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4월 1일 갑술
맑음. 분향하였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김경덕金景德 어른이 찾아오셨는데, 지금 오산서당梧山書堂註 001의 산장山長(훈장)이 되었다. 그 참에 여러 노인을 모시고 비라飛羅를 거쳐 배를 타고 오산梧山으로 갔다. 서당 집은 새로 지었는데, 앞의 형세가 탁 트여 참으로 사자士子들이 공부할 곳으로 적합하다. 모인 인원은 30여 인인데, 직청直淸·태수泰叟도 서원에서 왔다. 오후에 길을 나서 죽파竹坡 피우소避寓所에 당도하였다. 숙모는 벌써 완쾌되셨고 사촌 누이와 운흥雲興도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 아주 다행이다. 머물러 잤다.
윤4월 13일
밥을 먹은 뒤에 모임을 파하였다. 가친은 홍洪 어른 및 용궁· 예천의 여러 노인들과 함께 용두정龍頭亭으로 향하고, 김金·강康 등 여러 어른들은 본가로 곧장 돌아가셨는데, 각자 회화록會話錄을 기록하고 떠나시어 홍대경洪大卿 어른은 짤막한 서문을 그 아래에다 붙여 주셨다.
이번 모임에 참석한 장로는 16인으로, 진사 김시태金時泰 대형大亨 어른은 78세, 홍도원洪道源 대재大哉 어른은 77세, 지평持平을 지낸 이적의李適意 이달以達 종조부는 73세, 권영權璟 경중景仲 어른도 73세, 가친은 71세, 권수원權壽元 인백仁伯 어른도 71세, 강여해康汝楷 경칙景則 어른도 71세, 익위翊衛를 지낸 홍상민洪相民천경天卿 어른도 71세, 강집姜 진경振卿 어른은 70세, 권협權恊인중寅仲 아저씨는 67세, 김만지金萬祉 수지綏之 어른도 67세, 이석李晳 유명惟命 아저씨는 65세, 김경렴金景濂 자창子倡 어른도 65세, 류위하柳緯河 여삼汝三 아저씨는 59세, 홍상욱洪相勖 대경大卿어른은 58세, 진사 이세원李世瑗 경옥景玉 어른도 58세이셨다.
연세 높으신 분들이 성대하게 모인 것은 낙사洛社註 003에 뒤지지 않을 것이나 모두들 백 리나 오륙십 리 밖에서 말을 움직여 오신 데다 또 배를 띄워 이름난 곳의 절경을 노닐며 구경하였으니, 이는 낙사가 누리지 못한 것이다.
젊은이로서 혹 부형을 모시고 오거나 혹 스스로 모임에 나아온 사람은 18인인데, 김성채金聖采 덕우德優, 조자신趙自愼 신지愼之, 홍중석洪重錫 백임伯任, 종숙 이진익李震翊 삼로三老 -원문 빠짐- 상사 홍서귀洪瑞龜 국상國祥, 김창흠金昌欽 대임大任, 조하종曺夏宗원보元甫, 권봉의權鳳儀 우징虞徵, 권덕權悳 이직以直, 김학증金學曾희약希約, 김경준金景濬 심윤深允, 김국채金國采 익장益章, 김세채金世采 천장天章, 류준빈柳浚玭 직청直淸, 류준찬柳浚纘 술부述夫 및 나였다.
성대한 일을 직접 보고 여러 날을 모시고 놀았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이에 자세히 기록하여 훗날의 훌륭한 추억거리로 삼고, 또 조만간에 모사模寫하여 첩을 만들어서 각 장로댁에 나누어 보낼 작정이다.
지난번에 위장慰狀을 써서 태수泰叟에게 사람을 보냈던 바, 그에 대한 답장을 받았는데 또 사임 단자가 들어 있다. 대개 중복重服의 경우에는 장사를 치르기 전에 체임한다는 향규鄕規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자를 받아들였다. 마음이 몹시 한스럽고 서운하다.
윤4월 29일
들으니, 상주 목사가 어제 비로소 옥성서원에 갔는데, 모인 인원은 40여 인이었고, 이성지李性至 어른도 왔으며, 『심경心經』「극기복례장克己復禮章」을 강하였다고 한다. 서일이 가서 참석하고 돌아왔다.
저녁에 식산 어른이 말을 타고 근암서원近嵒書院에 오셔서 즉시 가 뵈었다. 들으니, 이번에 진주 덕산서원德山書院에 가서 환안제還安祭註 009를 지낸 뒤 체임되고, 진주 목사 윤기경尹基慶 장숙章叔註 010을 후임으로 선출하였다고 한다. 본 서원의 규례에 원장은 명망이 아주 높은 사람을 택하여 선출하되, 만약 합당한 사람이 없으면 그 자리를 비워두고 선출하지 않으며, 부임副任은 다만 도유사都有司 두 사람만 있을 뿐 재임齋任은 없다고 한다. 사천泗川에 구암서원龜巖書院이 있는데, 진주 접경의 유생이 혹시라도 이 서원에 종사하게 되면 덕산서원에서 배척하여 서원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치중致重의 편지를 받았다. 또 영해寧海 이명배李命培의 편지를 받았는데, 근자에 부형의 명에 따라 이름은 기원期遠으로 바꾸고 자字는 치중致仲으로 바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