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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정기 산행 태백산 산행 안내
일시 : 2014년 5월 18일 (일요일) 오전 7시
출발장소 및 차량 : 강변주차장 주왕산관광 (시간엄수)
장소 : 강원 태백시 문곡동, 태백산 [太白山] 1,566.7m, 문수봉 1,517m
준비물 : 점심, 국가유공자증 , 65세이상자는 신분증
문의사항
회 장 : 016 - 506 - 5533 (전재준)
산행대장 : 010 - 4513 - 3090 (황윤원)
총 무: 010 - 2511 - 1788 (박종길)
태백산 [도립공원]
태백산은 옛부터 삼한의 명산, 전국 12대 명산이라 하여 '민족의 영산' 이라 일컫는다. 태백산은 가파르지 않고 험하지 않아 초보자나,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다. 2시간이면 천제단에 이르고 하산까지 4시간이면 족하다. 따라서 가족산행으로도 적합하다.
산 정상에는 고산식물이 자생하고 봄이면 산철쭉이 만개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과 차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며, 가을에는 오색단풍으로 수놓으며 겨울에는 흰눈으로 뒤덮인 주목군락의 설경을 이룬다.
산 정상에 태고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다. 천제단은 둘레 27m, 폭8m, 높이3m의 자연석으로 쌓은 20평 가량의 원형 돌제단이다. 삼국사기에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신라에서 오악 가운데 태백산을 북악으로 받들어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산행 코스
ㅇ제1코스(유일사코스)[4시간]
유일사매표소 - 갈림길 오른쪽 - 유일사 - 장군봉 -천제단 -망경사 -당골(왕복 4시간 예상)
태백산 소개
태백산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와 태백시 문곡소도동 그리고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천평리와 접경을 이루며 동경 128º 56' 북위 37º 05'에 자리 잡은 해발 1,567m의 명산입니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물이 영남평야의 젖줄인 낙동강과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한강, 삼척의 오십천을 이루니 국토의 종산이자 반도 이남의 모든 산의 모태가 되는 뿌리산입니다. 태백산은 천제단이 있는 영봉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봉(1.567m) 동쪽에 문수봉(1,517m), 영봉과 문수봉 사이의 부쇠봉(1,546m)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암벽이 적고 경사가 완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고산식물이 자생하고 봄이면 산철쭉, 진달래의 군락지가 등산객을 맞이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과 차고 깨끗한 계곡 물이 한여름 더위를 잊기에 충분하며 가을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수놓으며 겨울은 흰 눈으로 뒤덮인 주목군락의 설경을 보여 주는 곳으로 남성다운 중후한 웅장함과 포용력을 지닌 육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낙조는 장엄하여 세속을 떠난 천상계를 연상케 하고 맑은 날 멀리 동해 바다를 볼 수 있는 것도 태백산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이다. 이 밖에도 최고 높은 곳에 위치한 한국명 수중 으뜸 수 용정, 용담이 있다. 1989년 5월 13일 17.44㎢의 면적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소도 집단시설지구에 콘도형인 태백산 민박 촌을 비롯하여 숙박시설, 음식점, 야영장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석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석탄 박물관이 있고, 겨울철에는 대규모의 눈썰매장이 개장된다. 한반도의 등줄기 역할을 하는 백두대간의 머리가 되는 산이 백두산이라면, 1 정간 13 정맥을 비롯한 수많은 기맥과 지맥들 그리고 열 개의 큰 강을 비롯한 수많은 강줄기를 품어 흐르게 함으로써 생명의 터전이 된 백두대간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 태백산임니다. 백두산이 지리적 의미에서 백두대간의 머리가 되는 산이라면 태백산은 생명의 터전이 되어준 백두대간에 대한 사람들의 경외심의 시작이요 상징이 되는 산이다. 백두산이 이 땅에 백두대간을 풀어 놓은 하늘의 뜻을 상징하고 있다면 태백산은 그 하늘에 감사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고백을 담고있습니다. 하늘이 백두산을 통해 드러낸 뜻에 대해 사람들이 태백산을 통해 반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백산은 하늘과 땅(자연, 산)과 사람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의 세계관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로운 삶이란 바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인 삼재(三才)사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태백산의 황홀한 여명
태백산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다. 산꼭대기에 이와 같은 큰 제단이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이곳밖에 없다. 천제단은 장군 단과 천왕 단과 하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봉 정상에 있는 천왕 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고, 장군봉 정상에 있는 장군단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영봉에서 조금 내려가면 나오는 하단은 땅(자연)에 제사를 지내던 곳임니다.
