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념의식2022V철학일반
의식(Conscience) 철학일반
‘ F. Brémondy, Les Notions philosophique, Dictionnaire, PUF, 1992, p.426-428.(P.3299)
- 브레몽디(F. Brémondy, s.d.) [전공이 현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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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철학 일반에서 의식은 인식을 체계적으로 다룬다는 의미에서 항목을 설정한 것 같다. 즉 감각과 감정을 포함하여 인식과 체계를 다루는 정신 활동의 총체를 의미하는 의식이라기보다, 인식과 체계를 소위 말하는 형이상학과 연관 속에서 인간이 지식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사전에서는 의식을 다루는 항목들에서 심리학의 의식, 정신분석학의 의식, 집단의식, 계급의식, 허위의식, 도덕의식, 반성의식, 등을 분류하여, 이 중에서 인식과 연관 속에서 철학적으로, 특히 인식론과 관련하여 여기에서 “의식”을 다룬 것이다. 이런 분류 방식과 달리 철학사적으로 ‘의식’의 용어 또는 개념은 달리 성립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의식은 고대에서 영혼(psyche, anima)에 닮았고, 근대에서는 생각하는 주체(cogito)에 가까우며, 현대에 와서 기억과 무의식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영혼 또는 주체의 기원적 또는 근원적 발생을 다시 보게 되면서, 의식일반을 다루게 되었을 것이다. 문제가라는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문제거리가 생겼을 때, 그가 다이모니아에 묻는다고 할 때, 일반적으로 다이모니아를 의식(conscience)이라 번역하기도 하는데, 그 의식은 양심에 가깝다고들 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이뭣꼬를, 당대에 유명인들에게 물어보면서, 세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했을 때, 그 생각하는 방식도 철학적 탐구의 의식(conscience)이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뭣’을 세계에 대해보다 인간에 대해 문제삼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당시의 의식은 추론상으로 거의 무한정하게 전개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의식의 토대는 상식(ses commun), 즉 ‘감관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지각의 감관은 천구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런 상식을 통하여 추론과 추정에 의한 귀결로서 만들어진 지식은 인식의 활동에 의해 구성 또는 구축된 것이다. 물론 이런 인식 활동도 의식이며, 즉 오관을 바탕으로 추정과 추론도 의식이다.
다른 한편 근대에서 데카르트가 정신과 물질, 이를 줄여서 영혼과 신체에 대한 연관들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고대의 상식에 근거하기보다 갈릴레이의 운동의 상대성을 받아 들여, 영혼과 신체의 이중성(상대적 지위)을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당시 천구를 넘어서 무한한 우주의 열림에서 무한의 긍정성을 갖는 지식은 고대에 비해 인식의 확장이다. 이런 의식을 데카르트는 양식(bon sens)이라 부른다. 이 양식은 상식 이상으로서 의식 활동인데, 데카르트는 양식도 상식처럼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으로 보았으나, 양식을 상식(오관 능력)보다 다 확장되고 새롭게 만들어 갈 능력을 지닌 것으로 보아, 선천성과 더불어 은근슬쩍 선험성을 끌어들여 인식의 열림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런 인식의 열림이 신에게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상대성의 인정으로) 인간에게서 확장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아(주체)가 현존으로서 성립하며, 또한 현존인 자아에 마주하는 사물들(대상들)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 양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양식도 철학사적으로 의식의 한 측면이었다.
여기서 집필자인 브레몽티가 다룬 의식은 상식과 양식의 과정을 거쳐왔고, 인간 주체가 세계를 전부 해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대상인 세계에 대해 조작 가능한 능력으로서 인식을 철학적 의식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설명에는 인간이란 주체가 세계라는 대상과 상대적으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을 가정하고 또는 요청하여, 주체의 지식 체계화의 능력을 의식으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세계의 구성하는 또는 세계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의식이라 하여, 인간중심주의 또는 인본주의를 은연중에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인간중심주의 사고(의식)는 세계의 해명을 넘어서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한다. 이런 의식은 인간을 오만과 치기에 빠뜨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를 전쟁 속으로 몰아넣는 사고방식(의식)으로 치달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주의 또는 이기심이 지성의 오만과 편집증으로 광기에 빠진 것을 고고학적인 여러 방식으로, 학교, 병영, 병원, 감옥 등의 양식을 설명한 이는 푸꼬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세계에 대한 인간 주체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지성주의가, 탐만치를 과대 포장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지구를 피폐하게 하고, 그리고 인간에게 알량한 지식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탐욕과 폭력을 정당화하려 하였다. 이로써 주지주의는 양차 대전을 비롯하여 전지구적 전쟁을 일삼았다는 점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근거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빌미로 굴복시키려는 것도, 지성의 파라노이아(편집증)이다. 이것은 탐만치를 마치 인간의 욕망인 것처럼 선동선전을 하고, 이를 철학적 사유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철학에서 막다른 길로 치닫는 지성을 통한 의식이, 공감을 통한 의식과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사전에서 의식의 한 쪽을 철학일반의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이기심, 인간중심주의의 편에 서서 쓴 것 같고, 나아가 은근슬쩍 국가주의, 유일신앙주의, 자본제국의 길을 옹호한 과학적 인식과 지식론에 포획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있는 현존재가 아니다. 현존이란 의식은 함께 공감하며, 상호소통, 상부상조하며 사는 것이며, 삶의 기원이며 근원에서부터 의식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 8천만 인민과 함께, 평화통일영세 중립코리아. (55VMA)
# 의식(Conscience) 철학일반 ***
[개요]
1)몇 작가들에 따르면 이 항목은 정의할 수 없다고 한다.
