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동공사 심층분석
1. 우물과 댓가지의 의미 : 죽지사 건곤가
하루는 여러 종도(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천하에 수기(水氣)가 고갈(沽竭)하였으니 수기(水氣)를 돌려야 하리라” 하시고 그 뒷산 피란동(避亂洞) 안씨재사(安氏齋舍)에 가시어 그 앞 우물을 댓가지로 한번 저으시고가라사대 “음양(陰陽)이 고르지 못하니 재사(齋舍)에 가서 어떠한 연고(緣故)인지 물으라” 하시니 안내성(安乃成)이 응명(應命)하고 재사(齋舍)에 들어가 물으니 재직(齊直)은 사흘전(三日前)에 사거(死去)하였고 그 처(妻)만 있거늘 돌아와서 사유(事由)를 아뢰니, 또 가라사대 “다시 행랑(行廊)에 가서 보라. 딴 기운이지지(支持)하여 있도다” 하시니라. 내성(乃成)이 그 행랑(行廊)에 들어가서 보니 행상(行商)하는 남녀(男女) 두 사람(二人)이 들어 있거늘 돌아와서 사실(事實)을 고(告)하였다. 상제님이 이에 재사(齋舍) 청상(廳上)에 오르시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서천(西天)을 바라보고 만수(萬修)를 고창(高唱)하게 하시며 가라사대 “이 가운데 동학가사(東學歌詞)를 가진 자가 있으니 가져 오라” 하시니, 과연(果然) 한사람이 가사(歌詞)를 내여 올리고 물러나거늘 상제님이 그 책(冊) 중간(中間)을 펴고 한 절을 읽으시니 "시운(詩云) 벌가벌가(伐柯伐柯)여 기칙불원(其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업지마는 이는 도시(都是) 사람이오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목전지사(目前之事) 쉽게 알고 심량(深量)없이 하다가서 말래지사(未來之事) 같지 않으면 그 아니 내 한(恨)인가"라 하니라. 처음에 미성(微聲)으로 한 번 읽으시니 백일(白日)에 문득 뇌성(雷聲)이 발(發)하거늘 다시 크게 읽으시니 뇌성(雷聲)이 대포(大礮) 소리와 같이 일어나서 천지(天地)를 굉동(轟動)하며 화약(火藥) 내음이 촉비(觸鼻)하고 또 지진(地震)이 강렬(强烈)하게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정신(精神)을 잃고 엎어지거늘 상제님이 내성(乃成)에게 명(命)하여 각기 일으켜 세우시니라. (대순전경 초판 6장 43, 현대문법으로 필자 수정)
이 공사를 보신 곳이 피란동(避亂洞) 안씨재실(安氏齋室)인데, 재실의 명칭은 추원재(追遠齋)이다. 대순전경 초판에는 안씨재사(安氏齋舍)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재실(齋室)이나 재사(齋舍)나 같은 말이니 어떻게 기록되어 있든 이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단 이에 대하여 재실의 실(室)에 빗대어 이것이 28수(宿)의 실성(室星)에 해당하므로 간지로 무진(戊辰)과 무술(戊戌)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있으며 이러한 해석이 탁월한 명견(明見)임에는 틀림없으나 무리하게 지나친 해석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실성(室星) : 황도를 따라 천구를 스물여덟로 나눈 28수 중 13번 째 별로 북쪽의 별이다. 두(斗)·우(牛)·여(女)·허(虛)·위(危)·벽(壁)의 별과 더불어 현무(玄武)라 한다. 별자리이름은 페가수스자리 α, β 등을 포함한다.(두산백과)
