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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와 좌익들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스페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남미의 독립투쟁을 벌인 인민 봉기의 지도자였다. 차베스는 그의 이름을 따 자신의 정치를 "볼리바르 혁명운동"이라고 부른다.-- 역주]
<차례>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 차베스의 부르주아 인민주의 정당
재선 직후인 2007년 1월,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지금 우리는 베네수엘라사회주의공화국을 향해 가고 있다(가디언[런던], 2007년 1월 10일).”라고 선언했다. 이어 법령 포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관련법을 국회가 통과시켰다. 그런데 2007년 12월 국민투표에서, 소위 ‘사회주의’적 헌법개정안이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면서 그는 주춤해야 했다. 그리고는 전진 속도를 늦추겠다고 약속했다. 그 ‘볼리바르 혁명’은 안으로는 수백만의 노동자와 빈민을 동원해내고, 밖으로는 ‘맑스주의’를 자처하는 조직들을 들뜨게 했지만, 실상 늘 자본주의 자산을 보호하는 편에 그 ‘혁명’은 서 왔다.
1998년 12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우고 차베스는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위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국가기구를 이끌고 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대중적 저항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안정은 그동안 끊임없이 위협받아 왔다. 그런데 새로 등장한 차베스는,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발언들로 인해, 기존 부르주아 지배집단과 크게 달라 보인다. 이러한 점은 차베스로 하여금 그 대중적 저항을 체제 내적 투쟁으로 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차베스는 신식민지에 처음으로 등장한 좌파 ‘철권 통치자’가 아니다. 그가 암살당하던 해인 1940년의 8월,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는 그 같은 현상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다.
“후진국 즉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의 정부들은 대체로 보나파르트 또는 반(半)보나파르트적 성격을 띤다. 이들 중 일부는 민주주의를 실시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구한다. 그리고 일부는 군사-경찰 독재체제와 유사한 정부를 수립한다. 또한 이것은 노동조합의 운명도 결정한다. 노동조합은 국가의 특별한 후원을 받거나 아니면 잔인한 탄압을 받는다. 노동조합을 후원할 경우, 국가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노동계급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제국주의의 횡포에 저항할 지지기반을 얻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노동관료집단의 통제에 놓아 노동자들을 체제 전복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다.”--“제국주의 쇠퇴기의 노동조합”, 1940
패배로 끝난 최근의 헌법개정안을, 차베스는 “사회주의로 곧장 나아가는 (<이코노미스트>, 2007년 8월 16일)” 길이라고 선전했었다. 부르주아 우파 반대자들과 그들의 제국주의 후원자들은 그것을 “쿠바식 공산주의”라고 비난했고, 대통령 임기 철폐를 통해 “종신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개정안엔 지지할 만한 조항들도 있다. 즉, 노동시간 단축, 연금 수령자 확대, 성적 취향과 건강상 이유에 근거한 차별 철폐 같은 조항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헌법개정안엔 지금 심각하게 제한당하고 있는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조항이 빠져 있고, 비민주적인 ‘개혁’ 조치들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선포하는 ‘국가 비상사태’의 현재 180일로 되어 있는 제한을 없앤 것이나, 국민투표 발의를 유권자 20%의 서명에서 30%로 올린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다른 조항들은 자본주의적 소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체적으로 우리는 헌법수정안을 지지할 수 없다.
헌법개정안 국민투표에서 찬성 입장은 차베스 보나파르트 정권에 대한 승인을 의미한다. 한편 노동자와 인민을 억압해 온 차베스 적대세력들은 반대 입장을 강력하게 선동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명가들이 취해야할 선택은,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은 적대세력들에 대한 적의를 표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볼리바르 정권에 대해 정치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투표지의 훼손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전에 차베스를 지지했던 수백만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이러한 결론을 내렸고 투표를 거부했다. 물론 일부는 2002년 4월의 반동적인 쿠데타에 맞서 차베스를 복귀시킨 주역이었던 라울 이사야스의 탈당으로 인해 열의가 식었기 때문에 기권했을 것이다. 또 당연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우익들에 의해 은밀히 진행된 방해 공작에 영향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반(反)민주적인 ‘개혁’과 거대 자본가들의 특권을 방어하는 차베스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기권한 것이다.
<국제맑스주의그룹(IMT)>과 그 베네수엘라 지부인 <혁명적맑스주의자들(CMR)>의 지도자, 알란 우즈는 “헌법개정안에 대한 강력한 찬성 투표를 통해 혁명을 완성하자 (Marxist.com, 2007년 11월 20일)”고 주장했다. 우즈는 개정안이 적대 세력이 통제하는 국가 기관들을 우회해서 정치적 사법 기관을 대통령이 만들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차베스는 결정권한이 한정된 다양한 조직을 제안했었다. 그 핵심은 도시의 200~400 가구로 구성되는 공동체평의회의 확장이다. 2007년 1월, 차베스는 해마다 15억 달러를 지원받던 기존 수천 개의 공동체평의회가 50억 달러를 지원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평민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그 평의회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조직들을 포괄하고 있다.
“<볼리바르주의 써클>, <지역공공계획위원회>, <선거전략기구>, <도시토지위원회> 등은 볼리바르 혁명이 발전되던 2000년대 초 중반에 대중 동원과 참여를 위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 조직들이었다. 그러나 그 조직들은 현재 베네수엘라의 지배적 인민권력기구가 되어가는 공동체평의회로 흡수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10월 10일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진정한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체로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차베스에 대한 '맑스주의' 찬양자들은 공동체평의회가 새로운 국가기구의 핵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에 환호했다. 한 예로, <국제사회주의그룹(IST)>의 뉴질랜드 지부는 "이 평의회들은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와는 다른 것이다("베네수엘라 혁명의 심화와 국제사회주의자들의 협력", 2007년 5월 1일)"라고 인정하면서도, "이중권력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노동자권력(Workers Power>은 기관지 2007년 2월 호에서 그 공동체평의회가 “소비에트 유형 조직의 계급적 독립성을 결여하고 있고, 국가 권력의 바탕이라기보다는 그에 참여하는 일부이거나 그것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후, 기존의 입장을 갑자기 뒤집었다.
“부분적으로 무장한 민병대, 새로운 공동체평의회, 노동자 통제 하에 있는 소수 공장들, 협동기업들 등, 이 모든 것들은 그곳에 노동자의 새로운 조직들과 자본주의 국가기구들 사이에 이중권력의 중요한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혁명기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가기구 전복을 의미하는 혁명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노동자권력>, 2007년 9월
<노동자권력>의 '기존' 입장은 꽤 그럴듯한 진단이었다. ‘이중권력’ 상황이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전조라는 진단과 달리, 공동체평의회는, 인민 대중들을 대통령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와 결합시켜 볼리바르주의 보나파르트 정권을 강화하는 것이 주목적인, 계급협조적인 기구이다.
차베스의 좌익 지지자들은 협동적인 소규모 사업들의 확대와 국영기업들을 ‘사회주의’적 소유의 등장으로 해석하려 한다. 차베스 집권 초기, 생활 협동조합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공식 경제 바깥으로 밀려난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수만 개의 협동조합이 존재한다. 정부는 융자의 형태로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다른 협동조합이나 정부 지원을 받는 볼리바르 '사회 임무들’과 결합할 것을 장려한다. 그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그간의 경험은 인민의 삶을 법령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2006년에 14만 개의 협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올해 인민경제부 장관은 7만 4천 개가 있다고 발표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최근 조사에 따르면 단 4만 8천 개만 남아있다. 많은 협동조합들은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았고, 어떤 경우에는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창업자본과 서류상 등재된 고용자에게 줘야 할 임금을 그냥 챙겨버린 경우도 있었다. 친차베스 의원 중 한 명은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협동조합 계획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사실, 그 동안 지출된 자금이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보여줄 만한 것이 현재 없다.’고 말한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8월 28일
이윤 창출에 성공한 소규모의 영세자영업들이 그러한 것처럼, 생존한 몇몇 협동조합들도 있지만 많은 협동조합들은 실패했다. 간신히 이익을 남기는 협동조합의 소유자인 노동자들은 종종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벌이를 한다. 보다 큰 기업들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력을 확대하기보다는 외주를 주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정부는 거의 2백만 헥타르에 달하는 국가소유지를 농업협동조합에 대체로 속해 있는 15만의 빈농들에게 분양했다. 미개발 개인 소유지들도 30만 헥타르 이상이 분양되었다. 하지만 생산에 이용되는 대규모 소유자들의 땅은 아직 그대로 온존되었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3월 27일).
