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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스라엘군이 맞서 싸우는 블레셋(필리스티아)군에 속한 인물로, 6큐빗 한 뼘, 3m에 달하는 거대한 키를 가졌고 거대한 덩치와 강력한 힘으로 이스라엘 군사들은 그가 보이기만 하면 도망가게 될 정도로 활약을 펼쳤다.
이후 이스라엘군과 싸우게 되는데, 완전무장한 자신에게 완전히 겁을 집어먹고 통 접근을 안하는 이스라엘 군사들을 상대로 계속 도발을 해 사기를 왕창 꺾던 도중, 도시락 배달 왔다가 계시를 받고 나온 양치기 다윗이 나선다. 처음에는 그래도 사울이 다윗에게 제대로 무장이나 하고 나서라고 해서 갑주 등을 입었지만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해서 그냥 평복 차림에 시냇가 조약돌 다섯 개를 골라들고 나선다. 골리앗은 고작 막대기와 돌멩이를 들고 나온 다윗에게 자신을 개 취급하는 거냐고 저주하면서,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윽박지르며 한 걸음씩 나아오는데...
불레셋 장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다윗은 재빨리 대열에서 벗어나 뛰쳐나가다가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불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리하여 다윗은 칼도 없이 팔매돌 하나로 불레셋 장수를 누르고 쳐죽였다. 다윗은 달려가서 그 불레셋 장수를 밟고 서서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목을 잘랐다. 불레셋 군은 저희 장수가 죽는 것을 보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다윗이 던진 돌에 이마를 정통으로 맞아 쓰러지고, 그 사이에 다윗에게 목이 베인다. 그냥 돌팔매도 아니고 투석구로 투구의 미간 사이 빈틈을 정확하게 맞힌 것이다. "이마에 돌이 박혔다."는 표현으로 볼 때, 두개골이 깨져서 즉사한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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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골리앗을 물리치다(삼상17:1~58)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18
사무엘상 17장은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다. 58절이나 되는데 골리앗이라는 이름은 4절과 23절에 한 번씩 딱 두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이름이 너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골리앗’ 하면 거인이나 장애물의 화신이 됐다. 반면에 다윗은 어린 소년,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다. 승리의 비결이 뭘까?
골리앗, 어마어마한 거인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4절), 한 규빗이 사람의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니까 대체로 45~50cm, 그렇다면 거의 3m 정도의 거인이다. 기네스북 역대 공식 최장신 로버트 워들로우(Robert Wadlow)의 272cm보다 한참 더 큰 비공인 역대 세계 최장 신이다. 키만 큰 게 아니라 힘도 셌다.
갑옷의 무게가 놋 5천 세겔, 1세겔이 11.4g이니까 57kg이고, 창날 무게만철 6백 세겔, 거의 7kg에 가까우니 맞짱 뜨다가는 뼈도 못 추릴 정도다 (5~7절). 그런데 고대 전투는 1:1 싸움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윗은 골리앗과 맞짱을 뜬다. 블레셋과 이스라엘간에 벌어진 싸움의 절정이다.
성경은 골리앗을 ‘싸움을 돋우는 자’(4절)라 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었던 것이다. 영어 번역본에서는 ‘champion’이라 번역했다.
넘을 수 없는 태산 같은 사람이 40일 조석으로 연속 시위를 하자(16절) 위세에 눌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다 주눅이 들었다. 싸울만한 사람이 총동원된 엘라골짜기였지만 누구 하나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사울 왕도 거기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목 하나가 더 컸던 사울, 위풍당 당한 체구였으나 골리앗 앞에선 초라할 뿐, 완전 겁먹었다. 모두가 두려워다 숨었다.
