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법당(如如法堂)
참선경어(參禪警語)
박산 무이 선사(博山無異禪師)
2-1화두(話頭)는 의심(疑心)이다,
의정(疑情)을 일으키지 못하는 납자(衲子)에게 주는 글
참선 공부를 할 때 의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 중에는 옛 스님들의 행적과 저서를 뒤적거려 이론을 점검하고 널리 지식을 구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은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을 하나로 꿰뚫어서 도장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것을 잣대로 삼는다,
그러다가 공안 하나라도 들게 되면 곧 알음알이도 따져 이해하려고 하고 본래 참구해야할 화두는 의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따져 물으면 달갑지 않게 여기게 되니, 이것은 생멸심이지 선(禪)은 아니다, 또는 묻는 소리를 따라 응답해 주되
손가락을 세우기도 하고 주먹을 들어 보이거나 붓을 들고 빠르게 게송을 지어 보여주고, 참구하도록 하여 그 속에 깊은 뜻이 있다고 말 한다, 스스로 크게 깨달게 하는 방편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것은 의정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알음알이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한순간에 잘못 되었음을 알려고 한다면 모든 집착을 놓아 버리고 선지식을 찾아 깨달음에 들어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생멸심만 커져 가서 오래되면 마(魔)가 달라붙어 거의 구제할 수가 없게 된다,
<示疑情發不起警語 做工夫疑情發不起 便欲尋行數墨 檢計文字 廣求知解 將佛祖言敎 一串穿過 都作一箇印子印定 纔擧起一則公案 便作道理會去 於本參話頭上 不能發起疑情 逢人難問 着則不喜 此是生滅心 非禪也 或隨聲應答 竪指擎拳 引筆疾書 偈頌開示 使人參究 亦有意味 自謂得大悟門 殊不知疑情發不起 皆是識心使然 若肯一念知作 全身放下 見善知識 求箇入路則可 不然生滅心 勝久之則成魔着 殆不可救>
<*화두참선은 의정(疑情) 돈발(頓發)해야 합니다, 의정이 나지 않으면 앉아있어도 별 볼일이 없습니다, 의정은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입니다, 옛 조사님들의 선문답을 듣자마자 알아버리면 화두를 의심할 것도 없으나 모르면 화두에 대해서 의정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의정이 커지면 의단(疑團)이 이루어집니다,
의단(疑團)은 화두에 대한 의심으로 똘똘 뭉쳐진 상태를 말합니다, 화두를 들려고 해서 들어진 것이 아니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성성적적하게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자나 깨나 항상 화두 일념 속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화두 참구는 이렇게 해야 제대로 공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님들이 화두참선은 화두를 의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상권에서 박산 무이 선사 참선경어를 소개 한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권에 속합니다, 참선경어는 화두참선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후학을 위한 노파심이 담긴 법문들입니다, 선지식이 주위에 없어도 참선경어로 선지식을 삼는다면 올바른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선은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깨침의 세계를 논리나 생각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실참 실구를 해서 직접 깨달아야 합니다,>
참선경어(參禪警語)
박산 무이 선사(博山無異禪師)
2-1화두(話頭)는 의심(疑心)이다,
의정(疑情)을 일으키지 못하는 납자(衲子)에게 주는 글
참선 공부를 할 때 의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 중에는 옛 스님들의 행적과 저서를 뒤적거려 이론을 점검하고 널리 지식을 구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은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을 하나로 꿰뚫어서 도장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것을 잣대로 삼는다,
그러다가 공안 하나라도 들게 되면 곧 알음알이도 따져 이해하려고 하고 본래 참구해야할 화두는 의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따져 물으면 달갑지 않게 여기게 되니, 이것은 생멸심이지 선(禪)은 아니다, 또는 묻는 소리를 따라 응답해 주되
손가락을 세우기도 하고 주먹을 들어 보이거나 붓을 들고 빠르게 게송을 지어 보여주고, 참구하도록 하여 그 속에 깊은 뜻이 있다고 말 한다, 스스로 크게 깨달게 하는 방편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것은 의정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알음알이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한순간에 잘못 되었음을 알려고 한다면 모든 집착을 놓아 버리고 선지식을 찾아 깨달음에 들어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생멸심만 커져 가서 오래되면 마(魔)가 달라붙어 거의 구제할 수가 없게 된다,
<示疑情發不起警語 做工夫疑情發不起 便欲尋行數墨 檢計文字 廣求知解 將佛祖言敎 一串穿過 都作一箇印子印定 纔擧起一則公案 便作道理會去 於本參話頭上 不能發起疑情 逢人難問 着則不喜 此是生滅心 非禪也 或隨聲應答 竪指擎拳 引筆疾書 偈頌開示 使人參究 亦有意味 自謂得大悟門 殊不知疑情發不起 皆是識心使然 若肯一念知作 全身放下 見善知識 求箇入路則可 不然生滅心 勝久之則成魔着 殆不可救>
<*화두참선은 의정(疑情) 돈발(頓發)해야 합니다, 의정이 나지 않으면 앉아있어도 별 볼일이 없습니다, 의정은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입니다, 옛 조사님들의 선문답을 듣자마자 알아버리면 화두를 의심할 것도 없으나 모르면 화두에 대해서 의정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의정이 커지면 의단(疑團)이 이루어집니다,
의단(疑團)은 화두에 대한 의심으로 똘똘 뭉쳐진 상태를 말합니다, 화두를 들려고 해서 들어진 것이 아니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성성적적하게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자나 깨나 항상 화두 일념 속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화두 참구는 이렇게 해야 제대로 공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님들이 화두참선은 화두를 의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상권에서 박산 무이 선사 참선경어를 소개 한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권에 속합니다, 참선경어는 화두참선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후학을 위한 노파심이 담긴 법문들입니다, 선지식이 주위에 없어도 참선경어로 선지식을 삼는다면 올바른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선은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깨침의 세계를 논리나 생각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실참 실구를 해서 직접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