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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본격적인 기후의 변화,새로운 시대변화의 동기가 생김.
새로운 태동이며 납음으로 대계수이니 가장 큰 흐름,줄기를 세우는 일을 한다
간여지동이지만 성격이 원만하다.포용력이 있고 지도자위치에서 역량을 발휘한다
금기운이 강하면 전기?전자?화공?화학 계통이거나, 예리하고 엄정한 검사?감사 등의 적성
갑인일주로는 탁구 현정화,김두관 전행자부 장관이 있다.
남자는 병진,무오,임술생 여인이,여자는 경술,병오생 남자가 좋다
하원갑자
2034년 항괘10년
유럽우주국(ESA)이 레이저 간섭계 우주 안테나(LISA)를 발사할 예정.
스위스가 원자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
60년전 전세계를 물가폭등과 불황으로 떨어뜨린 오일쇼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2차세계대전 종전부터 1973년까지 중산층 확대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실현한 선진국들이 누리던 "자본주의 황금기"가 끝장났다
1674년
조선현종 갑인예송으로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세력을 갖는다
11월 10일 - 영국-네덜란드 전쟁: 웨스트민스터 조약 체결에 따라 네덜란드가 잉글랜드에게 뉴네덜란드를 할양하다.
조선 제 19대왕 숙종(肅宗)이 즉위하다.
60년전 광해군 영창대군사사
40년전 갑술년 영국령 아메리카에서 메릴랜드 식민지가 성립되었다
이원익사망
30년전 갑신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는 베이징에 입성하여 중국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20년전 1차 나선정벌
20년후 숙종 다시 이이와 성혼을 문묘에 종향하고 반교문을 내리다
30년후 벨레즈-말라가 해전이 일어났다
40년후 영국에서 앤 여왕이 서거하고 조지 1세가 즉위함으로써 스튜어트 왕조가 끝나고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 바르셀로나 공방전이 끝났다.
60년후 프로이센 왕국의 작곡가 바흐에 의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작곡되었다.
대영제국의 시인 포프가 인간론을 출판하였다.
1314년 충숙왕 원년 소빙하가 오기시작
독일 두명의 신성황제시대
템플기사단의 세력은 급속히 약화되고 1314년 마지막 단장인 자크 드 몰레가 기둥에 묶여 화형당함으로써 역사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만다. 자크 드 몰레는 죽을 때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가 올해 안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공교롭게도 클레멘스 5세는 만성질환으로 인해 사망하고 8개월 후에는 필리프 4세가 사냥을 하다가 낙마하여 며칠 후에 45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백년 전쟁이 일어난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왕위 계승 문제였다. 필립 4세가 죽자 그의 세 아들인 루이 10세(1314~1316년)와 필립 5세(1316~1322년), 샤를 4세(1322~1328년)들이 차례로 왕위를 계승하였지만 이들 중 아무도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두지 못했다
4월 20일 - 교황 클레멘스 5세, 195대 로마 교황.사망
6월 23일 - 윌리엄 월레스, 스코틀랜드의 영웅.사망
6월 23일 -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2세와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1세 간에 베녹번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로버트 1세가 승리를 거두었다
60년전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인 콘라딘이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몽골 제국이 대리국을 멸망시켰다.
몽골의 6차 고려 침공으로 20만명이 학살되었다
40년전 에드워드 1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 전함 900척과 병사 3만 5천으로 구성된 여몽연합군이 합포를 출항하며 제 1차 일본 원정이 시작되었다
30년전 나폴리 만 전투에서 앙주 가문의 카를로 2세가 아라곤 왕국 해군에 사로잡혔다.
- 원나라의 안남 원정군이 호남의 형산을 출발하였다.사할린 원정
20년전 포르투갈과 잉글랜드 간의 동맹이 성립되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4세가 서로에게 선전포고 하였다.
20년후 피렌체 주교가 피렌체 대성당의 초석을 놓아 공사가 시작되었다.
아드라미티온 해전에서 베네치아 - 로도스 기사단의 함대가 터키의 카라스 토후국 함대를 격파하였다
원나라의 하북 지방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다.