도시 협동조합의 노동자들은 소유주, 정부 관료와 더불어 공동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몇몇 좌익들은 이것을 ‘노동자에 의한 산업 통제’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정한 노동자통제는 작업현장에서의 이중권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계급협조의 제도화가 아니다. 노동자통제는 준혁명적 상황에서 발전되고, 트로츠키의 말에 의하면 ‘계획경제의 선행학습’이 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각광받는 공동 경영되고 있는 ‘국영’ 기업은 인베팔(Invepal)과 인베발(Inveval)이다. 그 이전 소유자들은 2002년 12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진행되었던 반(反)차베스 공장폐쇄에 참여했었다. 수백 개의 기업들이 공장 폐쇄를 단행했고, 그로 인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앉았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기업들만 국가로 넘어갔다. 인베팔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고, 인베발은 파산을 선언했다. 2005년, 노동자들의 국유화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였다.
국영석유회사인 베네수엘라석유공사(Petróleos de Venezuela Sociedad Anónima: PDVSA)와의 계약을 통해 밸브를 생산하는 인베발의 경우 노동조합은 49%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노동자 총회에서 선출된 공장위원회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 10% 정도만 가동되고 있는 그 회사의 공동경영은 시장 상황의 영향을 받고 있다. 때론 베네수엘라석유공사 관리들의 약속 위반에 의해 공동경영이 침해되기도 한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7월 27일).
2006년 2월, 인베발의 노동자들은 10여개쯤 되는 다른 기업들의 대표자들과 같이 <공동경영과 점거공장들의 혁명적 노동자전선(the Revolutionary Workers Front of Co-managed and Occupied Factories)>을 발족시켰다. 이 조직은 <전국노총(National Workers Union: UNT)>의 지도부로부터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더군다나 정부에 대한 지도부의 정치적 지지로 인해 발목이 잡혔다. <국제맑스주의그룹 (IMT)>은 <혁명적맑스주의자들(CMR)> 지지자인 조지 파레데스가 진행한 2006년 10월의 <공동경영과 점거공장들의 혁명적 노동자전선> 회의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모임은 오후 6시에 인베발의 노동자이며 위원장인 조지 파레데스에 의해 공식적으로 열렸다. 노동부 대표자들, 경공업부의 훌리오 바르바, 그리고 전(前) 환경부 장관이자 점거 공장들의 투쟁에 관심을 표명한 아나 엘리사 오소리아 등이 모임에 초대 받아 참석했다.”—Marxist.com, 2006년 10월 17일
그 모임은 참석한 모든 노동자와 초대된 손님들이 베네수엘라 국가를 부르며 마무리되었다.
인베팔은 카라보보 주(州)에 있는 종이 공장이다. 정부는 고용인 조합에 49%의 지분을 넘겨주었다. 그 회사가 마라카이 공장에 외주를 주자, 그 공동경영 실험의 추한 모습이 드러났다.
“정부가 그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라고 그에게 요구하자, 새로 뽑힌 위원장은 외부 하청을 도입했고, ‘지분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으로 노동자들을 하청으로 고용했다. 그로 인해 대규모의 저항이 있었고, 그 저항은 역시 대규모의 해고를 낳았다. 120명이 2005년 11월에 해고되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11개월 동안 투쟁하고 있다.”—Venezuelanalysis.com, 2006년 10월 25일
2005년 2월, 회사의 사장은 이미 차베스에 의해 지명되어 있었지만, 국가소유 알루미늄 회사인 알카사(Alcasa) 경영자들을 선출하기 위한 노동자 총회가 소집되었다. 노동자들은 볼리바르 시혜자들에 심각하게 실망하고 있다. 알카사의 소위 ‘혁명적’ 대변인 알사이드 리베로는 최근에 “돈 벌기 위해서만 일하는 문화가 노동자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다. (Venezuelanalysis.com, 2007년 10월 30일).”고 불평했다.
국가 전기 회사인 카다페(Cadafe)의 ‘공동경영’은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관찰자에 따르면,
“전기산업 같은 부문에서는 공동경영 투쟁의 쓰라린 경험이 있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공동경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것을 제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카다페 경영진에 대항하여 엄청난 싸움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카다페 경영진은 공동경영 도입 움직임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파괴해왔다. 만약에 전기 산업 노동자들에게 누군가 가서 공동경영에 관해 언급하면, 그들은 아마 몸서리를 칠 것이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자 참여를 제기하고 있지만 더 이상 공동경영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후에드리코 후엔테스는 전한다.”—Green Left Weekly, 2007년 8월 2일
그런데 이러한 제한적인 공동경영 실험마저 예외적인 것이다. 차베스는 1998년 사유화 당시 수천 명을 해고한, 남미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인 시도르(Sidor)를 다시 인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7년 5월, 노동자들이 다시 국유화할 것을 요구하며 회사 정문을 봉쇄했을 때, 시도르 경영진은 국내 시장을 위한 생산을 더 늘리겠다고 제안했다. 차베스는 이 제안을 수용했고 아르헨티나기술그룹(Argentine Techint Group)과 그 동업자들이 시도르 지분의 60%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08년 초, 시도르의 만 4천 명의 정규직과 계약직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연금보조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그 회사가 이전에 협조해 준 사실을 아는 노동부는, 이 파업에 개입하여 노동자들에게 요구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요구했다 (Venezuelanalysis.com, 2월 2일).
2006년 초 도자기 제조업체인 사니타리오스 마라카이(Sanitarios Maracay) 노동자들이 6주 동안 점거 농성하고, 그 다음 해 소유주가 회사를 닫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차베스는 그 회사의 국유화를 거부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공장위원회를 선출하고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2007년 4월, <공동경영과 점거공장들의 혁명적 노동자전선> 집회에 참석하려던 사니타리오스 노동자들은 경찰들과 군인들에 공격당했다. 21명이 연행되었고, 14명은 산탄총에 맞아 부상당했다. 1개월 뒤 3천명의 아라구아 주(州) 전국노총 노동자들은 이에 항의하며 1일 파업을 전개했다.
2007년 8월, 사니타리오스의 전국노총 지도자였던 움베르토 로페즈는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과 노동자감독관들을 이끌고 공장위원회를 해산했다. 노동부의 후원 아래 노동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공장을 돌려주겠다는 협약을 소유주와 맺었다. 3명의 노동부 대표와 각각 5명씩의 노동자 회사 대표로 구성된 13인 위원회의 공동경영체제가 도입되었다 (Venezuelanalysis.com, 2007년 8월 18일).
의미심장하게도, 정부는 ‘공동경영’을, 2007년의 카라카스 전기회사(Electricidad de Caracas)와 더불어 두 개의 중요한 획득물 중 하나인, CANTV사(社)엔 도입하지 않았다. CANTV사(社)는 베네수엘라의 가장 큰 통신회사이다.
베네수엘라석유공사는 1976년에 국유화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짭짤한 탐사와 생산 권리는 석유 다국적 기업들에 넘겨졌다. 협약에 따르면, 외국 석유 회사들은 원유를 사거나 팔지 않고 다만 (석유에 대한 명목상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베네수엘라석유공사에 ‘계약자’로서 ‘서비스’를 제공했다. 에너지장관인 라파엘 라미레즈에 따르면, ‘계약자들’에게 지급되는 ‘대금’은 국제석유가격과 연동되어 있고 그 회사들은 석유이익금에 붙는 50%의 세금을 회피할 수 있었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석유공사가 대주주가 되는 ‘혼합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기존 방식을 종결시켰다. 로열티 비율이 올랐고, 많은 기존 ‘계약자’들은 밀린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약간의 불평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다국적 회사들은 새로운 계약에 서명했다.
기존 협약에서 ‘혼합기업’으로의 전환은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석유산업 ‘재국유화’의 첫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2007년 노동절에 차베스는 오리니코 지방에 있는 수천 억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원유의 ‘재국유화’를 발표했다. 프랑스의 토탈(Total), 노르웨이의 스태토일(Statoil) 셰브런(Chevron)과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ritish Petroleum)은 오리니코 벨트의 자기 지분 일부를 베네수엘라석유공사에 팔겠다고 동의했다. 한편 미국의 (각각 7억 5천만 달라와 45억 달라의 투자지분을 가지고 있는)엑손모빌(ExxonMobil)과 코노코필립스(ConocoPhilips)는 지분 양도를 거부했다. 그들은 제국주의 세계은행의 전문기구인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제소했다. 지난 2월 엑손모빌은 영국과 네덜란드에 있는 베네수엘라석유공사 자산 120억 달러를 동결하라는 국제투자분쟁센터의 임시 명령서를 받았다(Venezuelanalysis.com, 2월 8일).
대부분의 다국적기업들이 ‘재국유화’를 따르기로 결정한 까닭은 여전히 막대한 이윤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르니코 벨트 중유 자원 개발에 외국 자본 참여를 다각화하기 위해, 정부는 브라질 중국 이란과 러시아의 투자를 확보했다. 차베스 정권은 국영석유회사가 다수 지분을 확보하고 세금과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한, 석유 산업의 외국 자본 참여를 선호해 왔다.
