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봄소풍]
정병경.
ㅡ도자 견학ㅡ
광주廣州 시민대학 학기의 반半에 접어든다. 세월이 마치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은 느낌이다. 함께 수업하는 수강생 열세 명과 곤지암에 자리한 '경기도자박물관'으로 나선다. 구름이 해를 가리고 기온이 초봄 수준이어서 걷옷을 걸쳐야 한다.
20만평의 부지에 상설 전시실과 체험 자료관, 공연장까지 갖춘 규모는 광대하다. 전시실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근ㆍ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자陶瓷 역사를 감상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다. 초등학생들이 견학하느라 한마당을 이룬다.
'분원백자자료관' 전시실엔 관요를 굽던 당시의 실상을 느끼게 해준다. 조선시대 왕실 자기를 구워낸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은 교육적 소재가 담겨 있는 지역이다.
임영국님이 전원全員의 입장표를 구매하여 일행에게 배려한다. 도자 역사 자료를 보는 두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정성스레 오찬으로 준비한 김밥과 후식은 오경옥님의 솜씨다.
공식 일정은 접고 나홀로 산책이다. 가마터 뒤편 산의 계곡은 '스페인조각공원'이다. 임승오 작가를 비롯해 10명의 우리나라 작가 작품을 보게 된다. 스페인 유명 작가 40명의 작품도 눈에 담으며 산책길을 걷는다.
표석의 제목과 작품을 매치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혼을 담은 주인공의 지혜로움을 발견한다. 계곡과 능선에 배치한 작품이 서로 호흡하는 모습으로 보여 정겹다. 이야기가 담긴 설치 미술에 시간을 빼앗기며 능선 한바퀴 돌으니 보약 한 첩 마신 기분이다.
ㅡ회흔당으로ㅡ
무갑산 자락에 자리한 회흔당檜昕堂으로 향한다. 협소한 외길따라 계곡으로 달리면서 초자연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깊은 산속에서 봄을 만끽한다.
자연석에 회흔당檜昕堂이 새겨져 있다. "전나무 숲 집에 드니 마음이 기쁘다"란 표현으로 직역해본다. 무대 주변에서 풍기는 솔내음이 섞인 자연의 숨소리를 몸으로 느낀다. 공연 시간이 가까우면서 관객은 객석을 메운다. 전나무와 잡목이 빽빽한 무갑산 계곡은 오케스트라 연주장으로 안성맞춤이다. 칸타타와 소나타의 조화로움에 어울리는 숲이다.
작은 음악회를 기획한 광주문화원 손혜선 팀장의 잠재력을 가늠한다. '전통예술인단체' 윤문숙 대표가 주최한 '조선풍류 井'이다. 국립국악원 단원과 클래식 연주단체가 함께 공연하는 프로잭트다. 음악 언어 음계 궁상각치우와 도래미의 협연이다.
주제는 허난설헌 '천상의 노래'다. 2년에 걸쳐 실내에서 공연한 작품 재현이다. 김병오 지휘자를 비롯해 15명의 명인이 펼치는 공연을 야외에서 볼 기회가 온 것이다.
전통 무용 악기와 클래식 악기가 만나 화음을 이룬 독일 작가의 곡이 울려퍼진다. 대금과 소금, 가야금, 해금, 피리와 장구는 필수불가결이다.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흐르는 자연의 소리를 감상한다.
바이올린은 콘서트마스터라 불린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사이를 조율할만큼 역할이 큰 악기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 음역인 비올라는 두 번째로 작은 악기에 속한다.
현악기 중 가장 큰 콘드라베이스가 가장 낮은 음역이다. 클래식에 필수로 등장하는 악기다. 이렇게 모인 악기가 이탈리아 음악가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연주한다. 클래식을 최초로 선보인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무갑산에 메아리진다.
ㅡ자연의 소리ㅡ
자연 속에서 연주되는 봄의 소리가 3백년 전인 1700년대 음색이나 다름없다고 여겨진다. 후대로 이어지는 고전시대와 낭만시대,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도 초기의 기법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
늦게 핀 홍매화와 영산홍 등이 무대를 장식한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줄 가교 역할을 한 공연에 박수가 이어진다. 구면인 인물들과 한자리에서 감상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깊숙한 무갑산 계곡 자락에서 울리는 자연의 소리가 음악과 함께 천상으로 오른다. 현악기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음이 사방에 흩어지지 않아 입체 음향으로 느껴진다. 타악기나 건반 악기 없이도 연주의 기교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보여준다.
돌틈의 시냇물 소리를 함께 음미하기 위해 연주자 뒤편 돌계단에 앉아 들어본다. 오묘하다. 협주자의 혼이 담긴 소리다. 악기 성능보다 협연자의 기량을 한껏 펼친 마당이다.
계곡에 드리운 안개비가 선비학춤으로 그려진다. 김무빈 명창의 경기민요로 대미를 장식한다. 구수한 우리 가락의 보답으로 백여 관객이 친 박수는 계곡에 스민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보낸 아쉬움을 접어야 하는 시간이다. 무대는 끝났지만 태평가 가사를 읊조려본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바치어 무엇하나."
주어진 몫에 소홀하지 않고 한평생 행복을 이루며 살고지고!
시간에 구애하지 않고 객석의 시선을 집중하기 위해 석양 노을은 안개와 구름으로 덮는다. 자연의 지혜로움이 일조한 하루다. 만찬 떡만두국에서 솟아오르는 김은 안개비와 뒤섞인다.
윤달인 2월이 가고 3월 초하루다. 절기는 봄의 막바지 곡우다. 날씨는 흐렸지만 기분은 맑음이다. 무갑산 자락 숲에서 꽃과 함께 자연의 소리를 만끽한 봄소풍을 접는다.
20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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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경 프로필》
*경기 광주 출생
*경원대 인문대학원 국문학 석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진문협 회원
*전쟁문학회 이사
*에세이스트
*광주문화원 광주학 연구 위원
*수필집:《소리 없는 울림》.
《바람이 남기고 간 구름》 등 다수.
이메일: byungkyung51@hanmail.net
첫댓글 선생님 프로필이 6줄만 들어가므로 위에 출생,년도는 빼도 되겠습니까?
선생님 장르는 수필로 할까요?
네네,
장르는 수필로 하시면 됩니다.
@정병경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신경순 감사합니다.
준비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정병경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