30년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 플로린, 레오파드, 헬름의 세 종류의 금화를 도입하였으나 기존의 실링, 펜니와의 금 함유량이 맞지 않아 8월 내로 폐기되었다
40년후 요안니스 5세가 콘스탄티노플에 입성, 비잔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오스만 제국이 갈리폴리 (겔리볼루) 를 점령하며, 유럽 대륙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60년후 공민왕사망, 우왕즉위 이인임시대
954년 후주(後周) 태조(太祖) 4년 / 세종(世宗) 원년
시영(후주 세종)이 954년 제위에 오르자 영토 확장 의지를 천명하였고, 조광윤은 금군의 지휘관으로서 남벌에 참여하여 상당한 공적을 세웠다. 그리고 당시 거란족의 도움을 받아 후주를 위협하던 군벌들을 모조리 박살냈다
광종 954년에는 신명순성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숭선사를 창건하였으며, 화엄종 승려 균여와 교분을 갖고 그의 '성상융회(性相融會)' 사상을 받아들였다
루이4세 죽고 로테르 즉위.
60년전 궁예가 명주에 들어가 농민군을 규합해 장군에 추대 됨
40년전 비잔티움 제국과 불가리아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갈리시아의 오르도뇨 2세가 레온 왕국의 왕도 겸하게 되며, 레온 - 갈리시아 왕국의 판도는 코임브라 백작령, 포르투 백작령, 갈리시아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을 포함하게 된다. 이 동군연합은 10여년간 지속된다
30년전 마자르족들이 이탈리아의 도시 파비아를 불태웠다.
기나라가 멸망하였다
20년전 맹지상이 후촉을 건국하고 후촉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운주 전투에서 유금필의 맹활약으로 고려가 또다시 후백제에 승리하자, 웅진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로 넘어감으로써 서부 전선에서도 고려의 우위가 굳어지다. 이후 후백제는 기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2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 마그라와 부족 동맹군과 모로코의 이드리시 왕조를 멸망시키고 페스 일대 점령.
세비야에서 일어난 반 우마이야 봉기가 진압되었다
30년후 알 만수르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 군이 바르셀로나를 습격하고 레온 인근의 아스토르가를 공격하였다.
40년후 파티마 왕조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60년후 테살로니키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불가리아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강동6주 반환이 거절당하자 거란군이 압록강에 다리를 놓고 도하하여 고려 영토에 보주성 (현재의 의주)을 쌓았다. 이후 궁구문, 우정 등의 군사 시설과 매매원, 각장 등 시장을 설치하였다.
최질과 김훈 최초 무신의 난 일으킴.
594년슬라브족이 비잔티움 제국의 모이시아와 마케도니아 지방을 공격하여 몇몇 도시를 약탈, 파괴하였다.
594년(진평왕 16년) 11월에 혜성이 동쪽 하늘에 나타날 무렵 융천사 제작
60년전 아탈라리크, 동고트 왕국 제2대 국왕 사망
테오다하드가 동고트 왕국의 제3대 국왕이 되다.
반달 왕국 멸망
50년전
베트남에서 이남제에 의해서 전 레 왕조가 세워졌다.
이탈리아 심한 기근
비잔티움 제국의 베살리우스 장군이 오트란토를 공격하던 토틸라 왕의 동고트 왕국군을 격퇴하였다.
40년전 백제 위덕왕즉위
30년전 사다함죽고 김유신부친 탄생
20년전 티베리우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김유신 모친탄생
10년전 힐페리히 1세 사망
北周 武帝 建德 3년(574) 法亂
초기에 불법을 신봉, 환속한 衛元嵩이 사찰과 승려를 감하라는 상소를 올리자 유가정책을 추진하면서 법난을 일으킴
30년후 바드르 전투에서 무함마드의 메디나 무슬림군이 메카 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서고트 왕국, 이베리아 동남 해안의 비잔틴 세력 일소하고 이베리아 반도 통일
측천무후 탄생
40년후 피라즈 전투에서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이끄는 이슬람군이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사망; 아부 바크르 : 1대 정통 칼리프
사망;힐리가한 : 동돌궐의 마지막 가한
돌궐이 지자 티벳 토번이 전년에 개국한다
안사의 난이후 장안을 정복하기도 한다.
