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에 백합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2009. 5. 21
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가 오늘 아침에는 더 많이 내렸습니다.
유리창에 부딪혀 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치 산모가 마지막 기운을 쓰며 얼굴에 흘리는
땀방울 같았습니다.
그 동안 메말랐던 농민의 가슴을 흠뻑 적셔주려는 듯 자주 내리는 비가 너무 고맙습니다.
실은 엊그제 16일에 내린 비는 얄밉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만약 비가 오지 않았다면 가족운동회는
예정대로 열렸을 테니까 말입니다.
밤새 촉촉이 비를 맞은 듯 침대 모서리 링거 폴대에 걸려있는 꽃바구니의 백합꽃도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선생님들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가져왔는데 그 속에 백합이 한 송이 멍울져 있었습니다.
그 백합이 밤새 창문에 맺힌 빗방울을 바라보며 옷을 활짝 벗어버린 거지요.
빗방울과 밤새 연애라도 한 걸까요?
오후에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보여주는 영화 “님은 먼 곳에”를 보았습니다. 조금 규모가 큰
병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겠지요. DVD에 빔 프로젝트를 연결하여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우리 어린이집에서 많이 쓰는 방법입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남편을 찾아 월남으로 간 한 여인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영화인데 남의
전쟁에 우리가 겪는 아픔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베트남 전쟁을 공산주의인 월맹과 민주주의인 월남이 전쟁을 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남과 북이 전쟁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은 우리 남북전쟁과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베트남 전쟁은 남과 북처럼 완전히
성격이 다른 월남과 월맹의 전쟁이 아니라 부패한 월남 정부와 월남 내의 반정부군(베트콩)과의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한 전쟁에 미국과 우리나라는 부패한 월남 정부를 지원하기위해 군대를 파견한 것이지요.
쉽게 이야기하면 5.18때 광주와 전두환과의 싸움에서 미국이 전두환을 위해 군대를 지원해주는
거나 같은 것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을 갖고요. 그러한 집안싸움에 그 많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다니 미국의 민주주의는 참 아름다운 민주주의지요.
그러한 전쟁 아닌 전쟁에 남편을 보내놓고 남편을 찾아 헤매는 한국의 한 아리따운 여인의 아픔은
진정 누구의 아픔인가요?
오랜만에 생각지도 않은 영화를 병원에서 보고 다시 한 번 지나간 역사의 뒤안길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역사라고 생각을 하니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