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대공작왕의 전생이야기)
금빛 공작새와 사냥꾼
장승련
옛날 범여왕이 바라나시에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공작새의 암컷이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알을 땅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알은 신기하게도 깨어지지도 않아 온전히 있었습니다. 황금빛인 그 알은 나중에 때가 되자, 제 힘으로 알을 깨고 금빛 공작 새끼로 태어났습니다. 두 눈은 군자의 빨간 열매와 같고 부리는 산호 빛이며, 세 개의 빨간 선이 목을 감아 등의 가운데까지 무늬가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공작새가 점점 성장하자 몸은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다른 푸른 공작들은 모두 모여 그를 왕으로 추대해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못에서 물을 먹다가 제 모습의 아름다움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모든 공작새 중에서 제일 뛰어나게 아름답다. 만일 내가 저들과 함께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살면 위험할지도 몰라. 저 고요한 설산에 가서 마음 편히 살아야겠다.”
그리하여 모두가 잠자는 밤을 틈 타 아무도 몰래 설산에 들어갔습니다. 산맥을 넘고 넘어 네 번째 산맥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는 우거진 숲 속 안 연꽃에 덮인 큰 호수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의 언덕 가까이에 큰 니그로다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그 공작새는 거기에 살고 싶어 그 입구의 평평한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는 밑에서 올라갈 수도 없고 위에서 내려갈 수도 없어, 새며 고양이며 뱀이며 인간들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안전한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이튿날, 그는 동굴에서 나와 산꼭대기에서 동쪽을 향해 앉아있었습니다. 그 때 밝은 해가 오르는 모습을 보고 구호의 주문을 외웠습니다.
“저 눈 있는 오직 하나의 왕은 오르신다.”
그리고는 평지로 내려가 먹이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돌아와 산꼭대기에서 서쪽을 향해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넘어가는 붉은 해의 모습을 보고 다시 구호의 주문을 외웠습니다.
“저 눈 있는 오직 하나의 왕은 넘어가신다.”
그는 매일 이렇게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숲을 헤매고 있던 어떤 사냥꾼이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 그 금빛 공작새를 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도 사냥꾼은 너무나 아름다운 금빛 공작새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 자기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아들아, 네 번째 산맥 숲 속에 금빛 공작새가 살고 있다. 만일 왕이 그것을 구하거든 알려드려라.”
그러던 중 어느 날 바라나시 왕비 케마는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몹시도 아름다운 금빛 공작새가 설법을 하는데 그녀는 귀를 기울여 그것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빛 공작새는 설법을 마치더니 일어나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금빛 공작새가 간다. 저것을 붙잡아 주시오!” 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 것이지요. 그녀는 그것이 꿈임을 알고 금빛 공작새의 설법을 더 듣고 싶어 왕에게 졸랐습니다.
“나는 소원이 있습니다.
“무슨 소원이오?
“대왕님, 금빛 공작새의 설법을 듣고 싶습니다.‘
“금빛 공작이 설법을 하다니 무슨 말이오?”
“꿈인데도 너무나도 생생하게 금빛 공작새가 설법을 하는데 다시 볼 수 있게 만이라도 해주세요.”
왕은 왕비가 간절히 요청을 하자 태교에도 좋을 것 같아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여보, 어디서 금빛 공작새를 찾을 수 있겠소? 걱정이오.”
“대왕님, 만일 그것을 구하지 못한다면 나는 죽고 말겠습니다.”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만일 어디든 그것이 있다면 구할 수 있겠지요.”
왕은 그녀를 위안시키고 옥좌에 앉아 대신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왕비가 금빛 공작새의 설법이 듣고 싶다는데 그런 것을 구할 수 있겠는가?”
“대왕님, 그것은 전국의 사냥꾼들을 통해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왕은 전국의 사냥꾼을 한 곳에 모았습니다.
“너희들은 금빛 공작새를 본 일이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사냥꾼들은 한 사람도 본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사냥꾼이 일어섰습니다.
“나도 일찍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내게 어떤 곳에 금빛 공작새가 있다고 말한 일은 있습니다.”
그러자 왕은 갑자기 환한 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좋다. 그것은 나와 왕후를 살리는 것이다. 너는 가서 그것을 잡아 오라.” 하며 많은 재물을 주어 보냈습니다.
그 사냥꾼은 아버지가 말했던 네 번째 산맥에 가서 금빛 공작새를 잡기 위해 덫을 놓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이나 잡힐까, 내일이나 잡힐까 하며 오래 기다렸으나 잡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비도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왕은 그 공작 때문에 사랑하는 왕비가 죽었다는 생각에 꼭 금빛 공작새를 잡고 싶어 다른 지혜를 내었습니다.
“설산의 네 번째의 산맥에 금빛 공작새가 살고 있다. 그 고기를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고 금판에 써서 걸어 두고 잡도록 하였습니다. 그러고도 왕은 공작을 잡지 못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뒤에 다른 왕이 왕위에 올라 금판의 그 글을 보고는 늙지도 죽지도 않으려고, 그 금빛 공작새를 잡기 위해 사냥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왕도 기다리다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리하여 여섯 왕이 왕위를 이었고, 여섯 사람의 사냥꾼이 설산에서 죽었습니다. 일곱 번째 왕이 보낸 일곱 번째 사냥꾼은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면서 7년 동안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이 금빛 공작새는 어떤 덫에도 걸리지 않는가?”
그래서 금빛 공작새가 있다는 곳을 찾아가서 멀리서 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빛 공작새가 아침 저녁으로 구호의 주문을 외우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 장소에는 다른 공작새는 없다. 이 새는 틀림없이 수행을 하고 있다. 그 수행 힘과 구호하는 주문의 힘 덕분으로 덫에 걸리지 않는 게 아닐까?’