맑스주의자들은 모든 신식민지 국가들의 천연자원 지배권을 옹호한다. 하지만 외국자본에 넉넉하게 보상하는 차베스의 ‘재국유화’는 국제 자본주의에 거의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또한 뉴욕타임스가 2007년 4월 10일 보도하는 것처럼, 석유기업들의 국유화는 근본적으로 ‘반제국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세계 석유 매장지에 대한 통제권은 개인회사에서 베네수엘라석유공사 같은 국영회사로 꾸준히 이전되어 왔다. 라이스대학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견된 1조 1천 4백 8십억 배럴의 77%는 국영회사 소유이고, 20개의 석유생산회사의 상위 14개는 국가가 경영하고 있다.”
차베스 석유 정책의 ‘반제국주의’적 색조는, 현재 석유 수출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 때문에 칠해졌다. 석유공급이 불안정하고 축소되는 시대에 3천억 배럴로 추정되는 베네수엘라의 원유는 엄청난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가지고 있는 중유 매장량이 저평가되었다는 추정도 있다. 심층 취재 평론가인 그렉 팔라스트는 미국 에너지부 내부문서에는 베네수엘라가 1조 3천 6백억 배럴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ZNet.com, 2006년 5월 24일). 이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베네수엘라는 지구상 가장 중요한 석유매장지일 것이고, 그 전략적 중요성도 증가되는 것이다.
워싱턴은 국제석유수출기구(OPEC) 내에서 베네수엘라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차베스를 좋아하고 미제국주의의 적성국가 명단 상위에 올라있는 이란 대통령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는 석유가의 급등이 미국 달러의 약세 때문이라는 차베스의 비난에 동조했다(뉴욕타임스, 2007년 11월 19일). 2007년 9월, 차베스는 “투자계좌를 달라에서 유로나 아시아 통화로 바꾸라”고 국영석유회사에 지시했다(뉴욕타임스, 2007년 11월 30일). 이란은 국제석유수출기구가 달라가 아니라 유로로 석유가격을 산정하자는 캠페인을 벌여왔고, 이 움직임은 미국의 국제지위 하락을 심각하게 부채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차베스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3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첫째, 정부 자산을 채워주고 지정학적 중요성을 증가시킨 석유가격의 상승, 둘째, 미국과 긴밀히 연결된 국내 자본가들에 대한 정권의 상대적인 독립, 셋째, 이라크에 발목 잡혀 축소된 남미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 능력 감소.
2007년 5월, 베네수엘라는 세계은행과 국제금융기구(IMF)로부터 탈퇴할 것을 선언했다. 그 두 기구는 미제국주의 지배의 핵심 기구이다. 남미에 대한 IMF의 영향력은 최근 급격히 감소해 왔다.
“IMF가 이 지역에 빌려주고 있는 돈은 세계 전체의 1%가 채 안 되는 5억 달러 남짓으로 떨어졌다. 2005년에는 80%를 차지했었다.” “국제 대출자들의 대출 규모는 2004년의 810억 달러에서 110억 8천억 달러로 감소되었다. 지금은 터키 한 나라가 약 75%를 빌려 쓰고 있다.”—MiamiHerald.com, 2007년 3월 1일
2007년 8월, 차베스는 아르헨티나 채권 10억 달러어치를 구매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2001년의 부채 지불 불능 사태 이후 아르헨티나의 재정 다각화 요구에 응하여, 최근 구매 이전에도 차베스는 총 47억 달러에 달하는 채권을 구입했다. 그의 이러한 도움에 힘입어 ‘아르헨티나는 흡혈귀로부터 벗어나고 있고, IMF의 사슬을 끊어내고 있다.’고 차베스는 말했다.”—이코노미스트, 2007년 8월 9일
차베스는 지역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아울러 연구와 개발을 위해, 70억 달러를 투자하여 IMF를 대체할 남미은행(Banco del Sur)을 설립하는 데에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남미은행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와 베네수엘라 대표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서명 행사에 참석한 가운데, 2007년 12월에 공식 출범했다. 연합통신(AP)은, 세계은행 남미지역 경제전문가인 아우구스토 드 라 토레가 “이 새로운 기구를 경쟁자로 여기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2007년 12월 9일). 하지만 바로 그것이 차베스가 노리는 것이다.
남미은행과 베네수엘라의 아르헨티나 채권 구입은 제국주의적인 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에 맞서 남미의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인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 ALBA)을 보강하는 것이다. ALBA 체제를 통해 쿠바는 수만 명의 베네수엘라 사람들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고, 베네수엘라는 석유로 보답했다. 2006년 4월, 볼리비아 새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는 ALBA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베네수엘라가 총 20억 달러(볼리비아 GDP의 20%를 넘는 금액) 정도의 원조를 약속했다고 모랄레스 대통령은 집권 이후 말해왔다. 베네수엘라는 1억 달러의 볼리비아 정부 채권을 매입했고, 이 돈은 농업 자금이나 베네수엘라에 있는 5천 명의 유학생 지원에 쓰였다.
4월, 모랄레스 대통령은 차베스 그리고 카스트로 대통령 등과 함께 인민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는 매달 경유 20만 배럴과 20만 톤의 콩을 서로 교환하기로 되었다. 베네수엘라가 지원하는 것으로 보이는 쿠바 의사들과 교사들은 이미 볼리비아에서 건강과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쿠바 또한 의료 장비들을 지원하고 있다.
'오직 쿠바와 베네수엘라만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모랄레스는 최근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이 협박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것은 아마도 미국을 가리키는 듯한데,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하여 볼리비아를 지원을 해 오고 있다.”—이코노미스트, 2006년 7월 8일
2007년 1월 대통령 선서 직후, 산디니스타 지도자 다니엘 오르테가는 니카라과도 ALBA에 가입하려 한다고 발표했다. 몇 주 전에 베네수엘라는
“이미 3천만 달러를 넘는 니카라과 부채를 탕감하며, 20여 개의 발전소를 건립하여 전력 부족을 해결하고, 베네수엘라개발은행을 마나구아에 설립하여 소규모 기업들을 싼이자로 지원하겠다고 동의했다.”—뉴욕타임스, 2007년 2월 24일
2007년 4월 카라카스에서 열린 ALBA 정상회담에서, 이 지역의 의료, 교육 그리고 경제 발전을 위한 계획들이 마련되었다.
“차베스는 또한 아이티에 정유공장과 함께 석유화학 공장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그는 니카라과, 에콰도르, 볼리비아, 도미니카 그리고 쿠바에 정유공장을 건설할 것도 제안했다. 차베스는 그리고 미국에 있는 베네수엘라 소유의 정유공장 7개를 팔아 남미에 새로운 정유공장 협력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4월 30일
베네수엘라는 또한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러시아 외무장관인 세르게이 라로프는 국유기업 가즈프롬(Gazprom)이 베네수엘라석유공사와 천연가스와 석유 관련 합자회사 구성 가능성을 연구해 왔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 부통령인 알렉산더 주코프는 남미의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2006년, 베네수엘라, 시리아와 이란은 “15억 달러를 들여 시리아에 정유소를 건설한다. (뉴욕 타임스, 2006년 2월)”는 협약에 서명했다. 2007년 7월, 이란과 베네수엘라 정부는 7억 달러를 투입하여 베네수엘라에 있는 것과 동일한 석유화학공장을 테헤란 근교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베니라우토(Venirauto)라는 자동차 합자회사가 이미 사업을 시작했다. 2010년경엔 연간 2만 5천 대를 생산할 계획인 이 회사는, 2007년 7월 처음으로 300대의 자동차를 출고했다.
베네수엘라는 한편으로는 기형적노동자국가인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왔다. 2006년 8월, 베이징은 베네수엘라로부터 2012년까지 매일 백만 배럴의 석유를 수입한다는 계약에 서명했다. (미국 역시 베네수엘라로부터 매일 백만 배럴이 넘게 수입하고 있다.) 중국은 또한 유조선 제공과 새로운 시추선 건설을 돕겠다는 제의를 했다. 2007년 11월, 두 나라는 60억 달러의 협력개발기금 조성에 합의했다. 그 중 3분의 2는 중국개발은행이, 나머지는 베네수엘라가 출자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움직임은 남미에 대한 영향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는 미국 외교 부서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백악관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회원국이며 이 지역의 가장 긴밀한 동맹국인 칠레와 멕시코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승인하지 않은 것에 분노했었다. 사실, 남미와 카리브 해 34개 나라 가운데 7개 나라만 그 전쟁을 지지했었다. 그 중 여섯 나라(코스타리카, 도미니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는 그 당시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진행 중이었고, 콜롬비아는 미국으로부터 연간 6억 달러 상당의 군사 지원을 받고 있었다.”—Foreign Affairs, 2006년 1월/2월 호
남미는 미국에게 대단히 중요한 시장이다. 매년 미국은 천억 달러 이상을 멕시코에 수출하고 5백 억 달러는 다른 지역들에 수출한다. 미 제국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과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차베스 정권의 움직임은 워싱턴의 신경을 긁어왔다. 미국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그를 규정했다(Independent [London], 2006년 5월 16일). 2006년 3월의 미국 국가안전전략의 문서는 “오일 달러를 두둑히 가지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선동가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지역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The Progressive에서 인용, 2006년 9월 24일).
