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7월 28일] (일요일) <새재사랑 우정산행> 한북정맥 ♣ 운악산 (3)
* [산행코스] <동서울→포천 화현> ☞ [포천] 운악산 자연휴양림→ 운악사→ 면경대(궁예성터)→ 사부자바위→ (암릉)- 두꺼비바위→ 정상(서봉 : 935.5km)→ 정상(동봉 : 937m)→ (점심식사)→ 전망대(남근석)→ 코끼리바위→ 현등사→ 일주문→ 하판리 <산마을 순두부골>→ 조종천
* [현등사 들머리]… 고색창연한 함허대사 사리탑(舍利塔)
☆… 오후 2시 30분, 현등사에 도착했다. 절로 들어가는 산굽이에, 경기도문화재 199호인 <함허당득통탑(涵虛堂得通塔)>과 <석등(石燈)>이 보인다. 그 앞에 해설판이 있어 자상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함허대사는 조선전기의 고절한 명승(名僧)이다.
1411년(태조11년) 현등사를 중창했던 함허조사(涵虛祖師, 1376~1433)의 사리탑(높이 2.6m)은 팔각원당형(八角圓當形)이다. 경내의 서쪽 언덕이다. 대사가 1433년 문경 봉암사에서 입멸한 뒤 세종대왕의 명을 받고 내려온 효령대군이 사리를 수습하여 이곳에 탑을 조성하였다. 삼단의 팔각형 기단 위에 옥주형 탑신을 배치했다. ‘涵虛得通塔(함허당득통탑)’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팔각 지붕으로 물매가 급하다. 상층부에는 노반과 복발, 보륜과 보주를 두었다. 조선 초기 부도의 양식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부도 앞에는 세종의 왕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석등(높이 1.2m)을 배치했다 양주 회암사의 3대 조사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문경 봉암사, 황해도 연봉사, 강화도 정수사에도 함허당의 부도가 있으나, 그 중 현등사의 부도탑이 으뜸의 품격을 갖추었다.
* [운악산 현등사(懸燈寺)]… 유서 깊은 천 년 고찰(古刹)
☆… 현등사는 천 년 고찰이다. 신라 23대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한 527년부터 얼마 뒤 포교를위해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대장경을 모시고 온 인도 승려 마리하미(摩羅訶彌)를 위해 현등사를 창건했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신라 말 898년(효공왕 2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도읍이 비보사찰(裨補寺刹) 터를 찾던 중 산세가 빼어난 운악산에 이르러 터를 보고 재창한 뒤 운악사라 이름했다. 고려 희종 6년(1210년)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등불이 거듭 보이는 꿈을 꾸었다. 기이하게 생각하던 중 운악산에 이르렀을 때 옥등(玉燈)에 영롱한 불빛이 밝혀져 있었다. 이곳이 나라의 길지임을 깨닫고 삼창한 뒤 절 이름을 산에다 주니 운악산이 되었고, 절 이름을 현등사라 했다. 조선 태종 11년(1411년) 함허득통(涵虛得通) 국사가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운악산 서쪽 능선에서 흰 사슴이 나타나 인도하여 모신 곳이 현등사였다. 네 번째 창건하고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숨결을 느꼈다. 함허대사는 이곳 현등사 보합태화루(保合太和樓)에서 명저인『현정론』과『금강경오가해』를 저술했다.
세종 29년(1447년) 세종대왕은 현등사에 주석하고 있는 함허대사의 상수제자인 혜각존자 신미(信眉)에 명해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언해본)을 편찬했다. 1471년(세조 7년) 세조는 간경도감을 만든 뒤,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신미에게『능엄경』『묘법연화경』『원각경』『목우자심경』등을 언해(諺解)하도록 했다. 조선 후기에는 화담당 경화선사가 주석하기도 했다. 현등사는 신라,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들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고찰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적멸보궁이며, 경기도 3대 기도성지(현등사, 강화도 보문사, 관악산 연주암) 중의 하나이다.