이 세 개의 단이 삼재 사상에 기초해 있다. 즉 하늘의 뜻을 받들고 땅(자연)을 경외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태백산은 백두대간이 상징하고 있는 생명사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상생과 조화로운 삶을 향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산입니다. 태백산은 백두산으로부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그리고 청옥산과 두타산을 지나며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의 맥이 크게 용트림한 산입니다. 다른 산들과 달리 태백산의 주능선 일대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평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부드러운 능선입니다. 마치 하늘과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움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이 흐르는 영봉 정상의 한가운데 천제단(天際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동국여지승람>은 "태백산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산"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백산은 우리 민족의 이름이 된 산입니다. 태백산(太白山)은 '크게 밝은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크게 밝은 산'의 순우리말은 '한밝뫼' 또는 '한 밝달'입니다. '한 밝달'이 '한 백달', '한배달'로 전음되어 '한민족' '배달민족' 같이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제사 지내던 산을 '밝은 산'(白山)이라고 부르며 숭앙했습니다. '밝은 산' 중에서 '가장 크게 밝은 산'이 바로 '태백산'인 것입니다. 산행은 태백과 영월을 연결하는 고개로 31번 국도가 지나는 화방재에서 시작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어평재라 부릅니다. 어평이란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御坪)이다"라고 한데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합니다. 화방재에서 사길치(사길령)을 지납니다. 사길치는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높고 험했지만 가장 가까운 길이어서 보부상들이 수십 혹은 수백 명씩 넘었다는 곳입니다. 사길치를 지나면 바로 태백산 천제단을 향합니다. 걷다 보면 이내 자연의 경이로움과 황홀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주목 군락지를 만나게 됩니다. 주목 군락지를 지나면 장군봉이고 영봉입니다. 영봉에 올라 하늘을 만지고 산을 느끼며 걷다 보면 단군의 아들 부소의 이름이 붙여진 부소봉입니다. 문수봉을 지나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내려옵니다. 태백산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겨 있는 영험한 산입니다. 이러한 태백산의 의미로 인해 태백산행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태백산행은 영혼과 함께 걷는 산행입니다. 눈 덮인 영험한 산 태백의 길을 자신과 함께 걸어 보시기 바랍니다.
부쇠봉
천제단이 있는 수두 머리와 문수봉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이 봉우리에서 남으로 뻗은 산줄기가 소백산맥의 시초가 된다. 옛날 신라 때 이곳 산봉우리에서 남으로 뻗은 산 등으로 길이 있어 경상도와 강원도를 통하는 요로(要路)였다. 고려때 그 길은 천 평으로 해서 새길령으로 넘어 혈리로 소도로 통하게 새로이 개척하자 이 길은 아주 작은 소롯길로 변했고 천제를 지내러 오는 경상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였다. 이 산봉우리는 해발 1,546m로 그동안 우리 나라 지도에 태백산 높이로 잘못 인식되게 한 봉우리이다. 또한 이 산봉우리는 중국(中國)의 태산(泰山)과 높이가 같은 산으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부쇠봉의 뜻은 확실이 알길이 없으나 근처에 차돌이 있어 부싯돌(부쇳돌)로 사용하지 않았나 의심도 되고 그 부쇠를 부소로 보아 단군의 아들 부소왕자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영봉이 단군께 제사지내는 장소라면 그 아래에 있는 작은 산봉우리가 그 아들봉일 것이고 전하는 말에 부소(扶蘇)가 구령탑을 쌓았다고 한다.
