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 2021년 11월 28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전도서 12:9-14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솔로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적인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서로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명의 창기를 재판할 때 하나님이 주신 번뜩이는 지혜가 빛을 발한 것입니다. 칼을 가지고 와 산 아이를 반으로 잘라 나누어주라고 함으로 그 아이를 낳은 진짜 엄마의 모성애를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4장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
이 시대로 말하자면 솔로몬의 세계 최고의 석학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혜이며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세상에서 최고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그것은 세상의 지혜였습니다. 솔로몬은 그 지혜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지혜가 참 지혜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세상의 지혜가 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하늘의 지혜가 있습니다. 잠깐 왔다가는 세상에서 이 세상에서 존귀를 받는 지혜가 없거나 부족하면 좀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영적인 지혜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세상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고 인정하는 하늘의 영적인 지혜를 반드시 간구하고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세상의 지혜로는 최고였지만 하늘의 지혜로도 최고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방 여인들에 빠져 그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악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서 그 마음을 돌이키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솔로몬 이렇게 증언합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이 그 세상의 지혜로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며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마음대로 살아보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가장 사람답게 사는 지혜로운 것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솔로몬도 인생의 끝자락에서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하늘의 지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찾고 구하는 그 지혜는 헛되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영적인 지혜만이 가치가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처럼 지혜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지혜를 달라고 헌금을 드리며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지혜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이기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 영광과 존귀를 받는 세상의 지혜입니다.
이 세상의 최고의 지혜를 가졌던 솔로몬이 나중에 타락하여 하나님까지 버렸습니다. 솔로몬은 그 타락에서 회개하고 돌아와 세상의 지혜는 다 헛되다고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지혜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영적인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성도들은 하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 땅의 지혜를 구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보물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눈만 열려있지 아직도 영원한 것을 보는 영적인 눈은 닫혀있는 소경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썩어질 그 보물은 타락한 인간들이 태어나자마자 찾고 구하는 것들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이 세상의 보물에 마음을 다 빼앗긴 자들이기 때문에 한 평생을 땅의 보물로 자신을 섬기기 위해 인생을 살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자들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영적인 소경들이 교회에 나와 이 세상의 보물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의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자신의 영혼을 살리는 진짜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에 감추어진 진짜 보물을 발견하고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천하를 얻고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리석은 인생들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세상에 있는 배설물과 같은 것을 가치 있는 보물로 착각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인생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을 구원하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짜 보물을 발견하고 내 소유를 다 팔아 사야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인간의 아이큐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이큐가 높으면 높게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볼 때는 우스운 것입니다. 학벌이 딸리면 어떻고, 머리가 나쁘면 어떻습니까? 솔직히 저는 머리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수학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포기했습니다. 저는 흔히 하는 말로 돌 머리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런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짜 지혜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지혜가 없으면 심판을 받고 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참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대로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내 죄를 대속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진짜 보물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하나님이 만족하는 순종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내 죄를 없이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짜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이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보물을 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성도들은 자신의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십자가의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시고 나를 경외하는 지혜로 내 백성들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헌금을 많이 하라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믿음으로 드리는 헌금도 하늘에 쌓여지는 보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헌금을 많이 드린다고 그것이 하늘에 그대로 쌓이는 것은 아닙니다.
보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 영혼을 구원하는 진짜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내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와 그 은혜입니다. 그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에 대한 지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이 땅에서 내 죄를 대속해주신 그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나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그것이 내 영혼을 구원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만나 회개하고 거듭난 성도는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지혜로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가 나오기 위해서는 성도는 계속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십자가의 삶이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것입니까?
내 선행과 열심과 행위가 드러나 의를 인정받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을 먼저 걱정하고 챙기는 것이 세상의 지혜인데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많은 성도들은 주여 주여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살지 못합니다.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세상과 인간의 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와 천국에 가겠다고 하나님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그 둘 사이에서 언제까지 머뭇거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함께 섬기는 자들은 세상을 사랑한 자로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내 영원한 생명이 걸려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까지도 버린 아이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보았는데 어느 날 대들며 주먹과 발로 무참하게 폭행하여 얼굴을 온통 피멍으로 물들게 했다면 그것이 용서가 잘 되겠습니까? 그 아이가 잘 못을 하고 구치소에 있을 때에 면회를 가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아이를 면회를 갈 수 있냐고 물으실 때 나는 주님께 더 악한 죄인이었음을 기억하고 순종하며 가는 것이 십자가를 만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지혜는 내가 십자가에 없어지고 주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사시는 겁니다.
자기 남편을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받은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그 원수를 찾아가 내 감정이 따라오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억지로라도 순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 영혼을 구원하는 진짜 지혜가 있습니까? 나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말씀에 순종하는 참 지혜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그 뜻에 순종하는 것만이 내 영혼을 구원하는 참 지혜임을 기억하시고 잠깐 왔다가는 인생을 십자가의 지혜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