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 4: 9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 살전 4: 10 모든 형제에 대하여
2. 형제 사랑 ( 4: 9 - 12 )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살전 4: 9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
사도 바울은 형제 사랑에 관해 교훈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미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라는 원어(데오디닥토스)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교훈이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율법에도 있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신 새 계명에도 있으며, 또 성령께서 사도들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심에도 있음을 보인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오늘날 성령의 감동 속에 하는 성경적 설교도 하나님의 가르치심이다.
성경의 주요 교훈은 사랑이며 그 대상은 제한이 없다. 우리는 몇몇 사람만 사랑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사람들,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1]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형제 사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필라델피아스'(*)는 '필라델포스'(*, 형제지간의 사랑)에서 파생된 말이다.
'아가페'(*)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모든 사람들을 향한 보편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는 반면, '필라델포스'는 혈연으로 맺어진 형제간의 우애(友愛)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본 단어가 영적인 의미의 형제 곧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형제자매가 된 성도들 간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이것은 불신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는 동족애를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신약에서는 성도들끼리의 사랑을 가리킨다.
* 롬 12: 10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히 13: 1 -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 벧전 1: 22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크리소스톰은 이 말을 바울의 교훈상 지혜 있는 표현으로 보았다. 이 말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형제애를 인정하며 칭찬하는 동시에, 그들의 사랑을 더욱 권장하는 지혜로운 말이다.
덕행을 가진 자에게 적당히 칭찬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 그의 덕행을 더욱 장려할 수 있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항상 내주(內住)하셔서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 빌 2: 13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요일 2: 27 -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반 류웬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가르치시는 것은 단순한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에 행동하도록 인도하심이다"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결과로 형제애를 실행한 것이다.
3]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하나님의 가르치심'의 헬라어 '데오디다크토이'(*)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이곳에만 사용되었다.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이 학자들에 따라 세 가지 견해로 나뉜다.
Ⓐ 성령에 의한 직접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바울과 실라를 통하여 전달받은 가르침이다(Lenski).
Ⓑ 그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서 성령에 의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근거는 8절이다(Morris, Thomas).
Ⓒ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령의 내적(內的) 역사를 다 포함한다.
여기에 대한 근거는 예수께서 막 12: 31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 중 두 번째 것으로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으며, 요 13: 34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것을 지상 대명으로 주셨다는 점에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갈 5: 22에서 '사랑은 성령의 열매'라고 증거 하였으며, 롬 5: 5에서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증거 하였다(Bruce).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가르치심'이 '성령의 역사'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이러한 점에서 앞의 세 견해가 일치를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친히 우리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세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하겠다.
* 요 13: 34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살전 4: 10 모든 형제에 대하여 -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온 마게도냐의 모든 형제들을 사랑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그들이 더욱 많이 사랑할 것을 권면한다. 우리도 모든 성도들을 대하여 또 세월이 지날수록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1]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마게도냐 지역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등 세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혹자에 의하면 이 지역의 '엠피폴리스'(Amphipolis)와 '펠라'(pella)등의 대도시에 위에서 말한 세 개의 교회 이외에 다른 교회들도 세워졌을 것이라고 한다(Lightfoot).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애는 '온 마게도냐' 지방 성도들에게 미쳤다. 그들은 근처 교회 성도들에게 너그러운 물질적 원조를 행한 듯하다. 바울은 이것을 칭찬한다.
2]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릿슈에테 말론'(*)은 1절의 '폐릿슈에테 말론'(*, 더욱 많이 힘쓰라)과 동일한 뜻의 어구이다.
1절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일반적인 모든 삶에 관하여 언급한 반면, 여기서는 '형제 우애'(*, 필라델포스)라는 특정한 사랑을 더욱 많이 하라는 훈계이다.
이것은 시작뿐이요 크게 이룬 것은 아니므로 계속하여 힘쓰라고 한다. 성도들의 사랑은 넓이와 깊이에 있어서 거의 한도가 없어야 한다. 넓이로 말하면, 세계의 전 인류를 다 사랑했더라도 만족할 것 없고, 깊이로 말하면 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요구된다.
* 요 15: 13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롬 13: 8 -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항상 계속적으로 '더 많이' 실행하기를 힘써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