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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를 건너다
전창수 지음
1장 빛의 세계
1.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어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의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돠
<출애굽기 14장 14절~25절>
다상은 다리 위에 있었다. 뒤에는 그놈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그놈들의 손에는 날이 설고 장대가 긴 칼이 들려 있었고, 그들은 모두 철제 갑옷으로 무장한 채였다. 다상은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되짚어 볼 여유도 없었다. 그놈들은 게 섰거라, 하면서 다짜고짜 다상의 뒤를 쫓고 있었다.
다상은 다리 위에서 잠시 고민했다. 그놈들의 추격을 뿌리치려면 이 다리 위에서 저 깊고 깊은 푸른 강물로 뛰어내리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그러나 다상은 수영에 자신이 없었다. 어렸을 때 잠깐 배운 적은 있지만, 아주 잘 하는 것은 아니었고, 저 강을 헤엄쳐 거슬러 다른 곳으로 간다 해도 그놈들이 추격을 포기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달리기로 도망치다가는 꼼짝없이 그놈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포로가 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다상은 결심했다. 뛰어내리기로. 족히 30미터는 넘을 듯한 높이였다. 그리고, 강물이 깊기를 바라야 하는 처지였다. 다상은 힘껏 달리기를 하면서 도약을 했다. 몸이 허공에 부웅 떴다. 그리고, 다상의 몸은 허공을 한바퀴 휘돌아 그 푸른 강물로 첨버덩 하고 잠수를 했다.
그놈들이 추격을 멈추고 다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장인 듯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참, 희한한 놈일세.”
“그러게 말입니다. 이유도 없이 도망치더니, 저기로 뛰어내리는 이유는 뭘까요?”
그의 직속 부하인 듯한 군사 하나가 대꾸했다.
“얼른 수색해. 저놈 뭔가 캥기는 있는 모양이다. 살려서 데려와.”
“분부 받들겠습니다.”
얼마나 흘렀을까, 다상의 잠수했던 몸이 부웅 떠올랐다. 다상은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다 발휘하며 자신의 몸을 감싼 물가를 헤엄쳤다. 간신히, 헤엄을 치던 순간이 떠올랐고, 조금이라도 헤엄을 칠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상은 곧 절망하고 말았다. 그놈들이 강가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가까워지기 전에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상은 가장 가까이 보이는 뭍으로 헤엄쳐갔다. 갈대잎이 많아 숨어서 도망치기엔 적당한 곳이었다. 그놈들이 오기 전에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상은 재빠르게 그러나 티는 안 나게 그놈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갈대숲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나아갔다. 그놈들이 나를 봤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다상은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다상은 잘못 계산했다. 갈대잎의 움직임이 다상이 있는 곳을 이미 포착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갈대숲을 헤치고 나가자 그놈들의 대장인 듯한 사람이 버티고 서 있었다.
“어서 오거라. 네 놈, 수상쩍은 놈이 맞으렷다?”
다상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위기를 벗어나는 듯 했으나, 또 위기다. 그러나, 다상은 짐짓 여유를 갖고 물었다.
“내가 왜 수상쩍은 사람이오?”
“그렇다면, 왜 도망친 게냐?”
“당신들이 나를 죽일까봐 그런 거 아니오?”
“내가 너를 죽일지 안 죽일지는 어떻게 아느냐?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게지?”
“여보시오. 갑자기 무서운 칼을 든 군사들이 나를 쫓아오는데 어떻게 도망 안 칠 수가 있소?”
“이 옷차림은 무어냐? 너는 어느 나라에서 온 첩자인 게냐?”
“무슨 소리요? 첩자라니?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살고 있소. 이거 영화인 거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대한민국 서울은 어디고, 영화는 뭐냐?”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그대들은 무얼 하는 사람이오? 여기가 대한민국 서울이 아니면 어디란 말이오?”
“여기는 황홀국이라는 곳이다. 네 놈이 말하는 서울이란 곳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수상쩍은 사람이 있다면 철저히 조사를 해서, 감옥에 넣을 뿐이다.”
다상은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감옥이란 말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또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서울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황홀국? 처음 듣는 이름인데? 대한민국 서울이란 곳을 정말 모르시오? 아, 어쩌지, 큰일 났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조사는 받아야 할 게다. 조사해서 수상한 구석이 없다면, 풀려날 게다. 일단 같이 가야겠다. 여봐라, 저놈을 포박하라.”
결국, 포박이다. 다상은 다시 두려워졌다.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하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다상은 곰곰 되짚어보지만,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다상의 앞에 햇빛에 반사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그 앞으로 그놈들의 군사들이 보내는 그림자들도 같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다상은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헤쳐나갈지 고민에 고민들 거듭했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이대로 끌려가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2.
“저 녀석을 모두 벗겨라.”
아니, 이런. 이 상황에서 모두 벗기라니. 더더군다나 거기는 여왕인 듯한 사람이 다상을 두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대장인 듯한 사람은 다상을 벗기라고 명령한 것이다.
“아니, 왜 이러시오? 나는 남자란 말이오. 그리고 나는 볼 것도 없단 말이오. 그리고 저기 여자가 있는데.”
“무례하구나, 감히 여왕님한테 여자라니? 네 녀석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벗겨 보면 알 것이고, 너는 좀 맞아야겠다.”
“아니, 자꾸 왜 이러시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오!”
“어서 벗겨라!”
몇 명의 군사들이 다상을 잡더니, 옷을 하나씩 벗기려 하고 있었다. 다상은 어떻게든 반항해 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좀처럼 찢어지지 않는 옷들은 군사들에 의해 모조리 벗겨지고 말았다. 다상을 알몸이 되었다.