주목 군락지
태백산에서 자라는 주목은 2,805주이며 그 중 높이 11m 이상되는 것은 49주이며 지름 1m이상되는 나무는 15주이다. 그리고 지름이 가장 큰 나무는 1.44m로서 수령은 500년 이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주목 서식지 중 가장 대단위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고, 태백산을 대표하는 나무로서 설경은 장관을 이룬다. 주목은 고산 지대에서 자라며 높이 20m, 지름 2m에 달한다. 한국ㆍ일본ㆍ중국 동북부ㆍ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일본산으로 원줄기가 곧게 서지 않고 밑에서 여러 개로 갈라지는 것은 눈주목(var. Nana)이라고 하며, 잎이 더욱 넓고 회색이 도는 것은 회솔나무(var. latifolia)라고 하며 울릉도와 북쪽에서 자란다. 원줄기가 비스듬히 자라면서 땅에 닿은 가지에서 뿌리가 내리는 것은 설악눈주목(T. caespitosa)이라고 하며 설악산 대청봉 근처에서 눈잣나무와 같이 자란다.
* 요약
겉씨식물 구과식물아강 구과목 주목과의 상록교목.
학명: Taxus cuspidata
분류: 주목과
분포지역: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
서식장소: 고산 지대
크기 높이: 22m, 지름 2m
* 본문
고산 지대에서 자란다. 높이 20m, 지름 2m에 달한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큰가지와 원대는 홍갈색이며 껍질이 얕게 띠 모양으로 벗겨진다. 잎은 줄 모양으로 나선상으로 달리지만 옆으로 벋은 가지에서는 깃처럼 2줄로 배열하며, 길이 1.5~2.5mm, 나비는 2∼3mm로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에 황록색 줄이 있다. 잎맥은 양면으로 도드라지고 뒷면에는 가장자리와 중륵 사이에 연한 황색의 기공조선(氣孔條線:잎이 숨쉬는 부분으로 보통 잎 뒤에 흰 선으로 나타남)이 있다. 잎은 2∼3년 만에 떨어진다. 꽃은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단성화이며 4월에 핀다. 수꽃은 갈색으로 6개의 비늘조각으로 싸여 있고 8∼10개의 수술과 8개의 꽃밥이 있다. 암꽃은 녹색으로 달걀 모양이며 1∼2개씩 달리며 10개의 비늘조각으로 싸여 있다. 열매는 핵과(核果)로 과육은 종자의 일부만 둘러싸고 9∼10월에 붉게 익는다. 관상용으로도 심으며, 재목은 가구재로 이용한다. 종의(種衣)는 식용하고, 잎은 약용한다. 한국산 주목씨눈에서 항암물질인 택솔을 대량 증식할 수 있음이 밝혀졌으며 씨눈과 잎, 줄기에 기생하는 곰팡이를 생물공학기법으로 증식, 택솔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상품화되었다.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일본산으로 원줄기가 곧게 서지 않고 밑에서 여러 개로 갈라지는 것은 눈주목(var. nana>)이라고 하며, 잎이 보다 넓고 회색이 도는 것은회솔나무(var.latifolia)라고 하며 울릉도와 북쪽에서 자란다. 원줄기가 비스듬히 자라면서 땅에 닿은 가지에서 뿌리가 내리는 것은 설악눈주목(T. caespitosa)이라고 하며 설악산 대청봉 근처에서 눈잣나무와 같이 자란다.
장군바위
태백산 소도당골의 넓적바우를 지나서 500m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 개울가에 높이 50여m의 거대한 기암절벽이 솟아 있는데 그 모양이 흡사 장군이 칼을 짚고 서 있는 것 같다. 30여년 전 바위밑에 천지암(天地庵)이란 절이 있었으나 화전 정리 때 철거되었다. 지금도 치성 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군바위는 태백산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서 있다.
