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구도심(金剛求道心)
송대(宋代) 선림(禪林)에 부산법원(浮山法遠) 선사(禪師)는 조동종(曹洞宗) 임제종(臨濟宗) 운문종(雲門宗) 등 제종(諸宗)의 오십인(五十人)의 선지식(善知識)을 역참(歷參)하고 분양선소(汾陽善昭)와 낭야혜각(琅琊慧覺), 엽현귀성(葉縣歸省), 대양경현(大陽警玄)등 사대가(四大家)의 법을 전승(傳承)하였다. 그중에 귀성선사(歸省禪師) 문하(門下)에서 판도수행(辦道修行)은 피눈물 나게 금강불괴(金剛不壞) 구도심(求道心)으로 정진을 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어서 선림(禪林)에 귀감(龜鑑)이 된다. 귀성선사(歸省禪師)는 수산성념(首山省念) 선사(禪師)의 법을 이는 고제(高弟)다. 가풍(家風)이 고준(高峻)하고 선(禪)의 기봉(機鋒)이 신랄(辛辣)한 선풍(禪風)이다. 부산법원(浮山法遠)이 제방선지식(諸方善知識)을 참문(參問)하고 도반(道伴) 천의의회(天衣義懷)와 70여명 스님들과 함께 귀성선사(歸省禪師) 도량을 찾아갔다. 도량에 당도하자마자 귀성선사께서 보시고 서슬이 시퍼렇게 화를 내고 이 땡 초 중놈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몰려다니느냐? 밥 쳐지먹고 떼 지어서 몰려다니면서 지랄방정을 떨고 다니는 네 놈들은 날강도들이니 이곳에서는 쌀 한 톨을 못 주겠으니, 당장 꺼지거라. 가진 욕설을 퍼부었다. 먼길을 운수행각으로 찾아왔으나 인사는커녕 험한 욕설만 잔뜩 먹었으나 함께 간 칠십명(七十名)의 스님들 일행은 누구 하나 흩어짐이 없이 땅 바닥에 않아서 의연(依然)하게 요지부동이다. 화가 날때로 난 귀성선사는 수곽(水廓)으로 가서 물을 퍼다가 앉아있는 스님들에게 물을 머리에 퍼부었다. 그래도 요지부동이자. 이번에는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 재를 퍼다가 스님들 머리 위에 뿌려버리면서 가진 욕설을 퍼붓자 참다못한 70명 스님들은 다 자리를 털고 절을 나가 버렸다.
그런데 법원선사(法遠禪師)와 천의회의(天衣義懷)는 그대로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저놈들은 다들 도망갔는데 네 두놈은 어째서 아직도 버티고 있느냐? 고 호통을 쳤다. 저희들은 오래 전부터 노선사(老禪師)님의 도풍(道風)을 흠모(欽慕)하여 이렇게 천리길을 멀다 않고 달려왔습니다. 어찌 한 동이 물과 재를 뿌린다고 이 자리를 물러서겠습니까?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결단코 물러가지 않겠습니다. 금강불괴(金剛不壞) 구도심(求道心)을 보자 마음이 풀려서 입방(入房)을 허락하였다. 너희 두놈은 입방을 허락하는 대신 이 절에 전좌직(典座職) 자리가 공석(空席)이니 그 일을 맡아 보라고 했다. 전좌직 소임은 선방(禪房)의 살림살이를 맡아보는 소임이다. 귀성선사 회상은 먹고 사는 것이 가축(家畜)들 먹이 정도로 조식(粗食)하는 선사(禪寺)다. 그래서 전좌직 소임을 맡아보는 것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귀성선사(歸省禪師)가 외출(外出)하였다. 선방 대중들은 이때라 하고 전좌에게 찾아와서 그동안 먹지 못해서 배가 골 앓으니 흰죽이라고 쑤어 먹자고 야단이 났다. 선방 대중들이 원하는 일이라 흰죽을 부랴부랴 몰래 쑤어서 먹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귀성선사께 시봉(侍奉) 하는 시자(侍者)가 다 일러, 받쳤다. 죽을 쑤어서 먹이는 놈을 당장 불러들여라. 