조호진 목사의 ‘기다림과 자기부인의 다윗 영성’이라는 책에 보면 이 부분을 ‘조롱당하는 이스라엘, 키만 크 고 정신머리 없는 얼간이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스라엘은 완전 무정부 상태, 모든 것이 와해 됐다. 군주제로 강한 나라 만들어보려던 계획은 완전 수포로 돌아간 것 같다. 골리앗은 연일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속수무책, 그저 조롱당하고 있을 뿐이다. 신기한 건 골리앗이 이스라엘 백성을 단 한 명이라도 죽였다는 기록은 없다. 기록대로라면 40일 동안 폼만 잡다가 다윗의 물맷돌 단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골리앗 입장에서는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골리앗은 강하고 두려운 존재를 상징하는 허상과 같다. 우리 앞에 닥친 문제나 맞서야 할 대상이 강할 때 우리는 상대를 골리앗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문젯 거리가 산처럼 커 보이고 우리는 그 앞에 서 있는 생쥐처럼 느껴져 지레 겁을 먹는다. 성경은 마귀를 ‘우는 사자’ 같다고 했다(벧전5:8). 왜 ‘날뛰는 사자’라고 하지 않고 ‘우는 사자’라 했을까? 우리에 갇혀 울부짖는 사자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그냥 허깨비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해를 끼치지도 못하는데 지레 겁을 먹는 셈이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 아닐까?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믿음이 최고의 백신이 될 것이다.
다윗, 어린 소년에 불과하다
16~7세 정도의 어린 소년,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 어려서 그런지, 모자 라서 그런지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았다. 전쟁에 나간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 세 형들에게 볶은 곡식과 떡 덩이를 가져다주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배달 간 것이다.
아버지는 다윗을 의심했는지 형들의 대장인 천부장에게도 치즈를 주고 증표를 가져오라고 했다(18절). 큰형 엘리압은 전선에서 얼쩡거리는 다윗을 향해 전쟁 구경왔냐며 화를 낸다 (28절). 그냥 걱정이 아니라 까불지 말고 가라는 것, 키 큰 얼간이 주제에 다윗을 완전 무시한다.
더 이상한 건 사울 왕의 처사다. 어린 소년에게 자기 군복과 투구를 입혀서 골리앗의 상대로 내보낸다(38절). 말이 되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지 않나? 물론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까 이렇게 어린 소년도 용감하게 싸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수는 있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그의 머리를 가져온다. 완전 뜻밖의 승리 다. 그리고 그때 사울이 다윗이 누구인지, 누구의 아들인지를 묻는다(58 절). 수금 타던 다윗을 몰랐다는 게 좀이상하지만 사울 왕은 “도대체 너는 누구니?”라고 물은 것이다.
유진 피터슨의 표현처럼 ‘동화 같은 스토리’다. 구박받고 무시받던 막내가 형들을 위기에서 구할 뿐만 아니라, 공주를 얻고 나라의 절반을 얻는 스토리, 우리가 즐겨 읽었던 동화와 다를 바 없다. 실제 사울이 내걸었던 포상 내역이 그렇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25절) 부마가 되는 것, 승리하면 대박이다. 한 방에 인생 역전을 이룰 찬스, 즐겨 읽던 동화와 똑같다.
그러나 이건 성공한 후에 드라마 틱하게 재구성한 것일 뿐 실제 역사나 인생은 비약이 없다. 역사는 치열하고 긴박하게 진행되며 준비된 자를 통해 이 일이 이뤄진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쳤다. 몇 가지 승리의 비결이 있었다.
첫째는 ‘분노’였다.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26절). 다들 두려워했지만 다윗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이 분노는 간절함, 이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다는 저항이다. 이분노가 싸우게 했고, 이 분노가 이기게 했다.
둘째는 ‘경험’이었다.
다윗은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맹수와 싸우고 거기서 이긴 경험들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감을 갖게 된 것, 이기는 자의 습관이 중요했다. 그리고 셋째는 ‘주무기 활용’이었다. 왕이 입혀준 갑옷과 투구, 그리고 채워준 칼은 가문의 영광이고 자랑이었지만 다윗에게는 불편할 뿐이었다. 다윗은 그 무기들을 다 벗고 양치기 복장으로 무장했다.
늘 들고 다니던 막대기 들고 엘라골 짜기에서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었다. 그저 평소 복장에 수없이 연습이 된 무기, 물맷돌을 장착한 것이다.
