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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개혁의 한계와 쇄국양이: 집권 초기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했으나,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쇄국양이 정책을 고수하며 조선이 세계 대세(근대화와 개방)에 눈감게 만들었습니다.
임오군란과 외세 개입 빌미: 권력에서 밀려난 뒤에도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고 임오군란 등 정변 과정에 개입하면서, 청나라와 일본 등 외세가 조선 내정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상시적으로 제공했습니다.
2. 명성황후 (외척 정치와 사대주의적 외교)
척족 세도정치 부활: 대원군 집권기를 끝내고 고종의 친정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민씨 일족을 요직에 앉히며 조선 후기 패망의 주원인인 세도정치와 매관매직의 폐해를 부활시켰습니다.
외세를 업은 권력 유지: 정권 유지를 위해 청나라, 러시아 등 외세의 힘을 번갈아 끌어들이는 사대적·외교적 처신을 거듭하면서, 조선을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3. 고종 (우유부단함과 무능, 국정 파탄)
최고 책임자의 방관과 무책임: 국가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명확한 안보·외교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태에 끌려다녔습니다.
매관매직과 재정 파탄: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왕실 재정 확충과 치부(재산 모으기)에 관심을 두거나, 붕괴하는 관료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지 못해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결국 나라가 일본에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까지도 무능과 우유부단함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요약 및 역사적 평가
이 세 사람은 조선의 현대화와 자주적 생존을 이뤄내야 할 결정적 시기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기는커녕 권력 투쟁(대원군 vs 민씨 세력)과 실정(고종의 방관)으로 국력을 소모했습니다.
물론 당시 제국주의 열강(일본, 러시아, 청 등)의 침략 야욕이라는 거대한 외부적 요인이 조선 멸망의 직접적인 방아쇠가 된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고 백성을 보호해야 할 지도부 스스로가 내부 분열과 부패로 국력을 소모하여 스스로 방어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이 3자에게 망국의 역사적·정치적 책임이 크다는 평가는 타당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