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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 2020년 가을호에 수록된 동화
시장 엄마
박경선
1. 엄마를 만난 날
동하가 2학년 들면서 아버지 집으로 왔다. 대구 변두리 학교로 전학 온 것이다. 시골 할머니 댁에 있을 때는 같이 놀아주는 강아지 시루도 있고 고양이 두루도 있고 달걀을 낳아주는 꼬꼬야도 있었는데. 지금은 한 지붕에 세 가족이 살지만 학교 마치고 와도 아무도 없다.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주인집 깡철이 형이 있긴 하지만 아빠가 어울리면 날라리 된다고 따라다니지 말라고 했다. 꼬꼬야처럼 달걀을 하나씩 주지는 않더라도 시루나 두루처럼 같이 놀아주면 좋은데. 심심한 동하는 학교 도서실에서 만화책을 읽거나 운동장을 휘휘 돌아다니다 오곤 했다.
5월 들면서 동하에게 놀이 장소가 새로 생겼다. 학교에서 오는 길에 구경거리가 많은 시장통 을 찾아낸 것이다. 시장 들머리에는 정육점, 생선가게 등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을 파는 가게도 있고, 엄마가 좋아하던 과일, 그릇, 꽃 같은 것을 파는 가게도 있다. 동하는 시장 끝자락에서 마주치는 떡집, 치킨집, 오뎅집, 옛날 과자집 앞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며 코 벌름거리기, 입맛 다시기, 눈요기 놀이를 했다.
“아들, 이리로 와봐. 이름이 뭐냐. 밥은 먹었냐?”
겨우 서너 사람 들어설만한 좁은 가게에서 채소 몇 단을 놓고 앉아있어서 ‘불쌍한 할머니야.’하며 지나쳤는데 그 할머니가 이름을 묻는 것이었다. 동하는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입을 앙 다물었다.
“쑥떡 하나 먹어볼래? 내가 쑥 뜯어서 직접 만들어 본 건데.”
쑥떡도 받지 않으려고 몸을 비비 꼬았지만 어른이 주는 것인데 받아야지 했다. 동하는 대구로 전학 오면서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아버지와 약속했던 터라 어른 말을 거절할 수 없어 엉거주춤 받았다. 그때였다.
“엄마, 오늘도 배추가 싱싱하고 좋으네요. 단배추 두 단만 주세요.“
채소 사러 온 아줌마가 엄마라고 부르며 할머니의 돈통에 천 원짜리 두 개를 넣고 사갔다. 늙수레한 아저씨도 와서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엄마, 추어탕 끓일라꼬 미꾸라지 샀구마. 뭐 더 사야 되능교?”
“추어탕에는 단배추랑 고사리, 파가 들어가야지. 마침 단배추랑 파가 남았네. 그냥 가져가 끓여보시게.”
아저씨가 진짜 아들인지 공짜로 주었다.
‘할머니한테는 아들, 딸이 참 많네!’
생각하는데 주인집 깡철이 형이 기타를 메고 지나가다가 할머니께 꾸벅 인사를 하였다.
“그래, 아들! 요즘 안 보이더니 밥은 먹고 다니냐? 텃밭에서 키운 감자 삶아왔는데 먹어볼 래?”
하면서 비닐봉지에 담아온 삶은 감자를 건네주었다.
‘뭐야? 나보고 아들이라고 불러놓고 날라리 형도 아들이라니, 그럼 난, 날라리 동생이네?’
동하는 날라리 형의 동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음부터 그 앞을 지나다가 할머니가 ‘아들!’하며 불러도 못 들은 척 지나갔다.
어느 날, 눈요기 놀이를 하며 할머니 가게 앞을 지나는데 채소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엄마, 케일 가지러 왔심더. 유기농 구하기가 힘든데 이렇게 엄마 덕에 유기농을 먹네예.”
하면서 모자를 푹 눌러 쓴 아줌마가 천 원짜리 석장을 할머니의 투명 비닐 돈통에 넣었다. 그런데 귀고리를 한 아줌마가 생뚱맞게 나섰다.