참조 해밀턴(William Hamilton, 1788-1856), “의식은 정의될 수 없다(…). 그것의 이유는 단순하다: 의식은 모든 인식의 기원에 있다.”(Metaph., 1859);
회프딩(Harald Höffding, 1843-1931) “불가능하다. {의식과 그 요소들로부터} 서술과 정의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근본적 사실들이며, 이 사실들은 보다 더 단순한 어떤 것에도 더 이상 이끌어질 수 없다.[가장 단순하다]”(Psych., 2장, 5절, 1903)
나토릅(Natorp, 1854-1924),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Bewusstheit)은, 그것이 심리학적 근본적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정의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일 수 있다는 것(Bewusstsein)은 나를 위해서 대상일 수 있다고 말하고자 원하는 것이다.” (후설에 의해, Rech. log.(1900-1901), V, §8에서 인용되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우리 연구의 출발점은 우리에게 설명될 수도 묘사될 수도 없는 ‘동등가 없는 사실’, 즉 의식에 의해 제공된다.” (Abr. psychan., ch. 4)등등.
2)이 항목은 주체(sujet)의 동의어처럼 매우 자주 고려되었다. “의식이라는 이름(Bewusst-sein)은 하나의 존재(un être)(…)라고 명명한다. 이런 {존재}(…)를 위한 다른 이름이 주체(sujet, Subjekt)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Chemins,[1950?] ch.3, p. 123)
3)이 항목은 다른 한편 이런 존재, 즉 지식(le savoir), 인식(la connaissance)의 본질적 규정작업을 지칭한다. “의식은 일반적으로 한 대상의 지식인데, 외적인 지식 또는 내적 지식이다.” 헤겔(철학 예비과정(Propédeutique philosophique(1809-1811, cours donnés à Nuremberg, 1re éd. 1840), §6.)
참조, 하이데거 “헤겔은 지식과 인식의 항들을 동일한 것(…)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한다. 의식(Bewusst-sein)은 ‘학문(Wissen, 지식)[과학]인 상태로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op. cit. ibid)[Chemins]
데꽁브(Vincent Descombes, 1943-),“의식이라는 단어의 문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Qu’en est-il). 그 추상적 실사는, 마치 알다(savoir) 동사를 허용하는 동사적 표현법(une tournure verbale)을 사용하면서도 사람들이 말할 수 있을 것[무엇]을 말하는 다른 방식처럼, 이해된다.” (모든 류들에서 대상들의 문법론(Grammaire d'objets en tous genres, 1983), IV, 3.)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의식은 인식 안에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8/1819), supple. ch. 19.
4)몇몇 저자들에게서는 “무매개적 인식(la connaissance immédiate)이 중요하다.”
해밀턴(Hamilton, 1788-1856), “의식과 인식은 무매개적으로 전환가능하다(convertible).”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해밀턴의 철학(La philosophie de Hamilton, 1865), 8장에서 인용. [벩송이 저술에서 해밀턴을 인용했던 이유가 있다.]
밀(J. S. Mill, 1806-1873), “우리가 우리 인상들의 다른 층위[분류]들을 구별하기 위해 명사들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모든 층위[분류]들에 동등하게 적용할 수 있는 명사를 가질 수 있기 위하여, 이름 짓는 것, 그것은 논리적 작용[조작]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였다. 이 필요는 의식적 단어와 그 단어의 추상적 의식에 의해 만족되었다.” (J.S. Mill, ibid 인용) [무매개적 인식, 즉 직관이라면 벩송을 언급해야 되지 않을까?]
5)다른 저자들에게서, 검증작업(une vérification)이 중요하다.
쥬랑빌(Alain Juranville, 1948-),“의식은 (…) 선가정된 것을 갖는다. - 지식은 (…) 무엇인가의 토대 위에 있으며, 의식이 무엇인가의 검증작업이다.” 라깡과 철학(Lacan et la philosophie, 2003), § 7.