50년후 - 이슬람의 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 이븐 알카타브가 페르시아계 노예인 피루즈 나하반디에게 암살당했다.
234년 백제(百濟) 사반왕(沙伴王) 원년 / 고이왕(古爾王) 원년,고구려 동천왕 234년에 위(魏)와 화친한 이래
촉나라 승상 제갈량사망
촉나라 승상 제갈량의 부인 황부인도 사망
백제(百濟) 6대 국왕 구수왕 (재위 : 214년 - 234년)사망.
사반왕이 1년도 못채우고 고이왕이 즉위한다.
선비족 가비능 사망.
후한 제14대 황제 헌제 유협도 죽는다.
60년전 후한말기,기후가 한랭해지면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
음력 1월, 신라에 흙비가 내렸다.
음력 2월, 신라에 가뭄이 들어, 우물과 샘이 말랐다
박씨왕조 저물기시작.아달라 10년간 기록없다가 사망.
40년전 조조가 서주를 다시 공격하여 서주의 여러 마을들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조조가 서주를 정벌하고 있던 도중 장막, 진궁 등이 조조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들은 여포를 끌여들여 조조의 근거지를 공격하도록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여포를 치기 위해 군사를 돌렸다
고구려의 국상 을파소가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제2차 이소스 전투 : 이소스 평원에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이끄는 군대가 동방의 대립황제 페스케니우스 니게르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전 조조가 업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20년전 구수왕이 백제 6대 국왕이 되었다.
조조가 헌제황후 복씨와 그 일가를 모두 처형하였다
30년후 강유와 종회가 촉한을 부흥시키고자 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손호가 오나라 4대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로마 제국이 갈리아 제국, 팔미라 제국을 멸망시키고 제국을 다시 통합했다
60년후 왜군이 신라의 장봉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다사군에서 가화를 바쳤다.
다사군은 지금의 하동
중국 삼국시대 격검의 달인이자 명군 서서
한무제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두어 유학에 중점을 두고, BC 127년부터 제후왕국을 왕의 여러 아들에게 분봉(分封)하여 중앙집권화하였다.
BC 127년 흉노의 반격 한군 - 요서태수. 병력 규모 알 수 없음. 한안국의 천여명 군사. 연나라 지역 군사. 병력 규모 알 수 없음흉노 - 2만여 부대 요서태수 사망,
BC 127년 한무제(漢武帝) 원삭(元朔) 2년 창해군(滄海郡)을 설치
60년전 bc187년 여씨천하
60년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50척의 군선을 이끌고 코라케시온 해전에서 지중해의 해적을 일망타진하였다. 킬리키아 지방이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BC 487년에 병사를 이끌고 제(齊)나라 군대의 침입을 막았다. 또 계강자(季康子)를 설득하여 망명 중인 공자를 노나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아테네의 고희극(古喜劇)은 BC 487년부터 주신(酒神)의 제사에 공식으로 상연되었다. 동물로 분장한 합창대나 제사의 비속한 소란 속에도 당연히 위정자 ·권력자에 대한 민중의 해학 ·풍자가 들어 있었다. BC487년부터 민회는 해마다 한 번씩 도편추방제 실시 여부를 거수 투표로 결정했다. 만약 투표에서 다수가 찬성하면 2개월 후 2차 투표가 실시되었다.이때 시민들은 도자기 조각에 추방해야 할 인물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BC 1207년 4월부터 AD 2163년 10월의 모든 월식(5200개)
신왕조 및 후기 왕조는 BC 1567년부터 BC 332년까지
하원갑자
1854년 일본은 페리제독을 만나 본격적인 개항을 한다.곧이어 다른 서구열강과도 개항하게 된다.
10월 5일 - 크림 전쟁: 인케만 전투가 벌어지다.
러시아 선박, 함경도 덕원 · 영흥해안에 침입, 조선인에 대한 방화·강간·약탈·살인을 저지름.
60년전 테르미도르 반동: 공포정치를 일삼던 로베스피에르가 국민공회에 의하여 체포. 다음날 곧바로 처형된다.
