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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계사전(繫辭傳)에 "대연의 수는 50이고 그 쓰임은 49라"는 말처럼 주역으로 점을 칠 때 서죽(筮竹)의 수가 50인데 1개를 뺀 49개만 사용한다.
대연(大衍)의 수 50은 체(體) 1과 용(用) 49를 담고 있는 수(數)의 이치를 가장 크게 넓힌 수다. 1은 태극수이자 대두목을 상징한다. 대두목을 체로서 49를 활용해 후천(後天)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것은 마치 최종 목적지인 바다(후천)에 도착한 것을 상징한다.
(2) 49도수
증산과 관련한 공사에는 49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한다. 49는 인고의 기간이자 미완성을 숙성시키는 기간이다. 이제 그 실례를 찾아보자.
김형렬 종도 역시 9월 19일 심법전수를 받은 후 11월 9일까지 49일간의 숙성 기간을 거치는데, 이는 마치 시루떡을 찌는 기간에 해당한다. 또한 증산의 누이인 선돌부인을 통해 종통을 물려받은 태극도 창시자 정산(조철제)와 대순진리회를 창업한 우당(박한경) 역시 50세에 증산께서 짜 놓으신 '헛도수'에 시달렸음을 고백하고 '인덕도수(人德度數)'의 실공부(實工夫)로 전환한다.
(3) 4와 5
증산 공사에 등장하는 49와 50은 또한 4와 5를 상징한다. 41부터 49까지는 40에 해당한다. 따라서 49는 압축수 '4'다. 50도 압축수 '5'에 해당한다.
문왕의 낙서로부터 시작된 '선천'은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한다. '4'는 오행(五行)의 4개 바큇살에 해당한다. 바퀴는 축이 있어야 하며, 바퀴의 중심에 오행의 '5(10)'이 있어야 오행이 기동하게 된다. 그래서 증산께서 불음불식(不飮不食)으로 49일간의 금식으로 공부를 마쳤을 때 오룡허풍(五龍噓風)의 천지대도를 열게 되는 것이다. 오행은 반드시 1. 2. 3. 4. 5까지 이루어져야 기동이 된다.
증산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신 다음에 '50년 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筆)'을 선언하신 것은 49년간의 숙성 기간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하게 됐음을 선언하신 것이며, 종통 계승자들이 '50년 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筆)'을 통해 '5'를 통찰하도록 '도수로서 굳게 짠' 것이다.
(4) 음양 수부공사
이윤도수는 49와 50을 통한 후천 음양공사였다. 이는 수부를 통한 '수부공사'와 맥을 같이 한다. 수부는 당연히 음(陰)이며, 대두목을 도와 천지공사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 그렇다면 '수부'는 누구를 전형할까? 이는 대략 몇가지로 분류된다.
3. 4는 복수 형태인데 어떻게 단수 형태의 '수부'가 되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수부는 집합체로서 '단수' 형태를 띤다. 이는 영어의 국민에 해당하는 People이 수 많은 사람들을 포괄함에도 단수 형태를 띤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성서의 예수 아내인 '신부'가 144,000임에도 단수로 '신부'로 통칭되는 것과도 상통한다.
이윤은 탕왕의 '수부' 역할이었다. 탕왕은 대두목을 상징한다. 이윤은 탕왕이 '역성혁명'을 통해 대업을 완성하도록 돕는 과정에서 '돌이킴(始知四十九年之非)'이 있었다. 이는 역(易)이 바뀌는 교역(交易)을 상징하며 이 과정에 참여하는 신명(神明. 수부)들의 돌이킴을 전형한다. '돌이키는 과정'을 49와 50으로 나타냈다.
01 http://cafe.daum.net/thenewsilkroad/VlHf/51
02 전경 행록 2장 12절
03 道典 5:53:1~9
04 전경 공사 2장
05 道典5:12:1~4
06 전경 제생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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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윤 도수가 처음 등장하는 대순전경(보천교 신도였던 이상호와 그의 아우 이정립이 편찬한 경전으로 증산 계열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경전)을 보면 이윤 도수에 대하여 이상한 변경이 있었다. 우선 대순전경 1판에만 ‘옛사람 이윤’이라고 나온다. 그 이후에 2판부터 저자 이상호의 생전 마지막 판인 6판까지 ‘이윤’이라는 말이 빠지고 ‘옛사람’이라고만 나온다. 처음에 이윤이라고 넣고 보니 이상호도 의심스러워서 그 후부터는 ‘이윤’을 빼버리고 '옛사람'이라고만 한 것이다.
