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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과 제사 회복(1-6)
신앙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제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그분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또한, 제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영적 성장에 기여합니다. 결국,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이루고, 튼튼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1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2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3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4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5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6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1-6)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에서 성전 재건을 위한 첫 모임을 가지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들은 7개월째 되는 날에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성전 기초를 놓기 위해 기초를 쌓기 시작합니다. 백성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경배로 가득 차 있습니다.
(1) 사건의 배경(1)
에스라서는 백성들이 어떻게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고(1장), 귀환한 무리들이 누구였는지(2장)를 기술합니다. 그리고 이제 귀환의 주목적인 성전 재건의 주제를 다룹니다. 포로에서 귀환 후 각자의 성읍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일곱째 달에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입니다(1). 유대력으로 티스리월(양력 9-10월)로 알려진 일곱째 달은 여러 절기들(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 모여 있어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달로 여겨졌습니다. 종교력에 의하면, 티스리월 첫째 날은 나팔절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입니다(레 23:24). 그들은 귀환한 이후 각자의 성읍에 머물면서 이때를 기다렸다가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즉, 새해를 예배로 시작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의 모임은 지도자의 소집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이었습니다. 본문은 ‘일제히’(한 사람처럼)라는 표현을 통해 이 일에 일치된 마음으로 연합했음을 강조합니다.
(2) 번제단과 제사와 회복(2-3)
귀환민들이 예루살렘에 함께 모인 이유는 제단을 쌓기 위함이었습니다(2). 이 일에 앞장선 사람은 대제사장 예수아와 제사장들, 그리고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었습니다(2a). 즉 이 일에 있어서 지도자들이 함께 힘을 모은 것입니다. 대제사장 예수아가 스룹바벨 앞에 소개되는 것은 이 일이 제사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스바살 대신 스룹바벨이 언급된 이유는 이때 당시 스룹바벨이 세스바살을 이어 유대 총독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만든 제단은 새로운 모양의 제단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에 제시된 모형을 따른 것입니다(2,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 그리고 제단을 세운 장소도 옛 제단이 있던 성전 마당이었습니다(3). 그들은 회복된 제단 위에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제사를 드리려 했습니다(2b). 무엇보다도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70년 포로 기간 동안에 얻은 소중한 교훈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제 모든 면에서 삶의 규범이었습니다.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웠다’(3)는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제단을 그 터에 세웠다’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한 ‘모든 나라 백성’(아메하아라초트)은 문자적으로 ‘그 땅의 백성들’로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가나안 땅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 그 땅에 강제적으로 이주한 이방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곳에서 자신들 나름대로 제사를 드렸던 것으로 보입니다(스 4:2). 그렇지만 귀환한 백성들이 보기에 그들의 제사는 순수하지도 합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귀환민들은 그들과 함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살까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절기와 제사(4-6)
귀환민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4). 초막절은 유월절, 칠칠절과 함께 고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였습니다(레 23:34-43; 민 29:12-40). 초막절 축제는 유대력으로 7월 15일부터 시작해서 1주일 동안 계속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성회로 모였습니다. 귀환민들은 솔로몬 왕 당시 일곱째 달에 성전 건축을 기념하여 축제를 벌인 것처럼(대하 5:3), 일곱째 달에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성전 중심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절기와 예물들을 ‘기쁘게’ 드렸습니다(5). 귀환민들의 삶은 철저하게 율법에 기초한 삶이었으며, 그들의 헌신은 자발적이었습니다. 비록 아직 성전이 재건되지는 않았지만, 그때로부터 절기를 지키는 것과 제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5,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 6b절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라는 표현은 새로운 시대는 열렸지만, 아직도 성전 건축의 역사는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음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7절부터 시작되는 성전의 기초 공사를 준비합니다.
성전 건축을 준비함(7-9)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건축을 위해 자재를 준비하는 모습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철저한 준비와 계획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신앙 공동체 내에서 서로 돕고 협력하는 것은 필수적이며, 함께하는 힘이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러한 협력은 믿음의 여정에서도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결국, 공동체의 연합과 준비가 신앙 생활의 토대가 됩니다.
