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사회를 읽는 주제통합 영어 수업-학생들의 삶과 연결되는 교사 교육과정'의 후기와 더불어
생각을 조금 늘어놓는 글입니다.
1. 제목
제목부터 이야기하자면,
'사회를 읽는' 이라는 구절에 눈길이 가장 많이 갔습니다.
언어는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언어는 사회를 투영하고,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를 배운다는 것과 동일시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출발하자면, 언어는 사회가 투영되었기 때문에 그 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책 제목에서부터, 선생님께선 언어를 통해서 사회를 읽고자 하는 바를 지향하시지 않았나 합니다.
1장. 흔들리는 영어 교육
1-1. 고교학점제
영어 과목의 절대평가화와 고교학점제는 유의미한 영향을 남겼다고 봅니다.
이는 영어 교육에서 차별성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수업 개설권을 얻기 위해서 학생들의 이목을 끌 만큼의 차별화라는건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크나큰 고민입니다.
이제 교육이 '기술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철학자'를 만들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를 푸는 기술자가 아닌,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답을 찾아 나가는 철학자의 시대이지 않을까 합니다.
1-2.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늘 인간의 가치관의 발전 속도를 추월하였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이 속도의 간극을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인간만의 고유영역이라고 보았던 사고와 학습 또한 인공지능도 할 수 있게 되어갑니다.
빅데이터는 절대적인 양의 차이로 인간을 무력하게 합니다.
코로나 19는 더불어 실시간 회의 프로그램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의 보급화를 가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한계는 명확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운 것을 학교에서 실천하는 것',
이것은 기술의 교육이 아닌 가치의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시대의 요구이지 않을까 합니다.
1-3. 수업으로 희망을 말하기
이제 일상의 주제가 수업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잠깐의 숨고르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인용된 2017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논의 또한 이제 기능 교육을 넘어 인간교육, 내용교육을 지향해야 한다고
우리에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기술자 교육이 아닌 철학자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2장.영어라는 그릇에 삶을 닮다
2-1. 주제통합 영어 수업의 꿈
마지막 부분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복종을 강요하는 것, 사익을 위해 불의를 저지르는 것,
의심해보지 않고 무조건 수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비판적인 해석을 위한 교육을 결심하셨다는 부분은
영어교육을 넘어 윤리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행간 읽기의 교육을 꿈꾸셨다는 점이 느껴졌습니다.
시민 불복종이라는 단어 또한 인상깊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권자입니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시민권에는
필연적으로 시민 불복종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는, 민주주의가 시민 불복종이 피워낸 꽃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부터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연속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의 역사입니다.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시민 불복종을 깊이 있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과세특 이야기 또한 각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카페 '영수실록'에서 접근한 간학문적인 접근은 제 교과세특을 살찌우는 원천이었습니다.
이 영수실록은 선생님의 간학문적인 수업을 통해서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선생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2-2. 주제통합 영어 수업의 디딤돌
교육과정 재구성의 사칙연산이란 표현을 쓰셨지만, 저는 간결한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근래는 잘 언급되진 않는 표현이지만,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 학습요소를 남기고 주제통합화하는 과정은
교육에서의 창조적 파괴이지 않을까요?
대니얼 윌링햄이 다룬 4C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역사도 4C를 다루면서 가르치면, 역사는 지루한 과목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흥미롭고 재밌는 과목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3. 좋은 삶의 양식을 수업에 각인하기
경험을 통한 성장이지만, 이 과정에서 질적으로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상호협동과 경쟁을 통해서 사회적인 역량을 키운다는 것은
가치관적인 성장이라는 교육의 목표를 충실하게 실천해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병은 허무라고 생각합니다.
허무는 무관심을 낳고, 무관심은 무의미를 낳는다고 봅니다.
허무의 극복은 개인적인 노력뿐만 아닌 공동체 속에서의 관계 맺기 속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잘 말하는 것과 더불어, 잘 듣는 것이 자연스럽게 중요해집니다.
민주주의는 의견의 존중이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는 다르더라도 일단 들어 보는 것에서
민주주의가 출발하지 않을까요?
더불어 학습공동체 두레 이야기가 나왔는데, 영어로 그대로 음역한 표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영어 표현을 조금 고쳐서
Do-Ray 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발음도 똑같으면서, '행동하는 빛' 이라는 뜻을 덧붙여, 주제통합 수업과 수업공동체를 통해서
행동하는 빛이 되어 나아가는 의미를 넣으면 더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3장
3-1. 영어 상처 치유하기
상처와 허무를 넘어서는 힘은 의미와 동기의 부여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처를 접근하는 방법에서 저는 되게 세련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표와 데이터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아닌, 은유를 통해서 바꾼다는 점은 유쾌했습니다.
더불어서 스트레스에 대하여 문제의 원인이 아닌 느끼는 상태를 바꿔서 해결하는 점은
스스로 벽을 넘어가는, 허무를 극복하는 낙관이라고 생각합니다.
3-2. 코로나와 죽음을 대면하기
영미권에서 죽음과 관련된 유명한 격언으로
'Memento Mori'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너무 경건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음악을 통해서 유쾌하게 받아들이면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교육 자체가
영어수업이자 동시에 음악치료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습니다.
3-3. 시로 가치를 가르칠 수 있을까?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P의 모음.
무지의 베일을 한 유스타치아는
다시 곱씹어 보니 공정의 눈가리개가 아닌 도피의 눈가리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의의 계측이라고 든 저울의 수평 여부를 보지 않고
정의의 집행이라고 칼을 휘두르지만 불의의 칼날일지도.
아니면 정의를 위해 눈을 뜨고 노력했지만 정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의 좌절로
눈을 가리고 현실에 도피한, 무능한 여신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시를 고른 측면에서, 우리의 통념을 뒤집는 시를 골라서 진행하였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점이었습니다.
3-4. 다수결은 항상 옳은가?
이 수업 파트는 선생님이 일고에 계셨을 때 했던 수업이라 기억에도 생생했습니다.
숙의민주주의로 떠오르는 일반적인 다수의 합리적 결정의 가능성
동시에 엘리트주의는 많은 고민들을 낳게 해주었습니다.
더불어 지역에 대한 관심까지 확장되는 수업은
풀뿌리 공동체에 대한 애정까지의 확대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이는 선생님이 늘 강조하시던 기러기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 수업이지 않을까 합니다.
3-5. 영어 수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참여와 실천이란 주제를 현장에서 다루는 건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참여와 실천을 통해서 세상이 변할 수 있는가?' 라는 고민을 통해서
그 과정에서 허무와 절망을 마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수업 주제를 통해서 선생님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희망을 말하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지 않을가 합니다.
닫는 글
'인성과 지성의 등가교환'이 아닌
'인성과 지성의 동행'을 꿈꾸는 교육의 길은 시시포스의 신화와 같이
헛고생일 수도 있고, 쉽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성과 지성의 등가교환은 허무와 파편화를 심었다면,
인성과 지성의 동행은 시민의식과 낙관을 심어갑니다.
주제통합 수업이 힘든 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지성만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자신이 믿는 길을 우직하게 관철해 나가는
용기가 세상을 바꿔 나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