옛날 태백산은 하늘로 통하는 성스런 산으로 하늘나라에서 파견된 장군이 많은 군사를 이끌고 태백산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장군의 임무는 신성한 태백산으로 부정한 사람이나 악한 귀신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때 장군이 연화산 옥녀봉의 옥녀에게 반하여 임무를 게을리하는 틈을 타고 성역으로 못된 잡귀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에 하늘 신(天神)의 백두천황(白頭天皇)은 대노하여 급히 돌아오던 장군과 병졸들을 뇌성벽력을 쳐서 돌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성역으로 들어온 잡귀는 벼락을 쳐서 백산의 신령 굴에 가두어 버렸으며 신령 산의 신령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천재단(天祭壇·중요민속자료 제228호)
천제단은 옛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한 제단으로 삼국사기를 비롯한 옛 기록에 "신라에 서는 태백산을 3산 5악(三山五岳) 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이라 하고 제사를 받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영산(靈山)으로 섬겨 왔음을 알 수 있다. 태백산 정상에 위치한 천제단은 천왕단(天王檀)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단(將軍檀), 남쪽에는 그보다 작은 하단의 3기로 구성되었으며 적석으로 쌓아 신 역(神域)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있는 천왕단은 자연석으로 쌓은 둘레 27.5m, 높이 2.4m, 좌우 폭 7.36m, 앞 뒤폭 8.26m의 타원형이며, 녹니 편마암의 자연석으로 쌓아져 있는데 윗쪽은 원형이고 아래쪽은 사각형이다. 이러한 구도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 때문이다. 단군조선 시대 구을(丘乙)임금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이 제단은 상고시대부터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으로 단군조선 시대에는 남태백산으로 국가에서 치제하였고, 삼한시대에는 천군이 주재하며 천제를 올린 곳이다. 신라초기에는 혁거세 왕이 천제를 올렸고 그 후 일성왕이 친히 북순하여 천제를 올렸으며 기림왕은 춘천에서 망제(望祭)를 올렸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방백수령(方伯守令)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으며 구한말에는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우국지사들이 천제를 올렸고, 한 말 의병장 신돌석 장군은 백마를 잡아 천제를 올렸고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린 성스런 제단이다. 지금도 천제의 유풍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며 산꼭대기에 이같이 큰 제단이 있는 곳은 본토에서 하나밖에 없다. 천제단은 다른 이름으로 구령단(九靈壇) 또는 구령탑(九靈塔)이라 하고 마고 탑(麻姑塔)이라 하기도 한다. 특히, 해마다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제사를 받드는데 중앙에 태극기(太極旗)와 칠성기(七星旗)를 꽂고 주변에는 33 천기(天旗)와 28수기(宿 旗)를 세우며 9종류의 제물을 갖춘다 이 주변의 계곡 일대에는 치성을 드리는 기도처 로 사용된 크고 작은 적석 탑과 석단들이 있다.
망경사
태백산(1,567m) 천제단 부근에 있는 망경사(望鏡寺)는 천제단으로 가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하는 절집이다. 신라 때인 652년에 자장이 창건했는데, 자장은 인근 정암사에서 말년을 보내던 중 이곳에 문수보살 석상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암자를 지어 그 석상을 모셨다고 한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다만 한국전쟁 때 거의 불 타 없어진 것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천년고찰의 흔적을 짚을 만한 유물 유적 등은 없는 편이다. 산꼭대기에 있으면서도 산신각 대신 용왕각이 있는 게 특이하다. 물줄기가 동해와 통해 있어 용왕신이 머문다는 용정(龍井) 때문이다. 이 샘물은 신라시대부터 매년 시월 천제단에서 제사를 올릴 때 천수로 사용하고 있는데, 물맛이 좋아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단종비각
태백산망경사에서 천제단쪽으로 100m 정도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단종 비각(端宗碑閣) 안에는 영월로 유배와 1457년 죽임을 당한 단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朝鮮國 太白山 端宗大王之碑)’라고 쓰여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고을 추익한(전 한성부윤)이태백산의 머루 다래를 따서 자주 진상했는데, 어느 날 꿈에 산과를 진상차 영월로 가는 도중 곤룡포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태백산으로 오는 단종을 만나게 됐다. 추익한이 이상히 여겨 영월땅에 도착해 보니 단종이 그 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단종은 세상을 떠난 뒤태백산산신령이 됐다고 전해진다. 그후 주민들은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산신령으로 모시고 500여 년 동안 매년 음력 9월3일 제를 지내고 있다.