“그 케일 저한테 떨이 하이쇼. 오천 원 드릴게요.”
그 말에 할머니 얼굴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해서 어쩌누. 우리 딸인데. 지금 건강이 안 좋아 유기농만 먹어야 해서,”
그 말에 귀고리 아줌마가 모자 눌러쓴 아줌마를 의심스런 눈으로 보며 ‘진짜 엄맙니껴?’하고 물었다.
“그라믄예, 유기농 방풍이나 명월초 뭐든지 한 봉지에 천 원짜리 한 장만 받아요. 돈 없을 때는 그냥 가져가도 되요. 저같이 아픈 사람은 유독 챙겨주시니 ‘시장 엄마’ 맞지예.”
그 말에 동하는 천 원짜리밖에 모르는 할머니라면 바보 할머니인가 생각하는데 귀고리 아줌마가 ‘잘난 척하시네!’하며 자리를 떴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잘난 체 하는 것도 같았다. 동하 네 시골할머니는 ‘날세 좋제. 봇물 빼러 가자. 퍼뜩, 밥 묵으라.’ 말하는데 동하네 할머니보다 나이도 더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사투리를 안 쓰는 걸 보면 분명 잘난 척 하는 것 같았다.
“엄마, 엄마! 엄마는 매일 조금씩만 가져오니 저 같은 사람은 살 게 없잖아요. 내일 올 테니 케일 제 것 꼭 남겨 주이쇼. 예?”
하며 애교로 미리 주문을 하고 가는 아가씨도 있었다. 하기야, 할머니는 그날 팔 것을 조금씩만 가져와서 팔았다. 늙어서 힘에 부대끼어서일까? 시골 할머니 댁에서는 동하가 무거운 것을 잘 들어준다고 할머니가 좋아했는데.
‘저 할머니는 나 같은 손자도 없을까?’
동하는 불쌍한 생각이 들자 저번에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입을 앙 다물고 가르쳐주지 않았던 일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가만가만 다가가서 꾸벅 인사를 한 뒤 말했다.
“저기요. 저번에 제 이름 물었잖아요? 제 이름 동하라요. 정동하!”
시골 할머니처럼 시장 엄마와 친하고 싶었던 것이다.
2. 동하의 운동회 날
동하는 오늘 같은 날 도시락에 유부초밥을 싸가고 싶었다. 운동회 날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있을 때는 동하가 제일 좋아하는 초밥이라며 챙겨주었는데. 아빠는, 어제 마당에서 동하가 내일 운동회한다고 한 말을 까먹었나 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어쩌겠어? 돈 벌어 올게.”
아빠는 오늘 아침에도 하루 벌기 위해 돈 벌러 갔다. 맨손으로 집을 나서는데, 주인집 깡철이 형만 운동회인데 혼자 가서 되겠냐고 걱정해주었다.
‘뭐야? 어제 마당에서 아빠한테 한 말을 엿들었나보네.“
동하는 깡철이 형한테 슬픈 얼굴을 안 보이려고 획 돌아서서 마구 달려 학교로 왔다.
운동회가 시작 되고 ‘엄마와 춤을’이라는 발표를 펼치려고 2학년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운동장 한 가운데로 입장하였다. 동하는 고개를 푹 숙이고 혼자 입장하면서 도망가고 싶었다. 도망가서 화장실에 숨어 있고 싶었다. 숨어서 ‘엄마 엄마’ 부르며 펑펑 울고 싶었다.
“쨔샤(자식아)! 오늘은 내가 니 엄마다.”
주인집 날라리 형이 학교까지 쳐들어와서 어슬렁거렸나보다. 어느새 끼어들어 동하 손을 잡고 있다.
‘에게? 남자가 무슨 엄마야?’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손잡고 춤출 사람이 생기다니. 형이 천사처럼 보여 씨익 웃었다. 춤도 여자애들처럼 다리를 까딱까딱 거리며 추어 우스웠다. 점심때가 가까워오자 이 학년들은 또 바구니 터뜨리기를 하였는데 ’즐거운 점심시간!’이라는 글씨가 바구니 속에 숨어 있다가 좔좔 흘려 내렸다. 점심시간을 한 시간 반이나 준다는 안내 방송도 흘러 나왔다.
