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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인심(人心)매매의 주범>의 줄거리:
인심(人心)매매의 주범
(롬15:14~21)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인심(人心)매매의 주범>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아직도 인신매매가 전 세계 곳곳에서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 종종 보도되고 있습니다.
오늘 제목은 마음 심(心)자를 써서 인심매매입니다, 그런데 인심매매라는 말은 잘 쓰지 않죠.
지난 8월 5일 방송에서 뉴스로 접한 내용인데, 중국 서북부의 산시 성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자기 병원에서 출산한 아이 중에 한 아이를 팔아넘겨버린 것입니다.
이 사실이 공안당국에 알려지면서 그 아이를 찾게 되었다는 다행스런 소식이 보도되었는데, 그 내막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23세의 둥씨 산모가 아기를 낳았어요, 그런데 이 가족에게 산부인과의사인 장씨가 뭐라고 했는가 하면, 이 신생아가 선천적인 질병을 안고 있는데 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족에게도 아이에게도 별로 좋지를 않다고 해서, 아기포기각서를 쓰게 합니다.
그 말에 속아서 아기포기각서를 쓰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서 공안당국에 신고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7월 20일에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었는데, 이 접수를 받은 공안당국이 수사를 개시했을 때는 이미 아가는 산시 성에서 395만원에 팔려서 인신매매 조직으로 넘어가버렸어요.
산부인과의사가 395만원을 받고 아기를 팔아버린 겁니다.
그런데 공안당국이 추적을 해보니 이 아기는 또 다른 인신매매 조직들을 거쳐서 550만 원가량에 팔려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공안당국이 이 아기를 되찾기 위해서 무려 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매매경로를 추적해서, 결국은 허난성 안양시에서 극적으로 이 아기를 되찾게 되었다는 낭보가 뉴스로 방영되었습니다.
아, 3천 킬로미터면 굉장하지 않아요? 신의주에서 부산까지 기껏 해봐야 830여 킬로미터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3천 킬로미터면 한반도 전체 길이의 네 배 가까이 되는 그런 멀고 먼 거리인 거지요.
어쨌든 아직도 중국에서는 이렇게 인신매매가 성행하는 모양입니다, 천인공노할 일 아닙니까?
보통 한 자녀 정책과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둘 셋을 낳게 되니까 그 둘 셋을 파는 경우가 생기는 모양이에요.
참 불행한 일이지요, 그래서 여자아이는 5백만 원에서 9백만 원까지, 남자아이는 천이백 만에서 천사백만 원까지 매매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천인공노할 인신매매를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인심(人心)매매의 과정을 통해서만 생겨날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마음을 사는 것이고 마음을 파는 것입니다.
마음을 사고파는 과정을 통해서 신앙이 내게도 또 이웃에게도 생겨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인심매매의 주범이 돼야 되는 것, 이게 바로 신앙인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이유라는 겁니다.
어떡하든지 우리는 인심매매를 해야 되요, 인심매매를. 인심매매범들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은 어떻게 이 사람의 마음을 팔아먹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된다는 얘기에요.
이 팔아먹는다는 얘기가 신앙과 어떻게 연관이 되느냐?
여러분, 우리가 ‘구속받았다’고 할 때의 속함을 받았다는 말이 속량을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속량이라는 것은 노예상태에 있는 사람을 돈 주고 사서 노예상태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걸 말합니다.
그러므로 전혀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죠.
자, 그러면 왜 우리가 인심매매범이 돼야 된다는 이야기를 오늘 아침에 하고 있는 겁니까?
오늘 본문에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사도가 자기의 속내를 드러냅니다, 왜 로마서를 썼는가를 밝힌다는 것입니다.
자기 사명을 연장시키려는 동기를 가지고 로마서를 썼다는 겁니다.
여기서 사명이란 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조금 눈에 띄게 기록을 합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전파자로 세움을 받은 것이 그의 사명인데, ‘이방인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제물로 이방인들을 드리기 위해서 자기는 복음의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로마서를 쓴 이유도 이 로마서를 읽는 로마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되게 하려는 데에 있다는 얘기에요.
다시 말하면 사람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자기가 복음의 제사장이 되었고, 그 복음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연장선상에서 로마서를 썼으므로, 로마서를 쓴 이유는 ‘이 로마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을 내가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한 것이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사람을 제물로 드릴 것인가?
구약에서 제물로 드린다는 것, 가장 대표적인 게 번제 아닙니까?
이 번제의 제물이 된다는 것은 죽여서 각을 떠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뼈와 내장과 살과 모든 걸 다 태워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제물로 드린다는 얘기겠습니까?
복음의 제사장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지 않는 말입니다.
