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라잉 게임>에서 테러리스트와 동성애를 소재 삼아 아일랜드 문제를 스치듯 건드렸던 아일랜드 출신의 닐 조던 감독은 1996년 영화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에서 조국의 실제 역사를 자신의 시각으로, 할리우드 영화문법에 충실하게 재현했다. 우연찮게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초기 지도자 마이클 콜린스의 투쟁과 삶을 그린 이 영화는 한반도의 해방 전후를 떠올리게 한다.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난한 싸움과 논쟁의 과정들, 해방의 가능성을 분단이라는 또다른 질곡에 내줘야 하는 정치상황 따위가 그렇다.
영화는 1916년 더블린 부활절 봉기의 실패에서 시작한다. 12세기 이래 영국은 카톨릭 중심의 아일랜드를 정치경제적으로 지배하며 영국계 신교를 퍼뜨려왔다. 아일랜드인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싸우느냐의 문제인데, 콜린스(리암 니슨)는 현저한 전력 차이를 무시한 전면전보다 게릴라전을 택한다. 그는 영국경찰의 앞잡이들을 처치하기 시작하고, 영국에서 건너온 비밀경찰들도 암살해 버린다. 백범 김구의 투쟁노선을 연상시키는 이 대목에서 이승만의 외교노선과 닿아 있는 또다른 지도자 에이먼 드 발레라가 등장한다.
애초 콜린스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발레라는 국제여론을 이용, 독립을 꾀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 온 뒤 콜린스의 노선에 반기를 들고, 또다시 전면전에 돌입한다. 파국 직전에 영국의 휴전 제의를 받고, 발레라는 정적이 돼버린 콜린스를 협상 대표로 파견한다. 여기부터 김구 대 이승만식의 구도는 뒤집히듯 깨진다. 남아일랜드 독립과 북아일랜드 영국 통치라는 분리독립을 요지로 한 협약을 안고 온 콜린스에 대해 발레라는 완전독립을 요구하며 반기를 든다. 1922년 협약은 의회를 통과하지만 콜린스와 발레라는 내전의 상황에 빠져든다. 이 와중에 콜린스는 일군의 아일랜드인의 습격을 받고 숨진다.
조던 감독은 콜린스의 죽음에 발레라가 개입했다고 확신하며 시종 콜린스 노선의 타당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북아일랜드에선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통합이냐, 독자적 독립이냐, 계속 영국의 한 주로 남느냐를 놓고 아일랜드 카톨릭계와 영국계 신교도가 사실상의 전투를 벌여왔다. 런던에서는 아일랜드 완전 독립을 요구하는 IRA의 테러가 잇따른다. 그리고 콜린스에 대한 아일랜드인 사이의 평가는 여전히 갈린다. 무장투쟁을 통해 완전식민 상태를 극복한 영웅이라는 평가와 아일랜드 남북분단의 주역이라는 비난이 엇갈려 역사책도 이 부분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영국 입장에선 콜린스가 흉악한 테러리스트일 뿐이어서 영국 본토와 영국령 홍콩에선 영화 상영이 금지됐다.
199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받았지만 평화를 보는 그밖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미국 평론가 크리스토퍼 닐은 보통 수준이라는 뜻의 별 세 개로 영화 평점을 매기며 '과잉되고 오도된 설교' '교훈극' 정도로 평가했다. 사실 진짜 흠은 영화의 교훈성에 있다기보다 할리우드 제작품임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데 있다. 줄리아 로버츠를 애매한 성격의 캐릭터로 등장시켜 콜린스와 그의 또다른 동지 사이에 빚어진 갈등을 노선 차이보다 사랑싸움에서 빚어지는 것으로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