청나라의 주문모 신부가 한국에 입국
40년전 루이 16세의 동생이 왕위에 추대되면서 부르봉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다.
-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나다
미영전쟁: 영국군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함락하다.
유럽의 신질서를 세우기 위한 빈 회의가 개최되었다.
20년전 영국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시초인 구빈법(Poor Law)이 발효되다.
-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화재로 피해를 입다.
헌종이 조선의 24대 국왕으로 즉위하다
20년후 고종이 흥선 대원군의 섭정에서 벗어나 친정 선포.
30년후 베트남을 두고 청나라와 프랑스 제3공화국 사이에푸저우 전투를 시작으로 청불전쟁이 발발했다.갑신정변
40년후 고부 군수 조병갑의 악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봉기는 갑오농민전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이에 청나라와 일본이 개입하면서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청나라는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그나마 명목상으로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 중심 국가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일본 제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여 주변국에 대한 공격적인 침략 정책에 열을 올리게 된다
60년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비극적인 해이다. 이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좋아질거라던 벨 에포크 시대가 막을 내린다. 조선총독부 통치 하의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제가 부군면 통폐합을 실시하여 여러 군과 면이 통폐합되어 사라졌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행정구역 명칭과 영역의 기반이 되었다
1494년 성종죽고 연산군즉위
1494년부터 65년간 이탈리아 전쟁은 이탈리아 전쟁의 첫 국면이다. 프랑스 왕국의 샤를 8세가 초기에 밀라노 공국의 지원을 받아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이끄는 이탈리아 동맹을 비롯하여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 잉글랜드 왕국과 맞서 싸운 것이 원인이었다. 용병들이 활발해짐.
이탈리아도시들이 황폐해짐에 따라 르네상스가 서유럽으로 이동
6월 4일 -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간에 토르데실라스 조약 체결
11월 9일 - 메디치 가문이 플로렌스의 지배자가 되다.
60년전 -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 등이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하였다.
체코 내전 - 리판 전투에서 온건파인 양형영성체파가 강경파인 타보르파의 군대를 대파하고 그 사령관 프로코프 벨리키를 전사시켰다
40년전 로디 조약이 체결되어 피렌체, 나폴리, 밀라노 간의 분쟁이 종식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가 편찬되었다.
30년전 정통제 : 명 제 6대 황제사망
- 코시모 데 메디치 : 피렌체의 군주 사망
20년전 부르고뉴 공작과 프랑스 왕 사이에서 부르고뉴 전쟁이 발발하였다.
서거정이 시화집 동인시화를 간행하였다.
20년후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 사이에서 찰디란 전투가 발발하였다.
- 오르샤 전투가 발발하였다
30년후 독일 농민전쟁이 발발하였다.
40년후 로마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가 설립되었다.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퀘벡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60년후 상파울루가 건설되었다.주세붕사망
1134년 묘청이 인종의 신임을 믿고 오만방자하게 굴자 인종은 점차 묘청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1134년 설립된 살라망카 대학은 스페인 최초의 대학이며 서구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대학
의종은 1134년(인종12) 태자로 책봉되었고 46년 즉위. 성격이 방종했으나 문학을 좋아하여 문신들과 자주 연회를 열었으며 무신들은 천대했다
소흥 4년, 오개 吳 坎 가 선인관 仙人關에서 금나라 군대를 대패시키고, 악비는 양한 襄 漢의 6개 군을 수복했다. 이로써 ‘악가군 岳 家 軍 ’ 이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1134년
60년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미카일 7세가 정교와 가톨릭 간의 통합을 약속하며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였다
요나라 황제가 모든 거란인이 가문 명을 이름에 덧붙이자는 제안을 각하하였다.
이의방은 1174년 9월에는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보낸 원수 윤인첨이 패하자 서경 사람인 상서 윤인미, 대장군 김덕신, 장군 김덕재 등 여러 사람을 죽였다.
이후 최숙을 먼저 파견하고 직접 출진하였지만 추위로 인해 패배하면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귀환하였으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1174년 12월에 선의문 밖에서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의 부하로써 그의 사주를 받은 승려 종참에게 암살된다.