그리고 완전무장한 거인 골리앗을 향해 돌진했다. 기습 공격, 다윗은 거들먹거리는 골리앗의 행동이 느린 것을 간파하고 속도전을 펼쳤다.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49절). 순식간에 물맷돌이 이마에 박혔다.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맞힌 게 아니라 박혔다고 했다. 골리앗은 쓰러졌 고, 다윗은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골리앗을 밟고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자른다(51절). 이겼다. 사람들은 ‘뜻밖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다윗 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승리의 비결은 만군의 여호와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의 결정적인 비결이 따로 있음을 안다.
하나님이시다. 돌이켜 보면 모두가 골리앗에 사로잡혀 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사로잡혀 있었다. 모두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압도당할 때 다윗은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엘리압은 다윗을 호랑이 같은 골리앗에게 대드는 하룻강아지 취급했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대드는 하룻강아지로 봤다.
다윗이 외쳤던 것을 보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45절) ‘만군의 여호와’, 히브리어로 여호와 체바오트(Jehova Sebaot),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승리를 확신했다. 그래서 물매를 손에 쥐고 운명의 골짜기로 내려가며 영적 선언문(spiritual statement)을 낭독했다.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46절), 얼마나 멋진 선언인가?
승리를 확신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7절), 다윗은 거인 골리앗이 아니라 자기와 함께 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을 본 것이다.
시편 3:6에서 “천만인이 나를 둘러진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노래했던 그대로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기름 붓고 감추어 두셨던 왕이 될 남자 다윗을 드디어 공개적 인물로 우뚝 세우신다. 승리의 전설이 되고, 이스라엘 최고의 영웅이 되게 하신다. 다윗이 이렇게 서게 된 비결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이었다. 하나님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분이시다. 어려운 시대이지만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불러들이는 마법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게 승리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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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엘라 골짜기 /삼상17:45-47/ 이재철목사
45.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46.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47.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지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 마음 가운데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열린문교회가 한국의 가정교회사역에 크게 쓰임을 받는 건, '영원 구원하여 제자 삼으라.’는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자녀들에게 이런 소원이 없다는 건, 병이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꿈이 있을 때와 사라졌을 때,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17장1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또 전쟁을 일으키려고...’ 이는 이스라엘에 심상치 않는 전운(戰雲)이 감도는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이미 끝난 싸움입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은 그 블레셋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몹시 놀라서 떨기만 하였다’(11절)
적의 한마디에 벌벌 떠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 임금으로, 집권 초기에는 나가는 전쟁마다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권을 얻은 다음부터 사방의 원수들과 전쟁을 하였다... 어느 쪽으로 가서 싸우던지 늘 이겼다’고(14:47)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사울은 어떻습니까? 몹시 놀라서 떨기만 하였습니다. 왜일까요? 사무엘상 14장의 사울과 17장의 사울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소원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울왕에게 하나님의 소원이 사라진건, 그의 맘속에 교만함과 악신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사울왕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두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전에는 거뜬하게 이기던 상대를,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합니다. 사울왕처럼 전에는 주님의 능력으로 이겨내던 문제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오진 않습니까? 사업의 문제, 진로의 문제, 건강의 문제, 관계 속에서, 미래에 대한 막연함... 등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골리앗을 만나셨습니까?
키 3m에, 50kg이 넘는 갑옷 입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무시하고 모욕합니다. 그때 양치기 소년 다윗이 겁 없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울왕도 다윗의 형들도 황당해 하며 말렸으나, 다윗의 맘엔 하나님의 소원이 타올랐습니다.