그리고는 여러 무리 중 한 공작새의 암컷 한 마리를 잡아 손뼉을 치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 곳에 데리고 가서 금빛 공작새가 구호의 주문을 외우고 있는 곳 가까이에 덫을 놓고는 손뼉을 쳐 그 암공작새에게 소리치게 하였습니다.
금빛 공작새는 그 암공작새의 소리를 듣자 700년 고요했던 번뇌가 마치 매를 맞은 뱀이 그 모가지를 쳐드는 것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금빛 공작새는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갈등 때문에 구호의 주문을 외우지 못하고, 빨리 그 소리 곁으로 날아가는 순간 덫에 걸려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은 생각했습니다.
‘이 금빛 공작새는 여섯 사람의 사냥꾼이 잡지 못하던 것이다. 나를 괴롭히던 것은 이처럼 그 덕이 높은 것이었다. 이런 것은 남에게 선물로 보내기에는 걸맞지 않다. 왕이 내게 주는 명예가 무슨 필요 있겠는가. 나는 이것을 놓아 주자.‘
이어 또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코끼리처럼 힘이 세고, 또 위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까이 가면 이 금빛 공작새는 자신을 죽이러 온다는 생각에 두려워 떨다가 발로 자기 날개를 상하게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가까이 가지 말고, 숨어서 화살로 그 덫의 끈을 끊어버리자, 그러면 공작은 제 마음대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하고는 숨어 서서 활시위에 화살을 대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금빛 공작새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 사냥꾼은 나를 잡아 가려 하고 있다.’
그리고는 사냥꾼을 향해 말을 했습니다.
“만일 그대, 재물을 탐해 나를 잡으려 한다면 나를 죽이지는 말고 산채로 잡아
왕에게 데리고 가면 아마 너는 적지 않은 재물을 얻으리라.“.
이 말을 듣고 사냥꾼은
“지금 내가 활시위에 화살을 댄 것은 너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금빛 공작새야, 나는 저 덫을 부수려 하나니 너는 마음대로 어디로든지 가라.“
“너는 밤낮 주림과 목마름을 참으며 7년 동안 나를 쫓아다녔다. 그런데 나를 덫으로 잡았으면서 왜 나를 놓아 주려 하는가?”
“나는 너에게서 어떤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해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근데 만일 사람이 살생을 하지 않고,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어떤 행복이라도 있는가?
“사람이 살생을 버리고, 모든 생물을 두렵게 하지 않으면 현세에서 칭찬을 받고, 죽어서는 저 천상에 간다.”
“그런가? 신(神)은 존재하지 않고, 현세는 이것으로 끝난다. 선한 일과 악한 일에 따르는 과보도 그와 같은데 널리 베푼다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사람들의 말 때문에 사냥을 해왔던 것이오.”
“그건 잘못된 생각이오. 전생(前生)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가 있다는 걸 믿지도 않고, 널리 베푸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현세에서 칭찬도 못 받고, 천상에도 못가며 지옥의 나락에 떨어진다.”
금빛 공작새가 이렇게 말하자 사냥꾼은 곰곰 생각하다가 대답하였습니다.
“실로 너의 그 말은 진실한 말이다. 어떻게 널리 베푸는 일에 그만한 덕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겠는가? 그러면 공작새야, 어떤 행동을 어떻게 행하고, 어떤 고행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내게 말해다오. 내가 저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누구나 부지런히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가까이 하여라. 그들은 네 마음을 기쁘게 해 주리라. 그들은 네게 각기 그 지혜에 따라 이 세상, 저 세상을 밝게 말해 주리라.”
이렇게 말하자 사냥꾼은 지옥의 두려움이 한 순간에 밀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실로 그 금빛 공작새는 다름 아닌 바로 바라밀을 성취한 벽지보살이었습니다. 성숙한 연꽃이 태양의 광선을 받기 위해 서 있는 것처럼 완전한 지혜를 얻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그 자리에서 모든 행을 깨닫고, 벽지불의 지혜를 터득했습니다.
벽지불이 된 사냥꾼은 생의 마지막에 서서 그 감흥을 받아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푸른 나무가 마른 잎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오늘 나는 사냥꾼의 생활을 던져 버리네.”
그리고는 금빛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많은 새들이 결박 되어 있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풀어 놓을까?”
“당신은 도를 닦아 번뇌를 깨뜨리고, 벽지불의 지혜를 얻었소. 거기에 대해 맹세하시오. 그렇게 하면 전 세계에 결박된 중생이 없어질 것이오.”
그러자 사냥꾼은 보살이 여는 문으로 들어가 다음과 같이 맹세했습니다.
“지금 우리 집에 결박되어 있는 그 수많은 새들, 나는 오늘 그들에게 생명과 해방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각기 제 집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이 맹세에 의해 불시에 그 새들은 결박에서 해방 되어 기쁜 소리를 지르면서 각기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신은 내 위대한 구세주입니다.” 하며 금빛 공작왕에게 합장하고 난다무라산 꼭대기로 갔습니다. 그러자 금빛 공작새는 막대기 끝에서 날아올라 먹이를 먹고는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생각키우기
금빛 공작새는 자기가 뛰어난 외모를 지녀 새들의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설산으로 들어가 수행을 해서 깨달아 부처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자기를 잡은 사냥꾼을 감화 시켜 벽지불의 지혜를 증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세장에서 고통받는 모든 새들을 풀어 주어,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도록 해 주었습니다.
자기의 장점을 어떻게 살리는 것이 나도 이롭고, 다른 이도 이롭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