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푸(곡부)의
공자님을 제향하는 사당인 대성전
마당에 세워진 수 많은 비석 중에서
명나라 성화제가 바친 비석입니다.
비문 판독은 촬영해온 사진을 보고 하였습니다.
<어제공자묘비(御製孔子廟碑)>
어제중수공자사당비(御製重修孔子廟碑)
짐이 생각건대 공자의 도는 천하에 하루라도 없을 수가 없다. 왜 그러한가. 공자의 도가 있으면 강상이 바로서고, 윤리가 밝아지며, 만물이 각기 그 있을 바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단이 마구 일어날 것이고 사설이 분분하게 지어 질 것이다.
강상은 어디부터 바르게 되고 윤리는 어디서부터 밝아지며 천하 만물은 또한 어떻게 각기 그 있을 바를 얻는가? 이것은 백성의 기쁨과 근심과 매어있고, 국가의 질서와 혼란과 관계된다. 천하를 가진 자는 진실로 공자의 도를 하루라도 없을 수가 없다. 대개 공자의 도는 곧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의 도이며, 육경에 실려 있는 것이다. 공자는 이들 성군들의 도를 좇아 배우고 그들의 도를 밝혀서 후세에 알린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하늘이 장차 부자(夫子)를 세상의 목탁으로 삼고 하늘이 공자를 낳지 않았다면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의 도는 후세에 어떻게 알려졌겠는가? 장차 마음이 어둡고 캄캄하여 꿈속과 다를 바가 없어서 이른바 만고의 기나긴 밤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일로 보면 하늘이 공자를 낳은 것은 실로 천지가 마음을 바로 세우도록 하기 위하여, 백성이 삶을 바로 세우도록 하기 위하여, 지난날의 성인들의 도를 후세에 잇도록 하기 위하여, 만세토록 태평성대를 열도록 하기 위하여서인 것이다. 그 도의 쓰임새의 크기는 천지와 같을 뿐만이 아니다.
아! 성대하도다! 진실로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공자님 같은 분이 없구나! 제자들이 공자님의 그 성스러운 덕성을 형용하기가 같지 아니하지만 <<중용>> 한 책에 그 성스러운 덕이 남김없이 밝혀져 있다.
공자이후로 천하를 무려 10여 왕조가 차지하였지만 그 군주가 비록 현명하고 현명하지 못함과 지혜와 어리석음이 같지 않았지만, 모두 공자의 도에 의뢰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공자를 존숭하는 예가 더욱 더 오래고, 현창하고, 멀리 가고, 성대하였으며, 한나라, 위나라 이래로 공자를 칭송하는 이름을 올리고 제후로 봉하고 드러내기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우리 윗대 황제들도 학교 교육을 더욱 일으키고 제전(祭典)을 더욱 융성시키며, 서울부터 천하의 고을들에 이르기까지 학교와 제전이 없는 곳이 없게 하였지만 공자님 마을인 여기 궐리에 대해서는 더욱 각별하게 하셨다.
그래서 태조 고황제께서 즉위한 처음에 제관을 보내 제사를 받들고 그 성대한 모습을 글로 지어 비석을 세우셨다.
태종 문황제께서 사당을 다시 수리하여 묘우를 새롭게 하였는데, 또한 글을 지어 그 사실을 기렸다.
짐이 황제 자리를 이어받고 직접 태학에 가서 공자님께 석전 제례를 올렸고, 이곳 궐리(闕里)의 사당이 세월이 오래되어 다시 점차로 피폐해져서 중수를 하기에 이르렀다.
중수공사 책임자가 공사가 끝났음을 보고하여 짐의 애타는 마음을 깊이 달래주었다. 공자의 도가 천하에 있음은 삼베와 비단 같은 옷감과 콩과 조 같은 곡식과 같아서 백성들의 생활에 잠시라도 없으면 안 된다. 그 깊은 인과 도타운 은택이 천하의 후세에 흘러넘치는 것이 진실로 무궁하다.
백성의 왕이 된 자로서 나는 장차 어떻게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사당의 외관을 새롭게 지어서 공자님을 존숭하지만, 존숭한다는 것이 어찌 한갓 그러한 것뿐이겠는가? 그 도의 존속을 돕는 것이다.
그대들은 공자의 도가 늘 있도록 하여 멸망하지 않도록 하면 강상이 바르게 서지 않음이 없을 것이고, 윤리가 밝아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만물이 또한 그 있을 바를 얻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지금 시대에 장차 이렇게 하면 태평성대의 나라가 될 것이고, 당우 하은주 삼대의 태평성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래 평안하고 길이 질서 있게 정치하는 책략의 단서는 이 도를 적용하는 데에 있다. 글을 지어 비석을 사당 뜰에 세워 우리나라가 유교를 숭상하고 공자의 도를 존중하는 뜻을 밝히노라. 이런 일을 시로 말한다.