6)어떤 이들은, 어근에 강조하는 것이 아니나 접두어를 강조하면서, 의식을 종합(une synthèse)으로서 특징지운다.
회프딩(Höffding, 1843-1931) “의식은 무리지어진[그룹으로] 활동성처럼 고려되어야만 한다.” (Psych., 1903)
프라딘(Maurice Pradines, 1874-1958). “모든 시대의 의견을 의식 안에서 아마도 가장 충격을 주었던 특성은, 왜냐하면 의식이 항목에 대해 의견을 지칭하여서 그 의식은 자기의 항목 속에서 견해를 등록시켰기 때문에, (…) 다음과 같다. 즉 의식은 다발 만들기(mise en faisceau)[그물망 만들기]이며, 인식의 조직화 작업(une organisation)을 한다(cumscire 함께(동시에 더불어) 알다). 따라서 의도를 가지고 통일을 완수하는 조작작업(une opération)이다.” 심리학 개론(Traité de psychologie générale, 1948)
알렉상드르(Michel Paul Alexandre, 1888-1952), “의식, 그것은 이루어지고 있는 단위[통일성]이다.”칸트 강독(Lecture de Kant, 1961), p. 85.
7)수많은 저자들은 의식을 마치 주체와 대상의 관계(la relation du sujet et de l’objet)처럼 정의 했다.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는 이렇게 말한다. “의식은 하나의 관계이며, 제1관계이며 본질적인 관계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이다.” 인격주의(Le Personnalisme, 1903), III. [르누비에와 그 제자들의 글에서 의식은 인격성이라기보다 칸트적인 주체이다.]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나는, 의식을 연관의 항들 - 이미지(즉 단어)와 대상 사이에 현존하는 연관의 항들들 - 속에서 정의할 것이다. 이 연관은 내가 의미작용[기호작용]의 이름을 부여했던 연관이다. {이리하혀 예를 들자면} 감각작용은 이미지들 뒤에 따라 나온다. 그 이미지는 감각작용의 복사(une copie)이다. 사람들은, 이미지의 현존이 감각작용의 의식을 구성하며, 그 조건에서는 의식이 신념을 동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그것[의식의 신념 동반]을 반사[반성]할 때, 신념은 우리에게 다음을, 즉 이미지가 의식과는 다른 것[사물]의 한 기호(signe)이라고, 느끼게 한다. 심성의 분석(The Analysis of Mind. 1921)(Analyse de l'esprit, ch.15)
8)또 다른 저자들에게서, 의식이란 항은 심리[영혼]주의 삶/생명(la vie du psychisme)을 지칭한다.
후설(1859-1938)은 “I. 의식 (…) 체험된 것들의 흐름의 통일성 속에 있는 심리적 체험들의 직물과 같으며(…) 3. 의식은 마치 모든 종류의 심리적 작동들에서 전반적 지칭작업처럼(…)” (위 책 인용, 1장 1절). 이 저자에 따르면 의식의 본질은 “지향성(l’intentionalité)”이다. “순간은 심리적 작동의 의미에서 의식이라는 개념의 (…) 본질을 규정하는 데에서 온다. 우리는 지향적 관계를 마치 심리적 작동들의 (…) 본질의 규정작용처럼 고려한다.”(위책 10절)
참조,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 1838-1917), “우리는 심리현상들을 정의할 수 있으며, 이렇게 말한다. 심리현상들은 지향적으로[의도적으로] 한 대상(un objet)을 포함하고 있다.” 경험적 입장의 심리학(Psychologie vom empirischen Standpunkt, 1874)(?), I. 라틴어 인텐티오(intentio)는 스콜라학자에게서는 정신의 작동(l’acte de l’esprit)이며, 이 작동에 의해 인텐티오는 대상을 향한다.
9)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에 있어서, “의식은 그것이 그 자체로 있는 한에서 나타나다(l’apparaître, das Erscheinende)이다. 의식과 지식의 무매개적 현존, 그것은 나타나다(l’apparaître, das Erscheinen)이다.” (위책)
앙리(Michel Henry, 1922-2002), “데카르트와 더불어 (…) 의식이란 개념은 근본적인 존재론적 의미작용[기호작용]을 받아들인다. 이 기호작용에 맞추어서 그 개념은 그 자체로 어떤 사물이 아니라 모든 사물의 원리로서 고려하여 ‘나타나다’를 지시한다.” 정신분석학의 계보(Généalogie de la psychanalyse. Le commencement perdu, 1985), 입문.
