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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탈출 6-11장
* 6,2-13 모세가 다시 소명받다
6장에서 하느님게서 다시 모세를 긴 말씀을 한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나는 야훼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느님’으로 나타났으나, ‘야훼’라는 내 이름으로 나를 그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6,2-3). 그 내용은 하느님께서 계약을 기억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강제 노동에서 빼내시고,일찍이 선조들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려가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모세에게 맡기는 사명은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과 사명 부여는 앞에 나온 모세의 소명 기사(3,1-4,31: 야훼계 문헌)와 비슷하다. 문헌 가설에서는 계약과 땅,아론과 족보가 강조되는 특성으로 미루어 이 대목을 사제계 문헌으로 분류한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의 땅 이집트에서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신다(이 점에서 바빌론 유배지의 상황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나는 야훼('ani YHWH)"라는 하느님의 자기 소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시작과 끝에 모두 네 번 언급되면서(6,2.6.7.8), 하느님께서 주시는 약속과 그 권위를 강조하고,이것이 확실하게 실현될 것이라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포한다. 곧 ‘나는 너희 하느님 야훼이므로 너는 이 명령을 꼭 지켜야 하고,이 약속이 꼭 이뤄질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선조들에게 ‘전능한 하느님 (엘 샤따이 EI-shaddai)’ 으로 나타났으나 ‘야훼’ 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알린 적은 없었다고 말씀하신다(6,3). 여기서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이 새롭게 계시되고,그 이름은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사건(이집트 탈출 사건)과 계약의 실현(가나안 땅의 소유)을 주도하시는 분을 드러낼 것이다(6.4). 이 대목에서 유난히 강조되는 것은 선조들과 맺은 ‘계약과 가나안 땅’ 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이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선음소리’를 듣고 계약의 당사자로서 계약을 기억하신다. 계약에 충실하선 그분은 모세를 당신의 심부름꾼으로 파견하여 당신의 뜻을 전하신다(6,5). 이때 모세는 특별한 카리스마가 없는 단순한 말 심부름꾼으로 묘사된다. 모세가 말씀을 전하는 우선 대상은 파라오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다. 야훼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하신다. 곧 당신께서 계약을 온전히 이루고자 하신다는 선포이다. 주어는 모두 ‘나’ 야훼다. “나는 … 너희를 빼내고 ... 너희를 구해 내겠다 ... 너희를 구원하겠다 .. (6,6).
그 뒤 야훼께서는 “그러고 나서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이집트의 강제 노동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6,7)는 새로운 약속을 덧붙이신다. 즉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과 야훼의 친밀하면서도 독특한 관계를 혼인과 부모 자작 관계에 빗대어 표현한다. 그러면서 이 관계의 근원을 이루는 시나이 계약의 핵심을 예시하는데,이는 19-40장에 걸쳐 나타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가 바로 이스라엘의 하느님임을 알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야훼께서는 계약에 따라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다(6,8).
모세가 이 기쁜 소식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대로 전했건만,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믿고 경배했던 종전의 태도(4,31)와 달리 믿기는커녕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쓴 맛을 톡톡히 맛본 그들은 희망과 기대보다 현실 세력의 위세를 실감나게 느끼는 터였다. 그 현실에 짓눌려 “그들의 기가 꺾이고 힘겨운 종살이에 시달린 탓이다(6,9). 그래서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계약을 기억하시는 하느님께서,그들의 힘이 아니라 당신 손수 그들의 멍에를 벗겨 주겠다는데도,그 말에 귀 기울일 일말의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모든 희망을 포기한,존재 전체가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세의 사명은 실패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변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다시 모세를 부르셔서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자기 땅에서 내보내라”고 전하라 이르신다(6,11). 여기서 처음으로 종교 축제 참여가 아닌,조건 없는 해방이 명확하게 언급된다(7,2). 그러나 모세는 이 사명을 거부한다. “보십시오,이스라엘 자손들도 제 말을 듣지 않았는데,어찌 파라오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합니다”(6,12). 여기서 ‘입이 안 떨어지다’ 는 표현을 직역하면 ‘저는 입술을 할례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로, 비슷한 표현이 성경 여러 곳에 나온다(마음의 할례-신명 10,16; 귀의 할레 - 예레 6,10). 이것은 그 신체 기관이 야훼의 뜻대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은유적 표현인데 그 이유는 생리적 요인보다 의지 때문이다. ‘할례 받지 않은 입술’이라는 의미도 단순히 말주변이 없는 상태라기보다 사명을 전하려 하지 않는 불순종의 뜻을 더 크게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불순종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에서 기인한 것이다.