“네놈은 남자놈이 확실하군. 이 옷들은 어디서 난 게냐? 솔직히 불렸다. 너는 어느 나라에서 온 놈이냐?”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온 사람이고, 이 옷은 내가 내 돈 주고 산 옷들이오! 뭐가 잘못되었소? 그리고 그 반말짓거리 좀 그만하시지. 아, 그나저나 나 옷 좀 주시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것이오!”
“안 되겠군. 저놈을 엎드리게 하고, 밧줄로 묶어라.”
“아니, 정말 왜 이러시오!”
군사들이 다상을 엎었다. 다상은 밧줄로 손목과 발목을 각각 하나씩 묶어 군사 한명당 하나씩의 밧줄을 단단히 당기고 있었다. 다상은 발가벗긴 채 꼼짝도 할 수도 없었다.
“어서 쳐라~!”
가죽으로 만들어진 채찍 같은 것이 다상의 등짝을 내리쳤다. 그 채찍은 다상의 등짝부터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 할 것 없이 사정없이 갈겼다. 다상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 상황을 수긍할 수 없었다.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아직도 네가 온 곳을 바른 대로 발설하지 못하겠느냐?”
“나는 대한민국 서울이란 곳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소? 나, 사실대로 얘기한 것이란 말이오!”
“네가 언제까지 거짓부렁이를 해댈지 두고보자!”
다시 채찍이 가상의 몸으로 쏟아졌다.
“이보시오, 대한민국 서울이란 곳이 어디인지 먼저 들어보면 알 것 아니오. 당신이 모르는 곳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은 안 했소?”
그때, 여왕이 대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잠시 멈추시지요, 홍대장. 얘기 들어보는 게 낫겠어요. 저렇게까지 했는데도 대한민국 서울이란 곳이라는 주장을 한다면 뭔가 있는 것이 분명해요.”
“공주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여봐라, 저놈을 풀어줘라.”
옴짝달짝 못하던 다상의 몸이 풀려났다.
“아니, 이보시오. 얘기를 하게 해 주려면 옷을 주시오! 그 옷 비싼 거란 말이오. 돌려주시오.”
대장은 공주를 바라보았다.
“저 옷은 제가 갖고 있을께요. 다른 걸 주시지요. 아무래도 옷에 뭔가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공주의 말에, 대장이 명령했다.
“저놈의 옷을 공주님께 갖다드려라. 저놈에게는 돌개가 입던 옷 중에서 하나 가져다 입혀라.”
“이보시오! 그거 비싼 옷이란 말이오. 내꺼 돌려주시오!”
“걱정마시지요, 조님. 제가 보고 이상 없으면, 돌려드릴 거예요. 그러니, 안심하시지요.”
공주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내가 왜 조님이오? 그리고 돌개가 입던 옷은 또 뭐요?”
“저희들은 낯선 분을 모두 조님이라고 불러요. 조님은 이름이 뭔가요? 이름이 있으시다면 그렇게 불러드리지요. 그리고 돌개는 제 수중을 드는 남자아이입니다. 체격도 비슷하고 옷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다상이라고 하오.”
그렇게 바라바락 대들던 다상의 말투도 차분해졌다. 그러다가 다상은 잠시 자신이 발가벗겨졌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이보시오! 내가 발가벗겨진 건 어떻게 책임질 거요? 나는 아직 어떤 사람한테도 내 알몸을 보여준 적이 없단 말이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느냐? 더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홍대장, 괜찮아요. 다상님을 귀빈으로 대우하시지요. 아무래도, 대한민국 서울이란 곳은 뭔가 특별한 곳인 거 같아요.”
“아, 공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다상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다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여봐라, 저 다상이란 작자를 게스트룸으로 모셔라.”
“이보시오! 말이 왜 왔다갔다 하는 것이오? 귀빈으로 모시기로 했으면 다상님이라 불러야 할 것 아니오!”
“네가 공주님께는 귀빈인 줄 몰라도, 나한테는 아니다. 그러니, 조금의 수상한 점이라도 있으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알아 들었느냐!”
다상은 뭐라 더 말하고 싶었으나, 군사들이 다상을 에워싸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그곳에는 게스트룸이라고 써 있었다. 다상은 방금 전의 치욕 때문데 치가 떨렸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상은 게스트룸 안으로 들어갔다.
3.
대한민국 서울.
“다혜야, 오빠 어디 갔니?”
“다상이 오빠? 글쎄, 아침에 나가더니 여태 안 들어오네. 어디 간단 말도 안 하고.”
“지금 몇 시야?”
“밤 열시.”
“아니, 이 자식이 어디 간 거야?”
다혜의 엄마와 아빠가 자식을 걱정하는 말투였다.
“어디 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다혜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니, 너보고 한 소리가 아니야. 다상이가 걱정되서 하는 소리지.”
다혜도 오빠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체 어딜 갔는데 안 들어오는 걸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다혜야, 혹시 오빠 친구들 전화번호 아는 거 있어?”
“전화번호는 많은데, 누가 친한 친구인지는 몰라.”
“일단 줘봐. 아니다, 네가 전화 걸어봐.”
“알았어. 근데, 지금 걸어도 괜찮을까?”
“급한 사정 말하면 되잖아.”
“알았어.”
다혜가 다상의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보지만, 친구들도 하나같이 몰랐다. 혹시, 오늘 만난 적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오늘 하루 종일 다상을 본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경찰에 신고해야겠어.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해.”
다상의 아빠가 경찰에 신고했다. 혹시 몰라 사고접수된 거 있느냐고 물었지만, 지금으로선 별달리 접수된 거 없다는 말뿐이었다. 일단, 실종신고를 해놓고 기다려보는 수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지 말고, 밖에 나가 찾아보는 게 어때?”
다혜가 겁도 없이 제안을 했다.
“다혜야, 지금 이 밤중에 우리가 나가는 건 더 위험해. 내일도 안 들어오면 찾아보자. 경찰에서도 좀더 기다려보라고 했고.”