* [벩송(Henri Bergson, 1859-1941)은 의식이 기억, 생명과 동연적이라 한다(EC). 의식은 자연의 자발성에 의한 자기 안에서 자기에 의한 생산물(창조물)이다. 즉 의식은 신이나 데우스 엑스마키나의 작품이 아니다. - 여기 나오는 모든 의식 설명은 기원에서 자연의 산물임을 말하지 않고, 인식에서 인간중심주의 또는 신의 생산물, 또는 인간의 오만으로 인간만이 의식이 있다고 착각하는 내용들이다. 이들, 이기심에 가득 찬 지성주의 인간들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인간 자신도 망치고 있다. (55VMF)]
** [집필자가 아리스토텔레스 계보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식이 본질로서 존재한다고 믿고, 현존도 마찬가지로 본질이 내재해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런 착각은 엘레아의 제논이 변화와 운동을 부정하면서 존재를 설명하지도 않고도, 존재가 실재성이라고 다른 이들에게 믿게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 이는 신을 현존을 증명하지 않더라도 존재라는 측면을 신앙으로 믿게 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 이 본질 우선 사고가 인간중심주의로 그리고 제도중심주의를 거쳐서 제국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길은 고대에서나 근대에서나 식민지전쟁과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키는 사고방식에서 나올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들 사이의 평등과 자유를 실현할 수 없고, 스스로 자연 속에서 자치와 자주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이 성찰 없이 반사적 이익을 노리는 반성적(지성적) 사고는, 앞으로 더 이상의 착취와 식민이 불가능한 시대에 이르러, 그 인간들 자신을 망치게 할뿐만이 아니라 지구까지도 피폐하게 한다. - 벩송에서 사유의 전환, 들뢰즈의 방향의 전복, 다양체의 전지구에서 혁명이 필요한 시대이다. (55VMG)]
[본문]
* [집필자가 의식을 지식과 인식에 연관해서만 서술하였던 것 같다. 의식의 이중속성 중에서 지식과 도덕이 있는데, 지식에 관한 것만을 부탁받았을 것 같다. 도덕의 의식은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아에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하는 것은 논리적 의식을 중요시한 것이다.]
여러 저자들은 의식과 지식의 동일화를 거부했다. 이리하여 아믈랭(Octave Hamelin, 1856-1907)은 “의식은 일종의 류적 지식이 아니다. (…) 그것은 반대로 의식의 일종이 지식이다.”고 한다. 표상/재현의 중요한 요소들(Essai sur les éléments principaux de la représentation, 1907), §2.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의식 전체는 인식이 아니다. 예를 들어 거기에는 감화적 의식들도 있다.”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1943), 입문, 3.
의식이라는 항목의 의미를 확장/외연은 데꽁브(Vincent Descombes, 1943-)에 의해 비판받았다. “사람들이 지각되고, 상상되고, 사랑받고[감화되고], 평가되고, 행동했던 등등의 대상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과 같은 ‘대상이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위책)
뤼이에(Raymond Ruyer, 1902-1987)는 의식과 심리주의[영혼주의]의 동일화를 거부했다. “심리학과 철학은 거의 배타적 방식으로 의식이 인식인 것처럼 강조하다. 의식은 또한 본질적으로 연결(liaison)의 힘이다.”(신 목적론(Néo-finalisme, 1952), 10장 참조). “바탕/깊이에서는 일종의 유일한 의식이 있다. 초기 의식은 모든 유기체의 자체로서 형상(forme)이며 (…) 둘째 의식은 감각적이며, 두뇌 영역들의 초기 의식이다.”(9장 참조)
샹봉(Roger Chambon. s,d,)은 이런 개념작업의 난점들 제시했다. (지각작용과 실재성으로서 세계(Le monde comme perception et réalité. 1974), ch. 8, §6)
앙리(M. Henry, 1922-2002)는 “의식은 (…) 주체가 아니다”라는 개념작업을 거부했으며, 그 개념작업에 따르면, “의식은 주체와 객체/대상의 연관 안에 있다”(앙리, 폭로작용의 본질(L’Essence de la manifestation, 1963) §II.). 이런 “의식의 철학”은 그에 따르면 관념론의 철학이며(참조: 아믈랭, “의식은 한 주체에 한 대상을 제시하는 모든 사유에 내속하는 작동이다.”, 위 책), 또한 현상학의 철학도 마찬가지이다(참조: 사르트르, “그는(Il) 초월적 대상에 대한 입장이 있는 의식이라는 것이 아니다. (…) 의식 전체는 입장이 있는 것이고 (…) 그리고 그 전체의식은 입장 자체에서 소진된다.” 사르트르, 위 책[존재와 무1943))]). 그런데 앙리에 따르면, 그러한 개념작업은 모순에 이른다. “의식의 철학은 절대적 의식으로부터 무의식을 제기할 것을 회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강요된다.”(앙리, 위 책, § 14) 참조: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절대적 의식은 정당하게 그 자체에 의해 무매개적 완수이며, 이런 이유에서 {신적 삶을 세계로} 이런 변형을 의식하지 않는다.” (피히테, 행복한 삶의 지침, 종교학(Die Anweisung zum seligen Leben oder auch die Religionslehre (1806), IV), 참조: 알렉상드르(Alexandre, 1888-1952), “인식은 어떤 것인데 그것에 의해 의식이 스스로 구출된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자아(soi)에 대해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스스로를 알지 못한다.” (알렉상드르, 위 책). 사실상 앙리에 따르면, “세계의 의식은 한 의식의 그 자체로 깊이에서만 효과적일 뿐이다. 그 의식에 세계는 속하지 않는다.”