차베스는 이러한 위협에 대해 점진적인 군사력 증강으로 응답해 왔다. 2007년 1월, 미 국무성은 베네수엘라가 지난 2년 간 40억 달러 이상을 무기 구매에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뉴욕타임스, 2007년 2월 25일). 2006년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하고 나아가 스페인과 브라질에 있는 해외공장의 군사 항공기 구매까지 방해하자, 차베스는 러시아로 선회하여 “24대의 수호이-30 2인승 전투기와 34대의 헬리콥터, 10만 정의 칼리쉬니코프 소총”(가디언, 2007년 6월 15일)과 더불어 5대의 잠수함을 구입했다.
2002년 4월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볼리바르 지도자에 대해 쿠데타를 사주했던 조지 부시는, 이번에는 뻔뻔스럽게도 베네수엘라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뉴욕타임스, 2007년 2월 1일)고 말했다. 미국 민주재단, 국제공화당연구소와 민주주의연구소 등 소위 ‘미국식 민주주의’의 다양한 기구들은 베네수엘라의 친미주의자들에 대한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국제개발청(USAID)만 따지더라도, ‘민주주의를 신장시킨다.’는 명목으로 2600만 달러 이상을 2002년 이후 이 조직이 투여했다고 2006년 연합통신은 보도했다. "부시 대 차베스: 베네수엘라에 대한 워싱턴의 전쟁"의 저자인 에바 골링어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미국국제개발청(USAID)과 그 베네수엘라 사무소는 반혁명적 정부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 2007년 6월까지 미국국제개발청(USAID) 계약회사인 개발대안회사(Development Alternatives Inc)를 통해 360개의 사회조직, 정당, 정치 사업 등에 자금을 지원해 왔다. ‘베네수엘라: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이라는 프로그램 아래, 미국국제개발청(USAID)과 개발대안회사(Development Alternatives Inc)는 이들 360개 조직과 사업에 11,575,509 달러를 지원했다. 이 자금의 주된 임무는 (그들의 자료에 따르면) ‘정치적 대화, 공개적 논쟁, 시민의 참여 그리고 민주적 지도자 훈련’ 등이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9월 12일
많은 대자본가들이 차베스를 비난하지만, 또 다른 자본가들은 바로 이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래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고 있다. 카라카스 컨트리클럽 회장인 페르난도 조자야는 차베스의 볼리바르 정치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것을 매우 특별한 형태의 사회주의라고 부르기로 하자.”(가디언, 2006년 11월 13일)고 대답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선임연구원이었던 호세 구에라는 조금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차베스 통치 아래에서 자본주의는 단지 생존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번영을 누리고 있다.”(뉴욕타임스, 2006년 12월 3일). 미국 자본주의의 대변지도 비슷하게 묘사한다.
“국내와 외국 회사들 모두 유례없는 돈벌이를 하고 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무역이 이처럼 번영을 구가했던 적이 없다. 베네수엘라는 하루 백만 배럴의 석유를 포함하여 420억 이상을 작년에 미국에 수출했고, 90억 달러의 미국 제품을 수입했는데 이는 2005년에 비해 41% 늘어난 것이다.”—비지니스위크, 2007년 6월 25일
2000년에 1171억 달러였던 베네수엘라의 GDP는 2006년에 1819억 달러로 증가했다(뉴욕타임스, 2006년 12월 3일). 저금리와 높은 인플레이션은 대규모 대출과 금융 호황을 이끌고 있다.
“이곳 금융 분석회사인 소프트라인콘설팅에 따르면, 신용카드 대출 100% 증가와 자동차 신용 143% 증가에 힘입어 은행의 이윤은 작년에 33% 증가했다. GDP에서 은행과 보험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에 37%였다고 중앙은행은 말했다.
“2년 전 휴스턴의 스탠포드 파이낸셜 그룹이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고 10여 개의 지사를 설립할 정도로 시장은 그지없이 매력적이다. 지금 카라카스 중심가 엘로살에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있는데, 작년에 수입은 4배, 신용 대출은 3배 정도 증가되었다.”—뉴욕타임스, 2007년 6월 15일
정부와 관련되거나 공공 계약을 따낸 ‘볼리부르주아지’라고 불리는 사업가들은 차베스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극복’을 신경쓰지 않는다. 현 상황에 지극히 만족하는 것으로 보이는 베네수엘라 은행연합의 임원 프란시스코 아리스테구이에타는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 모두의 임무라고 차베스 대통령은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뉴욕타임스, 2007년 5월 7일). 차베스는 기회 있을 때마다 “특권층 즉, 베네수엘라 자본가들을 없앨 어떤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지난 8년 간 이러한 뜻을 충분히 설명했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6월 4일).”고 확신시켰다.
고용주 연합인 페데카마라스(Fedecámaras)는 차베스 정권이 제안한 헌법 개정에 반대했기 때문에 그 지부를 잃어버렸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11월 27일). 친(親)차베스 조직인 베네수엘라기업인연합(Empreven)의 알레얀드로 우즈카테구이는 “우리는 차베스 대통령이 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WashingtonPost.com, 2006년 12월 3일)고 말한다. 베네수엘라기업인연합(Empreven)은 2007년 5월 친(親)정부 기업인들의 연맹체로 발족한 베네수엘라사회주의기업인연맹(Conseven)의 일부이다. 그 회장인 호세 아우구스틴 (차베스가 선출되기 이전 정부 권력을 분점했던 <민주주의행동>의 지도자였던)은, 베네수엘라사회주의기업인연맹(Conseven)은 공동경영 기업들 그리고 볼리바르 협동조합들과 “협력을 추구할 것이다”라는 뜻을 밝혔다(El Universal [Caracas], 2007년 5월 6일).
2002년 쿠데타를 지지했고, 베네비젼텔레비전네트워크 소유자인 구스타포 시스네로스는, 2004년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 진행 중에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이 차베스와의 만남을 주선한 이후, 마음을 바꾸었다.
“시스네로스씨에 따르면, 그 만남에서 차베스는 그의 사회 정책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정책과 비교했다.…
“최근 그 만남에 대해 차베스 대통령은, 양조장에서부터 카라카스의 레오네스 야구팀까지 소유하고 있는 시스네로스씨가 사회주의적 변화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고 말했다.”—뉴욕타임스, 2007년 7월 5일
영국 기자 존 필거는 다음과 같이 내다봤다.
“워싱턴에서 이란콘트라반군이었고 부시 정권에서 다시 권력 내부로 들어온 어떤 관리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원을 통해 IMF 종속을 끝내는 등으로, 차베스가 남미에서 경제적 지렛대 역할을 하는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어떤 미국 은행가가, 소위 ‘금융가의 질시’는 그의 제한적 개량에 대한 적정한 비판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차베스)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를 이끌고 있다.”—가디언, 2007년 8월 17일
볼리바르 정부의 재분배 정책과 호황 경제는 베네수엘라 인민 대부분의 생활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업은 차베스 정권 이후 반으로 줄어 공식적으로 7% 정도이다. 대부분의 노동력은 (지하경제가 아닌) 공식부문에 고용되어 있다. 사회 개혁 정책은 눈에 띄게 확장되었다.
“사회 비용은 2007년 정부 재정의 41%였던 것에서 2008년에는 46%까지 증액될 것이다. 이것은, 2007년 수준에서 62%가 증가되어 25억 달러가 투여될 ‘사회 임무들’에 대한 지원 증가분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임무들’은 전국적인 의료 정책(미션 바리오 아덴트로)과 문맹퇴치와 교육 프로그램(미션 로빈손, 리바스, 체, 수크레 등)을 포함하고 있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10월 20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빈곤층은 1999년 42.8%에서 2006년 33.9%로, ‘극빈곤층’은 16.6%에서 10.6%로 줄었다(Instituto Nacional de Estadística website, 2006년 9월).
