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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산소
전도서11장1~10절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법
오늘 본문은 불확실한 시대에 사는 법을 교훈합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전도자는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주저하느라 세월은 낭비하지 말라고, 또 젊음이 영원하지 않기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도전과 즐거움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1. 삶이 불확실해도 도전하라(1~6절)
1절“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이말씀은 자선 또는 구제 생활을 권면하는 말로서 남을 위해 선을 베풀고 쌓으면 이내 그것이 좋은 결과로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람이 사는 동안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행할 것을 촉구하고, 또 구약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를 촉구하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신15:10, 잠11:24,25,28:27).“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잠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바울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선행을 행할 때, 때가 되면 그 결실을 얻으므로 결코 낙심하지 말 것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갈 6:7-10).
*갈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다음으로 떡이 주는 의미는 생명의 근원이며 원천입니다. 그러다보니 떡 때문에 싸우는 일이 참 많습니다. 떡이 있는 곳에는 늘 경쟁이 있고. 떡을 많이 차지하려는 몸부림이 현대인의 삶입니다. 대부분 떡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 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떡은 많은 힘이 있어 사람을 굴복 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떡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고, 떡을 주신 궁극적인 이유는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떡이 아닌 순종 때문에 산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순종의 떡을 먹는 사람은 떡을 물 위에 던지며 사는 사람입니다. 떡을 나누는 일이, 소비되고, 낭비되고, 헛될 것 같은데, 이웃들에게 내가 피땀 흘리며 얻은 떡을 나누어 주는 것, 수고와 대가로 얻은 떡을 대가 없이 나누어 주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떡이 아니라 말씀이며 하나님이란 증거입니다.
2) 많은 사람에게 나눠 주어라(2절).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1절의 경우에 비춰볼 때 구제 혹은 남에게 선을 베풀 것을 권고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언제 어떤 재앙이 임할는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 넉넉할 때 다른 사람에게 덕을 베풂으로 재앙 시 같은 도움을 입을 수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한편 '일곱에게나 여덟'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7이나 8을 의미하지 않고, 많은 수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 하며. 할 수 있는 대로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일곱' 다음에 '여덟'을 언급한 것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숫자를 말함으로써 복수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한 표현입니다(욥 33:29;잠 30:15,18;사 17:6;암 1:3;미 5:5).
*재앙이나 어려움이 생기면 나눔도 불가능하고 나눌 수 있는 선행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며.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 반대로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불확실하고 언제 어디서 큰 재앙이 닥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떡을 쌓아두고 떡을 보관하고 떡을 많이 확보하고 떡을 숨기고 그리고 더 떡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어떤 재앙이 생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최선을 다 해서 떡을 나누고 베풀고 구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1절에서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 다는 것입니다. 재앙이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떡을 물위에 던지면 도로 찾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집니다.(3절)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 이는 문맥상 재앙이 부지불식간에 임한다는 2절 하반부(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와 연관되는 비유입니다.
특히 이는 구름에 비가 가득할 경우 반드시 쏟아져 내린다는 자연의 불변의 법칙을 나타낸 것으로서 때로는 이 세상사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불특정한 재앙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력히 상기시킵니다. 3,4절에서 전도자가 비와 바람, 바람과 비를 서로 교차하여 언급하는 교차대구법(交叉對句法)을 통해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전반 절이 불예측성 또는 불가피성을 암시한 반면, 본 구절은 재앙이 임할 경우 사람은 어찌할 수 없이 그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결국 이는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연약성 또는 재앙의 엄중성을 나타냄으로 1,2절에서 암시 하는 바 평안하고 넉넉할 때 베풀며 살라는 뜻을 강조합니다.
*예상 할 수 있을 지라도 통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를 품은 구름을 보면 비가 올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를 못 오도록 막을 수 없습니다. 2~3을 연결하여 본다면 무슨 재앙이 일어날 줄 전혀 모르지만 예상할 수 있다 하더라도 통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까요?
