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3월14일(日)雲雨
▲백두대간32차(덕산재-대덕산-삼도봉-삼봉산-신풍령)
해봉(51명)
♠참 고
▲대덕산[大德山]
위치 : 전북 무주군 무풍면(茂豊面)과 경북 김천시 대덕면(大德面)
높이 : 1,290 m
남서쪽의 삼봉산(三峰山:1,254 m) ·덕유산(德裕山:1,508 m), 북쪽의 민주지산 (岷周之山:1,242 m)등과 함께
백두대간상에 [소백산맥]에 솟아 있다.
차별침식을 받아 북서 ·남서쪽 기슭 일대에 황천(荒川) ·절단산각(切斷山脚) 등의 복잡한 지형이 있다.
또한 영 ·호남 지방의 분수령으로 금강의 지류인 무풍천과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 (甘川)이 각각 동서
사면에서 발원한다. 산 서쪽은 덕유산국립공원, 남동쪽은 가야산국립공원이 인접한다.
(출처: 두산 세계 대백과)
▲삼봉산(三峰山)---거창군 홈피
경남 거창 고제면, 무주 설천면
삼봉산(三峰山 1,254m)은 고제면 봉계리에 정상을 둔 거창의 진산(鎭山)이다.
덕유산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있는 덕유 원봉(元峰)이라 하는데 이는 곧 덕유의 맏형 되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산 고스락이 되는 봉우리는 세 개이며 그 중심 봉우리는 흡사 동구 앞 돌무지 탑 같고 먼 데서 바라보면 흡사
피어나는 연꽃 모습 같다.
갈천 임훈이 쓴 향적봉기에
「초점산에서 서쪽을 일으켜 세워 거창의 삼봉산이 되는 즉 이산이 덕유산의 첫 머리봉 이다.」
고 덕유산의 뿌리를 밝혔으며 신경준 의 산경표에도 「삼봉산에서 백운산까지가 모두 덕유이다」라고 했다.
곧 삼봉산은 덕유산맥이 시작되는 산이다.
조선조 태종 때 직강벼슬을 지낸 효자 허광은 척간루기에「거창은 경상남도 서쪽 끝에 있으며 북쪽으로 삼봉산
이 바라보이고 남쪽에 감악산이 눈에 든다」하였다.
이는 삼봉산이 거창과 서부경남의 진산으로 옛날 가뭄이 들면 삼봉산 금봉암에 있는 용머리 바위에서 기우제를
올리었다.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부를 만큼 산 경치가 빼어났다. 산기슭 좋은 터에 금봉암 (金鳳庵)이라는 절이 있다.
절과 산 모두가 나한도량(羅漢道場)이라 하여 기도처로 이름나 있다.
이 산은 불심(?心), 산심(産心), 무심(無心)의 삼심이 깃들고 금봉암을 둘러리한 바위무리들은 병풍처럼 둘려쳐
봉황의 산세를 이룬다. 칼바위, 장군바위, 석불바위, 부부봉, 문바위, 투구봉, 용바위, 노적봉, 칠성봉 들이 모두
셋씩 나란히 짝을 짓는다.
세 개의 영험스런 바위 샘물이 솟아나 목을 축일만한 데 모두 신령스럽고 영험스런 샘물이라고 하며 천지인
(天地人)을 우러른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인연이 깊다.
덕유산으로 달리는 큰 줄기에서 동쪽으로 내린 가지에는 시루봉이 솟아 있으며 남쪽 골짜기는 금(金)이 난다.
정상의 줄기에는 밑동이 큰 떡갈나무들이 주종을 이루며 특히 겨울의 눈꽃이 볼 만하다.
♣산행 코스
10시40분 덕산재
12시20분 대덕산
13시00분 삼도봉[초점산]
14시30분 소사고개
17시28분 신풍령
총6시간10분
☞☞☞ 당초 아침 7시에 시민회관 앞을 출발하기로 되어있는데
당일 백운산 산행 팀의 관광버스가 나오지 않아
집행부에서 혼돈이 생겨 30분을 지체, 일반 팀이 합류, 초만원이 되어
07시30분에 출발. 집행부 요원은 아예 통로에 앉아가야 했습니다.
대간종주 구간이 남쪽으로 많이 내려와 32차부터 남해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지난번 백두대간 종주 시 촬영한 비디오를 보며 진주I/C에서
새로 생긴, 뻥 뚫린 대진 고속도로로 빠져
09시, 산청휴게소에서 휴식하고
거창 나들목으로 빠져 춘전재를 넘고
거창읍을 지나 산행 기점인 눈에 익은
덕산에서 무주군 무풍면으로 넘는
주유소가 있는 덕산재는
10시35분에 도착합니다.
전라북도 경계간판에 무평과 무주군의 경계표시도 되어있는 덕산재.
소사고개에서 삼봉산으로 오르는 B팀 10여명은 그냥 앉아있고
나머지는 곧 하차, 인원파악과 상견례로
10시40분, 완만한 오름을 따라 출발합니다.