어쩌면 이 불순종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에서 기인했을지 모른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지지와 뒷받침을 받지 못한 모세의 말을 파라오가 어떻게 들어 주겠냐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항변이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모세의 항변에 대응하여 어떤 위로나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신다. 단지 모세와 아론이 함께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라고 다시 명령하며 보내신다(6,13). 해방은 공동체가 함께 일궈가는 공동 과제다. 그 과정에 하느님께서 동행하셔서 그 일을 완성하신다.
* 6,14-27 모세와 아론의 족보
앞 절까지 주님과 모세는 소명을 놓고 대립 중이다. 모세의 거부와 주님의 명령 사이에 조금 생뚱맞게 족보가 소개된다. 후대의 사제계가 덧붙인 부분으로 추정한 이 대목은 야훼의 종으로 뽑힌 모세와 아론의 근원을 밝히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들이 갖는 권위와 정통성을 확인하거나 옹호하는 구실을 한다. 그중에서도 아론 사제직의 권위가 유달리 부각된다. 그래서 열두 지파 중 맏이 르우벤부터 시메온,레위 순서로 소개하다가(창세 49.3 이하 참조) 셋째인 레위 가문에서 그치고 나머지 가문은 생략한다. 레위 집안 중에서도 대사제인 아론 가문과 성전 성가대로 활동한 코라 가문이 부각된다. 모세는 본인 이름밖에 언급되지 않지만(아들 이름도 빠지고), 아론은 모세보다 앞서 ‘맏아들’ 로 소개되고 또 손자 피느하스까지 3대가 거론되는 등 특별히 조명된다.
족보의 뒷 부분은 이집트 탈출사건에서 모세와 아론이 한 역할을 다시 소개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부대로 편성하여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어라.” 하신 주님의 분부를 받은 이들이 바로 모세와 아론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려고 이집트 임금 파라오에게 말한 이들도 바로 모세와 아론이다”(6,26-27). 둘 다 주님의 분부를 받아 파라오에게 말한 당사자로 언급된다.
*6,28-7,7 모세가 소명을 받다
이야기의 흐름이 다시 주님과 모세의 대화로 돌아온다. 주님께서는 이집트 땅에서 모세를 불러 당선의 말씀을 파라오에게 전하라고 사명을 주시고(6,28-29),모세가 이를 거부하자 아론을 대변자로 세우며 이스라엘 백성을 끝끝내 해방시키겠다고 약속하신다(6,30-7,5). 사실 이 내용은 이미 앞에서(3,16-22; 4,10-17: 야훼계와 엘로힘계) 다룬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사제계 문헌). 그러나 본문의 흐름으로 보면 이 대목은 3장부터 이어져 오는 주님 하느님과 모세의 길고긴 대화,소명과 사명을 둘러싼 논의의 맺음말이다.
우선 이 대목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주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이 미디안 땅 광야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던 날”(6,28)이라는 사실이다. 그분께서 고난받는 당신 백성의 삶의 현장에 함께 계시다는 것은 후대의 바빌론 유배민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바빌로니아에서도 당신 백성을 구해 주신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더불어 본문의 흐름상 지금 모세는 이집트에 와서 파라오와 협상에 실패하고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불신 받는 난처한 처지에 있다. 그는 협상의 실패를 자기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한 데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자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저는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합니다. 어찌 파라오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6,30).
