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생각했다. 댄스를 배우면 운동도 되고 모임 후 뒤풀이에서도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뭐든 배워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신청한 K팝 댄스 클래스였다.
그러나, 수업에 참가한 후 멘붕이 왔다. 미시를 위한 클래스라고 알고 신청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강생은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이었다. 오십대 초반… 소위 반백 살인 나보다는 띠동갑 이상 젊은 여성들뿐이었다. 미시란… 내 또래가 아니구나 그제서야 깨달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노래는 그렇게 주장했지만 내 몸은 정직했다. 나름 몸을 움직이는 데는 크게 부담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응원단장을 거의 도맡아왔고 소풍이나 오락시간, 수학여행에서도 장기 자랑으로 춤을 추곤 했다.
지금도 술 한 잔 걸친 날 노래방이라도 가면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보다는 춤추며 탬버린을 흔드는 시간이 더 많은 나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 나는 막춤을 추는 아줌마였구나. 분명 예전에는 가요를 몇 번만 들으면 제법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가 신곡들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 발라드는 간혹 귀에 꽂혀 따라 부르곤 하지만 댄스곡들은 솔직히 자막을 보기 전에는 가사조차 알아듣기 힘들다. 나 역시 전 세계가 열광하는 자랑스러운 BTS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솔직히 뭐라고 해야 할까, 걸그룹을 사랑하는 삼촌 팬 마음 같다고 해야
할까, 너무나 예쁜 미소년 같은 그들을 보면 그냥 지구별 사람이 아닌 것만 같다. 슬프게도 뉘 아들들이 어찌 저렇게 잘났나… 하는 마음이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젊은 척 예쁜척하려 해도 이제 나는 오십을 넘긴 중년의 여성이다. 일찍 시집간 친구들 아들이 군 복무를 마쳤다는 소식을 듣는 나이인 것이다.
이미 갱년기를 온몸으로 겪어가고 있고 지난해와는 또 다른 내 몸의 상태를 하루하루
실감하고 있다. 아직도 열정이 넘치고 뜨겁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쉼을 부르는 몸의 반항을 어쩔 수가 없다. 어쩌다 일이 밀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예전과 달리 하루 종일 멍한 상태가 된다. 크게 섭취하는 양이 달라지지 않았어도 소위 나잇살이라고 해도 좋을 뱃살이 하루가 다르게 두툼해지고 있다. 면역력이나 피곤에 대해서도 느껴지는 바가 다르다 보니 건강 정보나 영양제에 관한 방송에도 눈이 돌아가곤 한다.
몸만 나이를 실감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트레이닝 받는 젊은 직원이 내가 가까이 가면 얼어붙는 걸 보고 그들에겐 이미 내가 편안한 사람이 아님을 실감했다. 괜찮다고 그냥 마시라고 해도 굳이 두 손으로 술잔을 받으며 고개를 돌려 마시는 어린 친구를 보면 더욱 실감을 하게 된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그네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모르는 단어들이 속속 등장한다.
나름 연극모임이나 그 밖의 여러 활동을 통해 젊은 친구들을 자주 접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그네들의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이다. 그냥 꼰대처럼 하고 싶지 않아서 뭔가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할 뿐이다.
그러나. 난 내 나이가 좋다. 젊지 않은 지금이 좋다. 이제야 뭔가 조금 알 것 같다. 조금 삶이 보이고, 길이 보이고 겨우 이제야 뭔가 알듯 같은 마음이다. 아직 넘칠 만큼 가진 것은 없지만 이제는 큰맘 먹고 조금 과하다 싶은 지출을 해도 되어 좋다. 뭐 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표현할 정확한 이름이 있어 좋다. 내 옆을 돌아볼 여유가 이제야 조금은 생긴 듯한 지금의 내가 좋다. 또한 너무 늦지 않은 지금이어서 더 좋다. 아직도 꿈을 꾸는 나라서 좋고 포기하지 않는 무언가를 간직한 나라서 좋다. 내일 일은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믿을 수 있는 지금이라서 좋다.
제대로 된 댄스가 아니면 어떠할까, 막춤이면 어떠할까, 무릎에서 삐걱거리면서 에구 소리가 절로 나와도 그래도 아직 흥이 넘치는 ‘나’이니 된 것이다. 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나다운 오늘을 살고 싶다. 가족들과 주말 저녁 약속이 있다. 칠갑산을 잘 부르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모시고 동생네 가족들도 모두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노래방이라도 한번 가볼까 싶다. 막춤이라도 탬버린 열심히 흔들며 재롱을 떨어봐야겠다. 주말이 기다려진다.
김은희 / 시인. 가족 상담사. 미술심리치료사, 캥거루 문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