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TGwuv6ZEB8
편집자 注)
아래 글은 조선일보(2022.09.23) 고정칼럼인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6]번째 글인 '바람을 나타내는 한자' 제하의 글이다.
일본 주재 외교관 출신인 필자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의 저자로 이 책은 일본에 대한 우리의 無知를 일깨우는 역작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의 인쇄문화와 교육열이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한자 관련 아래 글은 매우 왜곡되기도 하였지만 한자문화에 대한 인식이 편협된데다 한자 꽤나 안다고 자부하는 지식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자의적인 해석이 드러나기에 참고삼아 게제한다.
올해는 가을 초입에 대형 태풍으로 나라의 근심이 컸다. 거센 바람의 대명사로 통하는 태풍의 한자는
‘颱風’이다. 颱는 자전에 ‘태풍 태’로 풀이되어 있을 정도로 태풍 외에는 사용례가 없는 독특한 문자다.
태풍은 사실 그리 오래된 말이 아니다. 근대 이전에는 휘몰아치는 바람을 ‘구풍(颶風)’이라고 불렀다. 태풍이라는 용어가 보급된 것은 1920년대 이후다.
일본의 국가 예보 체계를 설계한 기상학자 오카다 다케마쓰(岡田武松)가 중앙기상대장(지금의 기상청장) 시절 북서태평양 열대성 저기압을 부르는 국제적 명칭인 ‘타이푼(typhoon)’의 어원과 발음을 고려하여 후젠, 타이완 등 남중국의 지역어로 사용되던 颱風(일어 발음 타이후)을 정식 기상용어로 정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어로 세차게 몰아치는 거센 바람 그 자체는 ‘아라시(嵐)’라고 한다. 한국어의 폭풍이나 영어의 storm에 해당하는 말이다. 특이한 점은 아라시의 한자 표기인 ‘람(嵐)’은 본래 아지랑이라는 뜻으로 바람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한•중 어디에서도 嵐을 거센 바람의 의미로 쓰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지형이나 계절 요인으로 산등성이에서 불어 내리는 내기바람을 ‘오로시(颪)’라고 한다. 下밑에 風을 놓아 ‘내려 부는 바람’이라는 뜻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모양의 ‘颪’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화제(和製) 한자다. 적당히 가져다 쓰고 없으면 만들어 쓰는 일본식 한자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거센 바람과 관련된 흥미로운 한자로는 ‘표(飆)’를 꼽을 수 있다. 개의 무리[猋]가 먼지바람[風]을 일으키며 내달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 광풍(狂風)이라는 뜻이다.
인간 세계에서 바람 잘 날 없기로는 정치판을 따라올 곳이 없을 것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바람몰이에 골몰하는 정치판의 바람잡이 행태를 표현할 때 이만한 글자가 또 있을까 한다.(조선일보 2022.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