그러자 주님께서는 모세에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는 너를 파라오에게 하느님처럼 되게 하였다. 그리고 너희 형 아론은 너의 예언자가 될 것이다”(7,1).이 말은 모세가 신적 존재인 파라오 앞에서 신적 권위를 가지고 움직이며,하느님처럼 그의 말을 예언자를 통해 알리게 한다는 뜻이다. 모세의 권위는 여느 예언자의 권위를 능가한다. 여기서 형 아론이 모세의 말을 파라오에게 전하는 예언자로 지명된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세와 아론을 거쳐 파라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많은 ‘표징과 기적’ (7,3)을 일으키고 ‘큰 심판’ 을 내린 다음에야 이스라엘을 내보낼 뿐 아니라 당신이 누구신지 알게 하겠다고 이르신다. 여기서 말하는 ‘표징과 기적’ 이 아래에 차례로 나오는데,그 목적은 이스라엘의 해방보다 ‘이집트인들이 내가 주님임을 알게 (7,5)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3-5절은 사제계 본문으로 이집트를 탈출하는 세 단계를 소개한다. 3절은 재앙을 다루고, 4절은 맏아들의 죽음과 파스카를 다루며, 5절은 바다를 건너는 일을 다룬다. 이 일화에서 이집트인들은 결국 그분이 바로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여기서 어느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주님 하느님의 막강한 권능과, 그 분이 누구신가를 옳게 아는 것이 생명과 자유를 얻는 길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모세와 아론 역시 탁월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라기보다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는 그분의 도구임이 드러난다. 그들이 파라오에게 말할 때 모세가 80세라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 받았는가를 보여 주며,또 모세가 파라오와 협상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며 해방 사명을 수행할 정도로 지혜롭고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드러낸다. 또는 오경 저자가 모세의 생애를 상징수이자 완전수인 120년,곧 3세대로 잡아 40세에 이집트를 떠나(사도 7,23),80세에 하느님을 만나 사명을 받고,120세에 죽은(신명 34,7) 것으로 설정 했다고 풀이한다.
*7,8-13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주님을 모른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이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파라오에게 가면,파라오는 그의 배후에 신이 있음을 입증할 기적을 보이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때 모세가 아론에게 지팡이를 집어 파라오 앞으로 던지라고 명하면,그것이 큰 뱀이 되리라고 주님께서 이르신다. 사태는 주님의 말씀대로 진행된다.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에게 가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 아론이 자기 지팡이를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앞으로 던지자, 그것이 큰 뱀이 되었다”(7,10). 아론이 지팡이를 던져 큰 뱀이 되게 하자 이집트의 요술사들도 같은 재주를 부렸다. 모세와 파라오가 동등한 위치에서 신적 존재처럼 명령을 내리면,아론과 이집트 요술사는 그들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보조자로 나선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 권능의 도구인 아론의 지팡이와 이집트 요술사의 지팡이의 진위와 우열은 금방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들을삼켜 버렸다”(7,12).
이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 드러나는 주님의 능력이 마침내 파라오의 힘을 누르고 그의 억압을 끝내리라는 승리가 예고된 셈이다. 이후에 소개되는 재앙 기사는 이 내용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그럼에도 파라오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고집을 버리지 않고 모세의 말
을 듣지 않았다(7,13). 그동안 갖가지 인간의 지혜로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던 파라오는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어리석고 우둔한 통치자로 판명될 것이다. 그로 인해 야기된 손실과 고통은 이집트 사회 전체가 함께 지게 될 것이다. 통치자가 표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7,14-25 첫 재앙: 물이 피로 변하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행동 지침을 자세하게 일러 주신다. 파라오가 아침에 물가로 나갈 터이니 나일 강가에 서 있다가 그를 만나,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나일 강물을 쳐(때리다) 피로 변하게 하리라는 경고를 전하라고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너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보아라, 내 손에 있는 이 지팡이로 나일 강 물을 치겠다. 그러면 물이 피로 변할 것이다”(7,17).
주님께서 명하선 대로 그(모세/아론)가 지팡이로 강물을 치니) 강의 물고기가 죽고 악취가 나서,나일 강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도 이집트 요술사들은 그와 똑같이 하였다(7,22). 이집트의 요술사가 부린 재주는 재앙을 한층 악화시킨 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본 파라오는 마음이 완고해져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이 일도 마음에 두지 않은 채 궁궐로 돌아가 버렸다(7,22-23).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자칭 주님라는 신의 한낱 ‘요술사’에 불과한 자들로 여겼을지 모른다.