이 공사에서 공간적 의미로는 피란동(避亂洞) 안씨재실(安氏齋室) 추원재(追遠齋)라는 것과 안내성 성도를 통하여 본 공사라는 것이다. 피란동이라는 지명이 시사하듯이 난을 피하는 곳이며 그 난이 천지의 화란이라면 이는 결국 마지막 구원의 판이 되는 판 밖의 공사에 해당한다. 추원재(追遠齋)의 의미는 먼 조상을 생각한다는 것이니 안씨의 먼 조상을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볼 수 있기도 하다. 혈통줄을 바르게 한다는 측면에서 안씨의 원래 혈통을 살펴서 공사를 보았다는 의미가 되므로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해석은 도운의 지나간 역사에서 이씨형제들의 대두목 놀음이나 어떤 이씨가 자신에게 끼워맞추는, 꼭 이 공사가 아니고서도 자가당착의 해석을 하면서 자신이 내심 대두목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지금도 그러는 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견강부회의 해석에 스스로 만족하거나 그러한 믿음과 교리 해석으로 만사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기에 스스로의 능력의 문제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공사에서 가장 먼저 행하신 것이 재실 앞의 우물을 댓가지로 한 번 저으신 것이다. 이는 주역의 정괘(井卦)를 취하여 해석을 해야 할 것이지만, 대나무 가지도 중요하다. 댓가지는 죽지(竹枝)이다. 죽지(竹枝)로 우물의 기운을 돌린 것에서 이 공사가 의미하는 핵심을 알 수 있다. 정괘(井卦)는 손괘(巽卦)의 위에 감괘(坎卦)가 있는 상으로 풍목(風木)의 위에 물이 있는 형태이다. 역(易)에서 거주지는 옮겨도 우물은 옮길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감괘가 강중(剛中)을 얻었기 때문이라 했다.(改邑不改井 乃以剛中也) 효사에서 처음에는 우물물이 맑지 않아서 아무도 마시지 않는데, 점차 우물을 청소하고 맑은 물이 고이고, 또 수리하여 샘물이 치솟아 이용되어 길하다고 하였다. 이는 나아갈수록 길하다는 의미이다. 샘물은 세상의 인재들을 말한다.
우물의 대나무 가지는 현무경 기초동량 정사부(政事符)와 호응하는 것인데, 정사를 집행할 수 있는 천하의 인재들이 세상에서 소외되어 은둔하고 있다가 때가 되어 나오도록 하는 의미가 이 대나무 가지 공사의 의미가 된다. 기초동량 정사부는 기초동량은 이미 판안에서 짜여짐을 말하는 것이며, 정사부(政事符)는 반전체로 쓰이어졌으므로 이는 둔법이다. 판안의 법으로는 모른다는 의미이다. 대나무 잎의 수는 11개로 11성도를 의미하며 마주하면서 가지런함은 정음정양으로 나아감이며, 그 근원은 칠성에 응하고 6임이 뿌리가 됨을 의미한다. 壬의 여섯인 임자 임인 임진 임오 임신 임술에 해당하는 15진주의 판을 구성하는 6임이 11성도를 펼쳐내는 뿌리가 되어 자양분을 공급하고 칠정에 응하여 정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물은 칠성의 기운이 응기한 우물이다.
대나무 가지를 한 번 저으신 것은 판안에서처럼 여기 저기서 유사한 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딱 한번의 판으로 일이 됨을 의미한다. 댓가지가 출현하는 동심원의 네 번째가 판밖이며, 그 속의 세 개의 원이 판안인 것이다.
댓가지로 우물을 저었다는 것은 건곤의 정위(正位)를 말함이며, 이는 곧 지천태(地天泰)를 말한다. 죽지(竹枝)로 저었다는 것은 천지의 건곤가인 죽지사(竹枝詞)를 불렀다는 의미이다. 죽지사는 악곡의 일종으로 남녀의 연애, 연정 또는 그 지방 풍속을 노래한 곡으로,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 가창되는 12가사 중의 하나로써 ‘건곤가(乾坤歌)’라고도 한다. 그 초장만을 옮기면,
건곤(乾坤)이 불로월장재(不老月長在)허니
적막강산(寂寞江山)이 금백년(今百年)이로구나.