법원 전좌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불꽃이 펄펄 이는 눈으로 뚫어지게 법원을 보고, 네 이놈! 누구의 허락도 없이 네놈이 마음대로 죽을 쑤어 먹였단 말이냐? 그런 자비의 호의는 후일 네가, 주지가 되어서나 할 이이야! 이 건방진놈! 네 멋대로 산중(山中)의 청규(淸規)를 어지럽혔으니, 너 같은 놈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단 한 줌의 먼지라도 사유물(寺有物)은 절대로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법이야! 추상같이 꾸짖고 법원(法遠)의 의발(衣鉢)과 소유물(所有物)을 빼앗아 팔아서 절 재산에 납부(納付)하도록 하였다. 산중 장로스님들과 신도들이 용서를 구하였으나 듣지 않고 법원 전좌를 쫓아냈다. 절에서 쫓겨난 법원은 절 마루밑에 숨어서 지내면서 법좌에 상당한 법어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먼지투성인 마루 밑에서 겨우 주먹밥을 얻어먹으면서 지내다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그러나 법원는 분골쇄신(粉骨碎身)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구도심의 열망이 초지일관(初志一貫)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숨어서 겨우 주는 주먹밥으로 마루 밑에서 연명하다가 어느날 외출하던 귀성선사(歸省禪師) 눈에 들키고 말았다. 네 이놈! 대관절 네놈의 꼬락서니가 무엇이며, 아직도 이곳에 남아 뭣을 하고 있느냐? 네! 반년이나 이렇게 지냈습니다. 뭣? 반년이나 있었다고? 그래 그동안 숙박료(宿泊料)는 얼나나 냈느냐? 아직 한 푼도 못 냈습니다. 야! 이 도적놈아! 당장 숙박료(宿泊料)를 따져서 내놓아라! 만약 한 푼도 덜 냈다가는 관청(官廳)에 고발(告發) 할테다. 정말 모질고 악랄(惡辣)하기 짝이 없는 노장이다. 법원은 이런 혹심(酷甚)한 타매(唾罵) 학대(虐待)도 성냄도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다. 마루 밑에서 지낸 꼴도 못 봐준 절을 떠나 묘지(墓地) 근처에서 지내면서 탁발(托鉢)에 의존했다. 정처 없이 동냥으로 떠돌다가 귀성선사(歸省禪師)를 먼발치에서만 봐도 합장하고 지극 정성으로 절을 했다. 어느날 귀성선사(歸省禪師)가 외출(外)하고 귀사(歸)하고 나서 절 산중의 대중들을 법당으로 집합하게 하였다. 그리고 엄숙한 말로 선언을 하였다. 이 산의 고불(古佛) 그리고 대중들은 들을지어다. 대중은 고불(古佛) 소리를 듣고 이 산중에 귀성선사(歸省禪師) 조실스님 외에 누가 고불(古佛)인가? 으아 해하였다. 또 달리 고불(古佛)이 계신가? 아니다. 원성(遠誠) 원공(遠公)이야말로 진고불(眞古佛)이니라. 대중들은 놀래서 와글와글이다. 대중들이여! 근숙(謹肅)하라. 이제 곧 거리로 모두 나가 법답게 원공(遠公)을 맞아들일지어다. 시자(侍者)에게 명하여 법당에 향촉을 켜게 하고 법원(法遠)을 영접하여 상당(上堂)하게 하고 건당식(建幢式)을 거행(擧行)하였다. 귀성선사(歸省禪師)는 원성선사(遠誠禪師)가 법기(法器)임을 간파하고 모질게 인욕구도심(忍辱求道心)을 시험 삼아 혹독한 당금질로 법제자(法弟子)를 만들어서 전법제자(傳法弟子)가 되게 한 선화(禪話)이다. 요즘 세상에는 이런 수행자도 선지식도 없는 것이 문제다. 정말 귀감이 되는 금강불괴(金剛不壞) 구도심(求道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