“알았어.”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달리 할 수 있다는 것이 없다는 것이 다혜는 너무 답답했다.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다상오빠가 간 곳이 분명 거기 같은데.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어.
며칠 전, 재섭은 다헤를 데리고 인형뽑기 집을 지나갔다. 재섭이 인형을 뽑아주겠다면서, 다헤에게 동전 몇 개만 달라고 했다. 재섭이 진짜 인형을 뽑아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었지만, 다혜는 이 놀이도 나름 재밌을 거 같아 재섭에게 5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건넸다. 다상은 신이 나서 인형뽑기 기계를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동전을 넣었는데,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대신, 빛만 반짝거렸다. 몇 번 빛만 반짝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재섭이 말했다.
“다혜야, 신기하지?”
“뭐가?”
“이 빛이 바로 통로야.”
“무슨 통로?”
“내 희망의 통로.”
“무슨 소리야?”
“내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날날이 건달같지? 언젠가 봐. 나는 멋진 장군이 되어 네 앞에 나타날 거야. 물론, 이 장군의 모습이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지. 과거로 가야돼. 물론, 다상이도 함께 갈 거야. 다상이는 아직 모르지만, 내가 이 통로를 발견했다는 걸 알면 신기해야 할 거야. 나랑 같이 갈 수도 있지.”
“재섭 오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장군이 되고 나면, 그 유물을 내가 갖고 올 거야. 유물이 진짜라는 게 밝혀지면, 나는 단번에 부자가 되는 거지. 그때 내가 너를, 바로 우리 다혜를 진짜 공주님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오빠 진짜, 왜 이래. 공주고 뭐고,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진짜라는 거 보여줄게.”
재섭은 500원짜리 동전을 그 빛이 나는 곳으로 휙 던졌다.
“어, 아까운 내 500원, 뭐하는 거야, 그걸 던지면…어어…”
동전이 그 빛 속으로 빨려들어가더니 보이지 않게 되었다.
“통로라니까, 과거로 가는 통로.”
“과거로 가는 통로인지 어떻게 알아? 가봤어?”
“가보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내가 못 가는 거는, 저 통로로 들어가면 어떻게 다시 이리로 오게 되는지 그걸 아직 못 찾았어.”
“어떻게 알 수 있어?”
“내일 아침 뉴스를 봐봐. 저 500원 동전이 어디서 발견되는지”
다음 날, 신라의 고대유적지에서 현대의 500원 동전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그 뉴스는 불가사의한 일이라면서, 이 500원 동전이 왜 이곳에서 발견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분명, 누군가 500원 동전을 여기다 떨어뜨려 놓고 간 것이 분명한데, 누군가 들어온 흔적은 없다고 했다. 동전의 상태가 신라시대 때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뉴스를 보다 다혜는 깜짝 놀랐다.
다혜는 그 생각을 하다가 재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는 알지?”
전화를 받는 재섭에게 다혜는 다짜고짜 물었다.
“뭘?”
“우리 다상이 오빠, 어디로 갔는지?”
“그게 무슨 얘기야?”
“오빠가 아직 안 들어오는데, 아는 사람이 없어. 분명, 그 인형뽑기 기계.”
“어, 다상이가 그걸 알 리가 없는데. 나 아직까지 다상이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 돌아오는 통로를 알 때까지는 너랑 나만 알고 있기라고 말했잖아.”
“어, 그럼 다상이 오빠 어디로 간 거야?”
“안 들어왔어?”
“응, 매일 일곱시면 들어오던 사람이 갑자기 열시가 넘도록 안 들어오면 뭔가 이상한 거 아니야?”
“분명 이상하지. 다혜야, 집에 있어. 내가 찾아보고 올게.”
“어딜 가려고?”
“혹시 모르잖아, 그 빛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그러다 못 돌아오면 어떻게 해?”
“아니야, 분명 길은 있을 거야. 꼭 돌아올게, 약속해.”
“알았어, 조심해야 돼.”
“다상이도 꼭 데리고 올게.”
“그래, 알았어.”
엄마와 아빠는 초조해졌다. 다혜에게 친구들한테 무슨 소식 못 들었느냐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엄마, 이런 일이 있었어.”
다혜는 오늘 재섭과 통화한 일과 혹시 오빠가 그 빛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했다.
“너 지금 그게 말이 되는 거라 생각해? 제성신이야?”
아빠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다혜는 500원 동전사건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아빠가 말을 꺼냈다.
“다혜야, 다상이는 그거 모른다고 했지?”
“응.”
“그럼, 다상이는 그 빛으로 들어간 게 아닐 거야. 분명, 다른 통로가 또 있을 거 같은데.”
다혜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세계에는 수많은 빛의 통로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혜는 그제서야 다상이 진짜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섭도 걱정되었다.
“아빠, 어떡하지?”
“왜?”
“재섭 오빠도 그 빛으로 들어가고 다상오빠는 다른 빛으로 들어가면, 도대체 나오는 통로가 있긴 한거야? 혹시, 둘이 서로 다른 길에서 헤매고 있는 거 아냐? 재섭오빠 벌써 들어갔을 거 같은데.”
아빠는 한참을 침묵 속에서 뭔가를 생각하더니 드디어 결심을 굳힌 듯 했다.
“다혜야, 엄마랑 집 잘 지키고 있어. 그 인형뽑기 어디에 있니? 그곳에서 길을 찾아보면, 어쩌면 둘 사이의 연결되는 통로가 있을지도 몰라.”
“혹시, 아빠도 들어가려는 거 아냐?”
“아냐. 밤이 늦었으니, 둘은 집에 있어. 난 다른 방법을 찾아볼 거니까. 어디야?”
