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정의 그림일기(동화) - 박춘희
인정이는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처음 맞는 여름방학의 숙제가 그림일기였습니다. 인정이의 부탁으로 아빠는 퇴근길에 문방구에서 그림 일기장을 사왔습니다.
일기는 여기에 쓰고, 넓은 빈 칸에는 그림을 그려라. 이 그림 일기장은 인정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값진 재산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아빠, 값진 재산은 얼마짜리예요?
인호가 묻습니다.
값진 재산은 얼마짜리냐고? 하하하!”
아빠의 어이없는 웃음에 엄마와 인정이도 웃었습니다. 인호만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우리 인호가 숫자를 익히더니 물건마다 값을 묻곤 해요.
엄마가 인호를 자랑스러워하자, 아빠는 다시 말했습니다.
‘값진 재산’이 아니라 ‘소중한 재산’이라 해야겠군. 인정아, 그림 일기장은 훗날 소중한 재산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니 1학년 여름 방학을 그림일기로 잘 기록하렴.
예, 아빠!
인정이는 겉장에 ‘유인정’ 이름부터 크게 썼습니다.
7월 22일
내 이빨이 흔들렸다. 아빠가 실로 감아 당겨서 뽑았다. 아팠지만 참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울다가 그냥 잠이 들었다.
7월 24일
씻기 싫어하는 인호의 발등과 무릎에 때가 있었다. 비누칠한 수건으로 깨끗이 씻어주며 엄마한테 일렀다.
“엄마, 인호가 나한테 자꾸 반말만 해요. 아직 학교도 안 다니면서.
“인정이는 누나 노릇 하면서 대접도 제대로 받으려 하네.
엄마가 인호한테 암말 않는 걸 보면 막내를 더 예뻐하는 것 같다.
7월 28일
주말을 맞아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강화도로 갔다. 인삼밭이 많았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갔다. 배가 커서 자동차 세 대를 실어도 자리가 남았다. 갈매기들이 끼룩 끼룩 울면서 따라왔다. 바닷가에는 염전이 있었다. 소금 만드는 것도 구경했다.
7월 30일
어젯밤에 가수가 되는 꿈을 꾸었다. 노래상도 받고, 인기상도 받았다. 꿈꾼 대로 정말 가수가 되고 싶다.
8월 3일
인호의 생일이다. 인호가 색종이로 만든 초대장을 날랐다. 인호가 몇 번이나 현관문을 열고 내다봤다. 한 명이 안 왔다. 유치원에서 제일 친한 여자 친구였다.
엄마가 맛있는 음식과 수박을 상에 가득 차렸다. 모두 손뼉을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인호는 또 현관 쪽을 봤다.
8월 5일
아침 일찍 일어나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탔다.
가는 곳은 엄마의 어릴 적 고향이다. 엄마, 인호, 나 셋이 같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봤다. 산에는 나무가 참 많았다. 나와 동생은 안전벨트 하나로 묶어 좀 답답해도 즐거웠다.
외갓집에는 엄마가 어려서 꺾꽂이로 심었다는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이제 가지를 쭉쭉 뻗었다. 엄마처럼 어른 나무가 되었다.
8월 6일
친척의 결혼식이 끝났다. 예식장을 나와서 엄마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갔다. 아주 큰 향나무가 있었다. 엄마가 학교 갈 때 건넜다는 다리도 봤다. 엄마의 고향처럼 옛날이 남아 있는 시골에서 나도 살고 싶다.
8월 9일
수영장에 갔다 왔다. 그런데, 밤새 무서운 꿈을 꾸다가 오줌을 싸고 말았다. 옆에서 자던 인호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왜 이불이 젖었어?
“주전자 물을 엎질렀단다.
인호가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엄마, 왜 거짓말 했어요?
“누나가 오줌 쌌다면 동생이 얼마나 놀려댈까? 누나 체면은 세워야지.
부끄러워서 고개를 수그렸다.
8월 10일
여보, 여기 좀 보세요. 땀띠가 이렇게 돋았어요.
엄마는 신문을 읽는 아빠 앞에 팔을 내밀었다.
쯧쯧쯧. 무더위가 연속이더니! 약 바르고 얼음찜질도 해야겠소.
엄마, ‘땀띠’가 뭐예요? 땀’은 아는데띠’는 이상해요. 악어떼’처럼 땀이 떼를 지었으니 ‘땀떼’ 아니에요?
“땀떼? 호호호!”
엄마를 따라 아빠도 웃었지만 왜 웃는지 모르겠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내일부터 개학입니다. 오늘이 그림일기 숙제의 마지막 날입니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합니다. 인정이는 인호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엄마, 빨리 오세요. 빨리요!
인정이의 재촉에 주방에 있던 엄마가 텔레비전 앞으로 왔습니다.
엄마, 저 사람이 인정머리가 없다’고 했어요. 나, 인정이는 머리가 있잖아요.
인정이는 머리를 만지며 눈썹까지 찡그립니다.
“인정 많은 사람이 되라고 ‘인정’ 이라 이름을 지었지. 우리 인정이가 그림일기를 쓰고부터는 말 한마디도 그냥 넘기지 않는구나. 관찰력과 집중력을 키워주니 그림일기는 아주 좋은 방학숙제야.”
“누나, 오늘 그림일기에는 팔, 다리, 몸통만 그려.”
왜?
“인정 머리가 없다고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이 방금 말했잖아.
너, 지금 누나를 놀렸지?
인호가 엄마의 치마 뒤에 숨어서 혀를 쏙 내 밉니다.
인정...머리...없다. 인정...머리...없다. 메~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