어린 목동이 싸우겠다고 나서자, 자존심 상한 골리앗이 말합니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주마”(44절) 다윗이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45절)
골리앗과 싸울 때 다윗이 갖고 나간 무기가 무엇이었습니까? 왕이 준 최고급 갑옷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무릿매(물매) 하나를 들고 나갔습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다윗이 승리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다윗의 승리법칙 5가지
① 오직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절대로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있는 것만으로 살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가치가 아닌 세상의 가치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고백합니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주신 하나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주실 것입니다.“(37절)
결국 그 믿음에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자, 다윗은 무릿매 하나로 골리앗을 때려눕혔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다윗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자신의 갑옷과 창칼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전문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거룩한 소원’을 주시는 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무릿매 하나로 골리앗을 이겼지만, 다윗이 이긴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갔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나에게 익숙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에 익숙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풀리는 것보다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말씀에 익숙하기를, 또 섬김에 익숙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돈, 높은 명예, 최고의 학벌... 등이 우리를 싸움에서 이기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② 먼저, 자기 자신을 극복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섰을 때, 모든 사람이 비웃으며 말렸습니다. (33절)
전쟁 전문가인 사울왕과, 전쟁터에 있는 형제들이 보기엔 참으로 무모한 용기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직 믿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승리했습니다.
③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집중력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게 돼 있습니다.
다윗은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도,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블레셋이 무너질 걸 상상하며 집중했습니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32절) 승리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실 것이라는 사실에 집중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상상하며 살고 있습니까?
④ 달란트를 100% 활용했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당시 양치기는 종이나 하는 허드렛일이었습니다.
외로웠던 다윗은 양떼를 지키면서, 수금 타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깊이 교제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수금소리는 사울왕의 악신을 쫓아낼 정도로 능력이 있었습니다.
무릿매는 사자나 곰으로부터 양떼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다윗은 무릿매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이 무기가 어떻게 쓰였습니까?
한방에 골리앗을 쓰러뜨린, 창칼보다 무서운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100% 사용하기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생의 골리앗을 무너뜨리는데 크게 쓰실 것입니다.
⑤ 열정이 있었습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해내게 돼 있습니다.
다윗의 맘에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8형제 중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나 보호를 받기는커녕, 종이나 하는 어렵고 힘든 양치기를 해야 했습니다.
이때 다윗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큰 고통의 파도가 가슴을 어지럽혔을 것입니다.
바로 그 고난 중에, 다윗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인이 됐고, 골리앗을 때려눕히는 용사가 됐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불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불이 꺼지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늙은이며,
이 불이 활활 타오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청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속에 주신 거룩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혹, 인생의 골리앗 때문에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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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을 넘어뜨린 다윗 (삼상 17:45-47) (이영훈 목사)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사무엘상 17장 45∼47절
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소년 다윗이 거인 장수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골리앗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대적들, 즉 큰 환난과 시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골리앗을 물리칠 수 없지만,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해서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가 있습니다.
1. 우리에게 다가오는 골리앗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삼상 17:1). 블레셋은 대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이웃나라였는데, 이번에는 블레셋이 거인 장수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에 전쟁을 걸어 왔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 된다고 했습니다. 한 규빗이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45cm정도 되는 길이이니까 여섯 규빗 한 뼘이면 무려 2m 90cm나 되는 거인입니다. 그가 몸에 걸친 갑옷 무게만도 57kg(1세겔 11.45g)이 나갔습니다(삼상 17:4∼5).
쳐다만 봐도 압도당할 정도의 이 거대한 장수가 나와서 자기와 싸울 이스라엘 대표는 나오라고 고함을 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습니다(삼상 17:11). 저들은 싸워보기도 전에 그 마음에 먼저 두려움이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환난이 다가오고 어려움을 만났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잠 4:23).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마음은 천국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문제가 다가올 때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오는데, 이 두려움은 죄의 결과로 생겨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숨었다고 했습니다(창 3:10).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골리앗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과거의 상처, 실패했던 경험이 골리앗이 되어서 다가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물질에 어려움 당하는 사람은 물질의 골리앗이 다가오고, 이성의 유혹에 약한 사람은 음란의 골리앗이 다가옵니다. 그때 문제의 골리앗을 바라보지 말고, 골리앗보다 크신 문제의 해결자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2. 다윗의 믿음과 용기
다윗은 양치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새가 전쟁터에 나간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안부를 살피고 오라하였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에 갔다가 골리앗이 소리치며 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삼상 17:23).