그러나 최근 임금 인상은 요즘 매년 20% 정도가 되는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몇 가지 필수 식품은 공급이 부족하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가격 상승을 기다리면서 사재기한 상품들의 가격을 동결시키고, 한편으로는 자본가들에게 ‘선한 시민’이 될 것을 호소하면서 생활비가 오르지 않도록 하고 있다. 많은 농민들은 옆나라인 콜롬비아에 농산물을 내다 팔기도 한다. 공급이 줄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후퇴하여 우유 값은 30%, 커피 값은 40% 올렸다. 2월에 차베스는 “쌀 생산자들의 의욕을 북돋기 위해” 주식인 쌀의 가격을 44%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Venezuelanalysis.com, 2월 11일). 이러한 것은, 상품 생산과 분배가 의식적으로 계획된 집산 경제와 최고의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 사이에, ‘제 3의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지지를 받고 있긴 하지만, 지난 헌법 개정 투표에서 3백만 명의 전통적 지지자들이 기권했다는 것은 차베스가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볼리바르 지도자들은 대중들을 신뢰하지 않고, 새로운 지도부가 노동계급 조직들 내에서 형성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2002년 쿠데타 때 우익을 지지했던 <베네수엘라노동자연합(CTV)>에서 차베스를 지지하며 2003년 갈라져 나온 <전국노총(UNT)>은, 다수파가 임명한 ‘조정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006년 5월 열린 두 번째 총회에서, <볼리바르사회주의노동자단(Bolivarian Socialist Workers Force: FSBT--차베스 열렬지지자들)>의 지도자들은, <전국노총(UNT)> 회원들이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는 C-CURA 그룹(<전국노총(UNT)>의 가장 큰 분파였음. 트로츠키주의자임을 내세우는 올란도 치리노와 스탈린 페레즈 보르게스가 이끌고, 최근에 <전국노총(UNT)>에서 떨어져 나왔다)의 제안을 가로막았다.
<볼리바르사회주의노동자단(FSBT)> 지지자들은, 선거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노총 내의 활동가들이 2006년 12월 차베스 대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도부 선거를 이후로 미루자고, 주장했다. 치리노는 이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작년에, 대선에 우선권을 주자는 주장이 있었다. 우리는 차베스 지지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지지는 정당하게 선출된 지도부에 의해 제기되어야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이루어지지 못했다.”—International Socialism , 2007년 5월 9일
선거에서 질지도 모른다는 것, 나아가 노동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전국노총(UNT)> 지도부가 차베스에 대한 잠재적 경쟁자가 될 가능성을, <볼리바르사회주의노동자단(FSBT)>은 두려워했던 것이다. 2007년 12월 28일, 치리노는 그가 베네수엘라석유공사의 직책에서 해고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 헌법 개정에 대한 치리노의 기권 선동과 차베스 정당에 대한 가입 거부 때문이 분명한 이 정치 탄압은 베네수엘라 노동운동 전체에 대한 반민주적 공격이다.
베네수엘라석유공사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4개의 노동자 연합들이 합쳐서 <베네수엘라석유노동자연맹(FUTPV)>을 결성했을 때, 지도부를 신임하기 위한 어떤 선거도 치러지지 않았다. 6만 석유노동자 중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고 <석유산업노조(Fedepetrol)>을 이끌고 있고 새 연맹의 가장 큰 분파라고 주장하는 C-CURA는, 베네수엘라석유공사와의 협상을 위해 지명된 <베네수엘라석유노동자연맹(FUTPV)>의 협상위원회의 승인을 거부했다
(Venezuelanalysis.com, 2007년 9월 29일). <석유산업노조(Fedepetrol)>는 베네수엘라석유공사 운영에 직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할 방법을 찾았다.
“7월 23일 월요일에 시작되는 이번 주, 가동되거나 관리되고 있는 전국의 모든 석유 관련 시설들 즉, 항구, 정유소와 관련 기관들의 정문에서 석유 노동자들이 항의 시위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석유노동자들은 2007년~2009년 포괄협약 협상을 지연하고 있는 (에너지장관이자 베네수엘라석유공사 대표인) 라파엘 라미레즈의 친척이자, 인사과장인 다리오 메르찬의 사임과 현재의 포괄협약에 대한 일상적 위반과 노동자들에 대한 지불 불이행에 대한 저항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8월 2일에는 <석유산업노조(Fedepetrol)>에 가입되어 있는 160개 노조의 지지를 받는 이 시위가 대통령궁 앞에서 열릴 계획이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7월 23일
<석유산업노조(Fedepetrol)>의 지도자 안조아테구이와 호세 보다스(C-CURA의 회원)는, <베네수엘라석유노동자연맹(FUTPV)>의 협상위원회의 회사측 인사들이 베네수엘라석유공사의 기만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반혁명분자들’이라고 부른다고 비난했다.
2007년 9월,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
“푸에르토 라 크루즈의 정유소에서 온 150명 정도의 노동자들은 호세산업단지에서 온 노동자들과 함께 우바네야에 있는 베네수엘라석유법인(CTP) 사무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베네수엘라석유노동자연맹(FUTPV)>의 협상위원회와 만나고 있는 라미레즈에게 그들의 요청서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시도는 경찰 기동타격대에 의해 차단당했다.
“3시간 동안의 그 충돌로 40명의 노동자가 체포되었고 한 명이 왼쪽어깨에 총상을 입은 것을 비롯하여 3명은 부상당했다. 버스 안에 최루탄이 던져져 승객들이 질식하는 등 고통을 겪기도 했다. 경찰의 습격 소식을 접한 여러 도시의 노동자들 4000여명은 즉각 작업을 중단했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9월 29일
베네수엘라석유공사와 국가 기관들이 경찰의 과잉 진압에 책임이 없다고 부인하지만, 이 사건은 사적 영역과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석유공사 내에서 노동과 자본의 이익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소위 ‘볼리바르’ 국가 기구들이 어떻게 자본가들을 위해 봉사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최근 <공공부문노조(Fentrasep)>와 관련된 다른 사례를 보도했다.
“백오십만 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있는 <공공부문노조(Fentrasep)>의 선출된 대표자들은, 2007년 8월 중순 포괄협약 협상을 위해 노동부장관을 만나러 갔다. 라몬 리베로 장관은 과거 트로츠키주의자였으며, 현재 <볼리바르주의노조연맹>의 회원이다. 그는 협상단과 만나기를 거부하고 그들을 장관실 안에 가두고 문을 걸어 잠갔다. 그 가족들이 창문을 통해 그들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음식이나 물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들은 6일 이후 용역깡패들에 의해 내쫓겼다.”—Socialist Review, 2007년 10월
어떤 이름으로 자신들을 부르든,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은 결국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마련이다. <볼리바르주의노조연맹>의 리베로 같은 관료들의 역할에 대해 레온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노조 지도자들은 거의 대부분 부르주아지와 그 국가의 집행요원들이다. 국유화된 산업에서 그들은 이미 집행요원이 되어 있거나, 된다. 이것에 맞서는 길은 오직 노동조합 내부에 단호한 혁명적 핵심을 구축하여 부분적 그리고 전국적 단위에서 노동운동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국유 산업과 노동자 관리”, 1939년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 차베스의 부르주아 인민주의 정당
2006년 2월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 이후, 차베스는 그의 지지대중과 볼리바르 정책을 지지하는 다양한 정치조직들을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에 가입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차베스의 ‘제5공화국운동(MVR)’은 여러 그룹들과 함께 즉각 서명되고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5공화국운동’에 가입하지 않은 3개의 차베스 지지 정당들 즉,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Podemos)>, <모든 이를 위한 조국(PPT)>과 <베네수엘라공산당(PCV)>은 냉담했다.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에서 친(親)차베스 정당으로 갈라져 나온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의 지부인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Podemos)>는 헌법 개정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급진적동기(La Causa Radical)>에서 갈라져 나온 <모든 이의조국(PPT)>은 <베네수엘라공산당(PCV)>처럼 찬성표를 던졌다.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과 <급진적동기(La Causa Radical)>는 모두 10여 년 전, 이 <베네수엘라공산당(PCV)>에서 나왔다.
‘맑스-레닌주의당’이 아니라며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에 가입하지 않은 <베네수엘라공산당(PCV)> 지도부는, 지나치게 독립적이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 중앙위원회의 몇몇 회원들은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에 가입해 있고, 새로운 당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힌다. <베네수엘라공산당(PCV)>의 서기인 오스카 피구에라는 “차베스 대통령! 공산당은 절대로 당신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전진의 지도자인 당신과 늘 함께 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Venezuelanalysis.com, 2007년 3월 19일).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공산당(PCV)>과 <모든 이의조국(PPT)>이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에 가입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었지만, 그 이후 2008년 시장과 지사 선거 조직인 ‘애국 연대’에 세 조직이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은 명목상으로 수백만 명의 빈곤계층과 노동인민의 당원을 거느린 대중정당이다. 또한 국회와 상층 국가 관료 그리고 친정부 자본가들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차베스는 노골적으로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이 계급협조의 인민주의 조직이라고 선언한다.