태백산 석장승
태백산입구인 소도동에 있는태백산석장승(도민속자료 제4호)은태백산신을 지키는 한 쌍의 수호신상이다.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천하대장군이고, 오른쪽은 지하여장군인데, 천하대장군은 키 170cm, 가슴폭 45cm이고, 지하여장군은 키 158cm, 가슴폭 46cm의 크기로서 재질은 화강암이다. 두 장승의 제작시기는 알 수 없으나 처음 이 돌장승은 당골 입구 장승둔지(미루단지)에 약 10m의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었는데,태백산망경사 경내로 옮겨졌다가 1987년 현 위치에 복원했다.
태백 석탄박물관
태백산입구의 당골광장에 위치한 태백석탄박물관은 우리나라 산업화에 큰 역할을 했던 석탄에 관련된 온갖 자료를 모아 전시한 곳이다. 실내 전시실 7개와 지하전시실 1개, 옥외·야외전시실 각 2개 등을 갖춘 연면적 3,669.3㎡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한다. 관람객의 흥미를 위한 영상장비와 특수효과 등이 자랑거리 .탄광지지목이 부러지고 바닥이 흔들리며 붕괴되는 장치는 현실감을 더해준다. 산업역군의 주역이던 광부들이 막장에서 맛봐야만 했던 삶의 애환도 엿볼 수 있다. 제대로 둘러보려면 2시간쯤 걸린다.태백산입장권(2,000원)으로 관람할 수 있다.
태백 체험공원
태백시 소도동의 태백체험공원은 함태탄광 폐광지를 되살려 조성한 체험 관광지다. 함태탄광은 890여 명의 종업원이 연간 약 378만 톤을 생산하던 비교적 규모가 큰 탄광이었으나 1993년 폐광됐다. 태백시에서는 2006년 태백지역 탄광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해 개장했다.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도 석탄생산에 종사한 광부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피어났던 그들의 꿈과 희망을 볼 수 있는 현장학습관, 배급소·빨래터·상점 등 광부들의 집단거주지였던 사택을 재현한 탄광사택촌 등을 재현했다. 또 갱도의 벽과 레일, 침목 등은 사용하던 시설 그대로 보존했고, 인차와 광차를 재현한 체험갱도 등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어 생생한 탄광체험을 할 수 있다.
