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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주일 설교
성경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라
네번째 실: 죽음 – 죽으면 끝인가?
요한복음 11:24~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설교 개요
1.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2. 성경이 들려주는 죽음 이야기
3.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거
4. 죽음과 부활과의 관계
5.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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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이번 주 주제는 ‘죽음’입니다. 성경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를 그려줍니다. 세상에 있는 악이 왜 일어나고 그 본질은 무엇인지를 비유로 들려줍니다. 성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생에서 태어난 날이 있으면 죽는 날도 있습니다. 성경은 죽음에 대하여 뭐라고 들려줄까요?
죽음은 어떤 사람에게는 기다리는 일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년에 접어드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더 자주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추하지 않고 깨끗하게 죽을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은 자연스러운 염려일 것입니다.
죽음은 인생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나면 늙게 되고 병들어 결국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삶과 죽음이 한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매우 짧은 시간을 살다가 가는 나그네와 같고 아침 안개와 같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생태계의 순환과정을 생각해 보면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희생하여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자신도 죽어 결국 누군가를 보존하게 하는 재료가 됩니다. 출생과 죽음은 둘다 자연의 생명현상에서 일부분일 뿐입니다. 죽음은 이런 점에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보편적이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성경이 들려주는 죽음 이야기
그런데 우리가 읽는 성경은 죽음을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성경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이치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의 말씀입니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다는 말씀도 있습니다(전도서 1:4). 물론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전도서 3:2)는 지혜자의 고백도 있습니다. 다윗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솔로몬에게 유언했습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간다. 너는 굳세고 장부다워야 한다”(열왕기상 2:2).
사도 바울도 차라리 죽음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그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빌립보서 1:23). 이렇게 위대한 사도도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위에서 인용한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죽음 이후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언가 하려면 살아 있을 때 하라는 말씀이 전도서에 있습니다: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도서 9:10).
죽음에 대하여 구약성경은 조상들이 묻힌 무덤에 장사되었다는 의미로 표현합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창세기 35:29).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는 말은 죽음에 대한 성경의 표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의 비유에는 그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누가복음 16:22~23). 선한 사람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부자는 죽어서 음부의 불구덩이에서 고통을 겪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빌립보서 1:23). 신자들은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면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초기 교회 신자들은 믿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7).
그런데 그 곳이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전도서에 있는 말씀 중에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들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간다’(전도서 3:21)고 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께로 간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면 죽은 사람들에 대하여 ‘잠자는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고린도전서 15:20, 데살로니가전서 3:13, 15). 이렇게 보면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잠자는 상태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상태라고 설명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입니다.
3.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거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성경의 독특한 점입니다. 예를 들면 구약성경에 부활에 대하여 암시하는 본문이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세아 6:1~2
에스겔 37장에는 환상이 나옵니다. 그것은 골짜기에 수많은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 12장에도 부활을 암시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 12:2~3
이렇게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죽음 이후에도 돌보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시편 16편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도들의 설교에도 인용됩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16:10, 행 2:27, 31, 13:34~37
그렇게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위대한 사건이 있은 후에 제자들은 부활을 더욱 굳건하게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 확신을 보여주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4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 8:11
이렇게 성경은 죽음 이후에 몸이 다시 사는 것에 대하여 들려줍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음을 증거합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믿는 신앙은 기독교신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습니다.
4. 죽음과 부활과의 관계
그러면 부활이 무엇일까요? 부활은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성경을 보면 죽음에 대하여 처음 언급된 곳은 첫 인간 아담 부부에게 하나님이 경고하신 대목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를 용서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생육번성충만의 복을 명하시고 사람에게 이 세상을 맡아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되고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바로잡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어그러짐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우리는 심판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피조세계를 사랑하시며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을 사랑하신다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치료하시고 인간을 사망에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21장에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요한계시록 21:5). 하나님은 인간을 다시 살리시고 피조세계도 새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마귀이며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벨론으로 비유됩니다. 그 죽음의 문화에 배어 있는 특징은 ‘자기중심성’입니다.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은 언제나 다른 사람과 자신을 죽음으로 끌고가는 저주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도 황폐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원수들을 대적하시고 몰아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몰아내시는 대적이 바로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두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멸망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5:25~26
예수님도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실 때 하나님의 원수를 대적하셨습니다. 그렇게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하게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이 그 원수를 몰아내시는 곳에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2:28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범죄로 시작된 혼돈과 죽음이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바로잡혀 가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즉,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우리가 더 이상 마귀의 도구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위해서 계획하신 참 인간의 삶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구원이며,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은 그 어디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5.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나라
그러면 우리는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자가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며 그것은 잠자는 것과 같다면 하나님이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멸망시키실 때 우리는 부활할 것입니다. 그렇게 부활할 때 우리는 새롭게 된 세상에서 몸으로 다시 살아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일 신앙고백을 통하여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현재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으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예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갈 나그네의 여관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짜 천국이 저 위에 있으며 그곳에 가려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성경이 그것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서 사실인 것은 아닙니다. 한때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때 사람들은 흑인이 백인보다 지능이 열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일 뿐입니다.
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늘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경은 이미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했으며, 죽은 후에는 우리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고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롭게 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처럼 몸으로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가 안식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날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도 자기의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장에서 슬피 우는 친구의 누이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죽음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패하는 것이며 이별하는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본래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고 마침내 사망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몸으로 다시 살아 영원히 주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나이든 분들이 어서 빨리 죽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바란 것도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었던 것처럼 이 세상이 지옥같이 느껴지는 분들에게 죽음은 평안을 얻는 유일한 길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는 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죽음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아름답게 지음받은 피조세계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부패를 의미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바라는 것은 어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로마서 8:21). 그 나라는 하늘과 땅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 나라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 땅으로 내려와 온 땅이 거룩하게 되는 세상일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런 세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친구의 무덤 앞에서 그 친구의 누이를 달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