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우경(于鏡)선생 소전
우경(于鏡)은 나의 친구 김영달(金永達)씨의 소호(小号)이다. 우경(于鏡)이란 뜻은 거울에서 자기 얼굴을 봄이니 자기만 살핀다는 뜻이라. 그 호(号)의 본의(本意)와 같이 김군은 몹시 청고(淸高)한 사람이라 그 춘장 김낙현(金洛鉉) 선생은 경북의 문인이오 높은 문학가로 저명한 선생이다. 우경(于鏡)은 그 선생의 장자로 일찍이 정훈(庭訓)을 이어 한학을 수득(修得)하였고 기타 기록이 치유(*宙)한지라.
나는 보호조약 6년 전 기해(己亥)에 상경하였고 소후(少後)에 우경(于鏡)도 상경하여 배재중학에 수학(修學)하다가 동경에 가서 어느 대학을 공부하고 또 미국에 건너가서 어느 대학을 수료하다가 귀국하니 어언 세월이 흐르고 시사가 돌변하여 모두 마음에 맞지 않아 출세를 단념하고 어느 중학교 영어교원으로 다니며 그날그날을 보내었다.
끝까지 선거(鮮居)로 있을 수 없어 이화대학 출신인 이쩨세양과 결혼하여 자녀까지 몇 얻어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부부 상의하고 가정은 생활은 그만두고 이혼은 아니요 각거(各居)하기를 의논하였다. 나는 이경(離京) 8년에 재작년에 비로소 상경하여 우경(于鏡)을 만날 길 없어 그리워하던 차 마침 전차 내에서 이쩨세를 만나 우경(于鏡)의 안부를 알고 좀 만나기를 요하였더니 다행히 찾어 왔다. 지금도 각거(各居)를 계속하느냐고 물으니 계속한다하여 경세격물(經世格物)의 뜻이 그냥 남아 있다.
그의 말이 하나님이 두 눈을 주어 모든 것을 보라 하였건만 사람들이 남만 보고 자기는 보지 않는 고로 싸움이 쉬지 않는다 하며 우경(于鏡)은 자기 살핌에 전력하고 거기서 철학을 깨닫고 진리를 배운다 하며 구청(口晴)를 위하여 그리 애쓸 것 없고 살기 위하여 지금은 화신(和信)에 사무를 보고 있다고 심경이 청쾌(淸快)하여 아무 근심(**)도 원망도 없고 그날그날 살어 가면 그만이고 거유(去留)에 자유라고 그 기상은 남화(南華) 노파와 비슷한 긍어(肯於)을 가졌다. 돈은 해 무엇 하며 처자는 해 무엇 하는가 아무데도 거리낌이 없는 자유의 생활이다.
만날 때가 길가에 낙엽이 무수하고 떨어짐에 저 낙엽은 귀향하는 인부의 매일 임금이 삼백 원이라고 나는 화신(和信)에 나아가 그것을 해볼까 한다. 그리고 자기가 지은 글이라고 하며 외여 들린다.
태산정기수운거(泰山定氣愁雲去) 거세침혼처월래(擧世沈昏霽月來) 그 뜻은 참 청랑(晴朗)하고 명쾌(明快)하다. 나도 우경(于鏡)을 위하여 한시(漢詩) 일절을 외었다. 우경선생이상고(于鏡先生理想高) 일진부동방당쇠(一塵不動方塘衰) 유처유자시여무(有妻有子視如無) 대은성중추후기(大隱城中誰後記)
<于鏡 詩句>
泰山定氣愁雲去
태산이 정기를 잡으면 근심구름 떠나고
擧世沈昏霽月來
온 세상 어둠에 빠져도 밝은 달 온다오.
<愛山 詩句>
于鏡先生理想高
우경 선생의 높은 뜻이 참 고상하오니
一塵不動方塘衰
티끌 하나에 반듯한 연못 흔들림 없네.
有妻有子視如無
부인 있고 아들 있어도 없는 듯 하고
大隱城中誰後記
도시의 큰 은자를 누가 후에 기억하랴?
<一九四九年> <1949년>
(송병혁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