40년전 송철종이 신법을 전면 부활시켰다.
30년전 톡테킨이 다마스쿠스의 에미르가 되어 부리 왕조가 세워졌다. (셀주크 제국의 봉신)
룸 셀주크의 킬리지 아르슬란이 다니슈멘드 왕조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였다
20년전 여진족 연맹장 완안아구타가 거란에 선전포고 하였다.
출하점 전투에서 아골타의 여진 군대가 요나라의 거란 군대를 대파하고 영강주(송원)을 점령하였다.
20년후 장기 왕조 제 2대 술탄 누르 앗 딘이 다마스쿠스를 장악하였다.
- 스티븐 1세의 사망으로 잉글랜드 왕위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앙주 백작 헨리에게 돌아갔다.
30년후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가 성직자를 교회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도 재판할 수 있도록 한 클라렌든 칙령을 통과시켰다.
40년후 고려 조위총이 무신정권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튤레스 전투에서 아일랜드 인들이 앵글로 - 노르만 군대를 패배시켰다.
마지막 왕이 자살하며 톨텍이 멸망하였다.
60년후 독일의 호엔슈타우펜 왕조가 시칠리아 왕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리처드 1세가 잉글랜드에 유대인 조례를 내려 그들의 금융 활동을 감시, 철저히 징세하도록 하였다.
중국의 황하가 말라버린 회하와 합쳐져 남쪽으로 수로를 변경하였다.
셀주크투르크 멸망.
부사 미야끼’는 1,200년 전의 나무 두 그루의 나이테를 연구하면서, 서기 774년과... 서기 774년에 일어난 폭발은, 그보다 훨씬 큰 규모였음이 분명한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774년 일몰 후 하늘에 붉은 십자가가 나타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탄소14 농도 급상승을 일으킨 게 어떤 것인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751년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해 774년 완성된 석굴암은 당대 불교를 넘어 신라인의 미적 감각, 조각, 건축과 수리, 토목, 기하학 등이 절묘하게 융합됐다
1006년.1057년에도 초신성폭발
롱고바르드왕국 샤를마뉴에 의해 멸망
60년전 카알마르텔 궁재직 승계.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에브로 강까지 도달하였다. 아브드 알 아지즈는 에보라, 산타렘, 코임브라를 함락하며 포르투갈 중심부 (타호 강 유역) 를 점령하였다
40년전 당이 토번전이 정리되자 거란과 발해를 압박한다.
. 734년에 일어난 왕성국 사건으로, 일본은 신라에 대하여 외교의 관례를 문제 삼으면서 양국의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그동안 써오던 신라라는 국호 대신 왕성국(王城國)이라는 국호를 국서에 쓰자 일본 조정이 신라 사신을 곧바로 돌려보낸 것이다.
30년전 네 칼리파의 해
위구르족이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제국을 건국하였다.
20년전 알만수르가 아바스 왕조 제 2대 칼리프가 되었다.
당나라의 승려 감진이 일본에 설탕을 소개하였다.
피핀 3세의 프랑크 왕국군이 롬바르디아 왕국군을 격퇴하였다.
20년후 교토가 일본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나라 시대가 끝나고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었다.
발해가 상경용천부로 다시 수도를 옮겼다.
카롤루스 대제가 독일 북서부의 아헨에 궁정과 왕실 교회를 짓고, 이곳을 프랑크 왕국의 사실상의 수도로 정했다.
바이킹이 잉글랜드 동북부 노섬브리아 왕국의 재로를 습격하였다.
루토스 전투에서 아스투리아스 군대가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패배시켜 반격에 성공하였다
30년후 카롤루스 대제가 작센을 완전히 복속시켰다.
크라소스에서 비잔티움 제국이 아바스 왕조군의 급습으로 대패하였다
40년후 프랑크 군대, 안도라 일대 점령, 피레네 산맥 지역 평정. 마르크 (변경백) 설치
카롤루스 대제가 사망
불가르족의 칸인 크룸이 비잔티움 제국 원정을 위한 군대를 모았으나 콘스탄티노플으로 진격하기 이전에 숨을 거두었고 그의 아들인 오무르타크가 불가르족의 칸 자리를 계승한다.