이용시간 09:00~18:00.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연중무휴. 관람 소요시간 40분. 요금은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현장학습관 033-550-2718, 554-0266, 탄광사택촌 033-550-2783
용연동굴
화전동에 있는 용연동굴(도지방기념물 제39호)은 1억천만 년 전에서 3억 년 사이에 형성된 석회동굴로 주굴의 길이 약 600m, 총 길이 약 1,000m에 이른다. 동굴은 해발 980m에 위치해 현재까지 남한에서 알려진 동굴 중 최고위 지대에 있다. 동굴 깊은 곳에는 임진왜란 때 피난했다는 내력의 붓글씨가 있다고 한다. 또 의병 본부 역할을 했으며 국가 변란시 피난처였다고 한다. 용연동굴은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한 입체적인 노년기 동굴이다. 곳곳에 종유석·석회화폭(石灰華瀑)이 발달해 있으며, 습도와 유기질이 풍부하여 특징적인 동굴 동물이 많이 발견된다. 동굴 속 대형 광장엔 음악에 맞춰 춤추는 리듬분수대 1개, 일반분수대 2개, 화산모형분수대 1개가 설치되어 있다. 노약자나 어린이를 위해 주차장에서 동굴 입구까지 1.1km 구간에 무궤도열차인 용연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이용시간은 09:00∼18:00. 입장료 어른 3,500원, 청소년 2,500원, 어린이 1,500원. 전화 033-553-8584, 550-2727. 월둔동굴/원동에 있는 월둔동굴(시도기념물 제58호)은 지금으로부터 약 5억 년 전에 만들어진 석회동굴이다. 세로로 땅속 깊이 뻗은 원통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7개의 빈 웅덩이와 넓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굴 안에는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과 동굴 바닥에서 돌출되어 올라온 석순들이 열을 지어 만든 석순책(石筍柵)이 펼쳐져 있으며, 동굴벽에는 산호 모양을 한 생성물들과 폭포 모양의 종유석이 있다. 맨 마지막 공간에는 깊이 4m 정도의 물웅덩이가 있고, 가운데에는 높이 8m의 대형 석순이 있다. 구문소/동점동의 구문소(求門沼·천연기념물 제417호)는 석회동굴이 땅위에 드러난 구멍으로 낙동강 상류인 황지천 물길이 흘러지나간다. 구문(求問)은 ‘구멍·굴’이란 뜻이니 구문소란 곧 ‘굴이 있는 늪’을 뜻한다. 구문소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천천(穿川·구멍 뚫린 하천)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구문소 바로 옆 도로에 있는 석굴은 일제 강점기 때 인공으로 뚫은 것이다. 구문소 절벽 위에 자개루가 있다. 구문소 부근의 석회암에는 건열·물결자국·소금흔적·새눈구조 등의 퇴적구조와 삼엽충·완족류·두족류 등의 다양한 생물화석이 나오고 있어 하부 고생대의 퇴적환경과 생물상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구문소의 고환경과 침식지형은 퇴적구조와 침식지형 등 다양한 지형지질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부 고생대의 고환경 연구에 중요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화석수목전시관은 인근에서 출토되는 화석류 18종 180개와 서식하는 수목류 16종 76개소, 생활용품 등을 전시하여 산 학습의 장이 되고 있다. 통리협곡과 미인폭포/오십천 상류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미인(美人)폭포는행정구역으로는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에 속하지만 태백 사람들에게 더 익숙하다.
높이 50m의 희디흰 물줄기가 붉은 협곡 사이로 쏟아지는 모습은 화장 곱게 한 미인을 연상케 한다. 폭포 주변의 마을에 절세미인이 살았는데, 남편이 병들어 죽자 폭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미인폭포 아래는 길이 10km, 높이 270m에 이르는 깊은 골이 패여 있는 통리협곡이다. 전문가들은 통리협곡의 생성과정이 미국의 그랜드캐년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폭포로 가는 길목에는 혜성사(惠聲寺)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장명사 목불좌상/장명사 목불좌상(도유형문화재 제144호)은 금강산의 한 사찰에서 모시다가 해방 이후 장성동의 장명사 대웅전에 모시게 된 석가모니불상이다. 조선 후기 목조불좌상 가운데 그다지 크지 않지만 단정한 형태와 상호(相好)가 원만하게 표현된 수작이다. 보존 상태도 비교적 좋은 편으로서 양감 넘친 조각이 돋보이며, 의습은 전형적인 조선 17세기경에 제작된 불상과 양식상 유사한 점을 볼 수 있다. 