(같은 책, § 34); “의식의 지난 가능성에서, ‘나타나다’의 본질은 마치 자기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폭로된다], 본질은 마치 (…) 의식처럼 코기토(le cogito, 내가 안다)에서 파악된다.” (앙리, 정신분석학의 계보(Généalogie de la psychanalyse. Le commencement perdu, 1985), ch.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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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는 지적능력(l’intellect)에게 어떠한 기관도 할당하지 않았다. “지적능력이 신체에 섞여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떤 기관을 소유할 (…)때, 또는 실재로 그것은 어떤 기관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론(Περὶ Ψυχῆς, De Anima, De l'âme), 429a)
오늘날 거의 모든 저작들은, 의식의 영역은 마치 신경체계처럼 알려진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뤼이에, 의식과 신체(La Conscience et le Corps 1936), p. 26)
그럼에도 벩송은 “사유는, 적어도 많은 부분에서, 두뇌와 독립적이다.” (정신적 에너지(Energie spirituelle, 1919, ES), 2장; 참조,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1896): MM) [두뇌와 독립적이라는 말이 신체 밖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더불어 의식이 있고 두뇌는 의식과 신체 사이의 중계자라고 벩송은 말한다.]
다른 작가들 중에서 뤼이에(Ruyer, 1902-1987)는 이런 개념작업을 비판했다(참조. 의식과 신체(La Conscience et le Corps 1936)).
그럼에도 의식은 수많은 저자들에게서 “기계적인 이유들에 의해”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단자론(Principes de la philosophie ou Monadologie, 1714), §17)
분명하게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1894-1964년)(참조: 인공두뇌학: 동물과 기계에서 조절과 소통(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 1948))는 반대를 지지한다. “[위너에 따르면] 두뇌들은 정보기계들(les machines à information)이다.” 두뇌들은 “어떠한 성질을 – 기계주의에 의해 모방하는 초월적 또는 불가능한 성질을 - 숨기지 않는다.” (뤼이에, 인공두뇌학과 정보의 기원(La Cybernétique et l'Origine de l'information, 1954), 입문.)
뤼이에(Ruyer, 1902-1987)는 이런 주제를 비판했고, 그는 자기의 책을 라이프니츠의 주제에 대해 재확정[재긍정]에 의해 결론을 냈다. “사람들은 생명 즉 의식을 인공지능으로 결코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메이에르송(Émile Meyerson, 1859-1933)이 이미 썼듯이, “기계주의는 감각작용이 기계주의에게서 설명할 수 없게 남아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감각작용이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도 없다. 왜냐하면 빛에 대한 나의 감각작용은, 나는 그것을 무매개적으로 확신하지만, 운동의 감각작용과 공통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식할 없다고 주장한다. (…) 이런 방식으로 기계적인 운동은 감각작용 전달[운송]된다. (…) 우리는 완전하게 인식한다. 하나와 다른 하나를 인식한다. 우리는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또한 가정하도록 강요된다. (…) 그러나 우리가 논리적이게 하기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연결(une liaison)이다.” (메이에르송, 동일성과 실재성(Identité et réalité, 1908), 9장). “따라서, 만일 우리가 우주를 실재적으로 설명했다고 주장하기를 연속하고자 원한다면, 감각작용을 부정해야 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메이에르송, 같은 책) 이것은 이미 데모크리토스가 행했던 것이다. “덥다와 춥다는 여론과 협약에 의해서 이다. 색깔도 여론에 의해서 이다.”(데모크리토스, 단편 I)
그리고 더하여 보다 최근에는 행동주의들은 의식의 실재성을 부정할 수 있다. “당신들은 주장한다. 의식과 같은 어떤 것이 현존한다고. (…) 글쎄, 당신이 그것을 증명해 보세요. 당신이 감각작용들을 가졌다고 주장하는데, 글쎄, 그것을 제시해보시라.” (왓슨(John Watson, 1878–1958), 행동주의의 길들(The ways of behaviorism, 1928)은 미셸 앙리의 폭로작용의 본질(L’Essence de la manifestation, 1963) §II.) 에 의해 인용되었다; 참조, 러셀(Russell, 1872-1970), 심성의 분석(The Analysis of Mind. 1921: Analyse de l'esprit), 1장)
그러나 메이에르송은 쓰기를, “감각작용은 원초적 사실이다. 원초적 사실로부터 모든 다른 것들이 연역된다.”(메이에르송, 위 책)
“의식은 정당하게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동주의자들은 그 능력에 호소한다.” (앙리, 위 같은 책)
여러 저자들은 메이에르송이 해결할 수 없다고 선언했던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리하여 뤼이에는 라이프니츠의 범영혼주의를 새롭게 한다.(참조: 뤼이에, 위 책)
[본능과 무의식에 대비되는 의식문제는 20세기의 주제였다]
니체(Friedricha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의식의 가치를 부정했다. “의식은 (…) 덜 완성되고, 강함이 모자라는 {유기체적} 체계 속에 있는 어떤 것(뭣)이다. (…) 만일 본능들의 보존 연결이 무한하게 더 많은 능력으로 있지 않았다면, 인류는 (…) 자기 의식에 의해서 몰락했을 것이다.” (즐거운 지식(Die fröhliche Wissenschaft, 1882 Le Gai Savoir), §II.)