그가 소리치니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놀라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삼상 17:24). 그러나 믿음의 사람 다윗만큼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절망도, 문제도, 어려움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 사람을 물리치면 어떤 상급을 주느냐?”하고 물어보았습니다(삼상 17:26). 아주 자신만만했습니다. 그 얘기를 큰형 엘리압이 듣고는 “들의 양들은 어찌하고 여기에 온 것이냐? 구경이라도 하러 온 것이냐? 너는 이 전쟁이 아이들 장난쯤이나 하는 것으로 보이느냐?”며 동생을 나무랐습니다(삼상 17:28).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때때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핍박할 때가 있습니다.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만 듣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떠는데, 이 조그마한 소년이 사울 왕에게 불려가서 그 앞에서도 “절대 낙담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서 싸우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삼상 17:32). 그리고 자기가 양을 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새끼를 물어 가면 따라가서 그것들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나를 해하고자 하면 그 수염을 잡고 쳐 죽였습니다. 그러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쳐서 그 사자나 곰같이 되게 하겠습니다”(삼상 17:34∼36)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오래전 과거 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히 13:8). 동일하신 하나님, 동일하신 예수님, 동일하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3. 위대한 승리를 주신 하나님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아갈 때, 한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냇가에서 매끈한 돌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고 물매를 가지고 갔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외쳤습니다. “너는 내게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오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야훼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우리에게는 위대한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갖고 나아갈 때, 우리는 백번 싸워도 백번 이깁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만군의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이미 싸우기도 전에 승리한 것입니다. 그 마음에 승리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조금 문제가 생겼다고, 한번 실패했다고, 어려움이 다가왔다고 주저앉아서 낙심하여 울면 안 됩니다.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더 좋은 일이 내 앞에 일어날 것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기적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을 고침 받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으키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한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절망에 처해 주저앉아있는 사람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문제와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왔을 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문제는 떠나갈지어다. 절망의 골리앗은 물러갈지어다. 질병의 골리앗은 물러갈지어다”라고 담대히 외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대한 승리를 허락해주십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삼상 17:47).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다윗이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물매에 돌을 넣어서 던지니,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습니다. 3m에 가까운 거구가 엎드러지니 다윗이 달려가 그 옆구리에서 칼을 뽑아 목을 베었습니다(삼상 17:49∼51). 믿음으로 돌을 던지면 우리의 원수가 엎드러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대적도 엎드러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언제나 우리에게 위대한 승리와 축복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골리앗을 만군의 야훼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워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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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7:45-49 / 물매와 돌로 이긴 싸움 / 박종순 목사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사무엘상 17:45-49)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이스라엘과 불레셋의 전쟁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이 지고 다윗이 지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다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떤 조건들이 이기도록 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그는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이었습니다(16:10-11).
2) 사무엘상 16:12을 보면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고 했습니다. 그는 미소년이었습니다. 우람하거나 남성미 넘치는 소년이 아닌 시쳇말로 꽃미남이었습니다. 그의 외모와는 상관없이 골리앗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앙과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3) 16:13을 보면 그는 여호와의 신에게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사무엘 선지자가 베들레헴 이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목적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큰아들부터 시작하여 일곱째까지 만나보았지만 하나님이 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덟 번째 아들인 다윗이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16:12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16:13을 보면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은 성령님의 별명입니다.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울도 왕이 될 때는 성령이 충만했습니다(10:10).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말씀을 불순종하고, 교만에 빠지면서 성령님은 그를 떠나셨고 반대로 악령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 왕 후보로 기름부음을 받은 직후부터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 받은 지도자가 있고, 악령 받은 지도자가 있습니다. 악령 받은 지도자는 결국 자신도 망했고, 국가도 망쳤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신이신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4) 예능이 탁월했습니다. 16:18을 보면 악기를 탈 줄 알고, 호기, 무용, 구변이 준수했다고 했습니다. 예능 감각이 뛰어났고 다재다능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시인이었고 노래를 즐기는 음악인이기도 했습니다.
5)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16:18을 보면 베들레헴 친구 중 한사람이 다윗을 가리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하지만 하나님이 떠나시면 길이 막히고 일이 꼬이고 문제가 터집니다.
