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연재 2편이다. 1편이 나가고 건넷을 통해 항의성 글로 팔자에게 임진왜란이 너무 일방적으로 밀린 전쟁은 아니라고 반박들이 많으셨던 것 같은데 흥분치 마시고 기다려 보시길. 이번 연재물부터는 조선군의 대 반격에 대한 글을 올릴 예정이니....
조선군은 초기의 피터지는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아군과 적군 화기의 성능상의 우열과 전술상의 차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웃국인 명나라 등을 통해서 신무기의 도입이 급하다고 판단한 조선은 화승병기인 조총과 호준포, 불랑기, 삼안총, 백자총통 등을 개발하였다.
조선의 조총 (사진출저 : 육군박물관)
RPG-7 & 불랑기자포 (사진출저 : 육군박물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은 조총을 질적으로 개선하고 그 생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여 효종 6년(1655) 7월에는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하멜(Hamel) 일행을 서울로 압송하여 훈련도감에 배속시킨 후 신무기 기술을 전수하도록 조처하여, 하멜은 도감군과 같은 급료와 보포(保布)를 지급받으면서 새로운 조총의 제조에 참여하였다. (자세한 것은 하멜 표류기 한권 사서 읽어보시길). 이때 하멜 일행은 자신들이 소지했던 총을 모델로 하여 조총을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조총이 많이 생산되고 그에 기초하여 조총부대가 조직됨으로써 군대의 무장장비가 현저히 강화되어, 1655년 국경지역에 조총 6,499자루와 5,049명의 포수들이 배치되었던 것이다.
또, 왜병 포로를 조총과 화약제조장에 투입하는 것이 기술 습득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포로 중에서 흉폭하고 교활하여 다스리기 어려운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총, 염초 제조장에 투입하였다. 또한 고문을 통하여 제조 비밀을 말하지 않는 자는 처형하고 비밀을 토설하는 자는 귀화하도록 종용하였다.
다시 임진왜란으로 돌아가서....해전에서는 조선이 연전연승을 구가했는데, 이는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리더 이외에도 조선수군이 운용하던 거북선과 판옥선에 장착되어 있던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등 화포의 성능과 아울러 조선수군의 전투력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이들 총통의 특징은 대장군전, 장군전, 차대전등 대형화살을 사용하였으며, 조란탄(鳥卵彈)을 다수 발사하여 산탄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철제에 납(연의)을 입힌 조란탄 (사진출저 : 육군박물관)
일본수군이 중, 소형선박과 조총을 중심으로 하여 배의 현을 붙이고 백병전을 편 반면 조선수군은 대형 선박의 전후좌우에 장착된 각종 화포를 바탕으로 함포전을 위주로 하였고, 조선군이 사용한 화포는 일본군의 조총에 비해 사거리가 월등히 길었으므로 접근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한산도 대첩도
자, 그럼 여기서 일본 조총과 조선의 포의 사정거리를 한번 알아보자. 일본 조총의 최대사거리는 약 600m 정도이나 유효사거리는 50m 정도라는 것이 정설이다. 해전에서 접근 전으로 사격하는 것이 아니라면 30m 정도 교전하는 것을 기본으로 보았을 때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판옥선의 재질인 약 12㎝정도의 소나무 외판을 관통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았을까 한다.
조선군 판옥선의 모양
이에 반하여 조선군 화포는 아래 도표를 참조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화기명 |
길이(㎝) |
구경(㎜) |
사거리 (1보≒0.63m) |
천자총통 (天字銃筒) |
130~136 |
118~130 |
900보(567m) |
지자총통 (地字銃筒) |
89~89.5 |
105 |
800보(504m) |
현자총통 (玄字銃筒) |
79~83.8 |
60-75 |
800보(504m) |
황자총통 (黃字銃筒) |
50.4 |
40 |
1100보(693m) |
별황자총통 (別黃字銃筒) |
88.8~89.2 |
58~59 |
1100보(693m) |
파괴력과 사거리를 비교해보았을 때 많은 차이를 보인다. 물론 조총과 대포를 비교한다는 것이 기준이 다를 수 있겠으나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이 대포를 대량으로 생산하였다는 기록도 없으며, 임란 발발 당시에도 대량으로 운용되었다는 사례가 없으므로 소류하고 있었다고 해도 서양으로부터 무역을 통하여 소수만 도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임란을 통해서 종래의 궁시 위주에서 조총등 화약무기 위주로 병기가 개편되었으며, 이를 위해서 각종 화기의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또한 선조 31년(1598)에 선조가 명나라 제독 마귀(馬貴)에게 “조선의 포수들이 적을 많이 명중시켜 가상하나 다만 그 수가 적은 것이 한스럽다”고 하여 조선군들의 사격술이 매우 놀라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 그럼 이제 유럽 쪽으로 한번 건너가 보자. 총이란 것이 정확히 언제, 누구에 의해서 발명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7세기경에 중국 사람들이 화약을 처음 발명했고 13세기경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대포 비슷한 것이 등장한다. 이것이 중국의 변경이었던 아랍세계로 전해졌고 또 십자군 원정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진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이 대포야 말로 정작 그걸 처음 만들어낸 중국인들보다 훨씬 더 요긴한 물건이었을 것이고, 어느 잡지에서 1346년 크레시전투에서 유럽최초의 화약무기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사실 더 오래전에 대포의 용도로 사용된 무기들이 있다는 것은 문헌에도 여러 개가 나온다. 최초의 대포로는 아마도 아랍인들의 '마드파(madfaa)'라는 것이 아닐까 추측되는데, 속이 깊은 나무통 안에 화약이 담겨 있는 것으로 포탄은 포신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 아니라 포구 위에얹혀 졌으며 화약의 폭발력에 의해 펑 하고 발사되었다.
