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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새의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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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화詩人┃ 씹다 보면 쌉싸름한
소화 추천 2 조회 1,070 26.02.18 00:32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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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2.19 07:45

    첫댓글 아, 정말 조선시대 드라마 한 편을 본 것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 시대에는, 아니 어머니 시대까지도
    왜 그렇게 아들, 아들 했었는지...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하면서 딸이 어머니 아버지 더 챙긴다는데
    부모님 생각도 않는 아들에겐 왜 이리들 목을 매셨는지....

  • 작성자 26.02.19 12:28

    감사합니다. 엊그제 명절 밑에 예전의 외갓댁 근처를 지나쳤지요. 전에 써논 글이지만 외할머니 생각에 올려보았답니다.

  • 26.02.21 23:25

    쌉싸름한 기억의 맛, 삶을 씹어 읽는 방식
    ― 이병화 「씹다 보면 쌉싸름한」 평론

    이병화의 「씹다 보면 쌉싸름한」은 음식의 감각을 매개로 기억과 시간, 그리고 한 여성의 침묵된 삶을 복원해내는 서사적 서정시다. 이 작품은 개인적 회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 내부에는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살아낸 한 세대 여성의 삶이 깊게 각인되어 있으며, ‘맛’이라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기억이 어떻게 현재로 되살아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26.02.21 23:25

    1. 음식에서 시작되는 기억의 문

    시의 출발점은 매우 일상적이다.

    안성 오일장에서 사 온 배추 꼬랑지
    한 입 깨물다가 문득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여기서 기억은 의도적으로 호출되지 않는다. ‘깨물다가 문득’이라는 표현은 기억의 비자발성을 강조한다. 즉 과거는 회상하려 해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먼저 반응할 때 되살아난다.

    특히 ‘배추 꼬랑지’라는 소재 선택은 중요하다. 화려하거나 귀한 음식이 아니라 남겨진 부분, 가장 질기고 퍽퍽한 부분이다. 이는 곧 외할머니의 삶을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음식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삶의 은유로 전환된다.

  • 26.02.21 23:25

    2. 가부장제의 그림자 — 말해지지 않은 여성사

    외할머니의 삶은 몇 줄의 진술로 압축된다.

    아들 하나 못 낳은 죄로
    작은댁을 한 집에서 둘이나 보고 사셨던
    종갓집 맏며느리

    이 구절은 설명 없이도 시대적 폭력을 드러낸다. ‘죄’라는 표현은 생물학적 사실이 사회적 낙인이 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시는 직접 비판하거나 고발하지 않지만, 삶의 조건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억압을 드러낸다.

    더 중요한 점은 화자가 이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는 평가 대신 기억을 제시하고, 독자가 스스로 감정의 무게를 느끼도록 한다.

    이 절제는 작품의 윤리적 깊이를 형성한다.

  • 26.02.21 23:25

    3. 아궁이 — 고통과 쉼의 경계 공간

    시의 중심 공간은 아궁이 앞이다.

    그분의 소박한 쉼표는
    부지깽이 들고 아궁이 앞에 앉아 계실 때였다

    아궁이는 노동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휴식의 공간이다. 불을 지피는 행위는 가족을 위한 희생이지만, 불길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특히 담배 연기는 중요한 상징으로 작동한다.

    곰삭은 한숨 연기로 뿜어내시곤 하셨다

    연기는 말하지 못한 감정의 형상화다. 외할머니는 말 대신 연기로 삶을 내보낸다. 침묵은 이 시에서 억압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생존의 방식이다.

  • 26.02.21 23:25

    4. 어린 화자의 인식 — 조용한 성장의 순간

    이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다음 구절이다.

    나의 일곱 살은, 그분의 눈물이
    연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챌 만큼 성숙했었다

    여기서 시간은 역전된다. 어린아이는 어른의 슬픔을 먼저 이해하고, 이해는 말 없이 이루어진다. 이는 가족 관계 속에서 감정이 어떻게 언어 이전의 방식으로 전달되는지를 보여준다.

    시의 감동은 사건이 아니라 ‘알아챔’의 순간에서 발생한다.

  • 26.02.21 23:26

    5. 목소리의 부재 — 기억의 공백

    후반부의 질문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분의 목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건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존재의 소멸을 상징한다. 삶은 선명히 기억되지만, 정작 개인의 소리는 남아 있지 않다. 이는 평생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었던 삶의 은유처럼 읽힌다.

    침묵은 사후에도 지속된다.

  • 26.02.21 23:26

    6. 맛의 시학 — 삶을 씹어 이해하기

    마지막 연에서 시의 모든 이미지가 하나로 수렴한다.

    씹다 보면 쌉싸름한 배추 꼬랑지는
    외할머니 가슴팍만큼이나 퍽퍽하고

    ‘쌉싸름함’은 단순한 미각이 아니다. 고단함, 체념, 그리고 끝내 삼켜야 했던 삶의 맛이다. 중요한 것은 화자가 이제야 그 맛을 ‘읽는다’는 점이다.

    배추 꼬랑지의 맵싸한 뒷맛을 읽고 보니

    여기서 먹는 행위는 해석 행위로 전환된다. 삶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해된다.

    현재의 화자는 외할머니의 나이에 도달함으로써 비로소 과거의 의미를 읽어낸다. 시간은 기억을 숙성시키는 장치다.

  • 26.02.21 23:26

    7. 결론 — 기억은 혀끝에서 완성된다

    「씹다 보면 쌉싸름한」은 한 사람을 추억하는 시이면서 동시에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 삶의 감각을 복원하는 작품이다. 말로 남지 못한 삶은 음식의 맛과 손의 감촉, 불빛의 온도로 기억된다.

    이병화는 거창한 서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질긴 배추의 끝부분을 통해 말한다.

    삶은 달콤하게 기억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씹다 보면 비로소 이해되는 맛이 있다는 사실을.

    이 시는 개인적 회상을 넘어, 한국 근현대 여성의 침묵된 삶을 감각적 언어로 되살려낸 깊은 생활 서정의 성취라 할 수 있다.

  • 작성자 26.02.22 00:22

    이상진 선생님, 제 졸고를 깊게 평해주심에 진심을 담아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도 변함없는 열정으로 많은 집필활동하시고 댁내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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