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카누·카약을 타던 해(1985년)만해도 보트에 캠핑 장비는 물론 자그마한 휴대품을 갖고 타고 싶으면 비닐 봉지에 넣고 입구를 꽁꽁 싸매서 보트 속에 잘 묶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도중에 그걸 한번이라도 꺼내서 내용물을 쓰고 난 뒤에는 처음 묶었을 때보다 방수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도중에 비닐 봉지가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서 '방수'가 아닌 '흡수', 즉 거의 물 주머니처럼 되어 버리기 일쑤여서, 그러다 보니 온갖 꾀를 내게 되는데...
카누 여행에서 짐을 실을 때는 사진(CANOE Magazine의 이미지) 속에 나오는 알루미늄 조임쇠로 마개를 밀봉하는 방식의 드라이 배럴(Dry Barrel)과 거의 같은 화학 물질 용기를 사다가 대신 썼고, 씨 카약 여행에 짐을 실을 때는 카약 선체 모양처럼 만든 대형 PVC 코팅 방수백(남해안 탐험대에서 지급 받은)을 썼습니다.
이것들은 방수만큼은 확실했지만 그 크기가 워낙 큰 데다 손잡이나 끈이 달려 있지 않아 운반할 때마다 참 애먹었습니다.
그러다 급류 카약처럼 더 짧고 좁은 카약을 타기 시작하자 휴대품 방수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SealLine이라는 미국 브랜드에서 다양한 사이즈로 나오는 PVC 코팅 원단으로 만들어진 바하(Baja)라는 모델의 방수백 광고를 CANOE Magazine에서 발견하고는 국내 모 유명 수입상 사장님을 찾아가 200개 정도 수입을 부탁해서 해결했었는데, 그게 아마 Sealline이 이런 타입의 방수백을 처음 만들어 팔았던 해인 1986년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그 이전의 방수 대책이라고 해봐야 캔버스천에 왁스를 바르거나 저처럼 비닐 봉지를 여러 겹으로 싸서 묶는 것 외엔 별다른 대책이 없었으니 뻑하면 휴대품이 물에 젖는 것이 다반사라서 여행 도중에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나면 짐을 다 풀어서 햇빛에 말리고는 다시 짐을 꾸리는 것이 일상이었죠.
그러니 투어를 한번 가면 일거리가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닌 건 물론이고 아예 못쓰거나 못 먹게 된 물건도 많았고요.
요즘은 집 주변의 웬만한 마트나 편의점에서 방수백을 어렵지 않게 구해서 쓸 수 있게 되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인데요.
그럼에도 이 방수백도 잘 알고 선택하고 사용해야 그 값어치를 발휘하기 때문에 이렇게 따로 한편의 이야기로 꾸며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목에 '카약커의 영원한 동반자'라고 한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
방수백이 대체 왜 필요한가?
보통 사람들은 수상레저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몸이나 보트에 무언가를 휴대하고 싣고 다닌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죠.
서핑, 수상스키, 윈드서핑, 래프팅.... 이런 활동을 하면서 무언가를 들고 탔다가는 물에 빠뜨려서 잃어버리거나 망가질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자기 몸 만큼은 물에 젖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정말 많더군요. ^^
수상 여행을 기반으로 하는 카누·카약킹에서는 그 소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나아가 출발지점이 아닌 다른 모처에서 캠핑까지도 즐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휴대하는 짐에 대한 방수 처리에 대한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죠.
기껏 잘 싣고 갔는데 다 젖어 있음을 발견했을 때의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을 겪지 않고 싶거든요.
특히 요즘처럼 전자·전기 제품을 거의 손에 달고 다니다시피하는 세상에서는 더 그렇고, 캠핑지에서의 쾌적함을 즐기고 싶다면 더 그러하며, 어떻게든 싸들고 간 음식들을 잘 조리해서 먹고 싶다면 말입니다.
이렇게 방수백은 말 그대로 '휴대품의 방수 처리'라는 1차 목적 외에도 '휴대품의 용도별 분리 휴대'가 가능한 측면도 있습니다.
즉 갈아입을 옷가지, 취사도구, 식량, 개인 소품 등을 분리해서 담아감으로써 필요할 때마다 쉽게 찾아서 쓸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또 방수백 겉면에 자신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일명 '주기'를 함으로써 다른 카약커들의 짐과 식별할 수도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방수백에 장착되어 있는 고리에 카라비너나 끈 등을 이용해서 카누·카약에 잘 결박해서 묶어 둠으로써 '소중한 재산의 유실 방지' 같은 정말 쓰임새가 많은 구석이 있습니다.
게다가 방수백을 잘만 선택하고 사용하면 내부에 물은 물론 습기까지도 거의 유입되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쾌적하고 기분 좋은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답니다.
잘만 쓰면 '보통 몇 년은 물론이고 엄청 오래 쓸 수도 있어' 가성비치곤 최곱니다.
이참에 방수백의 용도에 대해 몇 가지 더 팁을 드릴까요?
● 간이 베개:
이거 제가 여행가서 정말 많이 쓰는데요. 방수백 속에 부드러운 옷가지 몇 가지를 넣고 바람을 적당히 넣어 체결해서 베개 대용으로 쓰는 것이죠. 보통 20L 방수백 크기면 아주 좋습니다.
● 세탁물 봉지:
카약킹을 마치고 나면 온통 젖은 옷 일색이죠. 이걸 방수백에 담아서 집에 가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차 안에 물이 흘러내리지도 비릿한 물 냄새도 거의 나지 않고 습기도 차지 않습니다.
