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왕상 21장]
[내용개요]
아합 시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여호와를 떠난 시대라는 점이다. 갈멜 산에서의 투쟁은 타락한 시대의 종교적인 면에 관련된 것이고, 본장에 기록된 나봇 포도원 사건은 사회적인 면에 관련된 것이다. 본장에는 먼저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는 아합과(1-4절), 이세벨의 간계를 기록하고 있다(5-10절). 이어 나봇의 죽음(11-16절), 아합과 이세벨이 받을 심판(17-26절), 그리고 끝으로 아합의 회개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27-29절).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는 이면에는 토지의 사적 소유 증대에 의한 전제 왕권의 강화라는 의도가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곧 율법을 수호해야 할 이스라엘 왕이 율법을 무시한 채 자신의 권력 강화에만 치중한 사건인 것이다.
[강 해]
하나님을 떠난 아합과 이세벨의 악한 성품이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는 과정에서 극명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 금지한 토지 거래를 아합은 물질로서, 이세벨은 무력으로서 강압적으로 행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심판은 더욱 확고해져 갔습니다.
1.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
1) 나봇의 거절로 근심하는 아합
아합이 거하는 궁 옆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치와 쾌락에 빠진 아합은 자신의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나봇의 포도원을 소유하길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봇에게 그 포도원을 팔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이에 나봇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는 절대로 매매할 수 없다는 여호와의 말씀에(참조, 레25:23-28;민36:7) 의거하여 아합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물론 아합도 나봇이 거절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에 답답해 하기만 하였습니다.
a. 조상의 기업(민36:7)
b. 토지 때매 금지(레25:23)
2) 이세벨의 음모
이세벨은 남편 아합의 고민을 알고서는 의아해 하였습니다. 잔인하고 저급한 바알 종교의 문화 속에서 성장한 이세벨로서는 왕의 권세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아합의 고민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세벨은 곧 바로 악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는 나봇이 살고 있는 이스르엘의 지도자에게 편지를 써서 나봇을 제거하는 행동 지침을 하달했던 것입니다. 먼저 국가적 비상 사태 또는 신에 대한 모독 행위가 발생했을 때에만 선행해지는 금식을 선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후 두 명의 증인을 통해 나봇이 왕과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고소토록 했습니다. 당시에는 최소 두 명의 증인이 있어야 판결을 내릴 수 있었기에 두 명의 거짓 증인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을 저주한 죄목으로 나봇을 죽이도록 요구했던 것입니다.
a. 왕의 편지(에3:12)
b. 여호와를 모독한 죄(레24:16)
3) 나붓의 죽음
이세벨의 편지를 받은 이스르엘의 지도자들은 이세벨의 명령이 거짓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세벨의 악한 성품을 소문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이스르엘은 잘못된 일인지 뻔히 알면서도 이세벨의 명령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봇은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것도 대역죄라는 누명을 쓰고 죽은 것입니다. 이때 나봇의 아들들도 함께 죽었고(참조, 왕하9:26), 당시 관습으로는 대역죄로 처형된 사람의 재산은 왕의 소유가 되는 관습이 있었기에 이제 나봇의 포도 원은 아합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세벨은 이러한 사실을 아합에게 알렸고, 기쁨에 들뜬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a. 잘못된 금식(사58:4)
b. 나봇의 아들들의 죽음(왕하9:26)
2. 엘리야의 심판 예언
1) 엘리야에게 임한 명령
하나님은 즉시 엘리야에게 임하사 아합에게 내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명령 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첫째로 나봇의 죽음을 아합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봇이 죽어 그의 피를 개들이 핥았듯이 아합도 바로 이스르엘 지역에서 죽어 개들이 아합의 피를 핥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합이 비참하고도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라는 것입니다
a. 나봇의 죽음(왕하9:26)
b. 피를 핥았던 개(왕상22:38)
2) 아합에게 심판을 예언하는 엘리야
엘리야는 나봇의 포도원에 가 있는 아합에게 찾아갔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그에게 내려질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아합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 우상을 숭배토록 권장한 지도자였기에 하나님의 진노는 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합에게 그의 후손이 멸절하리라고 예고하였습니다. 따라서 아합의 왕조는 여로보암의 왕조나 바아사의 왕조처럼 완전히 멸절케 되었습니다.