이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서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방법은 인심매매의 주범이 된다는 의미고, 어떻게 인심매매를 하는가 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값으로 지불하고, 즉 십자가 예수님으로 번제를 드리게 해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다는 얘깁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값을 지불하고 그래서 마음을 사오는 겁니다.
마음을 사서 하나님께 넘겨버리는 거예요, 인심매매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의 십자가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주님을 제시해놓고, ‘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 너 대신 죽은 것이고 네가 죽은 것이다’라고 일깨워줍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 내가 죽은 것이구나! 함으로 동일시하게 됩니다.
이게 구약의 제사법과 똑같은 거예요.
양을 번제로 드리고 송아지를 번제로 드리면서 각이 떠져서 활활 불에 타서 재가 되어가고 있는 그 제물을 나와 동일시하는 겁니다.
‘나의 죄가 뼛속까지 속속들이 스며들어있기 때문에 이렇게 각을 떠서 넓게 펼쳐진 상태에서 제단에서 불 타 죽어야 된다.’
저 불에 타 죽는 소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게 바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내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에요.
똑같은 거죠, 양과 소 대신에 주님께서 죽으신 그 사건을 나의 죽음으로 동일시하게 함으로써 우리 마음을 사들이는 겁니다, 십자가를 전하게 됨으로서.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사느냐?
산시 성에 있는 산부인과의사 장씨가 산부인 둥씨로부터 아기를 포기하게 만들어서 아기를 팔아넘기게 됩니다.
그래서 인신매매단들이 이 악질적인 산부인과의사로부터 이 아기를 사들입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심매매범이 되는 거예요,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자나 사도바울이 인심매매의 주범이 되어서 이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사들이는 겁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사들인다는 얘기가 무슨 뜻입니까?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이 세상에 묶여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걱정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를 지불하고 세상으로부터 사들이는 거예요.
그렇게 인심매매범이 되는 거예요.
누구를 만나든지 우리는 이 사람의 가정에 붙어있는 마음, 직장에 붙어있는 마음, 사업에 바쁜 이 마음을 어떻게 그 붙어있는 세상의 일들로부터 떼 내서 사들이느냐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이게 바로 신앙인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얘깁니다.
그렇게 해서 어디에다 팔아넘기느냐 하면, 그 둥씨의 갓난아기를 산부인과 장씨가 팔아넘겨서 3천 킬로미터의 판매경로를 거쳐 아기가 팔려가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인심매매범들이 돼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서 만들어놓으신 경로를 따라서 저 하늘에 팔아넘겨버리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도록.
마치 중국 서북부에서 있는 산시 성에서는 다시는 아기가 보이지 않도록 팔아넘겨서, 저~기 3천 킬로 떨어진 안시 성에 있는 하난 시까지 아기가 가게 된 것처럼 이 땅에서는 다시는 그 사람의 마음이 돌아다니는 꼴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만들어놓으신 그 경로를 따라서 하늘에 팔아넘겨버리는 것, 그 마음으로 하여금 하늘을 보게 하고 하늘을 향할 수 있게 해서 하늘로 가버리게 만드는 것, 이게 바로 인신매매범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거예요.
바로 사도바울이 그 이유 때문에 로마서를 썼다는 겁니다.
로마 교인들의 마음심장을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다 사들여가지고 저~기 3천 킬로미터 정도가 아니라 이 땅을 완전히 떠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가게끔 하려고 로마서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얘기죠.
그러므로 죽음을 통과하게 됨으로써 이 세상에 대해 죽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는 다시는 그 마음이 돌아다니는 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이 땅을 떠나게끔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이 관심으로 우리가 사람을 만나야 되는 거예요.
이 관심으로 사도바울이 이방인에게 전도를 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해야 될 것은, 그렇다면 인심매매의 대상이 누군가 하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에, 이방인들을 제물로 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이 바로 인심매매의 대상인데, 우리도 이미 이방인이지만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서 이방인이라고 하는 그 의미대로의 이방인이 누구인가 알아야 되지 않겠어요?
마태복음 6장 31절에 보면, 이방인이란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방인이란 이 땅 위에서 내가 무엇을 먹을 것이냐, 무엇을 마실 것이냐, 무엇을 입을 것이냐, 이것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좀 더 확대해서 얘기하면, 이 땅의 일을 이렇게 저렇게 성공시키기 위해서 땅의 일 때문에 마음이 매여서 전전긍긍하며 걱정근심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이방인이고, 우리가 그 사람의 마음을 사야하는 인심매매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이 땅의 일에 마음이 묶여있는 모든 사람이 의미상의 이방인이라는 겁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성공할까, 어떻게 이 세상에서 이름을 나타낼까?’ 이 세상에 있는 일, 가정의 일이든 나라의 일이든 직장의 일이든 심지어 교회 안의 일이든 간에 이 땅 위에서 있는 일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하고 마음이 노예가 돼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십자가를 제시함으로써, ‘당신은 지금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미 죽은 자입니다’라는 걸 일깨워주는 겁니다.