● 물통:
캠핑 중에 물을 길어와서 써야 할 경우도 있죠? 별도의 물통을 가져갈 필요없이 방수백을 물통으로 쓰고 난 후 뒤집어서 잘 말린 후 다시 방수백으로 쓰면 됩니다. 마른 수건으로 한번 닦아주면 훨씬 떠 빨리 마릅니다.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거의 방수백 용량에 육박하니 결코 적은 양이 아닙니다. 기억해두세요.
● 비상 부양 도구:
방수백 속의 공기는 물에 빠진 여러분을 수면에 완전히 뜨게 해줄 만큼의 충분한 부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완전히 공기가 없을 정도가 아니고 내용물이 적당히 무겁다해도 물에 던졌을 때 완전히 뜨는 정도라면 비상 부양 도구로는 완벽할 정도입니다. 이것만 잘 붙들고 있어도 살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나중에 쓰레기가 되고 마는 비닐 봉지를 쓰시겠습니까?
영원한 동반자, 어떻게 고를까?
① 재질
재질 | 설명 |
비닐류 | 휴대폰 방수 케이스나 해도 방수 케이스 처럼 내용물을 볼 수 있는 용도로 만들어진 방수백의 재질. 주로 소용량 방수백에 많이 쓰이지만 중대형 방수백에도 사용합니다. 단 날카로운 물건을 넣는 용도로는 비추. |
나일론류 | 이것은 내구성이 좋은데 실리콘이나 우레탄, PVC 등으로 방수 코팅을 해서 사용하는 재질. D(데니어)로 표시하는 밀도의 수치가 높을 수록 내구성이 좋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재질. |
플라스틱류 | 단단한 박스 형태의 케이스 형태로 만들기 위해 PE, ABS 등으로 만들어진 재질. 주로 전기전자제품, 카메라, 의약품 등을 담는 용도로 많이 사용. 비싼 편 |
② 잠금방식
● 롤 클로저(Roll Closer):
말 그대로 입구를 돌돌 말아서 잠그는 방식입니다. 아래 그림처럼 입구 부분을 차근차근 말아가되 최소 3번 이상을 접어주고, 마지막에 버클을 채울 때 입구를 접은 쪽으로 꺾는 것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꺾어서 버클을 채워야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물이 유입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너무 단순해서 가장 저렴한 편이죠.
● 지퍼 씰(Zipper Seal):
마치 비닐 지퍼 백처럼 입구의 요철모양의 이음부분을 눌러서 잠그는 방식과 진짜 방수 지퍼를 사용해서 잠그는 방식이 있습니다. 제대로만 채워지면 완벽한 방수를 보장하므로 롤 클로저 방식에 비해 비쌉니다. 다만 지퍼를 채웠을 때 개폐부가 너무 딱딱해지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싼 것이 특징입니다.
● 버클 씰(Buckle Seal):
주로 방수 하드 케이스에 쓰이는 잠금 방식으로 개폐구 주변에 고무 패킹이 있으며 개폐구를 버클로 단단히 눌러 잠그는 방식. GoPro 하우징을 닫을 때처럼 버클이 딱 소리가 날 정도로 잠겨야 방수가 확실합니다.
③ 크기(용량)
용량 | 용도 |
5리터 | 응급처치키트, 세면도구, 휴대폰, 열쇠, 지갑, 간단한 간식 수납용. 보통 좌석실 내부 앞쪽에 적재. |
10리터 | 간단히 갈아입을 옷가지를 수납하는 용. 주로 좌석실 뒷편에 적재 |
20리터 | 숙영지에서 입을 부피 큰 옷가지, 작은 침낭, 건조 식량 |
위 3가지 용량의 방수백 각 1개 준비하면 1인 기준 주말 1박2일 여행에 충분합니다.
|
30리터 | 대용량 해치가 있는 카약이나 싯온탑 카약의 데크에 적재 가능한 규모의 중형 방수백. |
50리터 | 주로 내부 용적이 큰 카누나 래프트에 많이 사용합니다. |
④ 형태
형태 | 용도 |
케이스(Case): | 하드쉘 타입, 납작한 지도 수납용, 휴대폰 수납용 주로 작은 용량의 방수 케이스를 일컬음. |
튜브(Tube) | 길죽하고 단면이 둥근 형태로 거의 롤 클로저 방식으로 잠그는 방수백. 멜빵이 달린 것은 비 오는 날 트레킹과 산책용으로 써도 좋습니다. |
더플백(Duffle Bag) | 손잡이와 어깨 멜빵이 함께 부착된 가방 형태로 대부분 지퍼 씰 방식으로 잠그는 방수백 |
탱크/팩(Tank/Pack) | 멜빵이 부착되어 있어 등에 짊어질 수 있는 대용량의 방수백. |
⑤ 가격/브랜드
방수백은 뭐니뭐니해도 유명 브랜드에다 가격이 제법 되는 것이 그나마 성능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값싼 방수백은 다 이유가 있죠.
재질, 버클과 D링 등 방수와 결속의 내구성 수준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고가의 물품을 싸구려 방수백에 넣는 오류는 범하지 마시길...
Tips
★ 방수백과 함께 꼭 쓰면 좋은 것이 바로 카라비너(Carabiner)입니다.
시중에서 파는 값싼 카라비너 말고 가능한 튼튼하고 녹슬지 않는 등산용 카라비너를 사용해서 카약 내부에 고정해서 카약이 전복되어도 유실되지 않도록 하세요.
★ 정기적으로 물을 담아 혹시 새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