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향교는 조선초 창건된 전남 담양군 담양읍 향교길 19 (향교리) 에 소재합니다.
평일인 화요일 방문하였는데 관광 명소인 죽록원이 연접함에도 불구하고 인적이 없는 고요한 산사와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를 참고하면
"향교는 초등 교육기관이라 할 서당을 마친 유생들이 중등 교육을 받는 지방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중앙의 사부학당(중·동·서·남학)
에 대응된다.
또 다른 교육기관인 서원과는 기능이나 목적은 같으나 서원이 사학 기관임에 반하여 향교는 지방 관청에 속한 관학 기관임에 차이가 있다.
또 조선의 최상위 교육기관으로 성균관은 대학에 해당하는 중앙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다."
향교 입구에 들어서니 역대 담양 고을 관리들의 흥학비 13기가 시대별 최근부터 순서대로 줄지어 있습니다.
흥학이란 "학교를 세워서 가르친다" 를 뜻인데 당시에도 교육의 중요함을 일깨우기 위한 고을 수령의 덕목이었던듯 합니다.
특이하게도 2022년 담양 군수의 비가 역대 담양 수령의 흥학비 앞자락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유서 깊은 담양 향교에서 매번 군수가 선출될때 마다 비를 세운다면 웃음거리가 되진 않을지 염려가 됩니다.
고색 창연한 담양 향교와 흥학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담양 군수의 치적비가 왜 조선시대 관리들의 흥학비와 함께 설치되었는지 아연실색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굳이 이 비를 설치하자면 향교가 아닌 군청에 설치해야 할것으로 사료됩니다.
흥학비 중 가장 오래된 첫 번째 비는 부사 이안눌(형조판서 1571~1637) 담양부사 재직 (1610~1611) 이며~두 번째 비는 석담 이윤우 (공조참의 1569~1634) 담양부사 재직 (1628~1630) 이며, 공은 저의 광주이씨 칠곡파 14대 선조가 되십니다.
10여년 전 인근 죽록원에 들렀다가 담양 향교를 들렀는데 판독이 쉽지 않아 그냥 지나쳤는데 이날에야 안내 글이 표시된 비문을 촬영하였습니다.
이어서 시대별 순서대로 열거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담양 향교에 관한 부연설명으로 <두산백과>를 참고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선초 1398년(태조 7)에 창건하여 1693년(숙종 19) 부사(府使) 이헌유(李憲儒)가 중건하고 1747년(영조 23) 부사 안정환이 중건하였으며, 순조 연간에 다시 중수하였다.
남북으로 긴 네모난 대지에 전면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학당부를 두고, 후면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문묘부를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문묘에는 5성(聖)과 중국 2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 등의 위패를 봉안하여 향사(享祀)하고 있다.
이 향교는 경사진 지형에 위치해 있어서 지형을 5단으로 정지하여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의 순으로 배치하였다. 명륜당은 2층 누각으로 건립하여 2층 바닥면과 강학구역 지반면과 같은 높이로 처리하였으며, 문묘구역 내에는 대성전 전면으로 120cm의 막돌쌓기를 하고 그 위에 다시 건물의 기단을 만들었다. 대성전과 내삼문, 그리고 명륜당의 건물축은 일직선상에서 약간씩 틀어져 있으며, 내삼문은 이 축선에서 우측으로 약 5m 옮겨져 서쪽으로 비스듬하게 세워졌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약 130cm 높이의 석축 기단을 쌓고 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에 따라 배흘림기둥과 민흘림기둥이 각각 보이며 가구는 2고주 5량에 공포는 초익공 양식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홑처마이며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누건물로 정면은 약 280cm 높이의 3중 기단으로 쌓고 자연석의 덤벙주초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전면의 누 아래에는 살[箭]을 설치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가구는 2고주 5량이며 공포는 초익공 양식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에 홑처마이며 풍판이 있다. 동무·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반듯하고 편평한 주춧돌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민흘림과 배흘림이 모두 보이며 가구는 3량가이고 포작없는 무익공식이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