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가리로크로싱을 마치며
새해를 맞아 2박 3일간 우리가 머물고 쉴 나눔 터로 예약해둔 Base Camp. 그 이름만 들어도 정겹다.
Tongariro crossing 산행 기대감이 톱밥처럼 쌓이는 듯 하다. 그런데 점심을 들고 오클랜드를 출발하면서 부푼 기대감이 시샘을 부리는듯한 흐릿한 날씨와 결국엔 내리는 비로 다소 내려앉는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Tongariro crossing을 위해 다섯 부부와 자녀들 넷 해서 도합 열 네 명이 나선 2박 3일의 여정 첫날이 내리는 비로 젖어 들어간다. 맘과 몸이 춥기까지 하다.
그래도 저녁은 내일을 위해 속은 든든히 채워야지. 비를 피해 야외 데크 파라솔 아래 바베큐 틀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에 상추, 깻잎, 쌈장이 어우러지고 와인 한잔씩 도니 그도 또 색다른 맛이다.
여름 밤인데도 비바람 기운이 차가운 터라 벽 난로 피워놓고 은박지에 고구마까지 구워서 먹다 보니 옛날 시골 생각이 난다. ‘여행은 어디에 가느냐 보다 누구랑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도 되 새기는 밤시간... 집 떠나서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저마다의 이야기 꽃들…. 아쉽지만 내일 새벽 기상 시간이 4시 30분이어서 충분한 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날씨가 최대의 관건인 내일 산행에 맑은 날을 주실 것을 기도하며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Oh, Yeh !!!” 별이 총총한 새벽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함성에 내가 놀란다. 40여년 전 초등학교 소풍날의 추억,그 때도 새벽 일찍 잠이 깨자 마자 뛰쳐 나가 올려다 본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다들 일어나 기쁜 맘으로 산행 준비를 하여 타우포 호숫가 큰 도로 버스 서는 곳까지 나서니 5시 30분이다. 지난 밤 싸둔 김밥과 초밥을 챙겨 먹고 점심으로도 배낭 속에 꾸려 넣으니 든든하다.
5시 40분, 기다리던 Tongariro crossing 버스가 사뿐히 일행 앞에 정차하며 키위 할머니 운전사가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온다. 탑승자 명단을 써달래서 적어 주니 산행 후 오후 3시30분이나 4시 30분에 그 회사 차를 산행 종착지에서 타란다. Tongariro crossing 출발지까지 1시간 20분의 버스투어도 다채롭다.
싱가포르 면적만큼이나 넓다는 타우포 호수(뉴질랜드의 푸른 심장)를 끼고 굽이굽이 도는 호수길이 불현듯 고국의 춘천 소양호 가는 길을 연상 시킨다. 먼발치에 하얗게 쌓인 만년설하며 가까이 초록 들판에 풀 뜯는 하얀 양떼들 위에 축복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Tongariro crossing 출발지인 Mangatepopo Car Park 에 도착하니 다른 이들도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Tongariro Alpine Crossing(통가리로 횡단)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출발지 Mangatepopo 에서 종착지 Ketetahi까지 18.5 Km 의 약 8시간의 산행에 참석한 소감이 마치 성스러운 종교 행사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Tongariro 는 뉴질랜드에서는 최초로, 전 세계적으로는 네 번째로 탄생한 국립공원이며, 1993년 자연과 문화 두 가지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아 세계 최초로 복합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Milford Track 이 여성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비유된다면, Tongariro Nothern Circuit (총 길이 49Km)은 남성미 넘치는 거칠고도 다이나믹한 아름다움이 있는 Tracking Course 란다.
오클랜드 다운타운에서 미션베이 까지의 자연스런 걷기 대회에 참가한 이들처럼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시작한 등산객들의 모습에 활기가 넘쳐난다. 일년 중 며칠 되지 않는다는 맑은 날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가? 온통 외국인 일색이다. 신년 휴가를 얻어 함께한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일본인, 호주인, 덴마크인, 스위스인 등등… 매년 이맘때쯤이면 7만명의 등산객이 찾는 곳이라니 그 인기나 명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처음엔 옆에 가는 동료와 즐거운 재담도 나누고, 곳곳을 지나며 사진 찍기에도 바쁘다. 출발지 Mangatepopo 에서 Soda Spring 으로 가는 늪과 돌무더기 위에 산책로 같은 야트막한 나무 다리 위를 걸을 때만해도 좋았는데…. Soda Spring 에서 South Crater(분화구)까지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듯한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호흡도 가빠진다. 벌써 발이 풀리고 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제 1/4 지점도 못 온 것 같은데 앞 선자와 뒤 선자의 사이가 크게 벌어 진다. 평소 걷기 운동을 좀 해서 내심 자신감을 가지고 임했는데 영 맘대로 잘 되지 않는다. 전 코스 중 제일 힘든 곳이라 생각된다. 나도 힘든데 앞선 이가 나보다 힘들어 해서 앞사람 배낭을 밀며 가자니 정말 헉헉댈 수밖에…. 내 체력의 한계가 이리도 쉽게 오나?
정상부근에 쌓인 눈 무더기와 구름이 산 중턱을 휘감고 돌기에 웬 신령스러운 영봉인가 했더니 반지 제왕 3부작에서 ‘운명의 산’으로 나온 Ngauruhoe 산(2291m)이란다. 신발 속에 작은 돌 가루 같은 것이 들어가 많이 불편하다. 잠깐 쉬며 신발 속을 털어낸 후 신발끈을 다시 동여맨다. 큰 산에 걸려 넘어지는 게 아니고 작은 것에 넘어지는 게 인생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목이 마를 때마다 준비해간 오이를 꺼내 드니 그도 힘이 난다.
힘든 오르막 길을 끝내고 나니 이번 크로싱 코스의 정상인 Red Crater (해발 1886m)가 나온다. 다양한 화산 지형, 분화구와 용암, 기괴한 석상 형태의 화산암,특이한 냄새와 희한한 색깔 등등…. 대자연의 무궁한 힘에 압도된다.이름 만큼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빛깔을 가진 세 개의 Emerald Lakes 에서 증기가 모락 모락 나오며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차가운 산성 호수로, 마오리들이 타푸(성역)라 부르는 BlueLake 에 이르러 비탈진 화산 돌 모랫길을 내려오다 결국 미끄러져 손바닥에 가벼운 생채기를 남기고 만다. 호수를 내려다보며 먹는 김밥과 초밥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그 뒤로 계속되는 내리막길부터 종착지 Ketetahi 까지는 Tussock (덤불 숲)에 이어 저지대 울창한 나무 숲으로 녹색 지대다. 세차게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가 인간 사는 마을이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풀 한 포기 살 수 없는 화산 지형에서 울창한 숲으로의 자연 생태계 분포도도 함께 섭렵한 산행이라 여러모로 유익한 자연학습 시간이다.
이번 산행은 역사를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행운을 만나는 축복의 장이다. 풀 한 포기의 소중함과 돌 하나에 얽힌 역사와 생명의 신비함 그리고 침묵의 자연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분의 손길을 느끼며 나를 되돌아본 시간이다. 우리 서로 나눌 수 있는 모습으로 이렇게 살아 있음에도 다시금 감사를 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