얼마가지 않아 등로는 잡목사이로 가팔라지고
간혹 어린 아들(초등학생)을 다리고 나오든 중년회원이
꺾어지는 길목에서 휴식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보겠네요.”
인사하니 그동안 다리를 다쳐
입원해 있었다고 합니다.
산죽 사이 길을 지나
11시37분, 우측으로 다시 꺾어지면서
흰머리 소년등 몇몇 대원이 휴식하는 걸
촬영하며 천천히 올라갑니다.
11시45분, 등로는 언 눈이 녹아 진탕인데다
미끄러운 비알을 올라가는데 무척 힘을 빼앗습니다.
좌우의 잡목과 산죽을 잡으며 올라가지만
잡을 곳이 없으면 미끄러질 때 마다
죽죽 힘이 빠집니다.
비탈진 진탕이라 앉아서 아이젠 차기도 불편해
용을 쓰며 심호흡하며
12시2분, 간신히 좌로 조망되는
가벼운 잘록이에 올라섭니다.
먼저 올라간 흰머리 소년등 몇몇 대원이
퍼질고 앉아 휴식을 취하지만
촬영하는 시간이 휴식인지라
이들을 촬영하고 정상을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깁니다.
눈이 쌓여있지만 진탕 아닌
완만한 오름이라 힘들지 않게 눈길을 거쳐
12시20분, 사방이 조망되는
널찍한 헬기장인
옛날 한 도인이 이 산에서 백일기도 후,
공덕을 쌓고 도가 통하였다고 하여
대덕산[大德山]
정상에 가볍게 올라섭니다.
정상비는 보이지 않고 가운데 큼직한 돌이 셋 있는데
그중 한 돌에다 ‘1290’이라고 쓰 놓았고
B/M 표지석에 ‘무풍 22‘라고 음각해 놓았습니다.
좌로 멀리 가야산과 수도산을 촬영하며
시계방향으로 돌아갑니다.
곧 찾아갈 민둥 봉우리 삼도봉,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하얀 눈으로 비탈져 있는 거대한 삼봉산,
그 뒤로 멀리 덕유산의 눈 덮인
향적봉과 무주리조트의 슬로프가
유달리 하얗게 보입니다.
몇몇 대원은 배낭을 벗어놓고
아예 신발까지 벗고 휴식을 취합니다.
잠시 목을 축이고 자그마한 정상비라도 세웠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겨놓고 삼도봉을 바라보며
완만한 억새 길을 가볍게 내려갑니다.
바위 잘록이에서
노장그룹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서남쪽이여서인가
눈이 없는 비교적 완만한 오름을 거쳐
13시, 삼도봉에 올라섭니다.
경상남북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지점이라는 또 다른 삼도봉.
마을 뒷동산 같은데
누런 잡초사이에 거창군에서 세운
‘초점산 4 삼도봉 1248,7m 無心’
이라고 음각한 작은 정상비가 이색적입니다.
그 주변에 많은 대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더욱 가깝게 닥아 선
하얗게 눈 덮인 우람한 삼봉산과
주변을 촬영하고 잠시 정상비에서
이진복, 김경애, 김성수대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처음으로 앉아 김밥으로 식사를 합니다.
남서쪽으로 돌아가니
꼬마가 아버지와 하산 준비를 하기에
“그동안 왜 안 나왔어?” 하니
V자를 그리며 웃기만 하고
그 아버지가
“병원에서 10월에 삔을 뽑으러 오라고 합니더.”
“그럼, 아직 삔을 안 뽑았어요?”
“네.”
깜짝 놀라
“네~ 대단합니다... 대단합니다.”
라며 감탄합니다.
나도 지난해 다리 골절로
거의 1년을 산행을 못했는데
보통 마음가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격려를 보냅니다.
13시20분, 신 대원이 B팀으로 빠져야겠다며
오늘 처음 나왔다는 허 대원과 하산 준비를 합니다.
완만한 내림을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가며
삼봉산은 몇 년 전에 ‘우리들의 산’과 산행하며 촬영했고,
대덕산을 올라 올 때 급비탈의
눈 녹은 진탕 길에서 너무 진을 뺏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기로 합니다.
양지쪽이여서인가 눈이 없는 등로,
쿠션이 좋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묘지에서 길을 잃어 두리번거리는데
먼저 내려갔든 스틱을 짚은 노장대원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되돌아올라 옵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입니다.
2,3분 되돌아 올라오니 노란 시그널이 보입니다.
그걸 못보고 그냥 내려간 것입니다.
14시10분, 비닐하우스 옆을 지나치는데
큼직한 배낭을 멘 백두대간 종주하는
두 젊은 산꾼이 느릿느릿 올라옵니다.
허 대원이 냉이를 캔다며 쳐지고
신 대원이 허 대원의 배낭을 앞에 메고 내려갑니다.
석물로 치장한 묘지에서 캠코더로
다시 줌으로 옆으로 길게 누워있는
삼봉산을 촬영하고 신 대원의 뒤를 따라갑니다.
