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아프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어가는데 기척이 없었다. 오늘은 딸들과 함께 인천에 있는 파라다이스 씨메르란 곳으로 수영과 찜질을 하러 갈 예정이었다. 둘째 딸이 올해 회사에 입사를 했다. 입사원서를 몇번 제출하는것 같더니 게임회사에 스토리 작가로 회사를 다니게 됐다. 나는 너무 기뻣다. 딸이 카카오페이지에 웹소설 작가로 등단 소설을 게재했었다. 문창과를 나온 딸이 그래도 자기 길을 가고 있는것 같아 기뻣다. 그러나 소설을 매일 매일 웹에올리는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딸은 밤을 새워 글을 쓰고 다음날 오후 2~3시 까지 잠을 잤다. 그리고 일어나면 또 글을 쓰는 일을 반복했다. 독자들이 글을 읽으면 그 읽는량 만큼 창작비가 들어오는 형태였다. 고생하는것 보다 생기는 돈이 얼마 없었다. 어떤 글을 쓰던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않다. 거기다 쓰여진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는 것은 더 쉬운일 아니었다. 낮과 밤이 바뀐 딸을 보며 항상 건강이 염려되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것이 작가의 숙명인것을, 한차례 웹소설이 모두 막을 내린 후 잠시 쉬다 이차 작업을 시작했다. 키다리출판사란곳과 계약을 맺고 작품을 출품했는데 차기작을 제출하자 출판사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같았다. 수차례 수정을 하였으나 출판사 담당자를 통과 하지 못햇다. 그러자 딸은 작품 내기를 뒤로 밀어두고 회사를 다니는 것으로 진로를 변경했던것이다. 어째든 자기가 배운것을 써먹을 수있는 회사를 다닐 수있어 다행이었다. 그래서 2024년이 끝나기 전 가족들과 송년기념으로 파라다이스 씨메르를 가려 했던것이다. 어제 갑자기 무안비해장에서 비행기가 추락했다. 그 비행기 안에는 181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비행기 사고는 치명적이다. 사고가 나면 많은 인명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이번에도 2명만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179명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사고비행기는 태국에서 출발 무안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사고원인은 정확치 않지만 잠정 새와 부딛치는 일이 발생해서 사고가 난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사고사를 당한 승객들 하나하나 사연이 안스럽고 애닳았다. 집사람과 나는 TV를 보면서 눈시울을 불혔다. 한숨이 절로 났다. 왜? 이렇게 안좋은 일이 한꺼번에 생기는 것일까, 대처할 수 있는 시간도 주지 않고 악재에 악재가 겹겹이 발생하고 있었다. 우리가 정녕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정말 걱정스러웠다. 내가 하고 있는 부동산 일도 잘 풀려나가지 않고 있었다. 모든 자영업자들이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 가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특히 한 임차인이 사고를 치고 있었다. 월세를 밀리고 연락도 되지 않고, 방을 빼지도 않는다. 집사람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남들은 쉬지 않는 날인데 문을 닫고 쉬러 간다는게 마음이 무겁네"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 일도 없고 애들하고 모처럼 연말에 쉬러 가는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소, 아무 생각말고 다녀옵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원인이었을까 아침에 일어나니 걸음도 못걸어 기어서 안방을 나왔다. "왝왝" "왜그래 어디 아파" 소화제 물약과 가루약을 달라고 했다. 우리집엔 비상용으로 소화제를 항상 비치하고 있었다. 집사람뿐만 아니라 애들도 속이 종종 좋지 않아 소화제가 항상 필요했다. 나는 소화제를 가져다주며 혀를 끌끌찻다. 정말 짜증이 났다. 오늘 놀러가자고 한달 전부터 예약을 하고 애들 한테도 다른 약속을 하지 말라고 했었다. 애들도 조금은 들뜬것 같았다. 가족여행을 자주 다니지 못했다. 애들이 어릴때 몇군데 가보곤 했지만 애들이 크곤 많이 가보지 못했다. 나도 집사람도 먼거리 여행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모처럼 계획한 여행 (비록 하루 여행이지만)을 취소해야 했다. 나는 씨메르에서 수영도 하고 찜질도 하고 놀다가 저녁엔 노을이 보이는 횟집을 찾아 일몰을 보며 회 한접시를 먹고 오려했다. 딸의 회사 입사를 다시 한번 축하하고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낼수 있었음에 감사하려 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축원하려 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은 사라졌다. 물론 내 계획이 수포로 된것은 너무 작은일이다.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는데 나만 가족들과 즐겁게 지낸다는것이 한편으론 마음을 무겁게도 했다. 며칠전 친구들과 송년식을 하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자리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부모님들이 돌아가셨거나 나이가 많이 들어서였을것이다. 나는 장기기증, 시신기증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가족들에게도 간혹 말하곤 했다. 아빠가 죽게되면 장기,시신기증을 하라고, 딸이 말했다. "그건 아빠생각이고 우리 생각도 해야지" 어쩌면 죽음은 나의 몫이고 처리는 자식들의 몫인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어렸고 집은 가난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화장하고 뼈는 산골터에 뿌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아버지가 화장했는데 어머니만 매장하는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화장을 하고 산골을 했다. 그런 내가 나의 죽음에서 다른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시신기증과 장기기증을 얘기했을 때 친구들은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 그러나 내 결심은 확고했다. 다음날 인터넷으로 사랑의 장기기중 센타를 찾았다. 장기기증을 인터넸으로 신청 할 수 있었다. 나는 기증신청서를 작성했다. 신청하기만 누르면 바로 신청이 되었다. 엔터키를 누르려는데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았다. 아! 찌질한 놈, 남한테는 그렇게 번드르르하게 말해놓고 막상 신청을 하려 하니 떨고 있구나, 살아서 기중하는것도 아니면서, 죽으면 모든 세상이 닫히는것을 알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신청을 하지 못했다. 핑계거리를 만들었다. 시신기증도 할거니까 시신기증을 받아주는 병원에 가서 알아보고 함께 신청하자, 나는 싸이트를 빠져나왔다.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자신의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을 할것이다. 자꾸자꾸 내 마음속에 저장하고 또 저장할 것이다. "메멘토모리"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것을 기억하라, 죽음은 삶과 종이 한장 차이인것 같다. 죽음은 항상 우리 주변에 머물러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는다. 물론 갑작스런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줄것이다. 잊으려 한다해도 쉽게 잊히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나 메멘토모리를 생각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찬란한지 깨닫지 않겠는가! 죽음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극한의 고통이지만, 살이있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 신이시여 꼭 우리에게 이렇게 고통을 주어 삶의 찬란함을 일깨우려 하십니까?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통없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순 없는것 입니까? 신을 잊지말고 기억하라는 죽음이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오! 신이시여 당신이 낳은 우리 인간들을 부디 굽어 살피시업소서...