‘즐거운 점심시간이라고? 웃기고 있네!’
동하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어른들은 미리 운동장 가장자리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맛있는 것들을 펼쳐놓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오그려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갔다. 좌변기에 앉아 ‘엄마 미워. 밉다고!’ 속으로 욕하다 소리 내어 울었다. 좀 울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교실에 들어가려 해도 교실 문이 잠겨있고 친구들이 점심 먹을 동안 가 있을 곳이 없었다. 뒷 운동장 한쪽 구석을 찾아가 앉았다. 심심했다. 나무꼬챙이로 흙바닥에 엄마 얼굴을 그렸다.
‘유부초밥 안 먹고 싶다. 엄마 미워!’
흙바닥에 나무꼬챙이로 꾹꾹 눌러 쓴 글씨를 발로 쓱쓱 지우려는데 누가 동하 발을 큰 발로 걷어찼다. 흙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홀겨 보는데 주인집 깡철이 형이다.
‘어떻게 나를 찾아내었지?’
싶어 쳐다보는데 바닥에 쓰인 글씨를 다 읽어버렸는지 협박을 했다.
“쨔샤! 엄마 욕 썼지? 오늘 너희 아빠가 내한테 살펴보라며 부탁했거든. 다 일러바칠 테야.”
동하는 깡패 형의 얼굴이 악마로 보였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식식거렸다.
“순순히 따라와. 말 잘 들으면 안 일러바칠 수도 있고….”
‘춤 출 때 천사라고 믿었던 형이 협박을 하다니. 저 형이 날마다 나를 때려도 아빠는 상관 않고 하루벌이 일하러나 가겠지?’
동하는 절망적인 생각에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들을 걷어차면서 따라가고 깡철이 형은 손전화기에 대고 무슨 말을 열심히 해댔다. 그리고는 운동장 철봉대까지 오더니 동하를 철봉대 높은 곳에 들어 올리며 꼭 잡으라고 했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며 자꾸 돌아내리기 훈련을 시켰다. 동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식은땀을 흘리자 그제야 동하 손을 잡고 시장으로 들어갔다. 시장에 오던 사람들도 모두 동하네 운동회에 갔는지 한산했고 시장 엄마네 가게에도 손님이 없었다.
“아니, 학생 동생이 동하였나? 마침 유부초밥이 도착했다. 자, 먹어봐라.”
시장 엄마가 유부초밥 도시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벙실벙실 웃었다. 형이 비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나란히 붙어 앉으며 호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몇 개 꺼내며 물었다.
“엄마, 시장 안에 아는 번호라곤 엄마 전화번호 밖에 없어서 유부초밥 주문을 부탁했어요. 얼마라고 하던가요?”
“됐어. 운동회 날 아들한테 초밥 한 번 사 먹이면 나도 기분 좋지.”
“엄마, 그래도 저도 형 노릇 한번 해봐야지요.”
하면서 형이 천 원짜리 몇 장을 엄마의 돈통에 집어넣으려고 하자 엄마가 돈통을 아래로 감추어버렸다. 엄마는 집에서 가져온 물병의 물을 컵 세 개에 담아 각자 앞에 놓아주었다.
“잘 먹어라. 그래야 너도 형처럼 키도 크고 힘도 세지지.”
시장 엄마가 동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깡철이 형도 한 마디 거들었다.
“쨔샤! 체할라. 물마시고 먹어.”
3. 시장 엄마네 집은 어디에?
6월 들면서 시장 엄마가 가게에 나오지 않았다. <7일부터 며칠 쉽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기둥에 쪽지를 붙여 놓았지만 그 쪽지를 읽어본 뒤에도 사람들은 ‘무슨 일이지?’하며 걱정하는 얼굴로 돌아갔다. 동하는 이틀이 지난 날, 학교에서 돌아올 때 가게 앞을 지나와서 주인집 형의 방 앞에서 소리쳤다.
