 들어와서 내 삶의 인생의 값을 매겨 가기 시작하시는데 우연히, 때마침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믿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얘기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무슨 얘기입니까?
날마다 왜 죽습니까?
내 인생을 백지수표로 남기고 하나님께 들이밀기 위해서예요.
백지수표로 만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뭡니까, 여러분?
내 남편을 보면서 내 남편이 나가서 돈을 벌어왔으면 좋겠다.
이것은 내 인생의 수표에 내가 값을 매기는 겁니다.
이러한 값이면 좋겠다. 지우세요. 그 바램을 없애버리세요.
내 자식이 이렇게 크면 좋겠다.
내 자식의 수표에다가 값을 매깁니다.
이러이러한 값어치가 되면 좋겠다. 지우세요. 지우세요.
심지어는 저 같은 경우 지난주에 메이플 리지에 있는 관공서를 갔어요.
의료보험을 연장하기 위해서 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갈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게 있어요.
뭐가 문제냐? 일반 워킹비자와 달라서 세금도 똑같이 내고 다 똑같은데도 종교인들에 대한 워킹비자는 일반 visitor 형태로 비자가 발급이 됩니다. 그래서 그 비자를 내어 놓을 때마다 창구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몰라서 문제가 되요.
일반 visitor인데 어떻게 의료보험이 가능하냐? 안 된다.
그러면 또 얘기합니다. 못하는 영어로 “너희 supervisor를 데려와라. 네가 몰라서 그렇다. 3년 동안 의료보험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visitor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예요.
갈 때마다 이 싸움을 해야 되요. 갈 때마다, 아 웬 종교 비자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어요? 그래? 힘들어 죽겠어요.
그런데 가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자! 백지수표를 어떻게 내미느냐? “하나님 이번에는 메이플 리지 시간 없이 바쁘게 돌아가다가 시간 내서 가는데 백지수표 내밉니다. 되게 해 주세요.”
이러면 백지수표가 안 돼요.
되게 해달라는 값을 내가 매겨버리는 겁니다.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불편해지기 시작해요.
되게 해 주세요, 했는데 안 되는 일이 생겨버리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힘들어지고, 짜증이 납니다.
전부 우리가 수표 값을 매겼기 때문에 힘들어지는 거예요.
죽어버리세요. 그냥 이삭을 줍는 듯이 갑니다. 가야 되니까 가요. 전부 다 그건 다 내가 가야 돼.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예? 집사람이 있는데 집사람이 왜 그 걸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 전부 내가 가야 돼. 그냥 가는 거예요. 그냥. 가서 마음을 지워버리고 백지수표를 들이밀어요.
어떻게 들이 미냐? “하나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안 되면 다음에 또 오게 되면 또 오겠습니다. 하나님 값을 이 순간 값을 매겨 주시옵소서.” 아닌 게 아니라 순조롭게 될 리가 있어요? 열두 명 정도 줄을 서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서양 아주머니가 BC주 정부 컴퓨터가 다운이 되어 가지고 오늘은 그만 이라는 거예요. 물러가라는 거예요.
아~ 부흥회 때문에 지쳤죠? 힘들어서 겨우 갔는데 그냥 가래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는 상태에서 그냥 돌아섭니다. 슬프지 않아요. 힘들지 않아요. 하나님이 속에서 밀어 올라오십니다. “다음에 또 오지. 다음에 하나님하고 또 같이 오면 되지. 메이플 리지까지 혼자 오는 동안에 하나님 먹으면서 오면 되지. 하나님 즐기면서 오면 되지.”
절대 슬프지 않아요. 여러분, 그걸 경험 하셔야 되요.
내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가면 반드시 어려워집니다.
조마조마하게 됩니다. 힘들어집니다. 지워버리세요.
백지수표를 내미세요. 그냥, 그러면 안 됐어요. 안 돼도 오케이, 돼도 오케이 안 되고, 안 돼서 만약에 그 평범한 일을 하는 중에 끝까지 안 돼서, 다음에 가서 또 안 돼서 제가 이 밴쿠버를 떠났다. 의료보험이 안 됐기 때문에, 아이 문제 때문에, 그 떠난 그 역사 통해서 우연히, 마침 태 승철이를 다윗의 왕가에 올리는 일을 수행해 나가시는 겁니다.
왜 우리는 의료보험이 안 됐다고 슬퍼합니까?
우연히, 때마침 어떤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줄 알고?
왜 우리가 수표에다 값을 매겨버립니까?
하나님께 백지수표를 내밀어야지요.
그래서 기쁘게 돌아가려고 그러는데, 얘기 안 끝났어요. 아직.
그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더라고요. 나만. 왜 왔녜요. 나만. “나 의료보험 연장하려고 왔다.” “익스텐션, 메디칼 인슈어런스” 딱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나보고 오래요. 나만 달랑 데려다가 그 접수를 받아 주더라고요. 다른 열한 명 다 가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또 이렇게 아멘 나올 줄 알았어.
그렇게 백지수표를 내면 그렇게 되게 해 주시겠다. 또 욜로 넘어 가는 거예요.
그럼 안 되지요.
되게 해도, 안 되게 하셔도 하나님이 매기시는 값은 우연히, 때맞춰서 이루어 나가면서 우리 인생 하나하나를 다윗의 왕가에 올리시려는 하나님의 값 매김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부터 한 번 연습해 보세요.
여러분 바라시는 거 있어요?
다 지워. 다 지워. 다 지워. 지금 빡빡 지워. 자식에 대한 거, 남편에 대한 거, 아내에 대한 거, 건강에 대한 거, 다 지워. 다 지우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백지수표 내미는 거예요.
“하나님! 하나님이 매겨 주시옵소서. 내 값을, 인생의 순간순간의 값을.” 그리고 빈 마음으로 하나님 생각하며 가 봐요. 하나님이 솟아오릅니다. 하나님이 맛있어 집니다.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내 마음에 하나님이 너무너무 달게 느껴집니다.
용솟음치는 하나님의 살아계시는 느낌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 느낌이 있어서 안식함을 누리고, 평강을 누리면서 죽어있는 것처럼 하나님만 기억하고 살아가나, 그 죽어있는 듯이 보이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다윗의 왕통으로 올라가는 우연히, 때 마침의 역사로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뭘 안다고 도대체 우리 인생의 순간순간에 대해서, 우리의 가족들에 대해서 끝없이 수표에 값을 매기면서 그 값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억울해 하고, 분해 하고,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며 살아갑니까?
삶이 죽은 자인 것처럼 안식의 믿음 백지수표를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 내 밀수 있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완전히 빼앗긴 나오미와 룻이 하나님 손에 완전히 맡긴 채 해야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살아 갈 때에 가장 큰 일을 하는 자리에 올랐음을 기억하게 해 주셔서 오늘부터 백지수표의 신앙, 안식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