첫째 재앙의 목적은 주님이 힘 있는 주님이심을 파라오에게 알리려는 데 있었는데(7,17),사실상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일 강을 일차 대상으로 한 점에서 중요하다. 고대 근동 문헌에서 피같이 붉은 물은 임박한 재앙의 전조로 여겨졌다. 여기서 드러난 재앙의 결과는 두드러지지 않지만,이것을 표징으로 볼 때 물과 ‘피’ 는 모두 생명과 죽음으로 이어진다. 요즈음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 세계의 물 문제도 생물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주요 지표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떠한 표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 7,26-8,11 둘째 재앙: 개구리 소동
둘째 표징이 나타나고 “이레”가 지난 뒤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신다. 거룩하고 충만한 수 7일이라는 경과 기간이 의미심장하다. 이 대목의 시작은 둘째 표징과 같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요구하고 파라오가 허락하지 않을 때 “네가 만일 내보내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개구리 떼로 너의 온 영토를 치겠다”(7,27)고 말씀하신다. 이때의 ‘치겠다’는 말은 재앙을 내리겠다는 말이다. ‘재앙’이란 단어는 하느님께서 죄인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릴 때 주로 쓰이는데,여기서 나온 동사 ‘치다’(나가프)도 탈출기에서 열째 재앙을 가리킬 때 쓰일 정도로 심한 처벌을 뜻한다. 사실 개구리 소동은 사람에게 혐오감을 줄 뿐, 신체나 재산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듯 심각한 의미를 갖는 동사를 사용한 것은 장차 올 치명적인 재앙을 예고하며 이 표징을 유의해서 새기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표징은 “너(파라오)에게,네 백성에게,너의 모든 신하들에게" (7,29),즉 이집트를 구성하는 세 계급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또 표징이 미치는 범위가 “궁궐,침상 위,집,화덕과 반죽 통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7,28) 등 이집트인들의 생활 전반으로 넓혀진다. 즉 주님 하느님의 권능이 그들의 삶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것을 살피고 식별하라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또 한 번 내린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에게, 지팡이를 든 손을 강과 운하와 늪 위로 뻗어, 개구리들을 이집트 땅 위로 올라오게 하라고 말하여라”(8,1). 아무 예고 없이 아론에게 지팡이 든 손을 뻗어 이집트 땅 위로 개구리들이 올라오게 한다(8,1-2). 아론이 그대로 시행하니 사태도 그렇게 전개되었다. 이번에도 이집트의 요술사들이 같은 재주를 부렸다. 하지만 그들의 재주 역시 둘째 표정처럼 재앙만 키웠을 뿐 개구리를 물러가게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파라오는 처음으로 모세와 아론를 불러 요청한다. “너희는 주님께 기도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들을 물리쳐 다오. 그러면 내가 너희 백성을 내보내어,주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해 주겠다"(8,4). 전과 크게 달라진 태도지만,많은 속셈을 감춘 교묘한 언변이다. 모세가 주님께 기도하자, 주님께서는 그가 “청한 대로” 해 주셨다(8,9). 개구리가 모두 죽었고 땅이 악취를 풍겼다. 그러나 파라오는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모세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았다(8.9-11). 파라오는 아직 주님을 알 준비도,마음을 열 자세도 안 되어 있다. 나일강 유역에는 개구리가 흔했다. 개구리 여신 헥트는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든 크눔 신의 배우자로서 그 일을 돕는 여신으로 섬김을 받았다. 개구리 표징 역시 이집트의 신들을 조롱하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을 것이다.
*8,12-15 셋째 재앙: 모기 소동
셋째 재앙인 모기 소동은 파라오와의 협상이나 사전 경고 없이 곧바로 주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여 아론이 땅의 먼지를 쳐 재앙을 일으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에게, 지팡이를 뻗어 땅의 먼지를 쳐서, 그것을 이집트 온 땅에서 모기로 변하게 하라고 말하여라”(8,12).
구약성경에서 땅의 먼지는 죽어 사라지는 인간 존재의 사멸성과 허약함을 상징하고(창세 2,7: 욥 17,16: 시편 22,16: 코헬 3,20).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나타낸다(창세 13.16 참조). “이집트 온 나라에서 땅의 먼지가 모기로 변하였다”(8,13)는 구절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모기떼가 새까맣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이집트 땅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표정의 영향이 매우 광범위함을 강조하는 표현인 것이다. 이 표정에서 부각되는 요소는 이집트 요술사들의 실패이다. 드디어 이집트 요술의 한계가 폭로된다. 그들은 파라오에게 이것은 하느님의 손가락(에츠바 엘로힘)이 하신 일입니다 (8,15)라고 진언한다. “요술사들이 파라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마음이 완고해져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8,15). 이집트 요술사들은 자기들도 어찌할 수 없는 놀라운 신의 권위와 권능이 드러났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럼에도 파라오의 마음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8,15) 정도로 완고하였다. 자기 외의 또 다른 세력의 실체를 인정하거나 그 세력과 협상하길 거부하는 파라오는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무시한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닫힌 파라오는 신하인 요술사의 진언도 듣지 않아 점점 그들과 멀어져 고립되어 간다.
