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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 양사언 글씨 순례 (2)
석야 신웅순
양사언의 오언시
양사언은 호는 봉래이며 돈녕주부 희수의 아들이다. 사준·사기 삼형제를 송대의 중국 소순·소식·소철의 삼형제에 비유, 문명을 날렸다. 양사언의 오언시이다. 양사언은 안평대군, 김구, 한호와 더불어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해서와 초서에 능했다. 웅혼한 초서체의 글씨와 작위성 없는 한시는 자유분방, 천의무봉 자체이다. 도가적 기풍의 예술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미친 듯 써 내려갔다 해서 그의 글씨를 광초(狂草)체라 부르기도 한다.
霜餘水反壑 (상여수반학) 서리 녹아 내린 물은 계곡으로 흘러가고 風落木歸山 (풍락목귀산) 바람에 진 나무잎은 산으로 돌아간다 冉冉歲華晩 (염염세화만) 어느덧 세월은 흘러 한 해도 저물어 가니 昆蟲皆閉關 (곤충개폐관) 풀벌레 모두 다 숨어들어 움추려드는구나
양사언 글씨 ‘석실한수’(石室閑睡)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답사여행의 길잡이 3 - 동해ㆍ설악, 초판 1994, 21쇄 2011, 돌베개)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평촌리 흥정계곡에는 여덟 개의 바위, `팔석정'(八石亭)이 있다. 강릉 부사 부임 당시, 봉평면 평촌리에 이르러 정무도 잊은 채 여드레 동안 시상을 다듬으며 지낸 곳이다. 그가 고성 부사로 부임하게 되자 이별의 정표로 여덟 군데 바위에 글씨를 새겨놓았다. 삼신산을 가리키는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 석대투간(石臺投竿; 낚시하기 좋은 바위), 석지청련(石池淸蓮; 푸른 연꽃이 피어있는 듯한 바위), 석실한수(石室閑睡; 낮잠을 즐기기 좋은 바위), 석요도약(石搖跳躍; 뛰어 오르기 좋은 바위), 석평위기(石坪圍碁; 장기 두기 좋은 바위)이다.
봉래풍악원화동천 중 ‘화’- 출처 http://blog.daum.net/nyj2006/12559854
내금강 만폭동, 오선봉 아래에 길이 200m, 너비 15m의 너럭바위, 반석이 있다. 양사언이 회양 군수 재직시 금강산을 드나들며 쓴 ‘蓬萊楓岳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 여덟글자이다. “봉래, 풍악 금강산은 으뜸의 조화를 이룬 동천이다” 한국 서예사의 불멸의 금석 글발이다.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만폭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百川쳔洞동 겨 두고 萬만瀑폭洞동 드러가니, 銀은 무지게, 玉옥 龍룡의 초리, 섯 돌며 소 十십里리의 자시니, 들을 제 우레러니 보니 눈이로다.
백천동 옆에 두고 만폭동으로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 섞여 돌며 뿜는 소 리 십리 밖에까지 퍼졌으니, 먼 데서 들을 때는 우레 소리와 같더니, 가까이 보니 눈 같은 포말이 구나.
- 양사언 봉래전적탑본 (국립춘천박물관 소재)
봉래 양사언의 ‘봉래진적 (蓬萊眞蹟) 탑본’이다. 그의 글씨를 새겨 탑본한 서책이다. 다음 글은 ‘봉래진적 탑본’의 일부이다.
銅柱琳宮白日邊/亂峰如雪倚長天/眞仙상住千尋窟/仍我靑鸞駕紫烟//右寶(普)德窟書贈遠師 구리 기둥 사찰에 밝은 햇살/눈 같은 산봉우리 들쑥날쑥 하늘에 기대었네/신선이 천길 굴속 머 물러 노니는데/나 역시 푸른 난새되어 자색 연기 타고 있네//이 ‘보덕굴’ 시를 원스님에게 주다
白雲寺在白雲山/靑眼胡僧碧眼看/春來版塞靑溪水/不泛桃花到世間/右白雲瀑溪答友 백운사는 백운산에 있는데/푸른 눈의 호승은 푸른 눈으로 보네/봄이 옴에 널판지로 맑은 개울물 막아/복숭아 꽃 속세로 떠내려 보내지 않네//이 ‘백운폭계’ 시를 써서 친구에게 답하다 (강원도민 일보,2014,4,23 「양사언봉래전적」,이동명 sunshine@kado.net) - 주간 한국문학신문,2015.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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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