‘이천 년 전에 당신은 죽었습니다.’
죽은 것이라는 걸 깨닫는 것, 이게 믿음 아닙니까?
주님과 함께 이 세상에 대해서 이미 죽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나님을 향해서만 살아있다.
그래서 승천하신 주님과 함께 소망 가운데서 하늘나라를 내 것으로 만드는 자가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출세한다는 것,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서 명예를 얻는 것, 이런 것 관심 없고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만 마음에 들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고, 이게 바로 이방인의 마음을 사는 인심매매범이 해야 될 일이라는 겁니다.
이때, 오늘 본문에서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해줍니다.
우리가 이방인들(이 세상일에 마음이 묶여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마음을 사는 인심매매범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그런 일을 해야 되는데, 그리고 그런 일을 위해서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했는데, 이때 주의해야 될 점이 있다는 거예요.
17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계속 나올 거예요, 사도바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확하게 몰라요, 책을 읽어봐도 내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을 사도바울이 하고 있는 그 실천적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하나의 경로를 만들어내셨습니다.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이 지구 역사상 살았던 그 어떤 사람도 만든 적이 없고, 앞으로 이 지구 역사상 마지막 날까지 태어날 그 어떤 자도 만들 수 없는 경로입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과 연관돼있는 영역이고 주님의 이름과 연관돼있는 경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다는 얘기는 예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이 영역 안에 우리 마음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이 죽음과 승천 사이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이 땅에 남아있는데 우리 몸은 대체 어떻게 움직여집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움직이시게 됩니다.
우리 몸을 성전삼아 들어오셔서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펼쳐나가게 되십니다.
이때에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걱정을 안 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이 아니니까.
그러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어떻게 마련했을까요?
마음이 세상을 떠나있는 상태로 하나님을 향해 있으니까, 그리스도께서 만들어놓으신 영역 안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자기가 먹고 마시고 하는 모든 일들, 그 외의 모든 사건들과 자기 신변에 관한 일들, 하루 24시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겁니다.
그러니 할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자기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그러나 그 모든 얘기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직 자기가 하는 말은 인심매매의 주범으로서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세상에 묶여있는 것을 보면서 그 마음을 세상으로부터 십자가 값을 지불해서 사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오직 그것에 필요한 이야기만을 했던 것이고, 그 일에 관계된 일만 간증했다는 겁니다, 인심매매에 관한 일만.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은 얘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인심(人心), 사람의 마음을 사들일 때 우리가 꼭 조심해야 될 것은 그 마음을 사들여서 자기 자신에게 머물게 하는 일입니다.
특히 목사님들이 조심해야 될 것은, 교인들의 마음이 목사님에게 머물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지난주 말씀 중에 한경직 목사님과 곽선희 목사님의 실명을 들먹거리며 제3의 길이라고 말씀드린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왜냐하면 한경직 목사님과 곽선희 목사님이 본의 아니게 서로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동안에 사람들의 마음이 그 목사님들에게 머물게 되고, 사람들의 마음에 이슈가 돼버립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인심매매의 주범이 돼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서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그 사람들의 마음을 본의 아니게 당신들에게 머물게 하는 결과가 빚어지더라는 얘기에요.
영락교회 3년 부목사로 있으면서 관찰에 관찰을 거듭한 겁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검소하게 사시고 구제를 좋아하신 모든 삶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한경직 목사님에 대해서 외화(外化)돼버려요.
즉 겉으로 드러난 행위로 신앙이 변질돼버린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십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 세상에 대해 죽는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한경직 목사님이 신앙의 표본이 되면서 신앙에 대한 이해 자체가 왜곡돼버리더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검소도 구제도 정말 지혜롭게 눈에 띠지 않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럼으로써 오직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에게 머물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내가 이슈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세상에 대해 죽은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하고 하나님께만 드려지게 하기 위해서 오직 그들이 기억해야 될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뿐이라는 얘깁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함으로써 3천 킬로 떨어진 곳까지 가버린 신생아처럼 이 세상을 떠나서 아주 하늘로 마음이 가버리는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오늘 하루도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인심매매의 주범이 되어야만 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마음이 나를 좋아하고 내게 호의를 품게 만들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세상으로부터 사들여서 하나님께 주님이 만드신 경로를 통해서 온전히 드려질 수 있도록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하늘나라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하나님아버지! 감사합니다.
태승철 목사님을 이 시대의 십자가복음의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이 복음을 듣는 사람들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심을 감사찬양드립니다. 이 복음으로 교회마다 새롭게 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