4절입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전후 문맥 특히 5,6절을 참고해볼 때, 사람이 선을 행할 때 주위 환경이나 여건에 좌우되어 주저하거나, 보다 좋은 기회를 보기 위해서 미루지 말고 즉시 용기를 내어 행할 것을 촉구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비가 오고 안 오고가 결정되는데, 보통 서풍이나 북서풍 또는 남서풍이 불 때 비가 옵니다. (왕상 18:44,45;욥 37:9 참조).
*나눔과 구제는 필수입니다. 선택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파종의 때, 추수의 때를 노치면 안 되듯이 나눔과 구제를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5절“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인간의 눈으로는 전혀 볼 수 없지만 그 일을 성취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한편 사람이 바람의 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와 관련한 예수님에 의해서도 언급된 적이 있읍니다(요3:8).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인간의 조성의 신비는 다윗에 의해 시편에 암시되어지기도 했습니다(시 139:13-16).
*시139:13~16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그리고 전후 문맥을 고려할 때 본 구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사람이 다 알 수 없는바 모든 일 특히 남에게 선을 베풀고 덕을 쌓는 일에 있어서 주저하거나 미루지 말라는 권면의 뜻을 암시합니다. 한편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는 지혜의 한계성 또는 연약성은 본서 전체의 지향하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3:11;7:14;8:17).
* 3: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8: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6) 왕성하게 씨를 뿌린 자들은 안전하게 수확을 거 둘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6절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가운데 선을 행하고 덕을 베푸는 것을 뜻하고.(Plumtre). 이 땅에 사는 동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한편 '저녁에도'('웰라에레브')는 '그리고 저녁이 되어도'의 뜻으로 '아침에'라는 말과 함께 하루 온종일 성실하게 일하라는 뜻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아침에'나 '저녁에도'를 인생의 '젊을 때'와 '늙을 때'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보기도 합니다(Power). 알지 못함이니라. - 아침에 씨 뿌린 것이 잘 될지, 저녁에 뿌린 것이 잘 될지는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 5절의 주권에 달려 있으므로, 사람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일할 것을 강구하는 암시입니다.
2. 삶을 즐기되 시간을 선용하라(7~10절)
7절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해를 보지 못한 상태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 '빛'이란 한 면으로는 태양의 빛을 뜻하나 또 한 면으로는 그 배후에 담겨있는 근본적인 의미는 생명, 즉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을 상징적으로 암시합니다(욥 3:20;18:5,6;시 36:9;요 8:12;9:5).
*욥3:20 “어찌하여 고난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욥18:5,6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시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라'의 히브리어 '마토크'는 문자적으로 '달콤한', '단'(sweet)의 뜻을 갖습니다.
이것은 앞절과 연관시켜 볼 때 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살 때 자족하는 가운데서 낙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전도자가 인생의 낙에 대해 언급한 것은 본서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2:24;3:12,13;5:18).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3:12,13 “[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 그 의미면에서 앞 구절과 유사한 내용으로 즉 '해를 보는 것'은 단순히 태양을 바라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태양 빛이 생명을 상징하고 '보는 것'이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 경험적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것을 뜻하는 바, 삶의 낙을 누리는 것을 암시합니다(1:3;2:1 참조)
2)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8절)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캄캄한 날은 죽음의 날을 말합니다.
즉 떡을 물에 던지는 것은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죽은 후에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 '캄캄한 날'(예메 하호쉐크)이란 원어 상으로 복수(the days of darkness)입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명을 상징하는 '카'의 날들과 반대되는 의미로서 죽음의 날들로 여겨집니다(Lange, Leale, Barton).
그러나 혹자는 이를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부딪히게 될 재앙 또는 시련의 날들로 보기도 합니다(Wardlaw). 아무튼 본구절은 전반절과 연관되어 최선을 다하는 삶을 통해 복된 낙을 누리되 역경과 죽음의 날들 또한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의 본분을 잊지 말라는 뜻을 암시한다 하겠습니다.
특히 '생각 할지로다'('이제코르')로서 9:5의 '이름'(기념, 기억)의 어근이며 '기억하다', '회상하다'의 뜻을 갖습니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 여기에서 '다가올 일'(쉐바)이란 이 세상에서 맞게 될 미래의 일뿐만 아니라 사후(死後)의 세상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마 6:34)라는 말씀처럼 추어진 현실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권고로 이해됩니다.