“모든 혁명가들, 사회주의자와 애국자들, 남성과 여성, 청년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 나는 노동자와 주부, 전문가와 기술자들 민족 자본가들을 통합 정당 건설 참여에 초대한다.…”—International Viewpoint에서 인용, 2007년 1월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이 공식적 정책과 헌법에 대해 연구하기 이전, 차베스는 이미 ‘제5공화국운동(MVR)’ 미란다 주지사이며 억만장자인 디오스다도 카벨로를 임시 당규율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12월 1일).
노동계급적 성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C-CURA는 2007년 1월에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에 가입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차베스가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 내에서 모든 정파의 존재에 대해 반대하고 “노동조합들은 독립적이어서는 안 된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5월 2일)”고 선언하자 큰 부담을 느꼈다. 아르헨티나 수정주의자인 나후엘 모레노의 지지자가 이끌었던 국제 그룹인 <국제적노동자단결-제4인터내셔널(UIT-CI)>와 협력하고 있고, 노동운동의 ‘독립’을 지키는 것으로 이름 높은 치리노는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 가입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2007년 12월의 헌법개정투표에서 기권할 것을 촉구했다.
마레아 소시알리스타 클라시스타(Marea Socialista y Clasista)란 기관지를 발행하는 스탈린 페레즈 보르게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에 가입했고, 찬성표를 던졌다. 페레즈 보르게스에 따르면, “혁명을 위해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를 조직하고 독립 노조를 유지하는 것 사이엔 어떤 모순도 없다. 둘은 모두 똑같이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투쟁이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9월 12일).” 치리노는 왼쪽으로 움직이며 <노동자당건설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강력히 주장한다. 하지만 2006년 선거에서 차베스를 지지했던 전력도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할 ‘트로츠키주의’ 차베스 지지자인 알란 우즈는, 감히 볼리바르 지도자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치리노를 “종파주의 광대이며 얼간이”라고 비난했다.
“인민들에게 기권할 것을 주장하는 올란도 치리노와 그밖의 소위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역할은 완전히 사악한 것이다. 이 신사 숙녀 양반들은 차베스에 대한 혐오에 눈이 어두워 혁명과 반혁명의 차이를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한다. 이것으로 그들은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혁명적이라고 그들 스스로 자처하게 내버려 두자.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으로 사망했다.”—Marxist.com, 2007년 12월 3일
베네수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국제맑스주의그룹(IMT)>은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의 공식적인 후원자로 이름을 등록했다.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임무는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를 창건하고 있는 대중들과 함께하고 이 싸움에 완전히 투신하는 것이다. 그 밖의 정책들은 지독한 종파주의가 될 것이고, 진행되고 있는 혁명운동에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 참여를 거부하고 소위 ‘독립노동자당’을 건설하려는 C-CURA(현 <전국노총(UNT)> 좌파)의 정책은 대중적 혁명운동으로부터 선진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범죄적 행위이다.”—Marxist.com, 2007년 9월 5일
차베스의 인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세계의 여러 이른바 맑스주의 조직들은 비슷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노동자 권력(Workers Power)>은 이렇게 주장한다.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의 대중적 성격과 관련하여,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와 시골 빈곤층이 지배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사회주의와 혁명사상이 그 안에서 토론된다는 사실은, 이 정당에 가입하여 이 같은 토론에 열정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것은 종파주의가 될 것이다.”—Workers Power, 2007년 9월
<노동자 권력(Workers Power)>은 볼리바르 지도자의 인터내셔널 추진 언급에 대해 특히 고무된 것처럼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차베스가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의 일익을 담당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만성 기회주의자들은 이미 “앞으로 차베스가 주도하게 될 인터내셔널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같은 곳에서 인용).
혁명가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그와 같은 기회주의적 취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50년대, 트로츠키의 <제4인터내셔널> 정치적 파괴의 주역이었던 수정주의 대부인 미쉘 파블로 역시 그럴 듯해 보이던 ‘아랍혁명’에 열광했다. 파블로는 혁명가들이 소부르주아 조직인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이유였다. “미래의 혁명적 맑스주의 조직과 대중적 노동자당의 핵심 역량이 지금의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 내의 필연적 사회 정치적 분화를 통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아랍혁명”, 1958). 대중적인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한 유사한 환상이 차베스 좌익 찬양대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1920년대에 중국공산당 간부들을 부르주아 국민당으로 해소시킨 재앙적 정책을 옹호하는 스탈린과 부하린의 주장에 맞서, 트로츠키는 그와 같은 충동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만약 그것이 실재하는 정당이라면 즉, 어느 정도의 대중들을 포괄하고 있다면 모든 부르주아 정당은 동일한 원칙하에 건설된다. 계급사회의 소수를 구성하는 착취자들, 사기꾼들 그리고 독재자들…. 모든 대중적 부르주아 정당에서 평당원들은 늘 상층보다 조금 더 ‘좌익’적이고 민주적이다…. 그것이 바로 왜 ‘90%를 차지’하는 ‘압도적 다수’인 ‘좌익’적 평당원들의 의사를 국민당 지도부가 반영하지 않는다는 스탈린이나 부하린 등의 투덜거림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고, 얼마나 용서될 수 없는 것인지의 이유이다.”—“레닌 사후의 제3인터내셔널”, 1928
인기 있는 환상을 재탕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가들의 임무이다. 그리고 지금 혁명가들이 말해야 할 진실은, 1920년대의 중국 국민당이나 지금의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USV)> 같은 좌익적 언사를 즐기는 소부르주아 보나파르트주의자들이 이끄는 계급 연합적 조직은 노동계급에게 재앙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것이다.
청년 좌익들일 경우, 볼리바르 ‘혁명’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란 우즈는 1956년 이집트의 압델 나세르가 영국-프랑스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합세한 군사작전에서 살아남고 수백 개의 외국 자본들을 몰수하면서, 얼마나 신식민지 세계를 흥분시켰는지 기억할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 나세르는 급기야, 그의 정부는 ‘사회주의적’ 길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1952년 7월 23일 발생한 쿠데타 9주년을 기념하는 집회에서, 나세르는 사회정책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 집회 직전인 1961년 7월 19일부터 22일까지, <아랍공화국연합(UAR): 단명했던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의 정치적 연합> 경제의 공공 통제를 크게 확장하는 법령들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그 법령들은 나세르가 집권한 이후 가장 의미심장한 사회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세르는 새로운 정책들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우리 혁명은 제국주의 종말과 자본주의와 봉건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다. 계급 간 차이를 없애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그리고 압제자의 손으로부터 피억압자를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 혁명은 노동자로 하여금 착취당하지 않는 재산소유자가 되도록 할 것이며 모든 계급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것이다."—라미 지나트, “미완의 이집트 혁명”
나세르는 ‘아랍 사회주의’를 이끄는 ‘인민’인 노동자들과 경영자들은 기업의 권력을 공유한다고 보았다. 그의 정당인 <아랍사회주의연합>은 신식민지 국가들의 ‘비동맹’ 운동을 통한 ‘반제국주의’를 주장했다. 이것들이 지금 볼리바르 혁명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보다 유사한 예로는, 1934년 대선을 통해 집권한 멕시코의 라자로 카르데나스가 있다. 유일하게 트로츠키의 망명을 허용했던 카르데나스 정부는,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고 빈곤층에 대한 의료 혜택을 확대하였다. 카르데나스 집권 기간, 노동자는 가동되지 않는 공장을 점거하고, 수천 개의 농업, 산업 협동조합이 건설되었다. 1937년 6월, 카르데나스 정부는 멕시코 철도를 국유화했다. 1년 뒤 노동절에, 그는 철도 전체의 운영권을 철도노조에 넘겨주었다.
1938년 3월, 카르데나스는 멕시코 석유 자원 국유화를 선언했다. 화가 치민 영국과 미국 석유회사들에 맞서, 석유 노동자 편에 섰다.
“전국석유사업기관이 조직되기 이전까지 지역 노동조합 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공장을 운영했다. 노동자들은 멕시코시티에 4명의 관료와 3명의 노조 지도자로 구성된 정부 위원회의 명령을 따랐다. 하룻밤 사이 노동조합은 집행기구가 되었다.”—Nathaniel and Sylvia Weyl, “멕시코의 재정복”
트로츠키는 한편으로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서 “국가의 자기 방어에 대단히 진보적인 방법”이라며 멕시코의 국유화를 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멕시코의 석유산업 몰수는 사회주의적인 것도 공산주의적인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제 노동계급은 멕시코 정부의 정책을 자신의 정책과 동일시할 어떤 이유도 없다. 혁명가들은 색을 바꾸고 적응하며 아첨할 이유가 없다.…”—“멕시코와 영국 제국주의”, 1938년
트로츠키는 이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계급의 혁명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가 주도하여 몇 개의 산업이 국유화되고 그 운영권이 노동자 조직에 넘겨진다고 해서, 사회주의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치명적인 잘못이며 노골적인 기만일 것이다.”—“국유화된 산업과 노동자 경영”, 1939년
차베스 정부가 채택하는 정책들이 카르데나스 정부의 것보다 한참 모자람에도,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차베스를 ‘사회주의자’로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다.