하늘이 공자를 낳아서, 성인의 도를 잇는 성인으로 삼았다.
공자는 안빈낙도를 행하고, 인의와 중정의 도를, 교육하는 사도를 일으켰다.
따르며 공부하는 제자들 삼천인데, 요순의 도를 이었다.
도통은 흘러 공자에게 전해지고, 육경을 정리하여 도가 밝아졌다.
후세에 가르쳐, 삼강오상이 바로 섰다.
그 가르침 밝아서 소멸하지 않으며, 도와 덕은 높이 드날린다.
교화가 무궁하고, 제왕이 이로써 섰다.
천지와 같은 그 공력, 사람 난 이래 없었다.
우뚝하고 성대함이여! 요순의 심법을 굳게 잡고 집대성하였다.
실로 하늘이 명한 바이니, 천하를 얻은 자로다.
이를 받들고 이를 높이니, 성인의 도이네.
창성한 그 도를 감히 마루로 않으면, 나를 돌아보니 나는 애꾸눈일 뿐이네.
이 대업을 물려받아서, 성인의 가르침 생각는다.
마음이 이에 흡족하고, 그 도를 쓰서 치세의 도로 삼는다.
그 도로 억조창생을 평안하게하고, 성인의 은택 세상에 흘러넘친다.
만세에 새롭게 쓰서, 사전의 융성함을 알린다.
궐리에서는 더욱 추모하여, 묘우가 높고 높아라.
이 중수의 아름다움, 글로 지어 깨끗한 돌에 새기어, 전보다 빛난다.
목탁의 남은 울림, 여운이 천만년 울린다.
성화 4년(1468) 6월 11일
(朕惟孔子之道天下一日不可無焉 何也 有孔子之道則綱常正 而倫理明 萬物各得其所矣 不 然則 異端橫起 邪說紛//
作 綱常何自而正 倫理何自而明 天下萬物 又豈能各得其所哉 是以生民之休戚系焉 國家之治亂關焉 有天下者誠//
不可一日無孔子之道也 蓋孔子之道卽堯舜禹湯文武之道 載於六經者是已 孔子則從而明之以詔後世耳 故曰天//
將以夫子爲木鐸 使天不生孔子則堯舜禹湯文武之道後世何從而知之 將心昏昏冥冥無異於夢中 所謂萬古如長//
夜也 由此觀之則天生孔子實所以 爲天地立心 爲生民立命 爲往聖繼絶學 爲萬世開太平者也 其功用之大不但同//
乎天地而已 噫 盛矣哉 誠生民以來之所未有者宜乎 弟子形容其聖不一 而是至於中庸一書 而發明之無餘蘊矣 自//
孔子以後 有天下者無慮十餘代 其君雖有賢否智愚之不同 孰不賴孔子之道以爲治 其尊崇之禮愈久而愈彰愈遠//
而愈盛 觀於漢魏以來褒贈可封可見矣 迨我//
祖宗益興學校益隆祀典 自京師以達於天下郡邑無處無之 而在闕里者尤加之意焉 故//太祖高皇帝登極之初 卽遣官致祭 爲文以著其盛 而立碑焉//
太宗文皇帝重修廟宇 而一新之 亦爲文以紀其實 而立碑焉 朕嗣位之日 躬詣太學釋奠孔子 復因闕里之廟 歲久漸弊 而//
重修之 至是畢工 有司以聞深慰朕懷 嗚呼 孔子之道之在天下 如布帛菽粟 民生日用不可暫缺 其深仁厚澤 所以流//
被於天下後世者信無窮也 爲生民之王者 將何以報之哉 故新其廟貌 而尊崇之 尊崇之者 豈徒然哉 翼其道之存焉//
爾使孔子之道常存 而不泯則 綱常無不正 倫理無不明 而萬物亦無有不得其所者 行將措斯世 於雍熙泰和之域 而//
無異於唐虞三代之盛也 久安長治之術端 在於斯用是 爲文勒石 樹于廟庭 以昭我朝 崇儒重道之意焉 系以詩曰//
天生孔子 繼之爲聖 生知安行 仁義中正 師道興起 從遊三千 往聖是繼//
道統流傳 六經旣明 以詔後世 三綱五常 昭然不替 道德高亭 敎化無窮//
人極斯立 天地同功 生民以來 卓乎獨盛 允執大成 實天所命 有天下者//
是尊是崇 曰惟聖道 昌敢弗宗 顧予眇躬 承此大業 惟聖之謨 於心乃愜//
用之爲治 以康兆民 聖澤流被 萬世聿新 報典之隆 尤在闕里 廟宇巍巍//
于玆重美 文諸貞石 以光於前 木鐸遺響 餘千萬年//
成化四年六月十一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