다혜는 인형뽑기가 있는 곳의 약도를 아빠에게 그려줬다. 다혜는 약간 불안했지만,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혜는 잠을 자지 못하고 아빠의 연락을 기다렸다. 아빠가 다상이 있는 곳을 발견하기를 기도하면서.
4.
재섭은 다혜의 전화를 받고 걱정이 되었다. 그 빛이 아니라, 다른 통로가 또 있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나뉘어져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 세계에는 너무도 많은 빛의 통로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한 너무도 많은 세계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재섭은 다른 통로를 찾아보기로 했다. 분명 어딘가에 또 통로가 있을 것이다. 다상은 그 통로로 들어갔을 것이다. 재섭은 다른 통로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몰랐다. 재섭은 일단 인형뽑기 기계로 먼저 가보기로 했다. 그 통로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재섭이 나가려는데, 엄마가 놀라면서 재섭을 부른다.
“얘, 이 밤중에 어딜 가려고?”
“다상이가 행방불명되었대서 찾아보려고.”
“다상이? 네 친구 말이니?”
“응.”
“어, 그애 오늘 우리 집에 왔다가 네가 없다고 해서 그냥 가던데?”
“어, 왔었다고?”
“응. 낮에 집에 오더니, 너 찾더라. 그러더니, 황급히 뛰어나가던대.”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고, 무슨 급한 일 있냐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급한 일이 있다면서, 네 차 좀 빌려타고 가려 했다고.”
“내 차? 나 맞아?”
“아 참, 너 차 없지?”
“엄만, 내가 차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래, 분명 차 좀 빌려타고 가려 한다고.”
“아, 알겠다. 어디로 갔는지.”
“그래?”
“응.”
재섭은 나가려다 말고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엄마, 신문 있지?”
“아빠가 보는 신문 있지.”
“그거 어딨어?”
“버리려고 모아놨지. 저기 부엌에 가봐.”
“응.”
재섭은 신문을 가지고 왔다. 엄마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재섭에게 말을 붙였다.
“신문하고 다상이 행방불명된 거하고 무슨 상관이니?”
“봐봐, 여기 자동차 광고. 분명, 이 속에 다상이가 들어간 거야.”
“무슨 얘기하는 거야? 이 속이라니?”
“엄마 봐봐, 내가 전부터 얘기했잖아. 인형뽑기 기계에는 과거로 가는 통로가 있다고. 근데, 그곳만 있는 게 아니었어. 분명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또 있어.”
“얘는 무섭게 왜 이래.”
“아니, 그곳은 분명 재미있는 세계가 될 거 같아.”
“재섭아, 너 설마 그 세계로 가려는 건 아니겠지?”
“가야돼, 가서 다상이를 데려와야 돼. 이 통로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아직까지 오는 방법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나라면 찾을 수 있어. 다상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가게 된 거야. 내가 가서 다상이를 구해 와야 돼.”
“구해 와?”
“응. 다른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재섭아, 그러다 너까지 잘못되면 어떡하려고 그래? 가지 마!”
“엄마, 걱정 마. 내가 꼭 데려올 테니까.”
재섭은 신문을 들고 외출준비를 했다. 엄마의 눈이 글썽거렸다.
“엄마, 정말 꼭 온다니까.”
아빠가 없는 재섭이였다. 엄마는 마음은 너무나 아팠지만, 그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지금으로선 재섭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래, 꼭 돌아와야 돼.”
재섭은 엄마의 눈물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신문을 가지고 빛의 통로가 있는 인형뽑기 기게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재섭은 그 빛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분명, 다상은 거기로 들어가지 않았다. 재섭은 그 가계의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쪽 손에는 신문을 들고 다른 한쪽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신문에 나온 자동차가 있는 곳을 찾았다. 저 멀리서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재섭은 그 희미한 그림자를 멀리 하고 그 주변에 있는 주차된 자동차를 일일이 훑어보았다. 신문 속의 자동차. 어쩌면 그 자동차가 통로일지도 모른다. 아닐 수도 있을까.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모든 건 짐작일 뿐이었다. 재섭은 자신의 짐작이 맞기만을 바랐다. 드디어 발견된 자동차 하나. 그 안에는 누군가 있었다. 그러나 재섭은 누가 있는지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재섭은 자동차를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빤히 자동차를 보던 재섭이 불편했는지, 그 자동차 속의 남자가 문을 열고 재섭에게로 다가왔다.재섭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신문에서 많이 나오던 남자, 국무총리 이계원이었다.
5.
다혜의 아빠 다길은 다혜가 알려준 인형뽑기 가계로 갔다. 무인운영시스템이라, 밤에도 문이 열려 있었다. 다길은 다상이 분명히 그 길로 들어갔을 게 분명하다. 비록, 다른 길이 있다고는 하나, 그 빛을 통해 다른 길로 갔을 가능성이 더 크다. 처음에는 그 밖에 다른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다 보니, 다른 길을 발견했을 가능성은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른 길이 있었다면, 재섭이 벌써 발견했을 것이다. 다혜에게 이 빛만 알려주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길이 있다면, 분명 재섭뿐만 이나리 다른 사람들도 알았을 것이다. 다길은 혹시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인형을 뽑기 위해 시도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다길은 인형뽑기 기계 앞에 서 있다. 아무런 빛도 나질 않았다. 다길은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집어넣어 보았다. 기계가 작동하면서 빛이 반짝거렸다. 이 빛인가 보군. 다길은 그 빛이 있는 곳에 손을 대 보았다. 유리칸막이에 가로막힌 손은 들어가지지 않았다. 여기가 분명 맞는 걸까? 다혜가 준 약도를 보았다. 여기가 분명 맞다. 이 인형기계도 분명 맞다. 다길은 그 빛이 반짝이는 곳에 동전도 던져보았다. 동전은 유리칸막이에 막혀 튀어나왔다. 다길은 다시 생각해보았다. 다혜가 잘못 안 것일까. 아니면 다른 빛의 길이 있는 것일까. 빛을 통과할 수 있는 특정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일까. 다길은 몇 번을 다시 시도해 봤지만, 빛을 통과할 수는 없었다. 다길은 다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혜는 분명 여기가 맞다고 했다. 어쩌면, 다상은 다른 이유로 행방불명 된 것인지도 모른다.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내가 왜 믿고 있지? 라는 생각에 미쳐자, 다길은 비로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한 듯, 다혜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뭔가에 홀렸었나 보다. 다혜, 네 말을 믿는 게 아닌데. 경찰에 신고해야겠어. 연락도 안 되고, 밤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무슨 일 생긴 게 분명해.”