3)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9절“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이는 8절, 전반부의 말씀과 같이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신 터전 위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살라는 권면입니다. 이런한 권면은 본서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2:24;3:12,13;5:18).
그러나 전도자는 인생을 즐기되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하반절) 기억하고 지나친 방종, 향락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 구절에서 삶을 즐기는 대상으로서 '청년'을 언급한 것은 청년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황금기로서 소망과 힘에 부푼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본서의 저자 솔로몬은 지난 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도 불구하고 향락과 죄악 가운데 빠졌다가 인생의 후반기에 하나님께 돌아와 지난날을 회고해 볼 때 청년의 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1:1). 한편 시편 기자는 청년의 때와 관련하여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라고 말하였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길. - 마음에 기뻐하는 대로 낙을 누리는 삶을 살 것을 언급한 말입니다(2:10).
물론 이는 타락한 육신적인 생각대로 그 마음을 좇아 쾌락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라 본서 여러 곳에서 암시 되어진 대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허락된 대로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즐기라는 절제된 표현입니다. 인간은 근본 아담 안에서 정죄되어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롬 5:16-21;7:14,18), 그 마음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되어 있으며(렘 17:9) 인간이 육신적인 욕심과 생각을 따라 살 때에는 커다란 죄악에 빠지기 마련입니다(엡 2:3).
4)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10절)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근심'('카아스')는 문자적으로 '분노', '슬픔' 등을 의미하며 1:18에서는 '번뇌'로, 2:23에서는 '슬픔'으로 7:9에서는 '노'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본 구절의 문맥상 '분노'보다 '슬픔'이란 뜻이 더 타당하겠습니다. 결국 본 구절은 인생의 낙을 누리는 데에 방해되는 슬픔의 요소를 마음에서 제하라는 의미로 보여집니다.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 '악'('라아')는 '악', '해'등의 뜻으로서 본서에서는 특히 인생 가운데서 헛됨을 느끼게 하는 나쁜 것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됩니다(5:13).
*5:13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특히 지나친 방종과 향락에 빠져 몸을 약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8,9절에 암시되어진 바와 같이 인생의 낙을 누리되 지나친 방종과 타락에 처해지지 않도록 자제를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청년의 때)이 다 헛되니라.
청년의 때는 선택과 가능성의 세대입니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며 그 기회 앞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 갈 때입니다.
하지만 청년의 때는 근심과 악, 유혹이 많으며 덜 성숙하여서 악과 유혹에 굴복하여 결국 청년의 선택과 가능성까지도 망치기 때문에 헛된 것입니다. 이는 꿈과 소망이 부푸는 인생의 황금기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고 쉽게 사라져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 갈 때 보람 있고 의미가 있는 청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우리는 바람의 진로도 생명 탄생의 신비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만물을 성취하는 분이라는 사실은 압니다(5절).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용기를 얻습니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 하나님께 용기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은 모르더라도 모든 일이 그분 손에 있고 그분께 최종결정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염려와 두려움을 내려놓고 일의 시작과 끝을 주님께 맡겨드립시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에 시장이 불안정하고 불길한 예감이 들면, 본능적으로 소비나 투자보다 미래를 대비해 비축해두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어리석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도록 분산투자를 조언합니다. 또 상황이 불확실하더라도 소유에 집착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에게 두루 베풀라고 권면합니다. 소유로 행복을 살순 없지만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순 있습니다.
이윤은 커녕 회수 가능성이 적어도 공동체와 이웃을 살리는 일이라면 하나님께 묻고 섬기십시오.
3-6절 인생을 살다보면 예측 가능한 일보다 예측 불가능한 일이 더 많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수고가 과연 결실이 있을지 미지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리기보다 기회 있는 대로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완벽한 기후만 기다리다간 파종도, 수확도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25:14~30절 주님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을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7-10절 우리는 이따금 삶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룹니다.
그러나 다음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청년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즐기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즐거움’을 누리십시오. 장기불황과 청년실업 등 경기 전망이 밝지 않지만, 실패와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을 걷어내고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을 신뢰하며 오늘 내게 주신 길을 성실히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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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