60년후 신흥사가 창건되었다
흥덕왕 골품제 세세하게 적용
베르덩조약으로 프랑크분리
414년 장수왕이 광개토태왕릉비를 건설함.
60년전 훈족과 알란족의 전쟁이 종료되었다.
동진의 환온이 은호를 탄핵시키고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군량 부족으로 퇴각했다
40년전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었다
광개토대왕: 고구려 제 19대 왕탄생
30년전 고국양왕이 고구려 제18대 국왕이 되었다.
침류왕이 백제 제15대 국왕이 되었다.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였다.
20년전 후연의 모용수가 서연을 멸망시켰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수곡성에서 백제의 침략군을 격퇴하였다.
훈족이 다뉴브 강을 넘어 고트족 마을들을 약탈, 파괴하였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
20년후 비잔티움 제국이 훈족에게 공물을 바쳤다
- 혁련창 : 오호십육국시대 하나라 제 2대 황제사망
30년후 444년에는 서라벌까지 쳐들어와 10일간 포위했다가 식량이 떨어지자 퇴각하는데,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눌지 마립간은 군사를 이끌고 왜군의 뒤를 무리하게 쫓았다가 대패한다. 절반의 군사를 잃고 산으로 도망갔으나 왜군들에게 포위당하는데, 다행히도 짙은 안개가 끼어 포위망을 탈출하고 왜군들은 물러간다
40년후 454년 7월 장수왕이 신라의 북쪽 변방을 공격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60년후 율리우스 네포스가 포르투스에 도착하여 군대를 이끌고 라벤나에 입성하여 서로마 제국의 황제인 글리케리우스를 퇴위, 유배시키고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
54년 10월 13일 - 클라우디우스가 아내에 의해 독살되고 17살의 네로가 로마 황제가 되다.
60년전 애제가 전한 제 13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트라야누스 개선문이 완공되었다
bc307년 아가토클레스는 결국 BC307년에 패했고 이은 평화조약에서 양쪽에 어느 점령지도 없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돼 그리스인과 카르타고인의 힘의 균형은 다시 회복되었다. BC307년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도서관을 짓습니다
데이나르코스마케도니아의 아테네 지배 기간에는 많은 저명한 웅변가가 추방되거나 처형되어 크게 활약할 수 있었으나, BC 307년 민주정 회복 뒤 에우보이아섬으로 갔다
디미트리오스 1세 이집트 사트라프(총독)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와, 또 아라비아의 나바타이아족과 싸워 패했으나 BC 307년에는 아테네를 마케도니아인(人) 카산드로스에게서 해방시켰으며
BC 667년 이집트 전역은 아시리아에 정복당한다. BC 664년에 프사메티코스 1세가 제26왕조를 열고 앗시리아 세력을 격퇴하면서 통일왕조를 다시 실현했다.
(BC 667년) 협야후 배반명을 보내어 바다의 도적을 토벌케 하였다. 12월엔 삼도가 모두 평정되었다
제환공:BC667년에 패자에 오름
BC 667년에 아시리아군의 침입을 받아 남방 메로웨로 도읍을 옮기고 메로웨왕조를 열었다. 이 왕조는 인도양에 이르는 교역 루트와 제철기술로 번성했으며, 독자적인 메고웨문자를 발명했다
이스탄불은 BC667년경부터 비잔티움으로 불리던 페르시아 제국의 상업ㆍ전략적 요 충지였고 타하르카는 멤피스로 돌아왔지만 BC 667년에 에사르하돈의 후계자인 아슈르바니팔 은 타하르카를 쿠시인이 확고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테베로 쫓아냈다.
BC. 1027년, 주(紂) 왕 시대에 주(周) 나라의 무(武) 왕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은허는 수도의 기능을 담당했다.
BC 2467년에 관측한 오성결집 기록이 있다
전욱고양(魚족)은 신농의 손자이자 황제의 외손자로 소호김천에게 BC2467년 제위를 물려받아 47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솁세스카레 (기원전 2467년 ~2460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