조각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기량을 지닌 작품으로,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본적사지 3층석탑/황지동 절골의 본적사지 3층석탑(도문화재자료 제126호)은 본적사지에 있는 석탑이다. 본적사(本寂寺)의 창건연대는 기록으로 전해오지 않으나 산사에서 발견된 와편으로 볼 때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부재는 완전하지는 않으나 원형복원이 가능하고, 태백 지역의 불교문화 양상을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추전역/화전동에 있는 추전역(855m)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열차역이다. 1973년 태백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문을 열었는데, 1998년 철도청에 의해 추전역을 지나는 환상선 눈꽃순환열차 상품이 나오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역사에는 태백시 관광자원과 태백선의 역사를 소개하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추전역은 한여름에도 밤이면 난로를 피워야 할 정도고, 겨울에는 적설량도 많다. 북서쪽으로 500m 떨어진 지점에는 길이가 4,505m에 달하는 정암터널이 있다. 1973년에 개통된 이 터널은 공사가 어렵기로 손꼽힌 태백선 중에서도 가장 힘든 공사로 꼽힌다. 전화033-553-8550 철암역 두선탄시설/철암동 철암역 두선탄시설은 탄광에서 채굴된 원탄을 수요자에게 맞게 선별하고 가공·처리하는 선탄시설로서 1960~70년대 국가 에너지 산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우리나라 근대산업사의 상징적인 시설이다. 1935년 일제 강점기에 최초로 시작한 남한 최대의 무연탄광인 삼척탄광이 그 전신으로, 현재는 대한석탄공사 산하 장성광업소에서 설치하여 현재까지 가동 중이다. 이곳에는 원탄저장과 운반(벨트 콘베어), 경석선별과 파쇄운반, 1, 2. 3차 무연탄 선탄, 이물질 분리(침전), 각종 기계공급과 수선창 등 5분야에 걸쳐 20개 주요 시설물이 있다. 산업전사 위령탑/황지동 바람부리 산중턱에 위치한 산업전사위령탑은 태백지역 광산에서 석탄 생산을 하던 중 사고로 순직한 광산 근로자들의 영령을 봉안하여 위로하는 곳이다. 탑의 광차 모양 기단 전면에는 갱내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의 모습이 동판에 조각되어 있다. 탑신 상부의 표장은 갱내 작업용 램프를 나타낸다. 위패 안치소에는 3,000여 명에 이르는 순직자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최초 석탄발견지 탑/금천동 먹돌배기 근처에 있는 최초 석탄발견지 탑은 1926년 상장면(태백시의 옛행정단위)의 소사로 일하던 장해룡이라는 사람이 이곳 먹돌배기 근처에서 노두에 나와있는 석탄덩어리를 주워다 면장 책상 위에 놓아둔 것이 일본인 기사의 눈에 띄어 태백이 일약 탄광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가 됐다. 화강암으로 만든 탑은 수갱을 의미하는 탑신과 동발광차, 광원 등을 상징하는 4부분으로 이루어졌다.
* 태백산 주변 볼거리 *
검룡소
백두대간 금대봉 자락의 검룡소(儉龍沼)는 남한강의 발원지다.
고목나무샘, 물구녕석간수, 제당굼샘에서 각각 지하로 1~2km쯤 흘러내려와 이곳 검룡소에서 솟구치는데, 용이 솟아오르듯 용출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검룡소 아래로는 오랜 세월 흘러내린 물줄기 때문에 깊이 1~1.5m, 넓이 1~2m의 암반이 푹 파였는데, 곧바로 20m쯤의 와폭이 신비한 용틀임을 한다. 수온은 사계절 항상 9℃로 일정하고, 하루 2천~3천 톤의 물이 솟구쳐 514km를 흐르는 한강의 원천이 된다. 매년 8월이면 이곳 검룡소에서 한강대제를 지내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검룡수 먹기대회도 갖는다
황지
태백의 번화가인 황지동에 있는 황지(黃池)는 옛 기록인 동국여지승람, 척주지, 대동지지 등에 낙동강의 근원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두대간 너덜샘(은대샘)에서 발원한 낙동강 물줄기는 황지에서 모인 뒤 낙동강 1,300리를 흐른다. 옛 이름은 ‘하늘 못’이란 뜻의 천황(天潢)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황지(潢池)라 부르다, 나중에 삼수변이 떨어져나가면서 지금의 황지(黃池)가 됐다. 황지에는 시주를 청하는 스님에게 쇠똥을 퍼주었다가 집터가 꺼지면서 큰 연못으로 변하는 화를 당한 노랭이 황부자 전설이 전해져온다. 마당늪, 방깐(방앗간)늪, 통시(변소)늪의 세 연못과 굴뚝소가 전설의 흔적이다. 입장료와 주차료 등은 없다. 연못 둘레가 100m인 상지·중지·하지로 구분되며, 1일 5천 톤의 물이 용출하고 있다.