☆… 현재 경내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극락전(極樂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보광전(普光殿) 및 요사(寮舍)와 3층석탑·지진탑(地鎭塔)·부도탑(浮屠塔) 등이 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금병풍(金屛風)이 있었는데, 6·25전쟁 중에 분실되었다. 보조국사가 폐허화한 불우(佛宇, 사찰의 건물)를 발견했을 때 절은 비록 황폐했지만 석등(石燈)의 불빛만은 여전히 밝게 비치고 있었으므로, '현등(懸燈)'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 [현등사 삼층석탑]… 그 유래와 곡절
☆… 현등사 삼층석탑은 1470년(성종 1년) 세종대왕의 8남인 영응대군의 부인 송씨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탑을 개탑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 5과를 봉안했다. 사리구는 1979년에 도굴되었다. 삼선문화재단에서 보관되어 있던 은제(銀製)원통사리외함과 수정(水晶)사리내함, 사리 2과를 2006년에 현등사로 다시 모셔왔다. … 현등사 3층 지진탑(地鎭塔)은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년)이 현등사를 재창하고 경내의 지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7층의 지진탑을 조성했다. 현재는 상층 3단만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경내를 둘러보는 사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극락전 앞, 뜨락에 핀 하얀 백합이 산사의 정적(靜寂)을 가늠하고 있었다. 현등사 뒤쪽의 산등성이에 노송거목에 안개 속에서 장엄한 자태를 보이기도 했다. 불이문을 통해 큰길로 내려섰다. 빗줄기는 계속 내렸다. 길은 하판리에서 현등사로 오르는 잘 닦여진 도로이다. 오른쪽의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비록 비는 내리지만 청랑한 계곡의 물소리가 더운 가슴을 씻어준다. 경사진 암반을 흐르기도 하고, 낙차가 큰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깊은 소(沼)에 물결이 소용돌이치기도 했다.
* [민영환(閔泳煥) 바위]… 절의의 암각서(岩刻書)와 무우폭포(舞雩瀑布)의 절경
☆… 지나는 길목에 ‘민영환 바위’라는 표지판에 해설이 적혀 있었다. … (이곳은) ‘구한말 궁내부 대신이었던 민영환 선생이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바위에 누워 하늘을 보며 탄식하던 곳으로, 1908년 나세환 외 12인의 의지(意志)로 이 바위에 ‘閔泳煥’이라는 이름자를 새겨놓은 암각서가 남아 있어 ‘민영환 바위’로 명명되었다. 바위 주변의 형상은 강류(江流)를 기울여 놓은 듯한 유유한 거폭으로, 그 밑에 깊은 심연을 이루니 폭(瀑)과 호(湖)를 겸비한 무우폭포(舞雩瀑布)이다. 옛날 중국의 시인묵객들이 금강산 구경을 평생 소원으로 여기고 조선에 와서 금강산을 찾아가던 중, 이 폭포를 구경하고는 ‘이미 금강을 다 보았다’고 하면서 돌아갔다는 전실이 전한다.’
* [두부마을 ‘산마을식당’]… 비오는 날, 따끈한 두부전골을 끓이며
☆… 오후 3시 정각, 현등사 일주문에 하산을 완료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일행은 하판리 <산마을 순두부골>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버섯과 함께 보글보글 끓는 두부전골과 익은 김치와 곁들여 먹는 손두부 보쌈의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산나물을 곁들인 반찬도 맛깔스러웠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훗훗한 속을 씻어 내리는 맛은 땀 흘린 뒤의 짜릿한 행복이다. 식당에서 속을 풀고 나오니 비가 그쳤다. 그래서 조종천 맑은 물에 땀에 젖은 몸을 씻는 수복(水福)을 누릴 수가 있었다.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청정한 ‘물맛’이야말로 더없이 상쾌한 일이었다.
* [에필로그]… 안개 속의 운악산, 그러나 기암노송이 빚어내는 절경
☆… 산길이 가파르고 기암노송의 암봉이 빚어내는 절경의 운악산, 그러나 짙은 안개가 아름다운 산의 진면목을 감추어버린 오늘 산행이었다. 고락을 함께 한, 전진국 사장님은 평소처럼 발걸음이 가벼웠고 전평국 사장 또한 산뜻한 반바지의 건장한 면모가 멋져 보이는 날이었다. 일기가 온전하기 않은 날, 그러나 우리가 산행하는 동안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으니 하늘이 가호하심이다. 평소 늘 산 앞에서 겸허한 모습을 보이던 산마루 이종렬 대원도 묵묵히 험한 암봉의 타고 내렸다. 특히 허기진 몸으로 가파른 운악산을 고군분투하며 무사히 산행을 마친 하회탈 김준섭 대원에게 뜨거운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행을 주선하고 버스표를 사고, 오늘의 분위기에 맞는 코스를 잡은 지평 민창우 대장의 노고와 정성이 있었기에 오늘의 산행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우정의 산행이었다. …♣
<끝>
첫댓글 하산후 두부전골 두부 김치 가평 잣 막걸리
아주 맛나게 잘먹고 알탕의 행복도 누렸다/
산행한 산악회 왕 형님분여러분 정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녜..무척 의미있어 보이는 산행이었군요 좋은데요....
사진도 잘 찍어서 올려주시니 아주 좋은데요....
저도 현등사 절엘 다녀왔습니다,,,,
올라가면서 등산로를 보고 언젠가 가봐야지 했는데 ...
종열이 오빠 21일 산행 못한거 이날 잘하셨네요......
잘 봤습니다..............
김치찌게....쯥
즐거운 산행에...
함께하지 못해 죄송스럽고 후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