카르데나스나 나세르처럼 우고 차베스는 부르주아 좌파 인민주의자이다. 그러나 많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차베스가 채택하고 있는 정책들이 자본주의를 전복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데에 적극적이다. 그러한 예들 중 하나가 아르헨티나 좌익 인사인 클라우디오 카츠가 쓴 “남미 좌익의 전략”이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은 <제4인터내셔널통합서기국(USec)> 기관지인 <국제적관점> 2007년 7/8월 호에 실렸다.
“사회주의의 성숙은 권력을 향한 길에서 먼저 무엇이 필요 없는 것인지 학습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준비 과정은 개량을 통해 얻어지는 민주적이고 사회적 성과를 포함한다. 이 개량이라는 단어는 나쁜 말이 아니고, 혁명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피억압자들이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다리를 건설하여, 점진적으로 혁명적 도약을 향해 가는 의미 있는 수단이다.
개량과 혁명의 결합은 즉각적인 성취와 자본주의의 급진적 붕괴 사이를 연결하게 한다. 첫 번째와 같은 성과는 인민 권력을 형성해내는 데에 불가피한 것이며 두 번째 것은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을 적을 패배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개량을 혁명과 결합시키는 것은 대중 행동을 각 나라의 반자본주의적 변혁 가능성에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두 가지 길을 서로 대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합치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국가가 과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수레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의 차이가, 그 "과거"의 혁명적 길과 개량적 길을 대치시켰던 것이고 또한 그 문제가 레닌주의와 카우츠키주의의 분기점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객관주의적’ 관점[혁명정당의 건설과 그의 확고한 지도 없이도 즉, 주체적 역량의 강화 없이도, 경제적 위기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관점: 역주]을 공유하는 <국제맑스주의조직(IMT)>의 알란 우즈는 베네수엘라 부르주아 국가는 그 성격이 점점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베네수엘라 국가는 주요 측면에선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기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국가기구는 혁명적 조건에서 작동하며 내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어 지배 계급의 도구로서의 기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본가 계급이 그 계급 지배를 강제하기 위해 국가 기구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자본가 계급의 직접적 지배 아래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이 국가기구가 현재 대중의 혁명적 진출을 가로막고 지연시키는 일을 멈추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결국 혁명 파괴의 도구가 될 것이다. 명백한 사실은 볼리비아 혁명의 기층 대중들과 심지어 지도부도 이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은 아직 없다.”—Marxist.com, 2007년 9월 5일
“현재 노동자국가로 규정할 수 없는 베네수엘라 국가” (The Socialist, 2007년 4월 19일)를 보면, 과거 <국제맑스주의그룹(IMT)>과 의견을 같이 했던 <노동자인터내셔널건설위원회(CWI)>도[영국 노동당 안의 테드 그란트가 이끄는 <투사그룹(Militant Group)>에서 두 그룹으로 갈라졌다: 역주] 위와 같은 생각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는 CWI가 볼리바르 연금술로 부르주아의 억압도구인 국가를 그 반대로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언급은 국가는 특정한 사회 계급의 지배도구로 작동한다는 맑스주의 핵심과는 모순되지만, 에티오피아에 대한 CWI의 과거 입장과는 일관성을 지닌다(IBT의 “맑시즘 대 ‘전투적’ 개량주의”를 보시오).
과거 <제4인터내셔널통합서기국(USec)>의 지부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트로츠키주의를 자처하지 않는 <호주민주사회주의전망(DSP)>은 베네수엘라 자본주의국가는 이미 “노동자와 농민의 국가로 변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낡은 국가기구의 기본적인 작동을 우회하는 데에 ‘사회 임무들’이 핵심 역할을 수행해 왔다.…
“맹아기 노동자농민의 국가를 이끄는 노동자농민 정부는 2002년 4월의 쿠데타와 2002년 12월에서 2003년 1월에 있었던 자본가들의 석유파업에 맞선 인민의 승리로 탄생했다. 이 노동자농민 정부의 수립과 강화는 국가기구 대체물을 개발해 내었다. 그 중심에 ‘사회 임무들’이 있고 그 밖에는 민중조직들과 혁명군이 있다.”—Venezuelanalysis.com, 2007년 10월 10일에서 인용
차베스가 2007년 4월 22일 알로프레시덴테라는 주간 TV 프로그램에 나와 베네수엘라인들에게 읽을 것을 권유한 이후, 트로츠키의 이행강령은 차베스 외국 찬양대들에게 유행이 되었다. <제4인터내셔널> 창립강령[이행강령: 역주]을 그 동안 시대에 안 맞는 초좌익이라고 치부했던 <국제맑스주의그룹(IMT)>, <노동자인터내셔널건설위원회(CWI)>, <제4인터내셔널통합서기국(USec)>, <호주민주사회주의전망(DSP)>과 그리고 다른 조직들은, 차베스가 이행강령을 사회주의 건설 청사진으로 여긴다며 칭찬하고 나섰다.
<호주민주사회주의전망(DSP)>에 따르면,
“1938년에 작성된 이 문서는, 자본주의의 타도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잠식하는 개량을 요구하는 투쟁 강령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키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는지를 따진다.” … “이행적 접근은 인민대중을 정치 행위로 이끌고 의식을 일깨워 그들이 보다 급진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왜 차베스가 자본주의 이익을 점진적으로 공격하는 정책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연설을 통해 그가 자본가 계급으로 하여금 이 혁명 계획에 합류할 것을 촉구하는지를 설명해 준다.”—Green Left Weekly, 2007년 10월 10일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계급 협조주의를 일관되게 반대했던 트로츠키는, 그의 이행강령이 훗날 부르주아 국가 수장을 감싸는 좌익적 외피로 이용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볼리바르 정책은 근본적으로 베네수엘라 자본주의를 현대화 안정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트로츠키 이행강령은 1917년 10월 혁명을 이끌었던 볼셰비키의 경험과 레닌 지도 아래 있던 혁명적 <코민테른>의 경험을 총화한 것으로, 국가권력 장악을 위해 나아가는 피억압자들을 정치적으로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행강령은, 자본주의 희생자들을 동원하여 자본주의 국가와 그것이 수호하는 사회질서를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할 것을 목표로, 작성된 것이다. 물가임금 연동제를 설명하면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자본주의 내에서 이 요구를 실현하는 것보다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이 차라리 더 쉽다.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우리의 어떤 요구도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이행강령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이행강령은 노동자의 의식에 다리(가교)를 놓고 그리하여 사회주의 혁명의 물질적 다리를 건설한다. 모든 문제는 어떻게 대중들을 투쟁에 동원할 것인가에 있다.”—“미국노동자들의 정치적 후진성에 대하여”, 1938
차베스 선전 봉사에 나서고 있는 다양한 ‘맑스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에는 지금 ‘혁명’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 내전과 우익의 도발 위험이 실질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한편, 베네수엘라의 현재는 혁명 전야가 아니다. 즉, 부르주아 국가 체제는 평범하게 작동하고 있다. 혁명적 상황도 아니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의 광범한 확산과 프롤레타리아 권력기관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지는 이중권력 상황도 아니다.
2006년 대선에서 차베스를 지지한 <제4인터내셔널통합서기국(USec)>의 결의문에 따르면, 그 선거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 체제이고, 노동자와 빈민을 위해 작동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혁명 진전을 위한 단호한 지지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International Viewpoint, 2006년 10월
자본주의 국가의 개량과 혁명적 전복을 위한 노력 사이의 차이점을 모호하게 하려는 수정주의자들은 이 “혁명의 진전”이라는 문구를 애용한다. <제4인터내셔널통합서기국(USec)> 기자인 스튜어트 파이퍼는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 “진전”은 “그 안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탄생하려고 몸부림치는, 민족주의,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혁명이다.”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파이퍼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차베스 그 자체가 그 두 가지 대립물의 결정체이다.” (International Viewpoint, 2007년 5월).
<노동자인터내셔널건설위원회(CWI)>는 <국제맑스주의그룹(IMT)>나 <제4인터내셔널통합서기국(USec)>보다는 좀 덜 흥분하는 입장을 채택해 왔다.
“자라나고 있는 관료주의와 시간낭비에 대한 낙담 분노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건재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회문제들은, 지금 혁명의 진전을 위협하고 있다.”—The Socialist, 2006년 1월 26일
<노동자인터내셔널건설위원회(CWI)>는 차베스가 혁명 지도부가 될 수 있을 것인지조차 의심해 왔다.