이때의 포탄은 지금처럼 파편이 터져 반경 살상하는 용도가 아닌 단단한 돌덩어리를 날리는 용도였으며 화약의 힘에 돌이견디질 못해 강철로 원구를 만드는 것을 고민했다고 한다. 초대형 비비탄 쯤에 해당하는 물건이다. 원시적인 물건이지만 이걸 정통으로 맞는 사람 입장에서는 환장할 만한 노릇이었을거다.
포탄이 원형으로 만들어졌던 것은 중세인들도 어렴풋이 탄두의 진행과 공기의 저항 등을 따졌을 때 가장 이상적인 것은 현재의 BB탄처럼 원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랍인들의 아이디어는 20세기에 들어 게임용 아이템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1326년의 문헌에 남아 있는 최초의 대포 중의 하나인 프랑스어로 '강철 항아리'라는 의미인 포 드 페르(pot de fer)혹은 바조(vaso)는 보다 발전된 형태로 구경이 좁고 쇠로 만들어진 대포였다. 긴 받침대에 얹혀있고, 화약이 포신안쪽에 채워 넣어졌고, 쇠로 된 대포알은 금속의 깃이 달린 대형 화살모양의 물건으로 가죽으로 감싸 포신 안으로 쑤셔 넣어졌다. 이 포신의 바닥 근처에는 작은 점화구가 있었고, 불로 붉게 달군 철사를 찔러 넣어 화약을 폭발시키는 점화선 역할을 하였다.
포 드 페르
따라서 ‘대포’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포 드 페르'가 그 시초라고 하겠다. '포 드 페르'는 단순하게 원통모양이었는데, 한쪽 끝은 막혀 있었고 지름 1인치 정도의 돌멩이나 납 포탄을 발사하였다. 또한 '포 드 페르'는 대포를 받쳐 둘 수 있는 포좌를 따로 두지 않고 땅바닥 위에 놓아두고, 포구 밑에 흙더미를 쌓아 두어서 포구를 위로 약간 치켜들어 조준할 수 있도록 하였다.
1346년에 일어난 크레시(Crecy) 전투는 백년전쟁 초기, 프랑스군이 대패한 전투로써 1346년 노르망디에 상륙한 영국왕 에드워드 3세와 에드워드 흑태자(黑太子)의 군대가 칸을 공략한 후에 플랑드르를 향하여 진격하였다. 이때의 병력 약 9,000명이었다. 프랑스왕 필리프 6세는 수 배의 대군을 거느리고 이를 추격하였으나 센강 ·솜강의 도하점에서 잡는 데 실패하고 8월 26일 오히려 크레시(아미앵 북서 약 50 km)언덕 위에 포진한 영국군에게 요격을 당하였다. 장궁(長弓)부대와 말에서 내린 기병으로 이루어진 영국군의 작전이 프랑스군이 자랑하는 노병(弩兵)부대와 철기부대를 혼란시켜 프랑스군은 대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영국 군대가 대포를 사용하였을 때에 프랑스 기사들은 ‘비겁하고’, ‘잔인한’ 악마의 무기라며 분노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초창기 시절의 대포들이 내는 소음은 굉장했지만 포탄들이 지니는 효력이란, 이 시대의 기사들이 입고 있는 판금 갑옷을 뚫지 못하였으며 설사 한방 얻어맞더라도 사람 주먹에 한대 맞은 것처럼 움푹 들어가지도 않았다.
중세기사들의 판금갑옷
이러한 딱총은 무기로서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역시 질량과 힘은 서로 비례한다는 것을 알게 된중세인들은 총의 '덩치 키우기' 경쟁을 하게 되는데....
<3편에 계속>
첫댓글 갑자기 중학교 때에 배운 최무선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