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노박 덩굴을 사랑하는가>
노박덩굴을 꺽어서
흰 벽에 걸어두었지
절로 껍질 벌어지고
붉은 열매 나왔네
저 씨앗들은 왜 이리 황홀할까
그건 외롭기 때문,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생존의 슬픔이지
누구나 무관심하니까
누구나 무정하니까
그래서 깊은 눈[眼]에 띄게 하려고
그러니까 살아보려고
속으로 맺혀버린 거야
붉은 명,
오랜 자학,
“새야, 어디 날아와 나를 물어 가다오”
지난 한 계절
노박덩굴과 함께 살았네
제 몸을 비우는 것처럼
제 맘을 태우는 것처럼
간절하니까
절박하니까
<손을 보아봐-운주사, 석조불감 앞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는 건
설움이 많기 때문이지
너와 너의 누이와 나의 어머니와 그리고
그물코에 걸린 숭어 떼의 눈망울들도 마찬가지야
고요하거나 들끓거나 쓸쓸하거나
간절함은 먼 데서 찾아오는 바람 같은 것
그러나, 부귀한 자는 손을 모을 줄 모르지
구름을 끌어올리듯 가슴에 두 손을 얹을 때,
설움 속에서 우리의 고백은 진실한 거야
손을 보아봐
겨울 화분에 싹이 올라오는 순간처럼
손을 모아봐
손을 보아봐
<고흐의 아주 사소한 독백 하나-‘별이 빛나는 밤’에 대하여>
파도가 불러서 우리가 왔지
고갱의 병식, 시엔의 수영, 가세 박사의 현묵, 탕기
영감의 동근, 테오의 상순
자은도 수평선 뭉게구름 위에 만월처럼 둘러앉아
압생트를 마셨지
난 미친 게 아니야, 색채 속에 갇힌 것뿐이야
그날 밤도 그랬어, 나의 모든 것이 어두우니까 눈빛
이 날 밖으로 인도한 거야
하늘은 바다보다 더 깊어, 그래서 내 눈도 깊어진 건
데 그만큼 눈물이 많아
그러니까 그 별은 바다 위의 별이지만 실은 나의 눈
물 자국이야
파도가 불러서 우리가 왔지
파도가 불러서 우리가 왔지
# 박노식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 # <고흐의 아주 사소한 독백 하나-‘별이 빛나는 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