다른 저자들은 완전한 적응은 무의식을 함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믈랭(Octave Hamelin, 1856-1907)은 반대로 “자동주의는 그 자체로 완전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진실한 완전의 부재를, 말하자면 의식의 부재를, 보상하기 위해서만이 선하다.” (표상/재현의 중요한 요소들(Essai sur les éléments principaux de la représentation, 1907)).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는 의식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나보다 앞선 시대의 모든 철학자들은, 첫 철학자부터 마지막 철학자까지, 인간의 진실한 존재를 의식적 인식 속에 자리 차지한다.” “나의 철학은 (…) 인간의 본질을 의식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의지 속에 자리 차지한다.” (의지와 표상으로서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8/1819))
뤼이에(Ruyer, 1902-1987)는 전통적 주제를 다시 주장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서 (…) 의식은 (…) 유기체의 나머지와 외적 세계 사이에 매개적인 역할을 갖는다. 동물에게서 이런 매개체는 유기체의 배타적 봉사에 쓰이며 (…) 인간에게서 순환의 의미는 반대되어 있다.” (종교들의 신, 과학의 신(Dieu des religions, Dieu de la science, 1970), 3장)
현대의 여러 작가들에게서, 의식은 자기를 위한 존재(être pour soi)의 동의어이고, 사물(chose)에 대립된다. [아믈랭(Octave Hamelin, 1856-1907)은]“자기를 위한 것(pour soi, 대자), 즉 의식과 같은 그러한 것은 종합이며, 우리가 종합에 영감을 얻는다.” (아믈랭, 위의 인용)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의식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그리고 의식의 의미는 계시로부터 (…) 존재의 다른 전형에 대해 개별적인 해명을 하는 것이 필연적일 것이다. 자기를 위한 존재[대자존재]는 현상에 대해 자기 안의 존재[즉자존재]에 대립된다. (사르트르, 위 인용, 동일한 책)
[앙리(Michel Henry, 1922-2002)], “의식은 (…) 존재의 기원적 자기를 위한 존재이다.” (앙리, 폭로작용의 본질(L’Essence de la manifestation, 1963), § 19)
(F. Brémondy) (8:24, 55V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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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Δημόκριτος, Dêmokritos, v. 460-v. 370) 고대 원자론자. 53권의 저술을 썼으나 남아있지 못하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Aristoteles, 기원전 384-322)(62살) 플라톤의 제자, 마케도니아 출신 철학자. 사물의 탐구를 위한 네 가지 방식을 형상인, 목적인, 효과인, 질료인으로 구분한다. 영혼론(Περὶ Ψυχῆς, De Anima, De l'â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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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의학자 철학자. 그는 새로운 철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당시 카톨릭의 비판을 피하여 네델란드에서 지냈다. 철학의 원리들(Principia philosophiae, 1644: Les Principes de la philosophie)
1632 로크(John Locke, 1632-1704), 영국 철학자. 인간 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869: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도서지기, 문헌학자. 형이상학 서설(Discours de métaphysique, 1686), 단자론(Principes de la philosophie ou Monadologie, 1714)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프로이센 철학자. 계몽주의 철학자. 순수 근거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fr. Critique de la raison pure, 1781)(증보판, 1787).
1762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독일 철학자. 베를린대학 총장. 행복한 삶의 지침, 종교학(Die Anweisung zum seligen Leben oder auch die Religionslehre (1806)(Méthode pour arriver à la Vie heureuse, 번역 François Bouillier, 1845: Initiation à la vie bienheureuse, ou La doctrine de la religion, 번역 M. Rouché, 1944).