* 8,16-28 넷째 재앙: 등에 소동
주님께서 모세를 불러 파라오를 만나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요구하고,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집트 전체에(‘너와 네 신하들과 백성들" 8,17) 등에 소동이 날 것을 경고한다. 여기서 새롭게 대두된 주제는 표징의 실현이 ‘내일’ 일어난다고 미리 예고하는 점과(8,19)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고센 땅과 이집트인들의 땅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나 주님이 이 땅(이집트 땅 또는 세상)에 있음을 네가 알게 하려는" (8,18) 데 있다. 즉 이 기적이 우연히 생긴 재앙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그 범위를 조정하며 그 뜻을 명확히 일러 주는 ‘표징’(8,19)임을 밝힌다. 나아가 이스라엘이 이 기적을 체험한 뒤 모세를 믿고 따를 수 있게 하려는 데에도 그 숨은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이스라엘은 진정 누구의 백성인가,곧 파라오의 백성인가 주님의 백성인가 그 정체를 분명히 밝히려는 목적도 있다.
등에는 파리와 비슷한 모양이나 좀 더 큰 곤충이다. “주님께서는 그대로 하셨다. 엄청난 등에 떼가 파라오의 궁궐과 그 신하들의 집으로 날아들었다. 이집트 온 나라의 땅이 등에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8,20). 등에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나 온 땅을 폐허로 만들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않지만 견디기 힘들 정도의 삶을 보여준다.
파라오는 다시 모세와 아론을 불러 타협안을 내놓는다. 그는 “가거라. 그러나 이 땅 안에서 너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려라”(8,21)고 단서를 붙인다. 모세는 이 조건을 거부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주님께 제사를 드릴 때 이집트인들이 역겨워하는 것을 바쳐야 하는데,그렇게 하다가 이집트인들의 손에 죽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에게는 숫양, 숫염소, 소 등이 거룩한 짐승으로 여져졌기 때문에 제물로 바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모세가 반대하자 파라오는 다시 한 걸음 양보한다. 광야로 나가는 것까지는 허용하되 사흘 길을 갈 만큼 “너무 멀리 가서는 안 된다" (8,24)고 조건을 붙인다. 그러면서 또 다시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한다. 한 번 속았던 모세는 그럼에도 주님께 기도할 것이며,내일이면 등에 떼가 물러날 것이라고 말한다(8,25-26). 그분께서 재앙을 온전히 통제하신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이번에도 “주님께서 모세가 말한 대로 해 주셨다”(8,27). 그분은 등에 떼가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응답하신다. 그러나 파라오는 마음이 완강해져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다(8,28). 표징을 무시하고 공약公約을 헌신짝 버리듯이 외면하는 파라오는 이제 더 큰 재앙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9,1-7 다섯째 재앙: 가축병
이제 생명체가 죽어가는 한층 심한 재앙이 뒤따른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파라오에게 경고하고 미리 알려준 때(“내일")에 재앙은 발생한다. 이번에는 “주님의 손”이 직접 이집트인들의 집짐승 위에 임할 때,그 짐승들은 ‘지독한 흑사병’으로 죽는다(9,3). 이집트의 집짐승이 ‘모두’ 죽은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주님이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이룰 것이다.’하시며 때를 정하셨다”(9,5). 피해가 심각하고 재앙의 때를 정하며,이스라엘의 집짐승이 “한 마리도 죽지 않은” 것에서 이 재앙 역시 주님께서 하신 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파라오는 전과 달리 “사람을 보내어,이스라엘의 집짐승이 한 마리도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지만”(9,7) 모세와 협상을 하지도 않고,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도 않았다. 진실을 확인하고도 여전히 자신의 이해관계에 연연하여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꺾지 않은 파라오의 완강함은,자신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죄로 인해 무고한 집짐승들이 죽음을 당한 것이다.
* 9,8-12 여섯째 재앙: 종기
이 대목에서 주님께서는 파라오에게 미리 경고하라고 이르거나 ‘내 백성을 내보내라’ 고 요구하지도 않으신다.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마에 있는 그을음을 두 손 가득히 쥐어라. 그리고 모세가 그것을 파라오 앞에서 공중으로 뿌려라”(9,8). 이집트에서 종기 같은 피부병은 흔했으며(신명 28,27) 고대 사람들은 먼지 때문에 종기가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에,모세는 그을음 먼지를 뿌린 것이다. 종기는 동물뿐 아니라 처음으로 사람,그것도 모든 이집트인의 몸에만 피해를 입혀 앞의 재앙보다 한층 심한 양상을 보인다. 이번에는 이집트 요술사들도 완전히 두 손 든다. 그들도 종기 때문에 모세 앞에 나오지 못한 것이다(9.11). 파라오의 대리자격인 이집트 요술사가 완전히 무력해져 사라진 뒤 모세의 대리자격인 아론 역시 사라진다.