6) 악신을 내쫓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16:23을 보면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을 괴롭히던 악신이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울 왕은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지만 불신, 불순종, 교만에 빠지면서부터 귀신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왕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나라를 다스리면 그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귀는 무질서, 파괴, 공격, 혼잡, 혼돈의 영입니다. 귀신들린 사울 왕의 고통을 다윗이 해결한 것입니다.
7) 주의 종이었습니다. 17:32을 보면 다윗이 자기를 가리켜 "주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이후에도 자기가 주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주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왕이지만 주의 종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주가 아닙니다. 주를 섬기고 받드는 종이라야 합니다.
8) 용기의 사람이었습니다. 17:35을 보면 들에서 양을 칠 때 곰이나 사자가 틈을
노려 양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다윗은 맨손으로 사자의 곰과 싸
워 이겼습니다. 미소년 다윗 속에 사자와 곰을 때려잡는 힘과 용기가 있었던 것입
니다.
2. 골리앗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가 걸친 갑옷의 무게는 놋 5천 세겔이라고 했습니다. 환산하면 57kg이 됩니다. 놋으로 만든 57kg의 갑옷을 입고, 키는 2.9m 상상만 해도 기가 찹니다. 17:36을 보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했다"고 했고, 17:42을 보면 다윗을 업신여겼다고 했습니다. 자신과 사우겠다고 나선 상대가 덩치가 큰 것도, 키가 큰 것도, 최신 무기를 든 것도 아닙니다. 어린 소년이 앞에 서 있으니 업신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누가 이겼습니까?
유치부 아이들에게 물어도 대답합니다. 다윗의 승리였습니다. 왜, 어떻게 이겼습니까?
1) 긍정적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17:32을 보면 무서워 떨고 있는 사울 왕에게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것이라 주의 공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낙담하고 한숨 쉬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은 마귀의 선물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골리앗은 이길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 용기이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안된다. 못한다. 어렵다. 틀렸다.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못한다. 안된다. 어렵다. 틀렸다. 힘들다"는 말을 상용어로 씁니다.
존 맥스웰이 쓴「생각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부제는 "당신의 생각이 인생을 결정한다"입니다. 그는 책 속에서 가능성 사고는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가능성 사고는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키워준다. 가능성 사고는 원대한 꿈을 꾸게 한다. 가능성 사고는 평균보다 높은 곳으로 오르게 한다. 가능성 사고는 에너지를 준다. 가능성 사고는 포기하게 하지 않는다. 라면서 중요한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문가랍시고 사람들의 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로켓 연구의 선구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은 "나는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대단히 신중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고, 불란서 영웅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했고,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얄팍한 나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러 들지 맙시다. 안된다면 안됩니다. 힘들다면 점점 더 힘들어 집니다. 그러나 된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신앙은 되게 하는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다윗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맨주먹으로 소년이 2.9미터 장군과 어떻게 싸우겠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다윗에게는 긍정적 용기와 도전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었고,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절대신앙 때문이었습니다.
17:37을 보면 "하나님이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던 것처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했고, 45절을 보면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했고, 4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7절에서는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철두철미한 절대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 승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이미 나는 너를 이겼다는 것이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신앙만 있으면 겁낼 것도, 겁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으면 사방천지에 겁나고 두렵고 걱정되는 것들이 널려있습니다. 기도와 믿음이 나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3) 물매와 돌 하나로 이겼습니다.
물매는 다윗이 양을 지키기 위해 휴대하고 다니는 사제 도구였고, 돌은 땅바닥에
흔히 뒹구는 것이었습니다. 돌 5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그중 하나를 물매에 끼워 던졌습니다.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힌 것입니다. 17:49을 보면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고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설마"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년 전 골프공을 쳤을 때 공이 책을 뚫고 나간 이야기도 있고, 골프 공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다 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설마"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날의 승리는 물매와 돌 하나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돌 네 개가 주머니에 남아 있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합니다, 골리앗 네 명은 더 이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니 땅위를 구르는 돌맹이 전부가 하나님의 미사일이고 핵폭탄인 것입니다.
승리는 하나님 것입니다.
승리는 믿는 자의 것입니다.
승리는 내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