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44
기름 장갑 전도사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흥분과 좌절의 맛을 보게 한 사건은 두 가지다. 먼저 미국판 로또인 파워볼 당첨자가 나왔다. 누적 당첨금이 무려 2조 8천억 원에 이른다. 토픽감 횡재에 동네 주유소에서 복권을 산 사람은 미국 복권 당첨금 기록을 새로 쓴 주인공이 되었다. 3억분의 1의 당첨 확률을 혼자 거머쥐었으니 새끼 달린 돼지 꿈이라도 꾼 모양이다.
다른 사건 하나는 세계 3대 가상화폐거래소로 알려진 FTX의 파산이다. 부채 규모가 66조 원이고 채권자가 백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 FTX 파산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은, 상당수 국내 투자자도 피해를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다. 웹사이트 분석업체 ‘어스웹’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FTX 거래소를 방문한 이용자의 국적을 분류한 결과, 한국이 6.2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국내 코인 광풍의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돈 지르기 게임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대학생들은 절반 가까이가 주식과 코인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다. 더 객관적인 근거도 있다. 금융정보분석원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하루 평균 국내 코인 거래액은 11조 3천억 원으로 유가증권시장 거래액의 73%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오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가상화폐를 사고팔았다니 국민 열에 하나는 땀 냄새가 없는 돈을 구경한 셈이다.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공식은 단순하다. 시중금리를 상회하는 모든 금융상품은 기대수익에 비례한 위험부담이 있다. 터무니없는 수익상품은 거품이거나 사기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투기의 담장 위에서 까치발로 걷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뻥튀기는 마약과 같아서 아무리 말려도 기어이 담장을 기어오른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작년도 기업들의 순이익률은 고작 5%에 불과하다. 이 중에는 별을 보고 퇴근해도 이자 내기에 급급한 기업이 수두룩할 것이다. 대출금리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벌겠다고 하나 남은 아파트까지 담보물로 내놓는 처지가 안쓰럽다.
그렇다고 돈벼락 맞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는 3억분의 1의 확률을 믿고 미국 복권을 사는 일이다. 3억 년 동안 생명을 부지한다면 언젠가 행운의 주인공으로 월드 뉴스에 오를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위험부담을 높여 떼돈을 버는 방법이다. 런던정경대 분석으로는, 코카인을 원산지인 콜롬비아에서 구하여 미국으로 가져가 팔면 이익률이 무려 6400%가 된다고 한다. 물론 검은돈을 세탁하는 데는 코인이 제격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따위의 미련하고 위험한 거래보다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이 있다. 이른바 언더테이블(Under the Table)기법이다. 인허가권을 가진 권력자에게 줄을 대고 도원결의를 한 다음 양주를 먹이고는 CCTV가 없는 곳에서 종이상자를 건네주면 된다. 이만하면 한국이 선진국이란 걸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목숨줄이 위태로운 콜롬비아까지 갈 필요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4개월 만에 사업권을 따낸 새만금 해상풍력 사업자가 중국계 회사에 특수목적법인을 매각하려 했다고 한다. 자본금이 천만 원인 회사를 660억 원에 팔기로 했다면 마약밀수 뺨친다.
더 달콤한 뻥튀기도 있다. 성남이라는 카지노에서는 3억 5천만 원을 넣고 4천억 원 넘는 잭팟을 터트렸다고 하여 그 동네 개들도 억억 짖는다고 한다. 돈벼락을 맞도록 누군가 잭팟 머신을 조작하고 돈을 나눠 갖기로 했다는데 두고 볼 일이다.
누구는 종이상자에 돈을 퍼담고 누구는 버린 종이상자를 주어 라면을 끓인다. 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공정과 정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배설한 탐욕의 시궁창이 비리도록 역겹다.
저들이 죄를 지었다면 법이 정한 대로 처분하면 된다. 그러나 법전에 그려진 법의 저울은 일차원적이어서 무게와 부피를 계산하지 못한다. 시장질서를 왜곡한 죄, 국가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게 한 죄, 분열과 갈등을 조성하여 사회적 비용을 야기한 죄, 무엇보다 장갑이 제 손인 줄 알고 살아가는 소박한 시민을 허탈하게 만든 죄는 저울 눈금이 없다.
땀으로 얼룩져야 할 돈이 위폐가 되기까지는 시민의 책임도 있다. 누가 그들에게 권력을 쥐여주고 시민위에 군림하도록 했는가 하는 물음에서다. 이제라도 지역을 나누고 우상을 만들어 맹종하는 후진적 정치의식을 시민 스스로 깨부숴야 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 쓸만한 책을 골라 베개로 삼고 싶다. 가끔은 연주회나 미술 전시회에서 턱을 괴고 싶다. 무릎 연골이 닳을 때쯤이면 가족과 함께 크루즈 갑판에서 지는 노을을 보고 싶다. 그리고 새벽 댓바람에 절룩거리며 종이상자 손수레를 끄는 노인을 만나면 돈다발 담긴 상자를 실어주고도 싶다. 기름 장갑 전도사들이 꾸는 사람의 꿈이다.
장갑 전도사들은 돼지꿈을 혐오한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땀보다 더 보람 있고 정직한 소득은 없다고 훈장질한다. 개꿈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결혼반지라도 팔아서 창업하라고 꼬드긴다. 그것이 땀의 짠맛을 아는 경영자의 자질이기에 그렇다.
요즘은 장갑 장사에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개가 돈을 물고 다녀도 기름 장갑 전도사는 장갑을 팔아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기업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 침 튀겨 알려 줘야 한다. 그래서 한 아이라도 이마에 맺힌 땀을 장갑으로 훔치고 훗날 노인의 손수레에 작은 봉투라도 얹어준다면 영혼을 구한 것이다.
풀빵 하나 팔아 본 적 없이 권력과 돈다발을 움켜쥔 사람들에게 바란다. 기름 장갑을 우습게 보지 마시라. 그 기름때가 낀 손으로 당신들의 주머니에 화폐를 그려 넣었다. 작업복 입은 사람에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시라. 위선의 가면을 벗는 첫 번째 절차다. 다시 이른다. 그래도 역사의 석판(石板)에 이름을 새기고 싶다면 먼저 두려움을 배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