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쫑카빠 스님의 <보리도차제광론> 제1권 개정판이 얼마 전에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나란다불교학술원의 박은정 박사님께서 2018년 발간했던 초판본을 대폭 수정, 보완한 완결판입니다. 표지와 구입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추천의 글
중관학(中觀學) 전공자로서 강의 부탁을 받을 때마다 항상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반야경에서 가르치는 공(空)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중관학의 핵심은 환멸연기(還滅緣起)에 근거한 사구비판(四句批判)의 반(反)논리적인 논법에 있기 때문에, 이를 소개하고자 할 경우 한두 시간의 강의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현란한 공의 논리가 불교 초심자에게는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겠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용수의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공만 알려고 하고 세속의 가르침을 무시하면 공견(空見)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공에 떨어졌다.”는 의미에서 이를 낙공(落空) 또는 타공(墮空)이라고도 하며 공을 잘못 이해했다는 의미에서 악취공(惡取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중관학을 강의하기 전에 그 비판의 대상이었던 아비달마 교학에 대해 먼저 설명하였다. 이와 아울러 “보시(布施)하고, 지계(持戒)하면, 생천(生天)한다.”는 차제설법(次第說法) 역시 소개하였는데, 수강자 대부분이 탈세속의 열반이 아니라 세속적인 복락을 추구하는 재가불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불교신행의 방식을, ‘세속인을 위한 길’과 ‘전문수행자를 위한 아비달마 교학’ 그리고 ‘아비달마교학의 법유(法有) 사상을 비판하는 중관학’의 3단계로 구분하여 강의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보리도차제광론(菩提道次第廣論)≫을 펼쳐 보았다. 불서(佛書) 전문 출판사인 민족사에 들렀다가 눈에 띄었는데 그 제목과 저자 이름이 모두 생소하여 구입했던 책이었다. 저자는 종객파(宗喀巴)라고 되어 있었다. 중국의 법존(法尊, 1902-1980) 스님이 1931년에 한역(漢譯)한 것을 중국의 조선족동포 몇몇이 함께 번역한 책이었다. 목차를 펼쳤는데 하사도(下士道), 중사도, 상사도, 삼사도(三士道)와 같은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역시 처음 보는 불교용어들이었다. 그 의미가 궁금해서 이곳저곳을 읽어보았다. 생경한 한자 용어가 많이 섞인 북한식 어투의 문장들이었기에 난삽한 곳이 많았지만, 군데군데 읽어 내려가다가 그야말로 ‘갈지 않은 보석’을 발견하였다는 생각과 함께 환희심이 솟았다. 필자가 중관학을 강의하기 위해서 어렴풋이 구분했던 3단계의 불교신행을 ≪보리도차제론≫에서는 삼사도라고 명명하였고, 각 단계의 수행을 위한 체계적인 지침들이 감동적인 비유와 함께 너무나 방대하고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곧이어 법존 스님의 한역본을 구하여 대조하면서 그 내용 하나하나를 노트에 요약, 정리하였다. 그리고 종객파가 티벳불교의 위대한 학장(學匠) 쫑카빠(Tsong Kha Pa, 1357-1419)이며 ≪보리도차제론≫을 람림(Lam Rim, 道次第)이라고 부른다는 사실, 중관학을 현교(顯敎)의 교학의 정점으로 삼는다는 점 등도 차츰차츰 알게 되었다.
그 당시 필자는 서구에서 들어온 ‘인문학적 불교학’의 문제점을 절감하고서, 불교학의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보리도차제론≫에 바로 그 해답이 있었던 것이다. ≪보리도차제론≫은 ‘신앙과 수행을 위한 불교학’의 전범(典範)이었다. 얼마 후 필자는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로 부임하였고(2000년 3월) ‘불교의 종교학적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통해 수년 동안 ≪보리도차제론≫을 강의하였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문이나 잡지의 칼럼을 통해 ≪보리도차제론≫의 가치와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마치 기독교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 신앙으로서의 기독교를 가르치듯이 ≪보리도차제론≫은 신행체계로서의 불교학을 제공한다. 그래서 필자는 ≪보리도차제론≫과 같은 방식의 불교학을 체계불학(Systematic Buddhology)이라고 명명하였고 <Systematic Buddhology와 보리도차제론>(불교학연구, 2001년)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한국불교를 위해서 ≪보리도차제광론≫은 보약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불교에서 부족한 기초수행과 감성수행을 위한 감동적인 가르침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리도차제론≫을 강의하고 그 가치를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리면서 항상 아쉬웠던 것은, ≪보리도차제론≫의 정전(正典)인 ≪보리도차제광론≫에 대한 제대로 된 번역서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앞에서 소개했던 조선족동포들이 번역한 ≪보리도차제광론≫은 티벳어 원문이 아니라 법존 스님의 한역을 중역(重譯)한 것이었고, 북한식 말투도 어색하지만 오역도 적지 않았기에 누군가에게 일독(一讀)을 권할 수 없었다. 아쉽긴 했지만 초펠 스님의 편역한 ≪깨달음으로 가는 올바른 순서≫(1998년)와 ≪람림 – 티벳 스승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2005년 8월)이 우리 사회에 ≪보리도차제론≫을 알리는 데 다소 역할을 하였다. 그러던 중 청전 스님께서 ≪보리도차제광론≫을 티벳어 원본에서 직접 번역하여 2005년 12월에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셨다. 조선족동포 번역본에 뒤이어 두 번째로 세상에 선보인 우리말 번역이었다. 그런데 대학원 수업에서 참고도서로 사용하면서 문장 하나하나를 검토해 보니 미흡한 점이 많았다. 특히 중관학에 대해 설명하는 마지막 장(章)에는 오역도 적지 않았다. 