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심리학(abnormal psychology)
이상심리학은 심리학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 중 하나다. 이상심리학에서는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우울이나 불안부터 정신분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신장애의 증상과 원인을 다룬다. 수업을 들으면서 ‘혹시 내가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고민에 빠져보지 않거나, 가족과 친구들에게 어설픈 진단을 하다가 쓴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심리학과 학생은 없을 것이다.
이상심리란 무엇인가? 정신병리는? 그리고 정신장애는 또 무엇인가? 우선 용어를 살펴보자. 학부에서는 이상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주요 정신장애들을 개략적으로 다루지만, 대학원에서는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y)이라는 이름으로 심각한 정신장애를 자세히 다룬다. 이런 면에서 정신병리학은 이상심리학의 고급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용어는 출발점과 배경이 다르다. 우선 이상심리는 정상심리(혹은 일반심리 (일반심리학 참조))에 대응하는 말로 심리학에서 나온 개념이고, 정신병리는 정신건강에 반대되는 말로 의학에서 나온 개념이다. 이는 단지 심리학과 의학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를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의 차이, 철학의 차이이기도 하다. 심리학에서는 이상과 정상을 연속선상각주 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의학에서는 육신의 질병처럼 마음의 문제도 정신 질환(mental disease, illness)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정신분열(schizophrenia)을 예로 들어보자. 정신분열증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신분열병이라고 해야 하는가? 심리학 서적에서는 보통 정신분열증이라고 하지만 정신의학 서적에서는 정신분열병이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정신분열을 하나의 단일 질병이 아닌 증후군(syndrome)으로 보고 ‘증(症)’이라는 표현을 쓴다. 증후군이란 다양한 증상(symptom)각주 과 징후(sign)각주 의 집합을 의미한다. 반면에 의사들은 이를 ‘병(病)’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모든 심리학자와 의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며 개인마다 다른 입장을 취할 수는 있다.
이처럼 용어의 문제는 중요하지만 해결이 어렵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표현을 생각해냈는데, 바로 정신장애(mental disorder)다. 질서(order)에서 벗어난 무질서(disorder)라는 개념은 이상심리와 정신병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용어의 문제를 뒤로 하고 이제 정상(normal)과 이상(비정상, abnormal)의 구분, 즉 정신장애의 기준으로 넘어가보자. 시쳇말로 누가 ‘미친 사람’인가? 이는 오랜 논쟁거리로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며 또 앞으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신체는 아프다거나 병에 걸렸다는 기준이 명확하지만 정신의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신장애의 판단 기준은 다음처럼 몇 가지가 있지만 어느 하나도 완벽하지 않고 나름의 한계점이 있다.
첫째, 낮은 빈도다. 일종의 통계적인 기준인데, 대부분의 사람들각주 과는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이상이라고 본다. 정상 분포의 평균에서 2표준편차 이상과 이하에 속하는 5%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지능으로 따지자면 평균에서 2표준편차 아래를 정신 지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따지면 또 다른 소수, 즉 2표준편차를 넘는 영재들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이 기준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둘째, 개인의 주관적인 고통이다. 스스로 심리적인 고통을 느낀다면 이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이나 불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심리적 고통이 심각해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기준도 완전하지 않다. 정신장애가 심각해질수록 자신보다는 주변의 사람들이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셋째, 무능력(disability) 또는 역기능(dysfunction)이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대처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의미다. DSM-5(DSM 참조)는 정신장애의 진단을 위해서는 증상이나 심리적 고통이 사회적 기능과 직업적 · 학업적 기능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우울이나 불안의 경우 속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음에도 겉으로는 어느 정도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변태 성욕(paraphilias)도 사회적 기능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이 기준 역시 완벽하지 않다.
넷째, 사회적 규범의 위반이다. 모든 사회는 옳고 그름이나 정상에 대한 규칙이 있는데, 이를 위반하는 사람을 이상으로 본다. 예를 들어 반사회성 성격(성격 장애 참조)의 경우, 길 가는 사람에게 아무 이유 없이 욕을 하거나 폭행을 가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의지로 사회적 규범을 위반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이 기준 역시 완벽하지 않다. 노출증(exhibitionism)각주 의 경우에는 정신장애라고 할 수 있지만, 대낮에 길거리에서 누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정신장애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규범이라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상과 정상을 구분하는데 문제가 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정상과 이상을 올바르게 구별하고, 정신장애에 대해 정확히 진단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