“차베스는 트로츠키의 중요성과 그의 연속혁명론의 중요성을 옳게 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 교훈들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이것[연속혁명론]은 베네수엘라와 남미 모두의 핵심 문제이다.”—The Socialist, 2007년 1월 18일
그 “핵심 문제”를 볼리바르혁명 지도자(차베스)가 트로츠키주의자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로 제기하면서, <노동자인터내셔널건설위원회(CWI)>는 또한 “사회주의 혁명 문제를 궁극적으로 결정할 존재는 대통령 차베스가 아니라 베네수엘라 노동계급이 될 것이다.”라며 대중의 역할을 주문한다(The Socialist, 2006년 6월 18일).
<국제맑스주의그룹(IMT)>은 차베스를 객관적인 혁명운동의 화신으로, 그리고 차베스 자신이 거의 10년 동안 운영해 오고 있는 바로 그 국가 기구 분쇄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있는 존재로 묘사해 왔다.
“차베스는 혁명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는 혁명이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관료들이 거대한 장애물로 나선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고 있다. 그는 이 국가 기구로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리하여 유일한 길은 이 기구를 부수고 노동자에 기초한 새로운 것을 건설해 내는 것이다.”—Marxist.com, 2007년 1월 9일
2006년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알란 우즈는 “대통령 차베스 동지”를 지지하면서,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거만하게 훈계했다.
“우고 차베스의 힘과 성공 비밀은 대중의 혁명 열망을 체현하고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바라는 그들을 대변했다는 데에 있다. 그는 수백만 인민을 정치적으로 일깨우고, 그들에게 처음으로 존엄성과 목적의식 그리고 변화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한편에는 희한한 이유를 대며 그들 스스로가 맑스주의자라고 상상하며, 이와 같은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좌익 종파주의자들이 있다.”—Marxist.com, 2006년 11월 29일
그가 약속하는 아름다운 사회주의의 희망으로 차베스가 수백만 베네수엘라 인민을 분기시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혁명가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환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볼리바르식 계급 협조가 가져올 치명적 위험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에 있다. 1920년대 중국 급진민족주의 정당이었던 국민당에 대한 스탈린과 부하린의 ‘추종주의’ 정책을, 트로츠키는 이와 같이 비판했다.
“그러나, 강령 초안 작성자인 스탈린과 부하린은 우리에게 장개석의 북정이 노동자와 농민 대중을 분기시키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그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황제 니콜라스 2세의 폐위를 페트로그라드에 알린 구치코프와 슐긴은? 그것은 가장 학대받고 지치고 겁 많은 계층들을 분기시키지 않았나? 과거 트루도비키였고 장관위원회의 의장이며 군통수권자였던 케렌스키는? 그는 병사들을 분기시키고, 토론모임으로 끌어내지 않았는가? 농민을 분기시켜 토지소유주들에게 대항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기회주의적 정책들은 늘 이렇게 반(反)변증법적이고, 보수적이며 추종적인, ‘객관주의’를 기초로 삼아왔다. 맑시즘은 그와 반대로 한결같이 이처럼 가르친다. 정치적 위치에 의해 강제되는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행위가 더 단호해지고 의심의 여지가 없어질수록,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지에 대해 더욱 더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손이 부르주아지의 바이스에 물리게 될 것이고, 부르주아지들을 더욱 긍정적으로 보며, 반제국주의 투쟁에 대한 그들의 혁명정신과 준비를 과대평가하게 될 것이다" —"레닌 사후의 코민테른"
1920년대의 중국에서처럼 베네수엘라 혁명가들의 당면 과제는 부르주아지로부터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즉, 볼리바르 운동과 그 계급 노선과 단절하는 것이다. <국제맑스주의그룹(IMT)>은 그와 같은 노선을 거부하면서 스탈린이 중국에서 적용했던 청산주의 입장을 취한다.
“차베스주의를 넘어서거나, 볼리바르 운동을 넘어서서는 혁명적 대중 운동을 개발할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혁명가 집단을 다수 대중들로부터 분리시키게 될 것이다.”—Marxist.com, 2006년 10월 18일
다른 볼리바르 정책에 대한 좌익 옹호자들처럼, <국제맑스주의그룹(IMT)>는 차베스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국가 반동 관료”들이 방해한다고 비방해 왔다.
“정부 안에는 노동자 농민의 대의를 위해 투쟁하고 노동자 통제와 국유화를 지지하는 정직한 볼리바르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의 법령 집행을 훼방하고 혁명을 갉아먹는 우파 관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가로막히고 있다.”—Marxist.com, 2005년 12월 19일
그러나 최근, <국제맑스주의그룹(IMT)> 지도부는 “볼리바르 혁명”이라는 좌익적 수사와 친자본주의적 실제 사이의 모순을 보며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헌법개정 투표 실패 이후 우익 비판자들을 달래려는 차베스로 인해 짜증난 알란 우즈는 차베스가 2006년 대선 승리 이후 사회주의로 평화롭게 이행할 기회가 있었다고 투덜거렸다.
“토지, 은행과 노동자가 통제 관리하고 있는 핵심 산업들을 국유화하는 법령을 국회에서 제정할 가능성이 대통령에게 있었다. 그랬다면 베네수엘라 특권층의 힘을 무력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민주주의 내에서 선출된 인민의 대표들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으므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에서 대단히 합법적으로 그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Marxist.com, 1월 11일
소망을 현실로 착각하는 혼란스러움과 이 고전적 카우츠키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은 정확한 의회 전술과 책략을 통해 자본주의 억압기구 안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관념에 기초해 있다. <국제맑스주의그룹(IMT)>은, 차베스가 만약 원했다면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부르주아 국가를 점진적으로 노동자 국가로 변화시키면서 자본주의를 “합법적으로” 뿌리뽑을 수 있다고 상상한다.
알란 우즈는, 볼리비아 혁명이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이 영예로운 지도자에게 못된 조언을 하는 차베스 주위의 “개량주의자”들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반혁명분자들과 거래하려는 자들의 충고를 따라, 차베스는 혁명을 거의 좌절시킬 뻔했던 2002년 4월 군사 쿠데타와 100억 달러 상당의 경제적 피해를 안긴 석유산업 폐쇄의 주역들에게 사면을 허락했다." … “차베스는, 사면령이 ‘서로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개량주의 조언자들 때문에 대통령은 최근의 국민투표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끌어냈다. 2006년 1월 6일의 알로프레시덴테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진 속도를 늦출 것을 요구 받았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가진 역량과 가능성보다 더 빠른 속도를 주문해왔다.…” “우리의 동맹 정책에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는 극단주의 경향에 의해 잘못된 길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극단주의자들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민족자본가들을 포함한 중간 계층과의 동맹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사유재산 철폐와 같이 세계를 패배시켜 왔던 노선을 지지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노선이 아니다.”—Marxist.com, 1월 11일
최근 몇 년 전부터 <국제맑스주의그룹(IMT)>이 추천하는 ‘볼리바르 사회주의’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즉, <투사그룹(Militant tendency)--IMT의 이전 그룹: 역주>이 몇 십 년 전 극구 칭찬한 ‘아랍혁명’과 ‘아프리카사회주의’처럼, ‘볼리바르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몰수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자본주의일 뿐이다.
맑스주의의 가장 근본적 원칙 가운데 하나는, 모든 국가는 특정 계급의 지배를 방어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집산화된 즉, 프롤레타리아의 소유 형태를 방어하는 기구로 대체하는 것만이 사회주의로 가는 유일한 길이 되는 이유이다. ‘관료적’인 공무원들을 ‘혁명적’인 사람들로 대체한다고 해서, 부르주아 국가가 점진적으로 그 반대의 것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혁명 정책은 반드시 국가 권력의 이러한 성격과 부르주아 모든 정파에 대한 비타협적인 반대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트로츠키주의 조직은, 공동위원회와 여타의 차베스주의 대중조직 내에 있는 회원들에게 선전선동하기 위하여, 노동현장에 기초조직들을 건설할 것이다. 그 조직들은 우파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연속혁명’의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연속혁명의 전망은 먼저, 베네수엘라와 같은 반(半)식민지 국가들에서 자본가들은 너무 약하고 외국 제국주의에 의존적이어서 부르주아혁명을 완수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오직 베네수엘라 노동자 국가의 건설을 통해서만 노동자와 토지가 없는 농민, 빈민, 원주민들 그리고 여타의 자본주의 희생자들에 대한 억압을 끝낼 수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은 신속히 국경을 넘어 남미사회주의연방 건설의 가능성을 즉각 제기하게 될 것이다. 그 혁명은 또한 북미 제국주의 나라 노동자들을 분기시킬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제국주의적 착취 체제를 뿌리 뽑는 투쟁의 필요성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내에서 발전된 강력한 생산력을 이용하여 이성적으로 계획되고 평등한 사회주의 세계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Marxism & the ‘Bolivarian Revolution’: Venezuela & the Left
Published: 1917 No.30 (April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