“깡철이 형! 알아? 시장 엄마가 오늘도 시장에 안 나왔어.”
방문 앞에서 소리쳤지만 형은 기타를 치면서 대답을 안했다. 아빠는 운동회 뒤로 형이랑 친해도 좋다고 했는데 형은 동하가 별로였나보다.
다음날도 동하는 학교 마치고 오는 길에 가게 앞을 지나면서 ‘시장 엄마 집은 어딜까?’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집에 도착하니 깡철이 형이 방문을 열어두고 기다렸다는 듯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
“쨔샤, 뭐 그리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
“형, 그 엄마 오늘도 시장에 안 나왔어. 시장 엄마 집은 어딜까?”
“궁금하냐? 내가 알아봤어. 티맵 쳐서 찾아 가자. 내 앞에 타!”
형의 오토바이 앞에 무작정 올라타며 외쳤다.
“야, 깡철이 형, 형은 척척박사네!”
동하는 처음으로 깡철이 형을 칭찬해대었다.
시장 엄마가 사는 곳은 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촌이었다. 깡철이 형의 오토바이를 타고 논물에 발목을 담그고 늘어서있는 갓 모심기 끝낸 논과 파마머리처럼 부풀은 감자 잎들이 자라는 들을 가로질렀다.
“야, 대구에도 이런 촌이 있었네.”
시골 할머니 댁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시원하게 뻥 뚫렸다.
“쨔샤! 너만 촌놈인줄 아냐? 우리도 대구 오기 전에 공기 좋은 촌에서 살았다야.”
하더니 오토바이를 세워 봇도랑 벽에 붙은 분홍색 알 뭉치를 가리키며 물었다.
“쨔샤! 저 벽에 붙은 분홍색이 뭔지 아냐?”
“야, 우렁이 알이다!”
“그래. 또 어디서 봤지?”
“엄마랑 연밭에 연잎 따러 갔다가…….”
“그래. 너 확실한 촌놈이구나. 인정! 그런데 저게 재래종 알은 아니야.”
동하는 형이 점점 좋아졌다. 형은, 동하 키만하게 자란 옥수수와 해바라기가 양쪽에 줄지어선 집 앞에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동하를 안아 내려주었다.
“베나(베풀고 나눔)의 집 주소가 여기가 맞는데 집이 안 보이네!”
동하와 형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무 많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감나무는 엄마 젖꼭지 같은 파란 감을 앙증맞게 매달고 있고 옆에는 탱탱한 붉은 자두, 노란 살구를 매단 나무도 한 그루씩 보였다. 머루 넝쿨대에는 머루가 청포도 동생처럼 조롱조롱 매달렸다. 마치 운동회 날 형한테 철봉 훈련을 받던 동하 자기 모습 같아 웃음이 실실 났다. 집은 여러 종유의 나무들 뒤에 나지막한 지붕을 숨기고 있었다.
“엄마! 엄마 계셔요?”
방문 앞에서 깡철이 형이 소리쳤다. 동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장병을 앓던 엄마가 하늘나라 가던 날이 생각났다. 아무도 없을 때 집에서 혼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반응이 없자 둘은 두리번거리다가 텃밭에 있는 시장 엄마를 보고 달려갔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우리 아들 깡철이와 동하 아니야?”
시장 엄마는 텃밭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부추를 다듬다가 반겨주었다.
“엄마, 시장 사람들이 얼마나 궁금해 하는지 몰라요.”
깡철이 형은 걱정했다는 말 대신 투덜거렸고 동하는 울먹울먹하기만 했다.
“그러게. 미국에서 십 오년 만에 제자 부부가 왔어.”
“제자라고요?”
동하는 ‘채소 가게 엄마의 제자라면 채소 키우는 일을 가르쳤나?’ 생각했다.
4. 시장 엄마 집 손님들
동하와 깡철이 형은 텃밭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시장 엄마가 소꿉놀이하듯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추의 흙 묻은 뿌리 부분을 들고
“요놈들 뿌리쪽 보게. 흙바닥 밟고 돌아다닌 발목처럼 온통 흙칠이지 않냐? 때가 꼬질 꼬질 묻은 발목은 물에 담궈 목욕 시켜 줘야 말끔해지지.”
