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길에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다. 햇살이 더없이 따뜻해 보였다. 그래서 느긋한 마음으로 가볍게 산책을 나선 것인데 예상 밖의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했다. 재킷의 모자를 눌러쓰고, 여 불로 넣어온 장갑도 꺼내어 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고 내심 기대를 걸었던 것인데 역시나 적중했다. 이곳 고색동 중보공원에는 야외 공연장을 비롯하여 축구, 배구, 농구, 풋살, 테니스 등 여러 경기를 할 수 있는 구장들이 마련되어 있다. 개방된 곳이기 때문에 몇몇이 놀이를 즐길 수도 있고, 전문가의 지도를 받는 교육장 내지는 단체 시합장으로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이날도 지도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함성을 지르며 훈련에 여념이 없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구장에서는 추위도 아랑곳 않고 응원까지 펼치며 축구경기를 하고 있었다.
중보공원, 축구 꿈나무들의 훈련현장에서_1
마침 잘됐다는 생각에 그들과 함께 구경을 하기로 했다. 부모들은 저마다 소리치며 응원단이 되었고, 보아하니 예사롭지가 않았다. 사십대 아버지로 보이는 한분에게 무슨 시합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경수유소년축구클럽'과 '용인유소년축구클럽'이 친선경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원 팀과 용인 팀의 대결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아쉽게도 유니폼 색상이 서로 비슷하여 구별하기가 어려웠지만, 밀고 밀리며 양 팀 모두 실력이 막상막하인 것으로 보였다. 꼴이 들어갈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오고, 그럴 때마다 꼴을 넣은 쪽의 부모들은 밝게 웃으며 손뼉을 치기도 하고 손을 번쩍 들어 환호했다.
보고 있노라니 아기자기한 가운데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성인 축구와는 또 다른 세계의 매력 덩어리들만 같았다. 탄성과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린 꼬마들의 경기라고 하여 전에 보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공을 주고받으며 연결하거나 몰고 나가는 발재간들이 마치 묘기를 보는 것 같았다. 작은 몸동작들 하나하나가 귀엽게 잘 다듬어낸 공예작품들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 '축구도 예술이다'라는 말이 정녕 이런데서 나왔으리라 싶었다.
중보공원, 축구 꿈나무들의 훈련현장에서_2
공을 따라다니며 죽어라하고 열심히 뛰기만 할 뿐, 공 맛도 제대로 한번 못 본채 경기를 끝내야 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가을걷이가 끝나고 마을 앞 빈 논에서 볏짚을 둥글게 뭉쳐 새끼줄로 감아 축구를 하기도 했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지, 밤이 되는 것도 모르고 놀았던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쯤 되고 보면 누구나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 아니었을까. 나는 사십대의 그 아버지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울 계획이냐고, 하지만 그의 대답은 아들이 좋아하여 시키고 있지만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하겠다며 소질이 보이면 본인의 뜻대로 해주겠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중보공원, 축구 꿈나무들의 훈련현장에서_3
경기는 '경수유소년클럽'의 승리로 끝났다. 경수유소년클럽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일곱 살 이하의 어린이들로 구성되었으며 장안구에서 왔다고 했다. 오늘처럼 수시로 지역 팀들과 친선경기를 한다며 이정도 실력이면 전국순위 십위에서 이십 위권에 든다며 은근히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이렇듯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나 그 부모라면 아마 박지성 선수를 한번쯤 본보기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어디에 살아도 그렇겠지만 우리 수원에 살고 보면 더 가까이 클 것 같았다.
중보공원, 축구 꿈나무들의 훈련현장에서_4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 6학년 때는 세류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전국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박지성, 차범근 축구대상을 받기도 했다고 하지 않은가. 어려서는 키가 작고 왜소하여 수원공고 시절에는 기본훈련만 시킬 정도였다고도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는 몸에 좋다는 약과 보양식으로 박지성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고, 일 년 사이에 키가 무려 12센티미터나 자랐다고 하는 것은 귀감이 아닐 수 없다.
7세 이하의 유소년축구를 이렇게 가까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재간동이들의 무궁한 희망을 보는 것 같았고, 제2의 박지성 선수가 아닌 그 이상의 훌륭한 선수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이 오면 여기 중보공원도 축구성지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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