“아빠, 진짜라니까!”
“설마 진짜라고 해도, 그 빛으로 들어간 게 확실한 건 아니잖아. 어딘가, 납치됐을지도 모르잖아.”
“납치?”
“아니면, 얻어맞고 있을 수도 있고.”
다혜도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 아침에 나도 여기저가 연락해볼게.”
“그래, 난 경찰에 먼저 신고하마.”
다길은 경찰서에 갔다. 사고접수를 하려고 했으나, 경찰에서는 아직까지 사고접수된 것은 없다면서, 좀더 기다려 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대학생이 연락 안하고 외박하는 경우는 너무도 흔한 경우라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
그것도 그럴 듯 했다. 다길은 너무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들어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길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경찰에 신고했어?”
“대학생들이 외박하는 경우는 흔하니까 조금 기다려보라네.”
“뭐야, 외박이 흔해?”
“사실, 우리가 왜 걱정하는 거야? 매일 들어오던 놈이 안 들어오니까 그런 거잖아? 남자가 하루 외박한다고 뭐 그리 대수겠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다혜는 아빠와 생각이 달랐다. 분명, 뭔가 고초를 겪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그냥 단순히 외박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것은 그냥 바람이었다. 다혜는 날이 밝으면 반드시 그곳으로 가보리라 다짐했다. 인형뽑기 기계가 있는 곳이 아니다. 다헤만의 비밀장소, 그곳에서 반드시 단서를 찾으리라. 다혜는 결국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아침이 밝아오자마자 다헤는 그곳으로 갔다. 그곳엔 여자 둘이 있었다. 금주라는 친구와 금주의 언니, 금영이. 이곳에서 다혜는 그들과 수다를 자주 떤다. 이번에 간 것은 사정이 다르다. 그들만의 비밀 아지트는 사실은 뻥 뚫린 사무실 밀집 공간이었다. 사무실 밀집 시설의 1층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곳은 누구나 와서 마음대로 앉아 있다 가도 되는 곳이었다. 카페처럼잘 갖춰진 건 아니었지만, 주인도 없고 커피를 시킬 필요도 없어 나름 실용적이었다. 다혜는 이미 와 있는 금주의 금영이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금영언니, 금주야.”
“안녕!”
“오늘은 또 무슨 소식을 갖고 왔을까?”
“안 좋은 소식.”
“뭔데?”
“오빠가 사라졌어.”
“사라져?”
“어제 안 들어왔어.”
“외박한 게 아니고?”
“아니야, 분명 어딘가로 사라진 거야.”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게 문제야.”
“재밌네.”
“뭐?”
“그냥 단순히 하룻밤 안 들어온 걸 가지고 사라졌다고 하니, 재밌다고.”
“야!”
“아, 미안. 심각해?”
“그래, 심각해.”
다혜는 인형뽑기 기계의 빛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다혜는 500원짜리 동전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말이 되네.”
“그러게.”
금주와 금영이 동조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찾아봐야지.”
“뭘? 어떻게?”
“여기 어딘가에도 분명 통로가 있을 거 같아서.”
“대체 그 통로는 몇 개가 있는 거야?”
“분명, 통로는 또 있을 거야.”
“우리 같이 찾아볼까?”
“그래, 고마워.”
그때까지 옆 자리에서 듣고만 있던 할아버지 하나가 다가오더니, 전단지 하나를 건넨다. 자동차 사진이 실린 전단이었다.
2장 꿈의 세계
1.
다상은 게스트룸 안으로 들어섰다. 뒤에서는 호위무사들이 다상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가 도망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 건 알겠는데, 다상이 한 명을 지키려고 너무 많은 인원이 있었다. 다상은 이 사람들이, 자신을 천대하는 건지, 귀빈대접하는 건지 헷갈렸다. 공주란 사람은 자신을 조금 대접해주는 듯한데, 홍대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을 벌레 보듯 한다. 그리고 공주란 사람의 말을 잘 듣는 듯도 한 홍대장인데, 실제로 보면, 지 마음대로 다하고 있는 홍대장이었다. 누가 서열 1위인지 알 수 없었다. 다상은 여기서 도망을 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이대로 눌러 앉아야 하는 건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 이상한 곳에 온 것부터 뭔가 잘못되었다. 다상은 자신이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부터 생각해 보았다. 그 생각을 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침에 집에서 나온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다음에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갑자기 다싱이 이곳에 떨어졌을 뿐이다. 다상은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로 갇히고 말았다. 대한민국 서울은 아니다. 그리고 2020년에 있을 만한 곳도 아니다. 분명, 여기는 고대이거나, 아니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이다. 그렇다면, 다상은 지금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인가? 라며 이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그 의문은 두려움도 함께 왔다. 만약,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이대로 맞아서 죽는 걸까? 다상은 아까전에 벌거벗긴 채 맞았던 그 상황에 대해서 다시 치욕스러워졌고 분노에 떨었다. 만인 앞에서, 그것도 여자가 있는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 매를 맞다니. 다상은 한번도 매를 맞아본 적이 없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매 맞을 짓을 하지 않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다상의 부모님은 매를 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심지어는 중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 애한테 절대로 매를 대지 말라고, 만약 잘못한 일이 있다면, 자신들이 잘 타이르겠다며 신신당부해 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매라니? 난생 처음 맞아본 매는 아프기 이전에 수치스러웠다. 매의 따가운 기운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그 수치스러움이 견디기 힘든 거였으나, 매를 맞고 나니 그 수치스러움은 오히려 견딜 만한 것이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만큼 매는 아팠다. 매를 다 맞고 난 후에는 이전보다 더 수치스러웠다. 다상은 화를 내고 싶었으나, 누구에게 화를 낼 입장도 못 되었다. 이 사람들에게 괜히 화를 냈다나는 어떤 보복이 가해질지 알 수 없었다.