앞으로 언젠가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인 2017년에 너무나 반갑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박은정 선생님이 티벳불교의 연구와 교육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서 경주에 ‘나란다(Nalanda)불교학술원’을 설립한 후, 그 첫 작업으로 ≪보리도차제광론≫을 번역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되는 해에 인도 다람살라의 티벳 승가대학인 사라학교에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달라이 라마 존자님의 한국어 전문 통역사로 일해 온 박 선생님은 티벳불전 번역가로서의 전문성,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맑고 강력한 신심(信心), 일을 완수하는 추진력 등 모든 면에서 ≪보리도차제론≫ 번역에서 최고의 적임자가 아닐 수 없다. 박 선생님이 티벳불전의 역경(譯經)에서 앞으로 큰 역할을 하시리라는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나란다불교학술원의 ‘티벳대장경 논서 역경사업’에서 첫 번째 문헌으로 ≪보리도차제광론≫을 선택하였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지난 2008년에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손동진 총장님이 의료봉사단을 이끌고 다람살라를 방문했을 때,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서 “그동안 책을 발간하면서 모아 놓은 인세(印稅)가 있는데 한국과 티벳의 불교 교류를 위해 2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너무나 소중한 정재(淨財)였다. 그 재원을 바탕으로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티벳장경연구소(현재의 티벳대장경역경원)를 설립하기로 하였고, 필자에게 초대 소장의 임무가 부여되었다. 그때 박은정 선생님이 인도에서 잠시 귀국하여 동국대 경주캠퍼스를 방문하였고, 저녁식사 모임에서 박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박 선생님으로부터 티벳불교와 다람살라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으면서, 그곳의 척박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고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비구스님 강원에 해당하는 사라학교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유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한국어 전문 통역사로 발탁되었다는 점도 참으로 대단했다. “보통 분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그 생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1년여가 지나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뜻 깊은 정재가 도착하였고 2009년 12월 9일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백주년기념관 2층에 마련된 공간에서 티벳장경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존자님께서 보내신 정재는 영구보전하기로 결정한 후 후원금 모금을 통해 연구소를 운영하기로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박은정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필자가 소장의 소임을 본 것이 만 2년에 불과하지만 박 선생님께서 참으로 많은 일을 하셨다. ≪티벳어 한글 표기안≫의 제작에도 참여하고 ≪불교철학의 보물꾸러미≫도 번역하셨지만, 가장 큰 도움은 2011년 1월 17일부터 2월 25일까지 5주 동안 진행한 ‘현대 티벳어 특강’이었다. 수강자를 모집하여 40분짜리 강의를 총 60회 진행하였는데, 누구나 티벳어를 배울 수 있도록 모든 강의를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티벳장경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이 특강 행사의 주된 목적이었다. 소수이긴 했지만 서울, 부산, 대구 등 여러 곳에서 모인 수강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한 달 이상을 매일 여러 차례 강의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는데 박 선생님의 놀라운 정진력으로 ‘문자발음’에서 ‘표현법’까지 60회의 모든 강의를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보살과 같은 이타(利他)의 원력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용맹정진의 강의불사(講義佛事)’였다.
≪보리도차제론≫을 보면 ‘정진바라밀다’에 대한 설명 가운데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모든 성취는 정진에서 온다.”는 가르침이 있다. 박은정 선생님은 그 비범한 정진력을 이번에는 ≪보리도차제광론≫의 우리말 번역에 쏟으셨다. 그리고 그 첫 권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선생님이 티벳어와 티벳불교에 정통함에도 불구하고, 대풍로쎌링 게셰이신 툽텐 소남 스님을 다람살라에서 초청하여 애매한 구절에 대해 자문을 받으면서 번역에 정확을 기하였다고 한다. 또 ≪보리도차제광론≫에 대한 티벳의 여러 주석들을 일일이 참조하면서 번역하셨다고 한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번역이 아닐 수 없다. 박 선생님이 번역한 ≪보리도차제광론≫이 앞으로 모든 한국불자들의 필독서가 되는 날이 오기 바란다. 그때 한국은 불국정토로 변해 있을 것이다.
티벳어 실력과 불교에 대한 깊은 신심 그리고 일을 위한 추진력 모두를 갖추고 있는 박 선생님이기에 앞으로 ≪보리도차제광론≫의 마지막 장(章)인 관품(觀品)에 이르기까지 모든 번역이 무난하게 이루어져, ≪보리도차제광론≫의 한글번역에서 영원한 정본(定本)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이 위대한 역경불사(譯經佛事)에 시방(十方)의 불보살님과 차방정토(此方淨土) 세주(世主)님들의 가피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2018년 초판의 추천사)
≪보리도차제광론≫ 제1권 개정판 출간에 감사드리며, 이 책에 실린 보석 같은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시는 모든 분께서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고 편안하시기를 삼보 전에 기원합니다.
2023년 5월 9일
동국대 명예교수 김성철 합장 정례
첫댓글 시중에 도서가 품절 상태입니다...
빠른 재발매를 부탁드립니다.()
재입고 되어 구매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