a.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왕상14:10)
b. 아합에게 선포된 심판(왕하9:8)
3) 이세벨에게 임할 심판 예언
아합에 대해 심판을 선포했던 엘리야는 이제 이세벨에 대해서도 그녀에게 임할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즉 엘리야는 이세벨도 아합과 마찬가지로 이스르엘에서 죽어 개들이 그녀의 시신을 먹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한 시대를 좌지우지하던 왕비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비참한 최후라 할 수 있습니다. 후에 이세벨은 왕궁의 내시들에 의해 왕궁 창문으로 내던져져 죽음을 당함으로써 엘리야의 이 예언은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참조, 왕하9:30-37)
a. 이세벨에게 임할 심판(왕하9:36)
b. 심판의 도구인 개(왕상14:11)
3. 아합의 회개
1) 아합의 범죄 원인
여기에서 열왕기서 저자는 좀더 상세하게 아합이 지은 죄목과 그가 범죄케 된 원인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합은 스스로 사단의 도구가 되어 죄악을 범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이세벨의 유혹에 빠져 이세벨의 요구대로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는 아모리 사람의 죄악 된 우상 숭배 습관을 따름으로써 심히 가증된 행위를 일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몇 가지 원인에 의거하여 아합은 몇 번의 회개 기회도 상실한 채 죄악의 깊은 늪 속에 잠기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a. 이세벨의 유혹에 빠진 아합(왕상16:31)
b. 아모리 사람의 죄악(창15:16)
2) 일시적인 아합의 회개
엘리야의 엄중한 심판 선포에 아합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옷을 찢고, 굵은베를 동이며 금식함으로 자신의 통회 자복하는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지금까지 아합이 악행을 저지른 죄인이었을지라도 그의 회개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결과로 아합에게 내릴 심판의 재앙들이 그의 아들인 요람 시대로 연기되었습니다(참조, 왕하9:24-26;왕하10:1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악인일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반드시 진노를 긍휼로 바꾸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반면 이세벨은 전혀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직 바알 신만을 의지하였기에 하나님을 무시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a. 이세벨의 죽음(왕하9:37)
b. 하나님의 예언 성취(왕하10:17)
결론
한마디로 이세벨은 가장 잔인한 여인이면서 동시에 가장 어리석은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에게 내릴 심판의 재앙은 어떠한 오차도 없이 임하게 되었습니다(참조, 왕하9:30-37).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아합과 이세벨에게 심판이 선포되어지는 것은 당연한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하지만 이세벨과는 달리 아합은 회개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심판의 재앙이 연기되는 긍휼을 입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인격적인 결단에 의한 회개가 아니었기에 아합의 회개는 일시적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죄의 사슬을 단번에 끊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아합은 죄의 악순환 속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단어해설]
2절. 나물 밭. 채소 재배지가 아니라 '푸른 평원'을 의미. 낮이 뜨거운 팔레스타인에서 열기를 피하는 곳 또는 우상 숭배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8절. 쳐서. 원어 <!t'j;:하탐>은 '도장을 찍다, 봉인하다'는 뜻. 타인이 볼 수 없게끔 밀봉하는 행위를 의미.
10절. 비류. 원어 <lJ['Y"lib] AynEB]:베네 벨리야알>은 '쓸모 없는 아들들'이란 뜻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들임을 의미.
15절. 취하소서. 고대 근동에서 범죄자나 정복당한 식민지의 재산은 모두 왕의 소유물이 되었다.
20절. 대적이여. 원어 <byEao:아야브>는 증오와 살의를 품고 있는 상대에게 사용하는 단어. 여기서는 평소 아합이 엘리야에게 가지고 있던 적대적인 감정의 정도를 보여 준다.
22절. 격동하고. 원어 <s['K':카파스>는 타의에 의해 자극 받아 분노가 일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는 아합의 범죄가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초래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신학주제]
이스라엘인들의 토지 개념.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토지란 한 개인의 소유만이 아니고 조상 대대의, 그리고 후손 대대의 소유여야 하는 신성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토지는 한 개인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세의 율법이, 토지 매매를 엄금하며 불가피하게 매매된 토지는 무르거나 변환하도록 규정하고 있음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왜냐하면 토지의 독과점은 결국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속을 낳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실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나라를 이룬 이스라엘이 이런 위험을 경계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본문에서 아합의 제의를 거절한 나봇은 이러한 전통적 토지 개념을 갖고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고, 반면에 아합은 이러한 전통을 스스로 깼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적교훈]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한 일은 외견상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였다. 설령 그 흑막을 알았다 해도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주어진 일에 겁 없이 항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 아합에게 하나님의 격노와 함께 가문 멸절의 재앙을 선포했다. 이 사건을 통해 성도의 정의로운 자세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혹 큰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할 경우, 성도는 물러서지 말고 담대히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