게스트룸 안은 푹신푹신한 방식이 달린 현대식 의자들이 몇 개 있고 족히 10미터는 되는 크기의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침대도 푹신푹신한게 있었다. 의자를 세어 보니, 여섯 개였다.
“고대가 아니다.”
옛날이라면, 이런 가구들이 있을 리 없었다. 공주와 홍대장, 그리고 부하들의 복장은 옛날 복장이었다. 가구들이 현대식인 걸 보면, 분명 여기는 고대는 아니었다. 다상은 분명 다른 행성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다상은 다른 시대로 점프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생각났다.’
재섭이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게 어디인지는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아서 잘은 모른다. 분명 재섭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재섭에게 물어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재섭을 만나야 한다. 다상은 어떻게든 재섭을 만날 방법을 찾아보려 궁리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우선은 이 게스트룸을 탈출해야 하며, 재섭이 있는 곳을 알아내야 한다. 어쩌면, 재섭이 자기를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희망이 솟았다. 그래, 버티자. 일단, 재섭이가 올 때까지 버티자. 분명, 재섭을 만나면 길이 있을 거다. 다상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맞은 곳이 따끔거렸지만 그대로 잠을 청했다. 다상은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 기다려보자고, 공주도 분명 내 편이 되어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길은 내일 찾아보기로 했다. 일단 지금은 쉬자. 슬슬 다상은 잠이 들어갔다. 다상은 깊이 잠이 들었다.
밖에서 보초를 서던 사람들이 후닥닥 뛰어가 다상이 깊은 잠이 들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홍대장이 말했다.
“그래, 드디어 시작되었군!”
공주가 다상이 잠을 자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진짜 이 애가 그 사람 맞아?”
“공주님, 그놈의 예레 선지자가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려 들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되어야 그놈도 한몫 챙기는 거니까요.”
“그렇긴 하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선지자가 시킨 대로, 옆에 누워 보시지요. 여기서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만약,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알았어.”
공주가 다상이 쿨쿨 자고 있는 침대 옆에 누웠다. 공주는 다상의 얼굴 앞에서 손을 한번 흔들어보았다. 깊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공주는 다상을 툭 건드려보았다. 여전히 깨지 않는다. 그제야 안심한 공주는 다상의 옆에 누웠다.
공주는 눈을 감았다. 이 세계를 구원하러 온 사람. 스스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정말로 구원을 위해 힘써 주고, 실제로 이 나라를 구원할 사람. 그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 저승계와의 협치. 저승계를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공주와 그 사람이 반드시 같은 꿈을 꾸고 거기에서 뭔가를 이루어내야 한다.공주는 다상의 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나라를 구하고 싶었다. 공주는 눈을 감았다. 다상을 생각했다. 다상의 눈을 떠올렸다. 공주는 졸음이 몰려왔다. 다상처럼 공주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공주는 다상이 무슨 꿈을 꾸는지 알기 위해 애썼다. 쉽지 않았다. 공주도 자신에게 쏟아오는 잠을 통제할 수 없었다. 다상이 꾸는 꿈을 같이 꾸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공주도 코를 골기 시작했다.
2.
“저놈들이 드디어 오려고 한다.”
험상궂게 생긴 저승사자 하나가 말을 띄었다.
“그래, 드디어 오려고 하는군. 여기가 김히 어디인지도 모르고!”
“자네들, 무슨 얘기하고 그러나?”
“대장님, 지금 꿈 속에서 접속 중인 연놈 한쌍을 발견했습니다.”
“그 년놈들인가?”
“맞습니다. 그 년놈들. 하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고, 하나는 저희들이 지상에 가둬둔 년이죠.”
“뭐라고? 감히? 갇힌 년이 지금 탈출을 하려고 시도한다는 게냐?”
“그런 거 같습니다.”
“어디까지 온 거냐?”
“꿈 속에서 서로를 찾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년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놈은 어떻게 알고 찾아?”
“그걸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놈은 자기가 무얼 찾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되겠다. 내가 그놈한테 가봐야겠다.”
“아니, 대장님, 직접이요? 저희들이 먼저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다. 그 연놈들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봐두고 와야겠다. 그래야 다음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너희들은 다른 녀석들 잘 감시하고 있어.”
“예, 다녀오십시오. 대장님.”
3.
다상이 길을 걷고 있다. 한참을 걸었는데, 어디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새벽안개 같았다. 아직은 어두운데, 날이 점점 환해지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때때로 까마귀 소리가 까악 까악 울었다. 다상은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어딘가로 새들이 떼지어 날아다니기도 했다. 다상의 주변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길은 울퉁불퉁하기는 했지만, 아스팔트가 깔려 있었다. 아스팔트를 너무 대충 깔아놓은 것 같았다. 가끔, 옆으로 차들도 지나갔다. 다상은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계속 걸었다. 가끔 다상은 울부짖었다. 울부짖다가 이유도 모르고 울었다. 다상은 무언가를 찾고 있다.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상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애초에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는지도 몰랐다. 다상은 자신이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만 알았다. 다상은 계속 찾았다. 한참을 걸었다. 다리도 슬슬 아파왔다. 그때 앞에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하얀색 원피스 차림이었다. 다상은 여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가 어딘가요?”