7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8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9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7-9)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건축을 위해 필요한 자재를 준비하고,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주변 이웃들과 거래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나무와 다른 자재를 가져와 성전 기초를 놓기 위해 힘을 모읍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의 기초 작업을 감독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일에 임합니다.
(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7)
귀환민들이 성전 재건을 준비하는 장면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 과정을 연상케 합니다(대상 22장: 대하 2장). 목재를 실어 올 두로와 시돈 지방(7a)은 고대로부터 목재와 건축 기술로 유명합니다(대상 22:2,4,15). 솔로몬이 레바논에서 목재를 수입하고 두로의 히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처럼(왕상 5:6-10), 귀환민들도 이 지역에서 백향목을 조달합니다(7b). 레바논의 백향목을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방식도 솔로몬 성전의 경우와 유사합니다(참조, 대하 2:16). 공사를 시작한 시점은 ‘예루살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로 제시됩니다(8). ‘바벨론에서의 귀환’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 이른’ 시점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 구절은 귀환민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자재들을 조달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2년이 되는 시점임을 의미합니다(참조. 스 2:68). 이것은 성전 건축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했음을 암시합니다. 특별히 둘째 달을 언급하는 이유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 기사와 연계시키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참조. 왕상 6:1; 대하 3:2).
(2) 기초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8-9)
공사를 시작한 인물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를 중심으로 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었습니다(8a). 본문은 그들 외에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 즉 일반 백성도 참여했음을 강조합니다(8b). 과거 솔로몬의 성전 건축 때보다 일반 백성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즉, 성전 재건은 온 백성이 함께 한 것입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이십 세 이상의 레위인들을 세워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합니다(8b-9).
신실한 하나님을 찬양(10-13)
성전 재건의 기초를 놓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은 신앙의 회복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합니다. 성전 건축 과정에서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은, 신앙 공동체의 연합과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함께할 때 더 큰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후의 회복은 더 큰 기쁨과 감사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10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12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13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10-13)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기초를 놓을 때 찬양과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악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전의 기초가 놓이는 것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일부 늙은이들은 이전 성전의 폐허를 기억하며 슬퍼하는 감정이 섞입니다.
(1) 성전의 지대를 놓음(10-11)
성전 기초를 놓을 때 그들은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10).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불었고, 아삽 자손 레위인들은 제금을 들었습니다. 이 장면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을 연상케 합니다(참조, 대하 29:25-26). 10b절의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는 귀환민들이 선조들의 신앙 전통에 충실했음을 의미합니다. 제사장들과 아삽 자손 레위인들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찬송합니다(11).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선하심’(토브)과 ‘인자하심’(헤세드)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확인합니다.
(2) 백성들의 반응(12-13)
포로지에서의 귀환과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는 하나님의 헤세드, 곧 사랑의 결실입니다. 성전의 지대가 놓이는 모습을 보고 백성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 가운데 솔로몬 성전을 본 나이 많은 사람들은 대성통곡합니다(12a). 아마 그들은 옛 성전에 비해 초라한 현재 성전의 모습에 안타까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릅니다(12). 비록 인간의 눈에는 초라해 보이지만, 앞으로 이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참조, 학 2:7).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주도하에 시작된 성전의 기초공사가 완성되었습니다. 성전 터의 완공은 앞으로 귀환 공동체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가 될 것을 내다보게 합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포로 이전과 이후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합니다. 새롭게 재건될 성전도 이전의 성전과 연속성을 보입니다(7-8). 즉, 이전의 성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건축되고(7; 참조. 왕상 5:6-10), 이전의 제의들이 반복됩니다(10; 참조. 대하 29:25-26). 귀환 공동체에게 삶의 기준은 전과 동일하게 모세의 율법입니다(2,4). 그들은 조상들의 신앙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에스라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재건을 위해 모여 기초를 놓는 모습을 통해 신앙의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며, 감사와 찬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어려운 시기에도 공동체의 힘을 통해 서로 돕고 협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우리는 신앙의 여정을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더욱 견고히 세워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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