이제 핵심 인물인 모세와 파라오,주님만이 남는다. 그리고 “나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이집트 땅에서 표징과 기적을 많이 일으키겠다”(7,3)고 하신 주님께서 예고하신 대로,이 대목부터 파라오가 자기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다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으로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였다”(9,12)고 명기된다.
* 9,13-35 일곱째 재앙: 우박
이 표징 기사는 앞의 이야기보다 무척 길고 자세하다. 절정으로 가면서 새로운 요소들을 덧붙여 기사의 내용을 풍부하게 꾸민 것이다.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파라오에게 당신 백성을 내보내라고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 이 시간에, 이집트가 생긴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는 엄청난 우박을 쏟아붓겠다. 그러니 이제 사람을 보내어 너의 집짐승과 들에 있는 너의 모든 것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라. 미처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들에 남은 사람이나 짐승은 모두 우박에 맞아 죽을 것이다”(9,18-19).
내일 이 시간에 유례없이 지독한 우박이 내린다고 예고된다. 덧붙여 이제껏 제시되지 않았던 재앙 대비책이 소개된다. 이에 따라 파라오의 신하들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한 자”들과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은 자”들은 각기 다르게 행동하여,‘삶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맞는다. 이는 이집트의 견고한 관료 조직에 생긴 틈새를 보여 준다. 파라오를 중심으로 한 이집트 국가 조직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하늘로 뻗자 우레와 함께 우박이 쏟아졌다(9,23). 우박은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이스라엘(시편 18,13: 78,47; 이사30,30)과 외국(이사 28,2.17: 하까 2,17)에 내리는 하느님의 처벌 수단이다. 여기서도 우박은 “이집트 온 땅에” “모든 것을” 치고 “모조리” 부서뜨릴 만큼 심하게 내려 사람과 동물뿐 아니라 나무, 풀,곡물 등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심판이 가중되고 있음을 보이는 표정으로 기능한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아 이집트 땅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모습을 보인다(9,25-26). 이때 이집트인들의 소유 중에 집에 있던 가축들과 이삭이 패지 않은 밀과 귀리(9.32)는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이는 열째 재앙인 가축 맏배의 죽음과 여덟째 재앙인 메뚜기 소동에 쓰기 위해 남겨 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태가 이쯤 되자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자기의 죄’ 를 처음으로 고백한다. “파라오는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다 말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죄를 지었다. 주님께서는 옳으시고 나와 내 백성은 그르다. 주님께 기도해 다오. 우레와 우박이 너무 심하구나. 내가 너희를 내보내겠다.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9,27-28).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파라오의 백성이 아니라 주님의 백성임을 자인한 셈이다. 파라오는 세 번째로 주님께 기도해 달라고 청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겠다고 약속한다. 모세는 주님께 손을 뻗쳐(기도하여) 우박과 우레를 멈추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이 주님께 속한다는 것” 을 알리려 함이지 파라오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파라오의 속셈을 꿰뚫고 있었다. “그래도 임금님과 임금님의 신하들이 아직 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9,30). 모세가 기도하여 우레와 우박과 비가 그치자 파라오는 “다시 죄를 지었다”(9,34).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신하들과 함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죄’ 로 드러난 것이다(9,35).
* 10,1-20 여덟째 재앙: 메뚜기 소동
이 대목 역시 주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데,첫머리와 끝머리에 모두 주님께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었다고 밝힌다(10,1.20).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파라오에게 가거라.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만든 것은 나다. 그것은 그들 한가운데에 나의 이 표징들을 일으키려는 것이고, 내가 이집트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어떤 표징들을 이루었는지 네가 너의 아들과 너의 손자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며, 내가 주님임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10,1-2). 여기서 새롭게 제시되는 내용은 표징을 계속 일으키는 이유이다. 그것이 이제까지 ‘파라오로 하여금 주님을 알게 하려는 것’ 으로 나왔는데,이제는 모세가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의 업적과 기적을 대대로 이야기해 주고 그분이야말로 주님임을 알게 하려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 구절에서 후손 교육에 크게 관심을 가진 신명기 학파의 손길을 보는 견해가 있다. 신명 6,20-25: 여호 4,21-24 참조). 갖가지 표정이 이스라엘의 집단 기억 속에 새겨져 미래의 후손에게 전해지게 된다(파스카 예식 참조).