여자가 대답했다.
“당신이 찾고 있을 그곳이요.”
“제가 뭘 찾고 있는지 혹시 아시나요?”
“당신이 찾고 있는 건, 바로 앞에 있어요.”
“바로 앞에요?”
“안 보이시나요?”
다상은 앞을 보았다. 앞에는 그 여자 외에 보이지 않았다. 다상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제 앞에는 당신 밖에 안 보이는데요?”
“제대로 말씀하셨네요.”
다상이 다시 뭐라고 대꾸하려고 했으나, 까마귀 한 마리가 다상과 그 여자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여자가 까마귀를 쫓아내려 했으나, 다상은 왠지 그 까마귀가 불쌍했다.
“그냥 두세요.”
“안돼요. 이 까마귀, 이대로 두면…”
“괜찮아요. 제가 무얼 찾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께요. 고마워요. 대꾸해줘서.”
“아, 안 되는데…”
여자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다상은 가던 길로 계속 가 버리고 말았다. 다상이 보이지 않게 되자, 까마귀는 여자의 귀를 쪼기 시작했다.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다상의 귀에는 그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공주가 깨어났다.
“앗, 공, 공주님… 피, 피가…”
“그놈들이 눈치챘어. 내 귀를…”
“치료부터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모르는 거 같아. 전혀.”
“그렇다면, 선지자가 말한 그 사람이 맞다는 말씀이겠군요?”
“그런 거 같아. 그놈들은 우리를 계속 감시하고 있는 걸까?”
“공주님, 꿈에 접속하면 그만큼 위험이 뒤따릅니다. 공주님 혼자만 가시면 안 됩니다. 우군이 더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는 꿈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어떡합니까?”
“분명, 이 사람이 우군을 더 데리고 올 거야.”
“그러길 바래야겠죠. 공주님, 귀는 잘 들리십니까?”
“다행히도 막 쪼려는 데 깼어. 살짝만 쪼아댄 거 뿐이야.”
“공주님, 우군이 더 생길 때까지는 접속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이 사람을 깍듯이 모셔.”
“깍듯이요? 그건 좀…”
“홍대장님, 홍대장님께서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사람이예요. 잘 해드려야 돼요.”
“예,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 가지고는 안 될 거 같은데요?”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상이가 뒤척이고 있었다. 이제 곧 잠에서 깨려는 모양이었다. 공주는 다상이 눈치챌 새라, 얼른 방 밖으로 나가자고 홍대장을 재촉했다.
다상이 깨어 있을 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숨 잘 잤더니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해진 듯 했다. 배가 고팠다. 밖에 있는 보초병한테 밥은 안 주는 거냐고 물었다. 보초병이 곧 식사시간이 다 되었다고, 조금 있으면 부를 거라고 했다.
밖은 환했다. 여기는 밤이 없는 걸까. 다상이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저 멀리 태양이 빛나는 것이 보였다.
‘해가 있는 걸 보면, 분명 달도 있고, 어둠도 있을 거 같은데.’
다상이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곳은 해가 지지 않았다.
“제가 몇 시간이나 잤나요?”
“시간이 뭡니까? 저희들은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때가 되면, 잠을 자고, 때가 되면, 생리현상을 해결합니다.”
“그 때라는 게 시간 아니요?”
“그게 시간이라는 겁니까?”
“그럼 그게 시간이 아니고 뭐요?”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먹을 걸 차렸나 봅니다. ”
저 멀리서 남정네 하나가 손을 흔들었다.
“밥은 누가 준비하는 거요”
“저 손을 흔드는 남정네가 합니다.”
“혼자서요?”
“혼자서 하는 게 이상합니까? 저희들은 보통 혼자서 다 합니다. 청소당번 한명, 식사당번 한명, 공주님 시중 한명.”
“근데, 보초병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이요?”
“죄송합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참, 비밀도 많네.”
다상은 배가 고파서 보초에게 얼른 먹으러 가자며 재촉했다. 남정네가 있는 곳으로 갔더니, 족히 50명은 앉을 법한 식탁과 수십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보초과 함께 그곳에 앉아 있었더니 대장과 공주도 곧 그곳으로 와서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이게 뭔가요?”
“비린내 소스국이요.”
공주가 대답했다.
“비린내 소스?”
다상은 냄새를 맡아보았다. 비리지 않았다.
“비린내 안 나는데요?”
“비린내 나는 게 아니예요. 비린내 나는 생선들을 비린내 안 나게, 말린 소스로 말아올린 국이예요. 바다에서 건져올린 생선들을 짓이겨서 만들었어요.”
“신기하네. 소스는 뭘로 만들었는데요?”
“풀이요. 말린 풀이요.”
“풀? 어떤 풀이요?”
“그냥 풀이요.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저흰 그냥 풀이라고 불러요.”
“네! 근데 밥은 없나요?”
“죄송해요. 저희가 먹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
다상은 비린내 소스국을 후루룩 마셨다. 수저도 젓가락도 없었다. 그저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맛이 묘했다. 시큼한 것도 아니고, 달콤한 것도 아니었다. 마시는 순간, 배가 든든해졌다.
“신기하게 배가 부르네요.”
“저희는 이거 외에 다른 걸 먹을 수가 없어요. 어떤 보초병 하나가 다른 걸 먹었다가 저세상으로 가셨죠.”
“아! 이곳 사람들의 체질인가요?”
“네. 그런 거 같아요.”
애매한 대답이었다. 공주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듯 했으나, 다상은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고 생각했다.
“배가 부르네요. 여기는 책 같은 건 없나요?”
“심심하신가요?”
“아니요, 심심하다기보다는.”