삼수령
태백에서 북쪽으로 6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피재는 남한강·낙동강·오십천 물길이 갈리는 분수령으로 삼수령(三水嶺)이라고도 한다. 이 고개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오십천으로 흘러 동해로 가고, 북서쪽으로 떨어지면 남한강으로 흘러 서해로 들고, 남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정상에는 조형물과 정자각이 있다. 고갯마루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매봉산 고랭지채소밭의 이색적인 풍경도 볼 만하다.
피재는 삼척 사람들이 황지 지역을 이상향이라 하여 난리를 피해 이곳으로 넘어왔기에 피해오는 고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봉화에서 태백산 산행 또는 태백산에서 봉화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있는데 철쭉군락지와 아름드리 금강송 군락지가 있어 기억에 남는 등산코스다.
▲삼거리갈림길에 있는 등산안내도및 이정목
부쇠봉은 좌측 상골3.2km방향으로가고,
문수봉은 우측 칠반맥이골 입구(총연장3.6km)방향
태백산 산행,
봉화 현불사 - 백천계곡 - 부쇠봉 - 천제단 - 장군봉 - 망경사 - 반재 - 당골광장 - 6번주차장
1. 강원태백,경북봉화 태백산(1567m),
부쇠봉(1546m),문수봉(1517m),
소문수봉(1465m)
2.산행코스;A;현불사-백천계곡-금강송능선
-부쇠봉-천재단-장군봉(Back코스)
-문수봉-소문수봉-당골광장
B;백단사-반재-망경사-주목군락지
-천제단-부쇠봉-문수봉-소문수봉-당골
봉화 백천계곡에서 태백산 가는 산행에 가장 인상에 남는것은 아름드리 금강송 군락지 철쭉 군락지를 지니 태백산으로 가는 코스인데 추억에 남는 산행이 될것입니다
백천계곡은 오지 중의 오지다. 태백산 남쪽 기슭에 기대어 있어 태백에서도 멀고 봉화에서도 멀다. 백천계곡은 우리나라 깊숙한 곳에 박혀 있지만 막상 계곡에 들어서면 마냥 편안하다. 길지(吉地)라는 느낌이 편안한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온다.
그래서인지 백천계곡엔 숱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예부터 전쟁이 터져도 화를 면한다는 십승지 중 하나였다는 전설도 전해오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뒤 머무를 곳으로 백담사와 백천계곡 입구 현불사를 놓고 막판까지 고민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태백산 정기를 이어받은 계곡이라 하여 얼마 전만 해도 무당이 진을 쳤고, 요즘도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단다. 아무튼 백천계곡의 주인은 따로 있다. 특별보호어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열목어다. 열목어는 빙하시대에 살던 어족으로 한여름에도 20도 이하 수온에서만 살 수 있다. 물도 유난히 깨끗해야 한다. 산소함량이 10ppm 이상인 물에서만 살 수 있는 까다로운 녀석이다. 이 열목어가 백천계곡에서 알을 낳는다. 보통 어른 손으로 한 뼘 크기지만, 주민 이씨에 따르면 백천계곡에서는 50㎝가 넘는 큰놈도 흔하단다. 열목어 덕분에 백천계곡은 계곡 전체가 천연기념물이 됐다. 계곡에 발만 담가도 처벌된다. 백천계곡이 훼손되지 않고 여태 극상림의 형질을 보존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 원시림의 계곡에 단풍이 물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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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국장님 늘 고생 수고가 많이시네요.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