또 다른 석물로 장식한 묘지군을 가로질러
콘크리트로 포장한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14시33분, 시그널 전시장처럼 메달아 놓은
소사[素砂]마을입구 소사고개에 당도합니다.
소사[素砂]라는 지명은 일년 내내 바람이 많이 불어
모래가 날아가 마을이 항상 깨끗해져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1089번 도로건너 대간 길은
왼쪽 고개로 약 100m 더 올라가야합니다.
마을 가계 앞에 버스가 주차해 있고
탁자위에 캔 맥주와 안주를 펼쳐놓고
B팀으로 간다든
구레나룻(이웅장) 장년회원을 비롯해
4,5명의 회원이 앉아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습니다.
구레나룻 장년에게 왜 산행을 안했느냐고
농으로 추궁하니 평소와 달리
목소리를 낮추어 했다며 얼버무립니다.
캔 맥주로 목을 축이고 후미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데 한 대원이
노장대원과 후미담당 하회탈 성호군이
이미 삼봉산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에
15시, 신 대원을 비롯한 10여명이 버스를 타고
소사고개를 떠납니다.
얼마를 달렸을까
버스 전면 창에 빗발이 간간히 떨어지고
신 대원과 짝지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디(입)’운운하며 농담이 오가며 폭소가 터집니다.
93년2월 ‘우리들의 山’산악회와
삼봉산 금봉암 코스를 산행했을 때,
들머리였든 봉산리 앞을 거쳐
15시28분, 가랑비를 맞으며
눈에 익은 신풍령[新風嶺]휴게소 도착.
임 대장이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마중해 줍니다.
신풍령[新風嶺]은 옛날, 부근에 사냥꾼과 도적들이 많아
그들이 잡아먹은 동물 뼈가 쌓여있어 뼈재,
경상도 사투리로 빼재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 이름을 한자로 옮기면서 빼어날 수(秀)자로 바뀌어
수령이라고도 하고
추풍령을 본 따 바람도 쉬어 넘는
새로운 고개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기도 합니다.
조 회장을 비롯한 일부 B팀은 이미 도착해 있고
동작 빠르게 신 대원이 휴게소에서
‘고로쇠’ 수액을 한말을 사서
큰 양푼에 부어놓고 대원들을 마시게 합니다.
식당 안은 식사와 술 파티로 번잡하고
빗줄기는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도로건너편에서
내려올 대원들을 촬영하기 위해
식당 밖으로 나옵니다.
15시40분, 한 부녀회원이 내려오기에
“수고했습니다!”
며 인사하니 내가 잘못 들었는가.
일본말로 응답합니다.
B팀의 막내 집행부 조 대원이
손을 흔들며 비탈을 내려, 도로를 건너오고
16시5분, A팀의 선두로
판초 우의를 뒤집어쓴 김명호 대원이 내려옵니다.
이제 비는 본격적으로 주룩주룩 내려
A팀으로 가지 않았음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빗줄기속에 촬영은커녕
장비를 제대로 보관 못해
비에 젖어 엉망이 되었을 것이라며...
뜻밖에 김 대원이 우산을 바쳐 들고 나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앞으로 3년 목표로
새로운 자격증 취득을 위해
집을 나와 독립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빗발은 더욱 굵어지고
골절로 핀을 꼽은 체 나왔다는 중년대원과
시차를 두고 꼬맹이가
캠코더를 의식했는지 활짝 웃으며 내려옵니다.
그리고 대야산,
‘길벗’의 최 대원이 내려오고...
끝으로 삼도봉에서 하산할 때
길을 잘못 들었든 스틱을 잡은
노장대원도 후미담당 김성수 대원과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마지막으로 내려온 것이
17시7분,
6시간10분의 산행이 끝납니다.
17시27분, 신풍령 출발.
비는 계속 내리고
구레나룻 장년회원이 떠들썩한
막가파 본색을 들어냅니다.
한데 17시43분, 삼거리에서
정차를 하는데 후미담당,
언제나 웃음의 하회탈 성호군이
마스크를 끼고 회원 셋과 승차를 합니다.
아~니, 소사고개에서 먼저 간줄 알았는데
하산중이였든 모양입니다.
소사고개에서 확인 안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차내는 다시 소란해지고
그의 걸쭉한 농담이 웃음을 유발한다지만
때로는 안하무인으로
어느 특정인의 인신매도도 썩여있어
오히려 장내분위기를 어색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바꿔보겠다고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보여주게 했으나
얼마가지 않아 동조하는 술꾼이 있어
다시 소란스러워집니다.
88고속도로를 거쳐 구마고속도로에 오르자
어지간히 지쳤는지,
언제 소란했냐는 듯이 모두 깊은 잠에 빠집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윈도브러시는 바쁘게 움직입니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겸손과 사랑,
평화를 알려주는데
교활한 인간은 그걸 얼마나 깨닫고 있는지...
버스는 어느듯 21시20분,
서부산 T/G를 빠져 나갑니다.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