1770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프로이센 관념론 철학자. 철학사에 관한 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gehalten 1822–1831, aus Notizen und Mitschriften 1837 postum herausgegeben von Eduard Gans)
- 유고: 철학 예비과정(Propédeutique philosophique(1809-1811, cours donnés à Nuremberg, 1re éd. 1840)
1788 해밀턴(William Hamilton, 1788-1856) 스코틀랜드 철학자. Lectures on Metaphysics and Logic.(1권, 1859, 2권 1860, 3권 1866)
1788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독일의 철학자. 파레르라와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 kleine philosophische Schriften, 1851(보론들과 나머지들: 보론 6편과 그 나머지들 31장이 있다 – 그 중에서 넷째 보론이 ‘운명’에 관한 (Spéculation transcendante sur l'apparente préméditation dans le destin de l'individu)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8/1819)Le Monde comme volonté et comme représentation, vol.2 1844, trad. Auguste Burdeau
1806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영국 철학자, 논리학자, 경제학자. 자유주의사상가이며 공리주의 주장자이고 벤담의 윤리이론 찬성자이다. 해밀턴의 철학(An Examination of Sir William Hamilton's Philosophy and of the Principal Philosophical Questions Discussed in his Writings - La philosophie de Hamilton, 1865)
1815 르누비에(Charles Bernard Renouvier, 1815-1903) 프랑스 철학자. 이상시간(« uchronie »)을 창안했다. 칸트주의, 실증주의, 정신주의를 종합하려는 신-비판주의를 창안했다. 일반비판의 시론(Essais de critique générale, 1854)(재판, 1859, 3판과 4판 1864, 사후 1912), 인격주의(Le Personnalisme , suivi d'une étude Sur la perception externe et sur la force, 1903).
1838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 1838-1917) 독일의 철학자, 심리학자. 발생적(發生的) 심리학과 기술적(記述的) 심리학을 구별하고, 의식의 여러 현상을 '기술'하는 '현상적 심리학'이며 내적(內的)인 지각에 의해 나타나는 기술 심리학에 중점을 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학(Psychologie des Aristoteles, insbesondere seine Lehre vom nous poietikos, 1867), 경험적 입장의 심리학(Psychologie vom empirischen Standpunkt, 1874).
1843 헤랄드 회프딩(Harald Höffding, 1843-1931) 신학, 철학. 코펜하겐 대학교수. (Esquisse d'une psychologie fondée sur l'expérience, 1903, La Philosophie de Bergson(Paris, Alcan, 1916)
1844 니체(Friedricha Wilhelm Nietzsche, 1844-1900) 독일 철학자, 문화 비평가, 시인, 문헌학자. 즐거운 지식(Die fröhliche Wissenschaft, 1882 Le Gai Savoir)
1854 나토릅(Paul Gerhard Natorp, 1854-1924) 독일 신칸트 철학자. 독일 마르부르크 학파(코헨, 랑케 등). [신칸트학파는 마르부르크학파와 서남학파로 구분된다. 전자는 마르부르크 대학을 중심으로, 후자는 독일 서남부의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중심이었고, 전자가 일차적으로 인식론과 다양한 개별과학의 논리적 정초를 추구했다면, 후자는 특히 문화철학과 가치철학의 구축을 시도했다. 전자에는 코헨, 나토릅, 후자에는 빈델반트(1848-1915)가 있다.] Descartes' Erkenntnistheorie. Eine Studie zur Vorgeschichte des Kriticismus. 1882, Die logischen Grundlagen der exakten Wissenschaften, 1910.
1856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오스트리아 신경정신과의사, 정신분석학 창시자. Abriss der Psychoanalyse (1938년 작성, 1940 출판)(Abrégé de psychanalyse)
1856 아믈랭(Octave Hamelin, 1856-1907) 프랑스 철학자. 표상/재현의 중요한 요소들(Essai sur les éléments principaux de la représentation, 1907).
1859 벩송(Henri Bergson, 1859-1941) 폴란드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1889), DI,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1896): MM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 (1907) EC), 정신적 에너지(Energie spirituelle, 1919, ES),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1932) MR).