“이곳 근처를 얼마든지 돌아다니셔도 돼요. 다만 보초병과 함께 하세요. 안 그러면 다상님을 보호해 드릴 수가 없어요.”
“보호요? 보호가 필요한가요? 절 가두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예요. 다상님, 그건 오해하신 거예요. 저희는 다상님을 보호해 드리려고…”
“나참, 실컷 때릴 때는 언제고!”
“죄송해요. 다상님, 그건 제가 정말 사과드릴께요.”
“아니, 잘못한 건 저 홍대장이란 사람이…”
공주가 홍대장에게 뭔가 눈짓을 하자, 홍대장이 즉시 사과를 했다.
“다상 선생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너무 지나친 오버를 하는 거 같았다.그렇다고 죽을 죄를 지었닥. 그냥 사과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다상은 갑자기 이들의 태도가 바뀐 것이 떨떠름했다.
“됐습니다. 앞으로 하는 거 봐서 사과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결정하죠.”
“다상님, 고마워요. 사과를 받아주셔서.”
“아니, 아직 받아들인 게 아닌데…”
그때, 보초 하나가 공주에게 다가와 뭐라고 귓속말을 속삭였다. 보초의 말을 듣던 공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다상님을 잘 모시고 있게.”
공주는 홍대장을 데리고 급히 어딘가로 나가 버렸다.
“아니, 어딜 급히?”
“다상님, 다상님은 이 시간 이후로 저희의 귀빈이 되셨습니다. 깍듯하게 모시라는 공주님의 분부가 있으셨습니다. 다상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다상은 갑자기 태도가 바뀐 이들이 수상쩍었지만, 귀빈 대접해 준다는 이들의 말에 지금부터 뭐부터 하면 좋을까를 생각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있었다.
“나를 처음 발견한 장소, 그 장소로 나를 데려가 주시오!”
4.
“이 새끼들아, 엎드려 뻗치라고!”
저승사자들이 공주와 홍대장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아니, 설개님. 왜 이러십니까. 저야 괜찮지만, 공주님까지…”
“많이 봐주잖아. 귀를 도려낼 걸 기합으로 대신하고 있잖아!”
할 수 없이 공주와 홍대장은 설개 앞에서 얻드려 뻗쳐를 했다.
“그래, 그거지! 너희들이 벌을 받는 이유를 알겠지? 감히 우리에게 대적을 해?”
“잘못했습니다. 설개님.”
홍대장이 잘못을 빌었다.
“잘못한 거야, 당연하지. 이제 어쩔 거야? 저 정신머리없는 녀석, 어떻게 할 건가?”
“즉시,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돌려보내? 어디로? 이 새끼들이! 누굴 농간하려고?”
“돌아가는 즉시, 처단한다!”
“안 돼요, 그건!”
공주가 놀라 소리쳤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너는 이 나라의 공주요, 대왕님의 노리개다. 그러니, 죽일 수 없다. 그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이 나라의 백성 중 100명이 죽는다. 오늘 안으로 처단하지 않으면, 내일 100명이 죽는다. 내일 안으로 처단하지 않으면 모레도 100명이 죽는다. 알간?”
“설개님, 제발…”
공주가 엎드린 채로 울부짖었다.
“나한테 애원해도 소용없다. 공주! 우리 설대장님 앞에서 하소연을 해 보든지 하란 말이다. 대장님이 내게 명령했으니, 나는 따를 뿐이다. 이만, 난 통보했다. 그만 가겠다.”
설개가 사라졌다. 공주와 홍대장이 일어났다.
“공주님, 어떡하실 겁니까?”
“설대장한테 가봐야겠어. 어떻게든 구해내야 돼.”
“공주님, 설대장한테 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아직까지 설대장은 내게 아무 짓도 안 했어. 이번에도 별일 없을 거야.”
“그래도 이번엔 다릅니다. 꼭 다상이란 사람을 구해내셔야겠습니까?”
“그래야 돼.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야.”
“하지만, 꼭 그 방법이 설대장한테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잖아.”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오늘 밤까지 방법을 못 찾아내면 그때 설대장한테 가도 늦지 않습니다.”
“알았어, 오늘 밤까지만 기다릴께. 그 시간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나한테 맡겨줘.”
“공주님, 걱정마십시오. 꼭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5.
다혜는 전단지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금주와 금영이도 그 전단지를 함께 보았다.
“이거 그냥 자동차 전단인데?”
“그냥 자동차가 아닌 거 같아.”
다혜가 뭔가 발견한 듯이 말했다.
“뭐가 있어?”
“여기 봐봐! 자동차 뒷좌석 차문 왼쪽에 아주 희미한 그림이 있어.”
“무슨 그림이지?”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진 않는데, 병아리 같기도 하고?”
“그래, 병아리인 것 같다.”
“그냥 평범한 그림 아냐?”
“평범한 그림 같아 보이지 않아.”
다혜는 금주에게 계속 설명했지만, 자신도 그것이 정확히 무어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분명, 뭔가 있을 거야!”
다혜는 그 병아리 속에 손을 넣어봤다. 순간, 번쩍 빛이 났다. 금주와 금영이가 당황했다. 다혜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 어디로 갔지?”
“다혜야, 다혜야!”
금주가 다급하게 불렀다.
“이 사진 속으로 설마 들어가 버린 거야?”
“아, 진짜 그런가 보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우리도 들어가야지.”
금주가 먼저 사진 속의 그림 부분에 손을 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우리는 안 되나 보네?”
“어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아까 그 할아버지 찾아 봐.”
“그래야겠다. 어디 갔지?”
금주와 금영이가 급하게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 이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구나. 금주야, 다혜네 부모님께 말씀드려야겠다. 이 전단지 가져가서.”
“그래, 언니. 그 방법밖에 없겠어.”
금주와 금영이는 힘이 빠진 모습으로 다혜네 집으로 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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