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再起불능인가, 전화위복인가? /조갑제
李明博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대선과 총선에서 크게 승리하고도 위기에 빠
져들어간 100일간의 과정을 정리하면 이렇다.
1. 대통령직 인수위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在庫(재고)조사를 하지 않고 점
령군처럼 행동하면서 엉터리 정책들을 쏟아내었다. 李明博(이명박) 당선자
의 전략과 방향이 처음부터 실종되었다. 노무현 세력의 반역과 부패를 수
사 하여 이들을 일소하고, 선동방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
다.
2. 취임사 등에서 李明博 대통령은‘이념을 떠난 실용’을 강조함으로써
친북좌익들과 대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암시 하고, 행동파 보수세력을
멀리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3. 교수 중심의 아마추어들을 비서진과 내각에 많이 등용하고, 좌익과 싸
울 줄 모르는 부자들을 중용하고, 노무현 정권 요직자들을 안보부서 사령
탑에 배치하였다. 좌우로부터 다 비난 받는 인사를 한 셈이다.
4. 총선 때 하향식 밀실 개판공천으로 친박근혜 세력의 반발과 이탈을 불
러 종당에 구 한나라당을 망쳤다.
5. 총선에서 보수세력이 대승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은‘친이 세력의 패
배’로 인식, 총선의 역사적 의미를 실종시키고, 친북 청산을 요구하는 민
심을 외면했다.
6. 친박 국회의원 당선자 26명의 복당을 거부하고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적대적인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보수대연합이 아닌 보수분열 구도를 형성했
다. 친북세력과 대결할 생각이 없으니 보수대연합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
을 것이다. 이념이 없으니 전략도 생기지 않은 것이다. 정부의 이름까지도
‘이명박정부’라는 봉건사회 때나 나올 법한 이름을 지으며, 한 마디로
오만으로 일관했다.
7. 이 통령이 행동파 보수층도 외면하고, 친박세력도 배척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보수층 이탈하기 시작하여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8. 4월말 MBC의 광우병 선동과 인터넷 괴담, 그리고 친북좌익들의 조직적
인 개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좌익에 기선을 빼앗겼다. 좌익에 대한
선제공격을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니 기습을 당한 것이다.
9. 문제의 발단인 광우병 관련 선동방송에 대하여, 정부가 신속하고도 엄
정한 법적 제재조치와 홍보전을 포기함으로써 거짓말이 반박되지 않고 유
포되기 시작했다.
10. 대통령의 일방적 사과와 정부의 거듭된 퇴각이 이어지고 선동방송에
대한 명쾌한 반박이 없으니 거짓말이 사실로 둔갑하여 떠돌기 시작했다.
11. 이명박 정부는 5월 들어 집시법 위반인 야간집회를‘촛불문화제’라고
허용함으로써 스스로 법질서 수호 의지를 포기했다. 이것이 선동세력의 기
를 살려주었다.
12. 선동세력이 거리를 점거하고, 청와대로 몰려들고, 보수언론을 협박하
기 시작했다. 검찰 경찰이 법집행을 포기하니 보수언론도 겁을 먹고 선동
세력에 영합하기 시작했다. 불법폭력 시위를 비판하지 않고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비판하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니 경찰도 사기를 잃고 사보타지 단계
에 들어갔다.
13.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까지 촛불 세력에 가세하고, 박근혜 의원의 팬클
럽인 박사모는 촛불시위에 가담했다. 한나라당은 경찰의 물렁한 진압까지
도 제동을 걸고 선동세력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정치 지형이 폐
허화되었다.
14. 이명박 대통령의 비서진과 내각도 선동방송과 촛불시위대에 대하여 겁
을 집어먹은 것처럼 행동했다. 청와대 대변인, 관계 장관, 정부 대변인들
이 방송과 좌익들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대하여 반격을 포기한 이유가 있
을 것이다. 재산공개 이후 청와대 비서진과 각료들이 언론에 집단적으로
약점 잡힌 상태가 되어 아무도 선동방송과 정면 대결하지 않았고, 대통령
도 독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깨끗하지 못한 치부나 부조리가 조
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공직에 기용하면 절대 안된다.
15. 정부가 거짓말에 대한 반격을 포기하고 사과, 후퇴를 거듭하니 선동세
력이 오히려 正義의 사도나 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촛불시위는 맥
아더 동상 파괴 기도 - 평택 미군 기지 이전 반대 폭동세력이 주도했으나,
李明博 대통령에게 불만을 품은 여러 세력이 가담했다. 특히 인터넷 괴담
에 속아 넘어간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진실과 正義(법치)
와 자유는 한 덩어리인데 진실을 지키지 못하니 正義와 자유가 날아간 것
이다.
16. 李明博 정부는 불법폭력 시위에 대한 진압을 포기했다. 공권력 행사의
도덕적 기반인 진실 공방에서 밀린 때문에 엄정진압에 나서지 못한 것이
다. 대한민국 심장부인 광화문에 보름간‘선동의 해방구’가 조성되었다.
6.25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북에서 볼때 남쪽은 아무렇게나 주물러도 겉
으로 생색만 내는 허수아비로보일 것이다. 공권력이 무력화되니 李明博 대
통령에 대한 보수층의 불신이 확산되어 지지율은 10%대로 急落(급락)했다.
17. 李 대통령은 한 번도 국민들을 직접 설득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그의
입에선 한번도“문제의 발단은 MBC의 선동방송이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
다.
18. 결국 李明博 대통령은 진실을 포기함으로써 정의(法治)와 자유(안전)
까지 날려 보내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대통령, 광화문을
난동세력에게 넘겨주고, 청와대에 숨어 있는 대통령이란 인식이 확산되었
다. 그가 再起(재기)불능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퍼졌다.
19. 친북좌익과 정면으로 대결해본 적이 없는 李明博 대통령은 광우병 사
태 이후 비로소 이들과 싸우지 않고선 國政운영이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인
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공안기관도 참
으로 오랜만에 좌익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대통령
이 법질서 확립을 기치로 내걸고 反헌법적 친북좌익을 약화시키는 방향으
로 정부를 끌고 가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이명박 정권이 이제라도 재기(再起)하는 방법
(1) 친북 좌파 완전히 척결해야 한다.
친북좌파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착각하지 말라.
(2).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엄격한 법질서 확립으로 준법정신에 입각한
불법을 공권력 행사로 일관해야 한다.
(3) 유치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군에 갔다 오지 않아 적군과 아군도 구별
못하는 상황을 빨리 배워서 적과 동지를 확실히 분간해야 한다.
* 자유민주주의 수호국민의 허탈감을 빠른 시일 안에 치유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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