1859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 독일 철학자, 논리학자. 현상학 창시자. Logische Untersuchungen: Recherches logiques (1900-1901)
1859 메이에르손(Émile Azriel Meyerson, 1859-1933) 폴란드 유태계 출신 프랑스 귀화한 철학자. 동일성과 실재성(Identité et réalité, 1908), 과학들에서 설명에 대하여(De l’explication dans les sciences, 1921),
1872 버트런드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 수학의 원리들(The Principles of Mathematics 1903). 프린키피아 마테마티가(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with Alfred North Whitehead). 3 vols. 1910–1913. 심성의 분석(The Analysis of Mind. 1921: Analyse de l'esprit)
1874 프라딘(Maurice Pradines, 1874-1958) 프랑스 철학자. 감각작용의 문제틀에 비추어서 인식을 철학으로 다루었다. 심리학 개론(Traité de psychologie générale, 1948)(3권)
1878 왓슨(John Broadus Watson, 1878–1958) 미국 심리학자. 행동주의 심리학 개척자. 논문"Psychology as the Behaviorist Views It"(1913)은 행동주의 선언문으로 간주한다. 행동주의의 길들(The ways of behaviorism, 1928)
1888 알렉상드르(Michel Paul Alexandre, 1888-1952) 프랑스 철학자. 유고: 칸트 강독(Lecture de Kant, 1961)(textes rassemblés et annotés par Gérard Granel, PUF, coll. "Épiméthée", 1978, 1961.)
1889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 철학자. 현상학자인 후설의 제자. 어느 곳에도 이르지 않는 길들(Chemins qui ne mènent nulle part, 1950), Mon chemin de pensée et la phénoménologie (1963)
1894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1894-1964년) 미국의 수학자, 전기공학자이다. 매사추세츠 공대 교수. 기계와 기계 사이 정보교환으로부터 신경조직의 교환의 연구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제창자. 인공두뇌학(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 1948)
1902 뤼이에(Raymond Ruyer, 1902-1987) 프랑스 철학자. ENS출신. 낭시대학 교수, 양자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인공두뇌학(cybernétique) 전문가이며, 궁극목적론적 형이상학 체계를 세웠다. 또한 신지학과 메타심리학적 현상에도 관심이 있다. 의식과 신체(La Conscience et le Corps 1936), 신 목적론(Néo-finalisme, 1952), 인공두뇌학과 정보의 기원(La Cybernétique et l'Origine de l'information, 1954), 살아있는 형상들의 발생(La Genèse des formes vivantes, 1958 증보 1967), 종교들의 신, 과학의 신(Dieu des religions, Dieu de la science, 1970).
1905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프랑스 작가, 철학자. 현존주의 경향의 지성인이다.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1943)
1922 앙리(Michel Henry, 1922-2002) 베트남 태생, 프랑스철학자, 소설가, 1944년 철학교수 자격. 현상학계열, 카톨릭. 폭로작용의 본질(L’Essence de la manifestation, 1963), 정신분석학의 계보(Généalogie de la psychanalyse. Le commencement perdu, 1985).
1943 데꽁브(Vincent Descombes, 1943-) 프랑스 철학자. 파리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1967년 철학교수자격. 정신철학, 언어철학, 행동철학 전문가. 플라톤주의(Le Platonisme, 1971) (박사학위, réédition aux PUF, 2007). Le Même et l'Autre; Quarante-cinq ans de philosophie française (1933-1978), (1979) Grammaire d'objets en tous genres, 1983.
1948 쥐랑빌(Alain Juranville, 1948-) ENS 출신, 1972 철학교수자격, doctorat de 3° cycle (Lacan et la philosophie, 1983); doctorat d’Etat (La philosophie comme savoir de l’existence. Existence et inconscient,1999). 라깡과 철학(Lacan et la philosophie, 2003), 무의식, 자본주의, 역사의 종말(Inconscient, capitalisme et fin de l'histoire, 2010)
?-? 샹봉(Roger Chambon, s,d,) 지각작용과 실재성으로서 세계(Le monde comme perception et réalité. 1974.(593쪽. 제목만 보면 쇼펜하우어와 전혀 반대견해일 것 같은데..) 이 흥미있는 저자는 더 이상 연관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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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몽디(François Brémondy, s.d.) : 논문 다섯 편이 구글에서 잡힌다. 그 중에 하나는 투르대학 교수인 카플란(Francis Kaplan, 1927-2018)에 관한 논문이다. fr.Wiki에도 안 나오고, 다른 곳에서도 잘 찾을 수 없다. 어떻게 필진으로 들어갔을까? 또한 이 글에서 언급한 뤼이에(Ruyer)에 관한 논문도 있다.
그런데 “개요”에서 벩송의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들에 관한 시론”(DI)이란 작품은 언급하지 않았고, “본문”에서 EC, ES을 언급했다. 아마도 집필자는 ‘의식’을 철학일반 중에서 인식과 지식에 관계되는 글을 쓰라고 부탁받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그래도 DI가 형이상학적 관점이라고 해도, 철학에서 형이상학이 철학일반이지, 인식론이 철학을 대표할 수 있을까? (55VMF)
- 「뤼이에와 양자물리학(Ruyer et la physique quantique ou « le cadeau royal de la physique contemporaine à la philosophie »)」, Les Etudes Philosophiques80 (1):3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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