‘하늘과 땅이 늙지 않고 달은 오래토록 있으니/ 적막한 강산이 이제 백년이런고’라는 말이다. 가사의 첫 구가 “건곤이...”로 시작되어 ‘건곤가(乾坤歌)’라고도 하는데,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초장은 도암 이재(李縡)의 ‘대이태백혼 송죽지사(代李太白魂誦竹枝詞)’라는 과시(科試)의 셋째 구를 인용한 것으로, 원노래 한 마디에 반드시 입타령(구호)이 따르는 특징이 있으며, 도드리 장단에 얹어 부르는데, 청아한 품격으로 가을바람처럼 시원하고 산뜻한 맛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죽지사의 후렴구가 또 놀라운 것은 자주 보고 듣는 바로 그 ‘나무아미타불’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추원재의 의미를 통한 안씨의 뿌리, 혈통을 살피고 생각하는 의미에서 나무 목(木)의 기운을 취하는 것과 상통한다.
어이요 이요이요 이야어 일심정념(一心精念)은 극락(極樂)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像)이로구나 야루 너니나 야루나.
유서도 현무경도 선도신정경도 모두 나무아미타불인데, 바로 나무 목(木)을 인사로 쓰시는데 깊은 뜻이 있다. 세운도 나무를 쓰고 도운도 결론이 나무라는 것이다. 이에는 대개 생각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데, 이는 차후에 직접 보고 듣고 해서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이기에 더 이상 언급은 좋지 않다고 본다. 물론 김자현과 유찬명을 통한 10만명 포교사명과 맥이 통하는 공사이다. 유찬명은 전주 유(柳)씨로 알려져 있는데, 유(柳)씨의 혈통은 결국 황제헌원씨로 거슬러 올라가고 결국 신농씨를 찾는 도수가 된다. 유(柳)는 목기운을 강하게 태동시키는 기운을 가진 글자이며, 이는 포정도수의 핵심으로, 포정도수는 차경석으로부터이며, 車, 李에서 安으로 이어지는 삼천의 판안 포교대운이 진행된 역사적 과정이 바로 유찬명에게 붙힌 포정도수의 둔법에 의해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사부의 핵심이 포교대운이란 것을 알 수 있기도 하다. 현무경의 핵심인 천문 음양 정사가 사실 피란동 공사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공사의 가장 중요한 의미에 해당되는, 공사의 제목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우물에서 댓가지를 한번 저으신 것인데, 이에 대한 해석과 의미의 파악이 없이 이 공사를 해석하는 것은 잡부자작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현실의 상황은 광범위하고도 현묘한 천지공사의 이치에서 그럴듯하게 부분적으로 각색하여 정통이니 종통이니 주장하지만, 나름대로 그럴싸하게 일리가 있는듯해도 그 잡부자작이 중요한 내용들을 건너뛰고 가져다 붙인 것이라면, 모르고서 가져다 붙였다는 것 밖에 안된다. 인사는 매우 알기 어려운 것이고, 그 주체는 각고의 풍진세상을 살면서 결국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이지 미리부터 알게 정하여 놓고 되지 않음이다.
낙서판에서 3과 5와 7을 작위적으로 꿰어 맞춰놔도 결국 들통 난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육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두목 교리, 천자교리같은 것으로 일인지하의 교리를 버젓히 내세우는 자들이 그들이 종통을 이은 것으로 미리 주장을 하여 들통이 나버리는 이유가 바로 판밖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신격화된 교리를 수정하고 인사를 인위적으로 바꾸어서 짜맞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천지공사의 지엄하고도 지밀한 이치에 그 바탕이 들어나는 것에 속수무책인 것이며, 이것이 판밖 성도의 핵심비밀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아미타의 세계는 범부중생이 누구든 성불하는 세상이다. 교라는 것은 도를 깨치기 위하여 공부하는 방법이고 수단인 것이지, 교의는 믿음의 신조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치를 궁구하고 인성을 자각하는 공부가 우선이지 교리해석을 하여 그것을 믿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믿음은 관념의 성을 쌓는 아집의 아성일 뿐이지 깨우침의 길이 아니다.
첫댓글 증산도 혁명관의 핵심이 안씨재실공사에도 있었네요
네 그렇습니다. 혁명은 상제님의 뜻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