이어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요구하며,그렇지 않으면 내일 메뚜기 떼로 이집트 땅이 보이지 않게 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또 너의 궁궐과 네 모든 신하의 집과 모든 이집트인의 집이 메뚜기로 가득 찰 것이다. 이는 너의 아버지와 너의 조상들이 이 땅에서 살기 시작한 날부터 오늘까지 일찍이 보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10,6). 주님께서 마음을 완강하게 만들었던 파라오의 신하들이 처음으로 태도를 바꾸어 일제히 파라오에게 압력을 가한 사실이다. 이미 우박 재앙을 겪은 그들이 메뚜기 떼 재앙 예고를 듣고는 모두 들고 일어선다. 신하들의 반기가 일어난 것이다. “파라오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저자가 언제까지 우리에게 올가미가 되도록 내버려 두시렵니까? 저자들을 내보내시어 주 그들의 하느님께 예배드리게 하십시오. 이집트가 망한 것을 아직도 모르십니까?”(10,7). 주님의 말씀이 참으로 이루어짐을 체험하면서 이집트의 관료 조직과 왕권 사이에 큰 균열이 생긴다.
안팎으로 압력을 받은 파라오는 전과 달리 재앙이 닥치기 전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협상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의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다. “갈사람은 누구 누구냐?" (10,8). 모세 역시 분명하게 이스라엘의 남녀노소는 물론 가축까지 다 끌고 가겠다고 밝힌다. 대부분의 종교 예식에는 성인 남자만 참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고(23.17: 신명 16.16) .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제사에 남자 어른만 참석했다. 그런데 모세는 “주님의 축제”를 지내는데 남녀노소구별 없이 모든 백성이 참석할 것이라고 새로운 전통을 세운다.
그러나 파라오는 모세의 말을 의심하고 수용하지 않는다. “어림도 없다. 장정들이나 가서 주님께 예배드려라. 이것이 너희가 바라던 것이 아니냐?” 그들은 파라오 앞에서 쫓겨났다”(10,11). 그는 자기 기준에 따라 장정들의 예배는 허용하되 백성 전체를 내보낼 수는 없다고 외친다.
모세가 이집트 땅 위로 지팡이를 뻗자,셋바람(동풍)이 새까맣게 메뚜기 떼를 몰고 왔다(셋바람은 14,21에서 갈대 바닷물을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집트에 메뚜기 떼가 몰려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몰려와 ‘풀과 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먹어 버리는’ 현상은 특별했다. “그것들이 온 땅을 모두 덮어 땅이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우박이 남긴 땅의 풀과 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먹어 버렸다. 그리하여 이집트 온 땅에는 들의 풀이고 나무고 할 것 없이 푸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10,15).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서남 아시아,중국 등지에는 수억 마리가 넘는 메뚜기 떼가 날아와 lOOOkm2 이상의 땅을 뒤덮는 경우가 있다.
크나큰 피해를 당한 파라오는 서둘러 모세와 아론을 불러 자기의 죄’ 를 고백하며(두 번이나) 용서를 청한다. “그러자 파라오가 서둘러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하였다. “내가 주 너희 하느님과 너희에게 죄를 지었다. 그러니 이번만은 내 죄를 용서하고 주 너희 하느님께 기도하여, 이 치명적인 재앙을 내게서 거두어 주시게만 해 다오”(10,16-17).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께서는 하늬바람을 불게 하여 메뚜기 떼를 “한 마리도 남지 않도록” 모두 없애셨다(10,18-19). 그러나 주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서,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다.
* 10,21-29 아홉째 재앙: 어둠
열째 표징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모세를 통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로 손을 뻗어라. 그리하여 어둠이, 손으로 만져질 듯한 어둠이 이집트 땅을 덮게 하여라.’ 모세가 하늘로 손을 뻗자, 사흘 동안 짙은 어둠이 이집트 온 땅을 덮었다”(10,21).
이 표징은 4월에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심한 남풍 때문에 생긴 먼지와 모랫바람이 햇빛을 가려 어두워지는 자연 재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자연 현상을 넘어 창조 이전에 존재했던 어둠과 혼돈 상태로 보기도 한다(창세 1,2). 이집트에서 태양은 최고신이었고, 파라오는 지상에 세운 태양신의 후계자로 인식되었다. 태양신 숭배 예식은 파라오가 주관하는 가장 중요한 종교 행사였다. 따라서 어둠 재앙은 이집트의 최고신인 태양의 신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것으로,비할 데 없이 크신 주님의 권능을 드러낸다.