하면서 다듬은 부추를 들고 일어섰다.
‘정구지(부추)도 자식같이 목욕 시킨다고?’
동하는 따라 일어서면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동하를 목욕통에 넣고 놓아주던 엄마 모습이 어렴풋하게 하늘에 떠 있었다.
“날씨 참 맑네요. 그런데 미국에서 온 제자들은 갔어요?”
형이 동하랑 같이 하늘을 보다가 은근슬쩍 물었다.
“내 손으로 밥 한 끼 해먹일 시간 벌려고 영감한테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고 오라고 했어. 내가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아서 선생이 되어 제일 하고 싶었던 일도 밥 굶는 제자들 밥 챙겨 주는 일이었거든. 너희들도 온 김에 밥 같이 먹고 가. 곧 올 거야.”
“아닙니다. 엄마, 저희들은 가볼게요. 좋은 일로 시장에 안 나오셔서 다행이네요.”
형이 인사말을 하기에 동하는 형만 따라가는데 대문간 들어서던 제자부부와 할아버지랑 마주쳤다.
“헤이, 우리도 선생님을 엄마라고 불렀는데 요즘도 자식 많이 거두시네요. 선생님의 자식끼 리 밥 같이 먹고 가요.”
하며 여자 제자가 동하와 깡철이 형의 손목을 잡았다.
“그럼. 그럼!”
시장 엄마가 영감이라던 할아버지까지 거드는 바람에 도망을 포기했다. 하는 수 없어 차려놓은 밥상에 둘러앉았다. 한눈에 푸른 밥상이었다. 동하가 좋아하는 오이채국도 보였다.
“선생님, 바로 이 맛이에요. 환상적인 맛!”
하며 제자 부부는 된장국에 나물 비벼서 꿀떡꿀떡 먹었다. 동하는 할아버지가 발라주는 조기가 가장 맛있었다. 가마솥에 누룽지를 끓여 만든 숭늉도 구수하였다. 모두가 숭늉그릇을 들고 차 마시듯 먹는데 여 제자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겠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제목은 제가 겪은 ‘키다리아저씨’ 이야기에요.”
그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심장도 약하고 가정형편도 어려워 선생님께 심장수술비도 도움 받았잖아요? 커서 미국 유학 때 형편이 어려워 포기하고 돌아오려 하다가 제 실력 알아주는 장학재단에서 장학금 받았다며 전화했을 때 선생님이 저보다 더 기뻐하셨죠?”
“그래, 생각나. 제자가 장학금 받아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기쁘겠어?”
시장 엄마 말에 여 제자가 시장 엄마의 쭈글쭈글한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으며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키다리아저씨처럼 장학금을 보내주신걸 14 년만에 알았어요. 선생님 심부름으로 미국장학재단 장학금이라며 전해주던 천 선생님이 우리 법률사무소에 볼일 보러 왔다가 털어놓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고맙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을 거예요.”
그 말에 시장 엄마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고맙긴, 선생한테는 제자가 자식인데 그 정도야! 우리에게 남는 건 제자뿐이야. 그 보람 으로 살았지. 그런데, 퇴임하니 정 나눌 사람들이 그립더라구, 그래서 저 양반이 소일거리로 가꾼 채소를 시설에 나눠주고 시장에도 가져가 앉아 있다가 배고픈 사람이다 싶으면 감자, 옥수수 같은 요깃거리를 나눠 먹다보니 ‘시장 엄마’가 되어 버렸네. 그렇게 살아!”
제자들과의 추억담이 익어갈수록 동하는 불쌍해보였던 ‘시장 엄마’가 부러웠다. 그래서 시장 엄마의 집을 나서며 엄마 몰래 마음속에 꿈을 훔쳐 담았다.
‘나두야! 선생님 되어 제자 부자가 될 테야. 그래서 제자들이 세계에서 많이 찾아오게 할 테야!’ 20200624. 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