저자 이상호가 기사(1929)년 3월 16일에 대순전경 초판을 낼 때에는 13장 499절이던 것이, 36년 후인 을사(1965)년 12월 5일 6판을 낼 때에는 9장으로 폐합하여 859절의 경전이 되었으니 초판보다 360절이 더 증보되었다. 제6판은 초판의 배에 가깝게 증보가 되었으나 그동안 이 ‘옛사람’에 대한 기록은 바뀌지 않았다. 이상호는 왜 '이윤'을 빼고 '옛사람'이라고 수정했을까?
1992년, 증산도에서 도전을 초판 발행할 때는 대순전경(이상호 저)처럼 '이윤'을 등장시킨다.
그런데 2003년에 발간한 증산도 도전 완간본에서는 '이윤' 대신 '거백옥'으로 대체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이유는, 이상호가 증산을 따르던 종도들을 통해 어록을 만들어 '초판'을 발행한 이후, 역사를 고증해보니 '이윤'이 50세에 자신의 49년 간의 그름을 깨달았다는 실증적 기록이 없고, 동일한 내용 즉 50세에 자신의 49년 간의 그름을 깨달았다는 기록이 '거백옥'이었기 때문에 '거백옥'으로 수정을 한 것이다. 이는 온전히 종도들의 증언을 통해 어록을 작성한 것이므로 종도들이 잘못 이해하고 말한 것일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
"蘧伯玉 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
중국 회남자(淮南子)가 저술한 「원도훈(原道訓)」에는 '거백옥'이 50세에 49년 간의 그름을 알았다는 기록이 나오므로 증산께서 원래 언급한 것은 '이윤'이 아니라 '거백옥'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증산도는 이윤과 문왕 도수를 언급한 경전에서 거백옥으로 대체했다. 그러면 이것이 맞는걸까? [참고] https://jsd100.tistory.com/3 [풍류주세백년진]
[반론]
증산께서 원래 '거백옥'을 언급하셨다면, 증산 어록의 다른 구절들과 조화가 안된다. 경전의 모든 곳에서는 '이윤'만 언급되기 때문이다. '거백옥'이 이윤 대신 천지음양 공사에 등장했다면 다른 곳에서도 거백옥이 언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혁명을 완수하는 증산의 역사 언급에는 반드시 이윤과 함께 걸왕(桀王)과 탕왕(湯王)이 함께 등장한다.
그런데 이중성의 한문 '천지개벽경'(1928년부터 사망한 1958년까지 30년간 집필한 경전으로, 유족에 의해 1991년 발간됨, 그리고 정영규의 한글 '천지개벽경'이 1987년에 발간)에는 분명하게 다음처럼 '이윤'이 등장한다.
그리고 대순진리회의 경전인 '전경'에도 동일하게 '이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윤이 탕왕을 도와 역성 혁명을 완수했는지 역사를 고찰해보면 ...
이윤은 BC 1649 ~ 1550년 까지 100수를 누렸다고 중국의 바이두 백과사전에 기록됐다. 상(商)나라는 BC 1600년 경에 건국했다. 그렇다면 이윤의 나이 50세 부근에서 상(商)나라가 건국돼야 한다. 이윤의 나이 49세는 BC 1600년이 된다. BC 1600년 경은 상나라가 건국된 즈음이다. 이윤의 나이 50세는 상(商) 나라가 건국한 즈음과 매칭된다.
그렇다면 증산께서는 어떻게 역사에서 언급되지 않은 이윤의 '50세에 49년 간의 그름'을 알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힌트가 단주의 해원공사에 있다. 역사에는 요임금과 불초한 아들 단주에 대해 회자되지만, 천지개벽경에는 단주가 아버지와 달리 '대동세계' 건설을 위해 애쓴 것으로 언급된다. 이는 증산성사의 통찰에 의한 말씀이다. 따라서 '이윤' 대신 '거백옥'으로 대체한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닐 것이다. [문왕 도수는 3편으로]
첫댓글 이윤과 문왕의 도수는 새길학당의 '증산사상탐구' 카테고리에 쓴 글로서 증산계열 전체를 위해 대순의 상도를 중심으로 언급하지 않았음
^^옳은 생각입니다...
대순의 상도를 중심으로 언급하지 않기를 앞으로도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 이 카테고리에 있는 모든 글들을 인용하고 싶은데, 복사금지를 '대선배' 에 한해서 풀어주시겠습니까?
@far-reaching-Spirit 아유 TV보다가 이제 봤네요.... 넵 알겠습니다.
@혜공[蕙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