또 이집트의 우주 창조론과 연관하여 살피는 견해도 있다. 이집트에서 어둠을 상징하는 신은 뱀으로 표상된 아포피스인데, 그는 태양을 파괴하려고 끊임없이 공격한다고 믿었다. 해가 떠서 지는 과정은 곧 태양과 아포피스의 투쟁으로 간주되었다. 그렇기에 사흘간의 어둠은 아포피스가 태양신을 패배시킨 것으로,곧 혼돈과 악마의 세력이 승리했다는 뜻이기에 이집트인들에게 대단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는 해석이다.
파라오와 모세가 마지막 협상을 벌인다. “파라오가 모세를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가서 주님께 예배드려라. 다만 너희 양 떼와 소 떼만은 남겨 두어라. 어린것들은 너희와 함께 가도 좋다.’ 그러자 모세가 대답하였다. ‘임금님께서도, 주 저희 하느님께 저희가 바칠 희생 제물과 번제물을 내주셔야 하겠습니다”(10,24-25).
파라오는 조금씩 양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다 가지만 가축은 않된다고 한다. 그러나 모세는 절대 양보가 없다. 협상은 완전히 결렬되었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 파라오가 모세에게 말하였다. “나에게서 썩 물러가라.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 너는 죽을 것이다.”(10,28). 모세가 대답하였다. “말씀하신 대로, 저도 임금님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않겠습니다.” (10,29)라고 응대한다.
* 11,1-10 열째 재앙의 예고
아직 최악의 상황은 도래하지 않았다. 진짜 재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기다리고 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마지막 재앙을 예고하시며 그것을 겪은 뒤에야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쫓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파라오와 이집트에 한 가지 재앙을 더 내리겠다. 그런 다음에야 그가 너희를 이곳에서 내보낼 것이다.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아예 너희를 모조리 이곳에서 내쫓을 것이다”(11,1).
그때 이웃한 이집트인들에게 각종 은붙이와 금붙이를 요구하라고 떠날 채비를 일러 주신다. 이런 귀금속은 여행 중에 필요한 물품을 구할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이며,후에 성막과 금송아지 상을 제작할 때 사용된다. 이집트인들이 귀금속을 선뜻 내놓은 것은 여태까지 겪은 재앙 때문에 두려웠을 수도 있지만,탈출기 저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인들에게 호감을 사도록 하셨고,또 모세를 위대한 인물로 여기도록 세우셨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11,3).
즉 파라오의 신하와 이집트 백성은 이제껏 멸시하고 천대하던 히브리인들이 섬기는 주님 하느님의 놀라운 위력을 접하고,분명히 전과 다른 눈으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대했다는 뜻이다. 모세가 부각되는 반면, 위대했던 파라오가 감춰지는 아이러니가 빚어진다. 그런 면에서 주님을 알리는 표징과 기적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재앙을 선포하는 부분이 등장한다(11,4-8). “모세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한밤중에 이집트 가운데로 나아가겠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맷돌 앞에 앉은 여종의 맏아들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들이 모조리 죽을 것이다. 그러면 이집트 온 땅에서 이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큰 곡성이 터질 것이다”(11,4-6).
이 재앙은 주님께서 직접 수행하시며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여종의 맏아들까지” 신분에 관계없이 적용될 것이다. 그 규모 역시 큰 곡성”에서 드러나듯 전에 없이 엄청날 것이다. 또 이렇게 소란한 이집트와 달리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개조차 짖지” 않는(11,7) 고요함과 평화가 임하여,둘을 구분하시는 주님의 뜻과 표징을 드러낼 것이다. 모세의 마지막 말은 단호하다. “임금님의 신하들이 모두 내려와 저에게 엎드려,그대와 그대를 따르는 백성은 모두 떠나가 주시오.’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제야 저는 떠나가겠습니다. 모세는 노기에 차 파라오에게서 물러 나왔다”(11,8).
다시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11,9-10)은 당신께서 더 많은 기적을 이루게 하려고 파라오가 말을 듣지 않게 했다고 밝히신다. 모세와 아론이 모든 기적을 일으켰으나, 주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고 그간의 재앙기사를 요약 정리한다.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 앞에서 이 모든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자기 땅에서 내보내지 않았다”(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